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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산 제물로(롬12:1)_2022년 송구영신예배설교 신년0시예배 설교

by 똑똑이채널 2021.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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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논지)오늘날의 예배는 찬양과 기도와 말씀과 예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하지만 구약시대는 짐승을 잡아서 드리거나 곡물을 빻아서 드리는 제사로 드렸습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의 제사는 드리는 목적에 따라 크게 다섯 가지 형태로 분류해서 드렸습니다.

첫째는 번제가 있습니다.

짐승을 잡아서 그 피와 함께 온전히 하나님 앞에 태워드리는 제사입니다.

하나님 앞에 철저한 헌신을 목적으로 드리는 제사였죠.

 

두 번째는 소제가 있습니다.

곡물을 곱게 빻아 빈대떡이나 오늘날의 피자처럼 하나님의 성전에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만큼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고 봉사를 다한다는 뜻의 제사였죠.

 

세 번째는 화목제가 있습니다.

제사의 형태는 번제와 같지만 짐승의 일정부위는 하나님께 드리고 나머지 부위는 이웃과 함께 나눠서 먹는 제사였죠.

때로는 불편한 사람이나 다툰 사람까지도 초청해서 나눠 먹는 제사였기에 이웃과 화평을 위한 제사였습니다.

 

네 번째는 속죄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지은 죄를 속함받기 위해 드리는 번제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지은 죄가 생각났을 때 그 즉시 드리는 제사가 속죄제였죠.

 

마지막 다섯 번째는 속건제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죄를 속함받기 위한 제사가 아니라 사람 사이에 물질적인 범죄를 저질렀을 때 배상하는 차원의 제사였죠.

그만큼 사람과 물질적인 막힘이 없도록, 사람과의 관계 회복하기 위한 제사였습니다.

몸을 산 제물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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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지2) 그와 같은 다섯 가지 제사는 목적별로 분류한 제사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제사를 어떤 형태로 드리느냐에 따라 네 가지 형태로 나눠집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불로 태워서 드린다고 해서, 불 화(火)자를 써서, ‘화제’(火祭)라고 부른 형태죠.

둘째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하늘로 들어 올렸다가 내려놓는다고 해서, 들 거(擧)자를 써서, ‘거제’(擧祭)라고 불렀죠.

셋째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상하 좌우로 흔들어 바친다고 해서, ‘흔들 요’(搖)자를 써서, ‘요제’(搖祭)라고 불렀죠.

마지막 넷째는 피나 포도주나 기름과 같은 액체를 하나님께 제물로 바친다고 해서, ‘부을 전’(奠)자를 써서, ‘전제’(奠祭)라 불렀습니다.

 

(예화) 수요일저녁마다 우리가 사도행전을 살펴봤는데, 바울은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로마의 자기 셋집에 감금되었죠.

그 후 2년만에 네로 황제의 법정에서 무죄로 풀려나 자신이 개척한 교회를 돌아보고 또 알바니아까지 가서 복음을 전했죠.

그러다가 집시법 위반으로 다시금 로마의 메마르틴 지하 감옥에 감금되었고 이듬해 처형 곧 순교했습니다.

 

바로 그 직전에 디모데에게 써 보낸 편지, 곧 바울의 마지막 편지가 디모데후서인데 거기에 그런 말씀이 나오죠.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4:6-8)

 

여기에서 바로 ‘전제’라는 단어를 바울이 사용했습니다.

전제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피와 포도주와 기름과 같은 액체를 하나님의 번제단에 쏟아부어 드리는 제사를 말합니다.

바울은 지금 자신의 죽음이 다가와 있음을 직감하면서 자기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전제’로 드렸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만큼 바울은 자기 인생을 하나님께 부어드린 것을 보았고, 이제는 그 인생이 얼마 남지 않음을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예화)바울이 전제처럼 쏟아 부어드린 인생, 그리고 얼마 남지 않는 목숨을 무엇으로 비유해서 설명할 수 있을까요?

모래시계를 생각해보면 쉽지 않을까요?

모래시계는 보통 목욕탕의 사우나실에 들어가서야 볼 수 있는 것 아닙니까?

혹시 여러분의 집에도 모래시계를 나두고 자신의 인생을 헤아려보는 분이 계십니까?

그런 분이 계신다면 자기 인생의 시간을 허투루 사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모래시계는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모래시계 위쪽의 모래 양이 서서히 내려앉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로 인해 위쪽에 차 있던 모래의 양이 서서히 아래 쪽에 차게 되고, 위쪽의 양은 텅텅 비게 된다는 것이죠.

 

(깨달음) 바울이 하나님께 쏟아부은 전제의 위쪽이 아래로 다 내려앉을 때 이 편지를 쓴 것 아니겠습니까?

바울은 A.D.67년 곧 바울의 나이 67세에 메마르틴 지하 감옥에서 참수형 당한 것으로 전해지는 바로 그 직전에 말이죠.

그러니 여태껏 하나님께 자신의 몸을 복종시켜 전제처럼 쏟아부은 모래시계의 알맹이 얼마나 되었는지 돌아보지 않았겠습니까?

아울러 모래시계의 위쪽 공간에 남아 있는 그 모래알갱이, 곧 자신의 인생시간의 알갱이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것도 알지 않겠습니까?

 

(적용)그렇다면 왜 바울이 디모데에게 그와 같은 ‘전제’라는 제사 형식에 대해 써 보냈겠습니까?

두말할 것도 없이 자기 자신이 하나님께 쏟아부은 것처럼, 너도 그렇고 네가 목회하는 에베소교회 성도들도 그렇게 살도록 초청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을 향해서도 말이죠.

 

(주문)그렇다면 2022년 신년0시 예배를 드리는 오늘 시간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는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은 2022년 새 해를 맞이할 우리 각자의 인생 모래시계를 바라보며 하나님께 전제로 부어드릴 인생을 살도록 원하시지 않겠습니까?

 

(주음성) 그래서 이 시간에 우리 각자에게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친히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2022년 새해를 너에게 허락한 것은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지 않더냐?”

“2022년 한 해 동안 너에게 허락한 인생의 모래시계를 바울처럼 디모데처럼 전제로 하나님께 쏟아부어드리지 않겠느냐?”

“2022년 한 해 동안 무의미한 시간을 흘러 보낸다면 과연 하나님께 기뻐하시겠느냐?”

“2022년 한 해 동안 네가 헛된 시간을 낭비한 것은 누군가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어제의 시간이지 않겠느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네 자신만의 영달을 위하고 네 자신만의 안위를 위하는 인생은 물거품처럼 다 사라질 인생 모래시계와 같다.”

하지만 네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은 결코 사라지지 안을 인생 모래시계니라.”

바로 그 삶이 바울처럼 하나님께 전제로 부어드린 인생 모래시계와 같단다

“2022년 한 해 동안 누군가에게 더 다가서고 누군가를 더 사랑하고 누군가를 더 섬기는 참된 전제요 참된 모래시계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구나.”

 

(찬양)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다른 어떤 은혜 구하지 않으리

오직 주님만이 내 삶에 도움이시니

주의 얼굴보기 원합니다

주님 사랑해요 온맘과 정성다해

하나님의 신실한 친구되기 원합니다

 

(발췌) 이동원 목사의 〈내 영혼의 내비게이션〉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헨리 C. 모리슨(Henry Morrison)이라는 아프리카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금세기 초 아프리카에서 40년간 개척 선교사역을 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그는 가족을 잃고 건강도 잃은 늙은 선교사가 되어 고향 땅 미국으로 돌아오고 있었죠.

그런데 그가 탄 배에는 아프리카에서 코끼리 사냥을 하고 돌아오는 데오도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타고 있었습니다.

 

배가 뉴욕 항구로 입항하고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그 배에서 내리자 레드 카펫이 깔리고 군악대의 팡파르 소리와 함께 수많은 군중이 대통령을 환영했죠.

이제 대통령 일행이 항구를 빠져나갔습니다.

 

그리고 나서 모리슨 선교사가 항구의 출구로 나섰는데 레드 카펫도 없고 군악대의 팡파르 소리도 다 멎었습니다

모리슨 선교사를 마중 나온 사람은 그야말로 한 사람도 없었던 것입니다.

선교사는 저녁 노을이 진 하늘을 향해 이렇게 소리치고 싶었습니다.

“주님 이것이 40년간 아프리카에서 저의 청춘을, 저의 건강을, 저의 일생을 바친 결과란 말입니까?”

 

그런데 그때 저녁노을 사이로 말씀하시는 주님의 잔잔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헨리야. 내 아들 헨리야. 너는 아직 고향에 오지 않았단다.”

“네가 고향에 돌아오는 날 레드 카펫이 아닌 황금의 길로 너를 맞이할 것이다.”

“군악대가 아닌 천사들의 나팔소리와 함께 내가 너를 마중 나갈거야!”

 

(깨달음) 어떻습니까?

전제와 같이 자기 인생을 하나님께 드린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친히 말씀해 주시는 음성 아니겠습니까?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교회와 주님의 영혼을 사랑하고 섬긴 전제와 같이 부어드린 인생에게 들려주는 그 음성 말입니다.

세상 누구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고 환호해주지 않을지라도 주님께서 천군천사와 함께 마중 나오신다는 것 말입니다.

 

(내음성) 그러니 2022년 신년0시 예배를 드리는 우리가 어떤 마음과 자세로 주님께 기도를 드려야 할지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제가 부족하고 연약하긴 하지만 2022년 한 해 동안 주님의 영광을 위해 전제처럼 부어드리며 살게 해 주세요.”

“주님, 2022년 한 해 동안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교회를 더욱더 사랑하며 섬기게 해 주세요.”

“2022년 한 해 동안 내 곁의 성도들과 내 일터의 동료들을 더욱더 사랑하며 섬기게 해 주세요.”

“내 육체만을 위한 인생모래시계는 쓸모 없는 물거품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고 내 곁의 성도들과 일터의 동료들을 사랑하고 섬긴 인생의 모래시계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상급이 되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주님, 2022년 한 해 동안 더욱더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곁에 붙여준 사람들을 사랑하며 주어진 직무에 성실을 다하여 살게 해 주시옵소서.”

 

(찬양)주님 사랑해요 온맘과 정성다해

하나님의 신실한 친구되기 원합니다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2년 새 해가 밝았습니다.

주님께서 또 한 해의 기회, 한 해의 인생 모래시계를 우리 각자에게 허락해주셨습니다.

오직 전제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교회를 위해, 내 곁에 붙여준 사람들을 위해,

더욱 사랑하고 섬기는 전제와 같은 인생을 주님께 부어드리도록 하십시다.

그때 우리 인생의 모래시계는 결코 사라지지 않고 모래시계의 아래쪽에 차곡차곡 쌓이듯이,

하나님 나라에 귀한 면류관으로 쌓이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 누구도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 환영하거나 기뻐해주는 이 없을지라도

우리 주님께서 천군 천사와 함께 나팔소리로 마중나와 환영해주시는 그런 주인공들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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