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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느헤미야

그 인봉한 자는(느10:1-39)

by 권또또 2021.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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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식 주례를 통해 주례자는 결혼하는 신랑과 신부에게 따로따로 묻습니다. 신랑 〇〇〇군은 신부 〇〇〇양을 아내로 맞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가난할 때나 부할 때나,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 오직 아내를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까?” 그때 신랑은 하고 대답을 하죠. 물론 신부를 향해서 질문할 때도 신부도 동일하게 하고 대답을 합니다. 그것으로 두 사람이 평생 책임지고 돌보며 아껴주고 사랑하며 살 것을 맹세하죠. 그런데 간혹 그런 구두 맹세 대신에 두 사람이 직접 사인하게 하는 주례자들도 있습니다. 그만큼 자필 사인을 통해 스스로 더 큰 책임감을 갖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사인하는 예식은 유대인들로부터 유래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토록 끝까지 함께 하겠다며 서로의 사랑을 약속한 신랑 신부의 이혼율은 해마다 급증하고 있습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의 이혼 건수는 107천 건으로 집계됐습니다. 그만큼 이혼이 도시의 소음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결혼서약서에 구두 맹세보다 자필 사인을 함으로써 좀더 책임의식을 갖고 사는 게 바람직하지 않나 싶습니다.

 

지난 시간 유다 백성들 곧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그릇된 삶을 회개하며 눈물을 흘렸고 바른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를 통해 참된 회개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봤죠. 회개란 죄에 대한 지적인 인식과 함께 감정의 통회자복 그리고 의지적 결단이 수반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정의를 동반한 회개야말로 참된 회개이기 때문이죠.

사실 느헤미야서 512-13절을 봐도 유다 백성들이 자기 동족을 노예로 삼고 자기 동족의 토지를 사들여 이자를 취하는 모습이 있었죠. 그때 느헤미야는 성벽을 재건하면서 가난과 굶주림 때문에 하소연하는 백성들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때 백성의 지도자들과 부를 축적하면서 산 자들을 향해 호통을 쳤습니다.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들끼리 어찌 집과 농토와 토지를 저당 잡아 이자 놀음을 할 수 있느냐 하고 말입니다. 그런 고리대금 이자놀음을 통해 어찌 다른 사람의 자식을 자기 노예로 삼을 수 있느냐 하고 말이죠. 그러자 느헤미야의 그 호통에 뉘우친 지도자들과 부유한 자들이 땅과 집과 포도원을 원래 주인에게 되돌려 주었고 노예도 다 해방시켜주기로 구두 서약을 한 바 있었죠.

그런데 어떻습니까? 시간이 지나면서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죄에 대한 회개를 지적인 뉘우침과 감정적인 뉘우침으로 끝내버린 꼴이었죠. 그래서 이번에는 느헤미야가 그 회개의 서약서에 직접 자필 서명이 들어가게 하여 책임의식을 강조한 것이었습니다. 본문 1-27절에 나오는 서약서에 사인한 사람들의 명단이 바로 그것입니다. 84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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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북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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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절입니다. 그 인봉한 자는 하가랴의 아들 총독 느헤미야와 시드기야여기에 인봉했다는 말은 도장으로 날인했다는 뜻입니다. 오늘날의 자필 서명에 해당하는 격입니다. 느헤미야를 필두로 제사장 레위인 일반 백성의 지도자들 순으로 그 이름을 직접 기록하게 했던 것입니다. 단지 잊혀버릴 말로 맹세하게 한 게 아니라 영원한 기록으로 남는 회개의 맹세를 자필 서명으로 쓰게 한 것이죠. 여기에 기록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기존의 관습과 문화를 넘어서서 하나님의 새로운 세대로 살아갈 것을 결단하는 사람들이죠.

물론 여기에 서약서에 사인한 사람들은 단순히 동족의 땅을 저당 잡아 부를 늘리고 있는 그 삶만을 돌이키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서약자 명단의 후반부인 28-39절 그 중에서도 29절에 담긴 말씀이 무엇입니까? 다 그들의 형제 귀족들을 따라 저주로 맹세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종 모세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우리 주 여호와의 모든 계명과 규례와 율례를 지켜 행하여.”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말씀 전체를 온전히 준행하겠다는 서약서입니다. 그래서 39절에는 이방 여인을 아내로나 며느리로 삼지 않겠고, 31절에서는 안식일이나 절기 때는 어떤 상행위도 하지 않겠고, 7년 안식년 때에는 땅도 쉬게 하겠고, 50년 희년 째에는 모든 빚도 다 탕감하겠다며 서약을 하죠. 32절에서는 해마다 각기 삼분의 일을 하나님의 전을 위해 쓰도록 바치겠다고, 35절에서는 토지소산과 각종 과목의 첫 열매를 하나님의 전에 드리겠다고, 36절에서는 우양과 가축 떼의 첫 새끼를 하나님의 전에서 일하는 제사장들에게 드리겠다고, 그리고 37절에서는 각종 소산물의 십일조를 성전의 제사를 돕는 레위 사람들에게 주겠다고 서약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서약식을 행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입니까? 모세의 율법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렇게 살라고 언약을 맺으신 말씀이죠. 그런데 그 백성의 선조와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내 팽개친 삶을 살다가 바벨론에 멸망당해 포로로 끌려간 상황이었죠. 그런데 그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금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는 그 마당에, 자신들이 회개하면서 이제부터라도 언약의 말씀에 순종하여 구체적으로 그렇게 살겠다고 서약식을 거행하면서 다짐하는 모습이죠.

그래서 그들은 서약식과 더불어 일상생활 가운데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삶을 회복해 나갔습니다. 이방 족속과 결혼하면서 세상 문화에 물든 자신들의 관습을 철저히 금했고, 신앙의 순결함을 지키기 위해 율법이 권하는 대로 삶을 살아갔던 것입니다. 자신들의 이익과 부의 축적을 위해 악용하던 안식일도 거룩히 구별하여 지켰고,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성전을 회복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첫 소산과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려 레위인과 제사장이 살아갈 수 있도록 했던 것이죠. 그런 일상의 삶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살아갈 때, 그들의 삶이 풍요로워지고, 하나님의 성전도 풍요로워졌으며, 하나님께 복을 받는 백성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에는 어떠합니까? 하나님의 백성이라 자부하는 기독교는 서서히 겉모습만 남는 형국처럼 변질되고 있지 않습니까? 믿는 사람들조차도 이익과 성공을 목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지배하고 다스리는 형국이 되고 있죠. 선교를 해도 자기 이름을 높이기 위함이고, 무언가 주고 베풀어도 다 정치적인 목적과 맞물려 있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이런 방탕함과 죄악이 누구의 책임이겠는가? 세상 사람들을 탓할 일이 아니라 기독교인인 우리 자신의 책임이지 않겠습니까? 이 땅의 우상숭배와 음란함이 누구의 책임이겠습니까? 세상 물결이 밀고 들어오는 세상의 책임뿐이겠습니까? 그렇지 않죠. 기독교인으로서 순결함 곧 정직함과 신실함을 보여주지 못한 책임입니다. 기독교인인 우리 자신의 책임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죠. 그렇기에 우리도 오늘날 기독교의 문제 교회의 책임을 나의 책임으로 나의 문제로 회개하며 기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나는 그 책임에 대해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 할지라도 함께 회개하며 통곡하며 책임감을 갖고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죠.

그렇게 회개하며 살고자 다짐한다면 우리들의 이름도 본문 속의 84명과 함께 새겨질 수 있다는 것이죠. 어디일까요? 하늘나라 생명록 책과 더불어 행위록 책에 말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나의 죄로 받아들이고 함께 아파하며 기도한다 한들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나라와 민족을 위해, 같은 기독교의 죄와 잘못을 나의 죄와 잘못을 아파하며 참회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기억하며 긍휼을 베풀어주신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성령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깨닫게 하시는 음성이 무엇입니까? 과연 우리 자신들이 어떤 명단에 자필서명하는 이름을 남기면서 살 것인가 하는 점이죠. 동문회 명단이나 이 땅을 빛낸 100인의 명단'이나 또 다른 세상의 업적을 쌓아 올린 그 명단에 들어가길 원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결코 나쁘지 않는 일이죠. 하지만 우리의 이름값은 새로운 언약백성으로 살고자 다짐하는 그 명단에, 이전과는 다른 신실한 언약백성으로 살고자 다짐하는 그 명단에 기록되는 걸 주님께서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바로 그것이 생명책과 더불어 행위록책에 기록되는 아름다운 명단, 새 언약백성이 되는 명단으로 삼아주실 줄 믿습니다.

 

*사랑하시는 주님. 우리의 이름이 헛된 명단에 오르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참으로 가치 있는 명부, 하늘나라 생명록의 명부, 순결한 주의 백성의 명부, 참으로 회개하며 살아갈 그 행위록 명부에 기록되게 해 주시옵소서. 그 명부에 합당한 삶을 살고자, 우리 스스로 영적으로 서명하며, 그 삶에 동참케 하시고, 그런 우리의 삶을 영원토록 하나님께서 기억해 주시는 명단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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