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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묵상LifeBible

'아빠의 아들'로 안길 그 날을 바라보며

by 똑똑이채널 2021.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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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의 성벽 재건 사명

 

홍정길 목사님이 암진단 후 죽음을 생각하며 말했다. ‘나도 이제 하나님 앞에 갈 때가 되었구나.’ 그렇게 말했지만 솔직히 두려움이 앞섰다고 한다. 그 두려움이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을 책망 때문이었다. ‘너 뭐하다가 왔느냐? 내가 지시하고 명령한 것 다 지켰느나?’하고 물으실 때 . 제가 다 했습니다.’하고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아주 귀중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 설 때 목사로 서는 게 아니라 '아빠의 아들'로 선다는 걸 말이다. 그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하나님께서 맡긴 사명 중에 부족하고 모자라고 잘못한 것만 떠올렸는데, 그날 이후부터는 마음이 훨씬 가벼웠다고 한다. 그때부터는 언제라도 주님이 천국으로 부르시면 아빠하고 달려간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고 한다.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매 일곱째 달 초하루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회중 앞 곧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 이르러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그 때에 학사 에스라가 특별히 지은 나무 강단에 서고”(8:1-4)

 

느헤미야서는 말라기서와 맞물려 있는 히브리성경의 마지막 책이다. 느헤미야서의 전반부(1-7)는 성벽과 성문을 재건하는 모습을 담고 있고, 후반부(8-11)는 하나님의 율법으로 백성들의 신앙을 재건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그 시작점은 느헤미야가 극소수의 3차 포로귀환자들을 이끌고 페르시아의 수산궁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B.C.446년의 일이다. 그 시기는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주도한 제1차 바벨론 포로귀환으로부터 90년이 지난 상황이고, 에스라가 인솔한 제2차 포로귀환으로부터는 13년이 흐른 시점이다.

 

느헤미야는 수산 궁에서 예루살렘에서 돌아온 동생 하나니로부터 성벽이 폐허더미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 하나님을 의지하며 아닥사스다 왕 앞에 섰는데 왕은 느헤미야에게 예루살렘 통행증과 벌목증과 군수송대를 지원했다. 다만 사라미아 총독 산발랏과 요단강 동쪽의 암몬 지역의 관리 도비야가 길목을 막았다.1) 더욱이 그들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돌아와 성벽과 성문을 재건할 때 외부세력을 규합해 방해했다. 더 큰 문제는 유다 내부의 문제로 부유한 방백들이 가난한 백성들을 상대로 이자 놀음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가난한 백성들이 그 공사에 참여하질 못했다. 그때 느헤미야는 총독으로 재임하는 기간 제대로 된 녹봉조차 받지 못했다면서 가난한 이들을 함께 돌보아야 한다고 권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52일만에 완공을 했다. 그 후 성벽의 총괄책임자를 임명했고 에스라서 전반부에 기록된 포로귀환자 명단을 재확인했다(7).

 

느헤미야서 후반부는 에스라와 함께 하는 일들이 펼쳐진다. 성벽을 재건한 후 백성들을 수문 앞 광장에 모이게 하여 에스라에게 율법책을 낭독케 한다(8). 그때 온 백성은 눈물을 흘리며 통회자복하고 금식에 동참한다(9). 더욱이 율법을 토대로 이방 여인을 아내로 삼지 않고 첫 소산과 십일조까지 온전히 드리겠다는 서약식을 거행한다(10). 다만 예루살렘 성읍에 사람들을 살지 않은 걸 알고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자원하는 일반백성 가운데 10분의 1일을 뽑아 성읍 안에 살도록 했다(11). 그 후에 예루살렘 성벽의 봉헌식을 거행했다(12). 그 모든 일을 마친 느헤미야는 12년 사역을 마치고 페르시아로 돌아갔는데 유다 백성들이 급격히 타락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금 고국에 와서 백성들의 신앙심을 재건하는데, 그것이 말라기서와 겹치는 시기로 느헤미야서의 마지막 말씀이다.

 

그렇기에 느헤미야의 사역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에스라는 1차 바벨론 포로귀환자들의 성전재건 이후 2차 포로귀환자들을 데리고 귀국하여 유다 백성들의 심령을 말씀으로 재건했다면, 느헤미야는 성벽재건과 더불어 신앙심을 재건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그 중에서도 역점을 둔 사역은 성벽재건이었다. 그것은 영적으로 울타리를 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에덴동산과 모세의 성막에도 울타리를 친 것처럼 말이다. 느헤미야는 유다 백성들이 외부세력의 침입과 유혹속에도 흔들림 없이 하나님의 언약백성(20:26)으로 살도록 사명을 다한 것이었다.

 

그런 느헤미야도 자기 사명을 다한 후에 하나님 앞에 설 것을 생각하며 두려워하지 않았을까? 성벽을 재건하는 12년 동안 화를 내지 않고 좀 더 성실하게 감당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홍정길 목사님처럼 느헤미야도 마지막 사명을 다한 후에 '아빠의 아들로 하나님 품에 안겼을 것이다. 엊그제 소천한 고() 조승용 성도님도 여태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왔지만 이제는 아빠의 아들로 하나님 품에 안겨 쉼을 얻고 있을 것이다. 우리도 아빠의 아들로 쉼을 얻을 그 날을 바라보며 이 땅에 주어진 사명에 성실을 다했으면 한다.

 

 

1)https://www.torahclass.com/old-testament-studies-tc/1838-old-testament-studies-nehemiah/1801-lesson-4-nehemiah-chapter-2-conc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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