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살의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오른 히스기야가 세 단계에 걸쳐 종교개혁을 했죠. 첫째는 이전에 잠긴 성전의 문을 열고 성전의 제단을 청결하게 하고 정화하는 단계였고, 둘째는 그곳에서 찬양대와 함께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며 유월절을 지켜나갔고, 셋째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자기 본연의 직무를 감당토록 온 백성들이 십일조를 가지고 나온 일이었죠. 그야말로 이전에 행하지 않았던 자기 아버지의 어두운 면들을 반면교사 삼아, 진정으로 하나님께 복을 받는 왕이 되고자, 하나님께 복을 받는 백성들이 되도록 하고자, 그렇게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왕이었죠. 그렇다면 적어도 그렇게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행하고, 하나님만을 참된 주관자로 알고, 하나님께 자신들의 소유물을 내어맡기며 살아가는 십일조 생활도 한다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으로 기대하게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은 우리의 기대감을 저버리게 합니다. 본문 1절에 “이 모든 충성된 일을 한 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에 들어와서 견고한 성읍들을 향하여 진을 치고 쳐서 점령하고자 한지라” 히스기야와 온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충성된 일을 했는데, 이전에 말한 대로 좌로 우로 치우침 없이, 어떤 사심이 없이, ‘야샤르’ 곧 정직하게 행했는데, 그런데 히스기야와 그 백성들에게 찾아 온 것은 전쟁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을 겸비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하나님 중심으로 나아갔는데, 도리어 신흥강대국 앗수르 제국의 침공이 찾아온 것입니다.
그런 모습은 우리의 인생 가운데도 펼쳐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좋아하실 일들을 잔뜩 했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추구하며 나아갔는데도, 내게 돌아오는 게 복과 은혜가 아니라 고난과 역경들이 찾아오는 격이죠. 내 시간을 쪼개어 하나님께 드렸고, 내 일을 제쳐두고 주의 일을 먼저 했는데도, 그 결과가 고난이요 아픔이라면, 얼마나 실망스럽겠습니까?
문제는 그런 기대가 무너질 때,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절망으로 끝나지 않고 신앙의 위기를 맞이한다는 점이죠.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며 떠나기도 하고, 힘들고 외롭다면서 많은 교우들과 연락을 끊는 모습들을 보기도 하죠. 그런 모습들은 너무나도 안타깝죠.
그렇다면 히스기야와 백성들은 그때 어떻게 대처하는가? 본문에 기록된 행위를 볼 때 히스기야나 백성들은 두려워하거나 주저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오히려 시작될 전쟁에 맞서서 여러 방백들, 곧 백성의 지도자들과 용사들과 의논해 물을 확보하고, 무너진 성벽을 세우고, 외성을 쌓고, 무기와 방패를 만들죠. 그러면서 두려워하는 군대 지휘관들과 백성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바라보라고 힘을 북돋아 넣죠.
그 모습이 본문 3-8절에 나와 있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8절을 보면 히스기야가 얼마나 영적으로 깨어 있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와 함께 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하매 백성이 유다 왕 히스기야의 말로 말미암아 안심하니라.” 앗수르 대군과 함께 하는 왕은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 하는 이는 육신의 팔을 넘어서는 영적인 능력자, 곧 천지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시라고 격려하는 것이죠.
그래서 진정한 신앙인의 믿음은 위기 앞에서 드러난다고 하지 않습니까? 내가 정말로 하나님 앞에 헌신하고 충성을 다하고, 정직하게 행했는데, 내 앞에 위기와 고난이 닥쳐온다, 바로 그때 그의 믿음의 현주소를 볼 수 있다는 것이죠. 진정한 신앙인은 그런 위기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보이는 자, 그가 참된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진정한 신앙인은 인생의 평안이 찾아올 때 더 겸손히 무릎을 꿇는 신앙인이 되는 것이고, 인생의 위기 앞에서는 더욱더 흔들림 없이 하나님을 찾는 신앙인이라야 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히스기야와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런 믿음의 자세를 견지했던 것이죠. 과연 그런 마음과 자세가 언제까지 지속됩니까? 본문 9-23절을 보면, 이제 앗수르 대왕 산헤립이 18만5천명을 이끌고 예루살렘 성읍을 애워싸고 성을 함락할 기세를 펼쳐보이죠. 그러면서 하나님을 무시하고, 히스기야의 체면을 짓밟는 말을 서슴없이 퍼붓습니다. 이른바 너희들이 믿는 하나님은 우리가 믿는 신에게 아무런 것도 아니다, 너희들의 왕이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격려하지만 실은 그 격려가 헛것이다. 너희들처럼 다른 약소국가들, 심지어 너희와 한 형제인 북이스라엘 땅도 우리가 다 쓸어버렸다. 그러니 너희들도 맥없이 무너지기 전에 우리에게 투항하라, 하고 선전포고를 날린 것이죠. 그러면서 17절에서는 그런 내용을 편지까지 써서 히스기야 왕에게 전달하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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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히스기야와 온 백성들이 어떤 자세를 취합니까? 여전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과 자세를 견지하죠. 그것은 마치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는 자세로 하나님을 의지한 것이죠. 그래서 히스기야는 선지자 이사야와 함께 기도하는 자세를 갖추고, 그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셨는지를 본문 20-21절에서 보여줍니다. “이러므로 히스기야 왕이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와 더불어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한 천사를 보내어 앗수르 왕의 진영에서 모든 큰 용사와 대장과 지휘관들을 멸하신지라 앗수르 왕이 낯이 뜨거워 그의 고국으로 돌아갔더니 그의 신의 전에 들어갔을 때에 그의 몸에서 난 자들이 거기서 칼로 죽였더라.”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 도울 이는 하나님 밖에 없다는 마음으로, 또 그들과 함께 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 하는 이는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믿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올려드렸죠.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천군과 천사를 보내사 그날 밤에 그 18만5천명을 송장으로 만들어버렸죠. 그렇게해서 앗수르 대왕 산헤립이 그 길로 고국 니느웨 수도로 돌아갔는데 자신이 모신 신에게 자기 아들들을 잡아서 제사로 드리려다가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들들이 오히려 아버지를 죽인 사건이 발생했죠. 산헤립은 그것으로 최후를 맞이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도 그 무렵 병이 들었죠. 왜냐하면 18만 5천명이 하룻밤 사이에 죽어간 그 모습 앞에 히스기야가 놀라서 병이 든 것입니다. 그때 히스기야가 다시금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때 그가 15년 생명 연장을 받고 그 증표로 해시계가 10도나 뒤로 물러갔는데, 물론 그런 내용은 본문에 기록하고 있지 않죠. 다만 그런 부분만은 지적하죠. 본문 25절에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그의 생명을 연장시켜줬는데, 그 은혜에 보답하지 않았다, 감사치 않았다는 것 말이죠.
그래서 히스기야가 어떻게 합니까? 본문 31절에 보면 그 뒤에 바벨론 왕의 사절단들이 히스기야를 보러왔는데 그때 히스기야는 자기 능력과 자기 과시에만 집중한 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모습이 없었죠. 그것이 히스기야의 29년 통치 가운데 말년에 해당하는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음성을 분명하게 새길 수 있지 않습니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한결같은 신실한 신앙의 모습을 견지한 왕, 곧 그런 사람을 찾아보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것 말이죠. 남왕국 유다의 20명의 왕들 가운데 8명이 선했고 그 중 2명 중 한 명인 히스기야는 모든 산당들까지 다 제거할 정도로 선하디 선한 왕이었는데, 그래서 왕이 되자마자 종교개혁을 단행했고, 율법도 복원했고,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직무도 다시금 되찾아 주고, 온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소유권을 돌려드리도록 십일조도 지켜나가게 했고, 전쟁 통에 하나님께 기도하며 나아갔던 히스기야였는데, 막판에 교만하여 하나님을 등진 채 자기 자랑과 자기 과시에 빠져버린 이 모습 말입니다. 저화 여러분들은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럼없이, 마지막 마침표를 잘 찍는 주님의 자녀로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시는 주님. 젊은 왕성한 날 왕이 되어 하나님 중심으로 종교개혁을 일으켰는데, 그의 시대에 앗수르 제국의 침략이 찾아왔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추구하며 충성했는데, 도리어 엉뚱한 불행과 어려움이 찾아올 때 우리는 뒤로 물러날 게 아니라, 죽으면 죽으리라는 신앙의 각오로 맞서 나가게 하시옵소서. 그 시험과 연단을 잘 통과하면 앗수르 대군이 물러가는 더욱더 놀라운 은총을 맛보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런 은혜를 인생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 순간까지 변함없이 잘 가꾸는 저희들 되게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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