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천지창조’ 벽화가 그려져 있죠. ‘하늘이 내린 천재 예술가’ 미켈란젤로의 그림입니다. 그는 또 3대 조각상으로 유명하죠. 피에타상, 다비드상, 그리고 모세상이 그것이죠. 그런 조각상을 본 어떤 이가 “당신은 어떻게 그런 재주가 가능한가?”하고 물었다죠. 그러자 미켈란젤로는 “단지 돌 속에 들어 있는 형상을 끄집어 낼 뿐”이라고 답했다고 하죠.
마틴 루터를 필두로 종교개혁이 일어나는데 보통 Re-Formation이라고 칭하죠. 그것은 반복, 서로를 뜻하는 ‘Re’라는 접두어와 생성, 구성을 뜻하는 ‘Formation’이 합쳐진 단어입니다. 개혁이란 본질을 추구하기 위해 생성된 무언가를 반복적으로 깎고 다듬는 과정이라는 뜻이죠. 그것은 마치 미켈란젤로가 형상을 끄집어내는 그 예술과 같은 것이죠.
그것은 우리가 세 시간에 걸쳐 살펴본 히스기야의 종교개혁도 같죠. 25살에 왕이 되어 맨 먼저 정치력이나 외교력을 다진 게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추구한 그의 종교개혁도 실은 외적인 형상을 갈고 다듬은 게 아니라 그 동안 잠재돼 있던 유다 백성들의 마음을 끄집어 낸 것이죠.
그래서 29장에서 성전을 청소하고, 하나님보다 앞세웠던 우상들을 철거했고, 레위인 찬양대를 꾸려서 하나님 앞에 찬양을 드리며, 각 개인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희생제사를 드렸죠. 그리고 30장에서 우리가 주목했던 것은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절기, 곧 유월절을 지켰다는 것이죠. 유월절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00년간 종살이할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게 하셔서 그 피를 보시고 심판을 넘어가셨고, 그때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종살이에서 자유케 된 날이었죠. 그 은혜를 기억하여 영원토록 지키게 한 날이 곧 유월절인데, 세례 요한은 신약시대에 예수님을 보고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1:29)하고 고백했죠. 예수님께서 구약시대의 어린양의 속죄제를 담당하신 것이죠. 그 유월절을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백성들까지도 보발꾼을 뛰워 지키게 했는데, 그 중에는 무시하고 비웃는 자들도 있었지만 또 그 중에는 그걸 지키고자 한 이들이 있었죠.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 그 율례를 어떻게 지키는지 모르는 이들 때문에 어려움을 당했지만, 그런 그들까지 히스기야가 품고 하나님께 간구하며 나갈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죠. 그리고 히스기야와 방백들 곧 지도자들이 나서서 자기 물질과 재산을 나눠 백성들에게 베푸는 그 아름다운 일도 선행하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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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31장에서도 히스기야가 또 하나의 개혁을 단행합니다. 본문 1절에 “이 모든 일이 끝나매 거기에 있는 이스라엘 무리가 나가서 유다 여러 성읍에 이르러 주상들을 깨드리며 아세라 목상들을 찍으며 유다와 베냐민 과 에브라임과 므낫세 온 땅에서 산당들과 제단들을 제거하여 없애고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각각 자기들의 본성 기업으로 돌아갔더라.” 이 모습은 실은 30장에 따라붙은 모습입니다. 30장에서는 유월절, 곧 구원의 기쁨과 의미를 회복하고 되새기는 그 축제를 지키고, 온 백성들에게 왕과 지도자들이 음식을 나눠 먹는 그 일을 마쳤을 때, 오늘 본문에서는 백성들이 나서서 그 동안에 하나님 보다 앞세웠던 우상들을 자발적으로 깨뜨리는 모습이죠.
이제 본격적으로 시행한 히스기야의 종교개혁 그 세 번째가 나타납니다. 첫 번째 종교개혁은 성전의 문을 열고 제단을 청결하게 하고 레위인들을 성결하게 하여 제사를 준비하는 종교개혁이었고, 둘째는 레위인들 가운데 찬양대를 꾸려 찬양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속죄제를 드리는 종교개혁, 그러면서 유월절까지 모두가 전심을 다해 지켰고, 세 번째로 히스기야가 행한 종교개혁이 무엇인가?
본문 2-4절에 나와 있죠. “히스기야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반열을 정하고 그들의 반열에 따라 각각 그들의 직임을 행하게 하되 곧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며 여호와의 휘장 문에서 섬기며 감사하며 찬송하게 하고 또 왕의 재산 중에서 얼마를 정하여 여호와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번제 곧 아침과 저녁의 번제와 안식일과 초하루와 절기의 번제에 쓰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사는 백성을 명령하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몫의 음식을 주어 그들에게 여호와의 율법을 힘쓰게 하라 하니라.”
이전에는 성전 문도 닫아버렸고, 번제와 각종 제사를 드리지 못해, 레위인과 제사장들이 살아갈 길이 막막했지만, 이제는 그 모든 제사를 복원하고 다시금 새롭게 행하도록 했으니, 이제는 레위인과 제사장들이 더 성실하게 그 직무를 수행토록 할 수 있도록 하라는 거죠. 그를 위해 온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음식물을 담당토록 요청한 것이죠. 이게 바로 히스기야가 공포한 세 번째 종교개혁의 모습이죠.
그런데 백성들이 어떻게 응답합니까? 본문 5-10절을 보면, 백성들이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꿀과 밭의 모든 소산의 첫 열매들을 풍성히 드렸고, 또 모든 것의 십일조를 많이 가져왔고, 소와 양의 십일조는 물론이고, 성물의 십일조를 많이 가져왔는데, 그렇게 가져 온 것이 7절에 보면 셋째 달에서 일곱째 달까지 그걸 드렸다고 밝혀주죠. 한 마디로 그 동안 드리지 못했던 십일조의 소산물, 또 성물의 십일조를 하나님 앞에 온전히 드리기 시작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증표이자, 이 땅의 모든 소유물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선한 청지기적인 자세로서 드리는 그 십일조를 이제 드리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 동안 그걸 지키지 못했는데, 히스기야 시대에 비로소 백성들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리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그런데 10절에 보니까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그 십일조를 통해 먹고 먹어도 남게 되었다고 밝혀주죠. 다시 말해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에게 그만큼 복을 주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그 십일조를 어떻게 사용했습니까? 본문 11-19절까지 보면, 그 십일조를 성전의 창고에 들여 저장하게 했고, 그것들을 차례대로 제사를 담당하는 레위인들, 찬양대를 담당하는 레위인들, 성전의 문제기를 담당하는 레위인들, 그리고 성전 밖에서 백성들에게 율례와 법도를 가르쳤던 레위인들, 그런 레위인들과 가족과 자녀들의 몫을 정해서 나눠줬다고 밝혀주죠. 물론 그들의 임의대로 한 게 아니라 여호와의 율례와 법도에 따른 기준이었죠.
물론 구약의 율법에는 성전에서 봉사하고 섬기는 레위인들에게만 그 십일조를 나눠주라고 돼 있지 않고, 3년에 한 번씩은 그 십일조를 고아와 과부와 가난한 자에게 구제용으로 그 십일조를 나눠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14:28-29)
그렇다면 무엇을 생각하게 하는 말씀입니까? 교회는 따로 선교헌금 봉투를 만들 필요가 없겠죠. 온전한 십일조만 성도들이 주님께 드려도, 그것으로 교회 유지와 교역자 사례비와 또 선교비로 충당할 수 있기 때문이죠. 제작년에는 얼마 되지 않지만 우리교회도 두 곳에 선교비를 보냈고 작년에는 인도 선교사에게도 보낸 적이 있습니다. 물론 전 성도들이 다함께 십일조에 동참한다면 더 많은 일들을 감당할 수 있지만 그런 여력이 안 돼서 하나님 앞에 송구할 따름이죠.
중요한 것은 히스기야가 우상숭배로 인해 성전의 닫힌 문을 이제는 열었다는 것, 속죄제와 절기를 지켰다는 것, 그리고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본연의 직무를 감당토록 온 백성들로 하여금 십일조를 바치도록 할 때 온전한 십일조를 자발적으로 드렸다는 것이죠. 바로 그것으로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반차대로 섬기며 살아갈 수 있도록 했다는 점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삶 가운데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좇아 스스로 종교개혁의 길을 걷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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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시는 주님. 히스기야갸 그동안의 우상숭배 때문에 닫힌 성전 문도 열고, 제단도 정화하고, 또 속죄제를 드리고, 유월절 절기를 드리자 온 백성들이 각자 자기 성읍의 우상들을 다 무너뜨렸습니다. 이제 세 번째 종교개혁을 단행했는데, 백성들로 하여금 십일조를 바치도록 하여 온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바쳤습니다. 그것으로 제사장과 레위인들에게 반차대로 공평하게 섬길 수 있도록 했습니다. 히스기야의 그런 종교개혁이 오늘 저희들의 심령 속에도 되살아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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