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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역대하

웃시야 왕이 죽는날까지 나병 환자가 되었고(대하26:1-23)

by 똑똑이채널 2021.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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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시야 왕이 성전에서 분향하려다가 문둥병에 걸린 모습

 

7살에 왕 위에 오른 남왕국 유다의 8번째 왕 요아스는 40년간 통치했죠. 그 모든 배후에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있었지만 그가 130년이 되도록 모든 실권을 쥐었던 까닭에 요아스 왕은 영적으로 자립하지 못했고, 말년에 하나님을 등질 뿐만 아니라 적의 칼에 화를 당하다가 끝내는 부하 장수들에 의해 침실에서 죽임을 당하고 말았죠.

그 뒤를 이은 9번째 왕 아마샤는 왕권을 잡은 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정적들을 제거하긴 했지만 그 3대를 멸한 것은 아니었죠. 그가 그렇게 한 것은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지키기 위함이었죠. 하지만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 같지만 전심으로 곧 온전한 마음으로, 신실한 마음으로 좇은 건 아니었죠. 그가 에돔 족속과 전쟁을 벌일 때 북이스라엘 군사를 대동치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 같았고, 그래서 그 전투에 나가 대승을 거뒀는데, 그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 에돔의 신상을 가져와 예루살렘에서 온 백성들로 하여금 숭배하게 한 일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그 전쟁의 승리의 여세를 몰아 북이스라엘과 맞서 싸웠는데 그는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한 일을 기어코 우기면서 그 전투에 나섰다가 크게 대패했고, 급기야 그 부하 장수들의 칼에 맞아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야말로 미지근한 신앙인의 전형적인 모습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예였죠.

 

오늘 읽은 말씀은 그 아마샤에 이어 10번째로 왕이 된 웃시야에 관한 삶의 모습입니다. 오늘 말씀은 열왕기하 15장에도 나온 내용입니다. 열왕기하에서는 웃시야 왕의 이름을 아사랴로 기록하고 있고 1-7절로 짧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그 아사랴 왕의 이름을 웃시야로 밝혀주고 있고, 이사야에도 웃시아로 기록돼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열왕기의 내용보다 더 길고 세밀하게 정리해 주고 있죠.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는데, 1-15절까지는 웃시야 왕의 성취와 번영을 기록하고 있고, 16-23절까지는 그 인생의 후반부 모습으로 실패와 좌절에 관한 내용입니다.

본문 3절에 웃시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십육 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이 년 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골리아요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웃시야 왕은 16살에 왕이 되어 52년간 통치한 왕이었습니다. 반란과 전쟁이 흔했던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의 역사 속에서 52년간 나라를 다스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는 가장 오랜 기간 동안 통치한 왕이요, 그만큼 대단한 권세를 누린 왕으로 평가할 수 있죠.

물론 그의 말년은 그렇게 아름답게 끝난 왕이 아니었습니다. 잘 나가던 시절, 부귀와 창대의 번영을 누릴 때 겸손해야 했는데, 그는 교만하여 막판에 문둥병이 걸려 죽는 날까지 그런 상태로 죽었고, 그로 인해 열왕의 묘실에도 묻히지 못한 비운의 주인공이었죠 그렇기에 아무리 시작이 좋고, 오랫동안 잘 살았어도, 마지막에 좋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아름다운 끝맺음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어떻게 해서 왕권 초반에 부귀영화를 누렸는가? 본문 4-5절이 그 비결을 밝혀주죠. 웃시야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며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한 면,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의탁하며, 하나님을 찾는 삶, 바꿔 말해 하나님께 무릎을 꿇으며 살았기에,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형통케 해 주셨던 것이죠.

그래서 어떤 일들을 행했는가? 6절에 웃시야가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고 가드 성벽과 야브네 성벽과 아스돗 성벽을 헐고 아스돗 땅과 블레셋 사람들 가운데에 성읍들을 건축하매 하나님이 그를 도우사 블레셋 사람들과 구르바알에 거주하는 아라비아 사람들과 마온 사람들을 치게 하신지라.” 블레셋과 전쟁하여 땅을 정복했고, 국가의 경계를 넓혀, 솔로몬 제국 시대만큼이나 번영을 가져왔습니다. 유다 왕국의 중흥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8절에는 암몬 사람들이 웃시야에게 조공을 바치매 웃시야가 매우 강성하여 이름이 애굽 변방까지 퍼졌더라.” 유다의 주변국들을 정복해 조공을 받는 모습이죠. 국가의 명예, 국격(國格)이 널리 퍼진 모습이죠.

9절에는 웃시야가 예루살렘에서 성 모퉁이 문과 골짜기 문과 성굽이에 망대를 세워 견고하게 하고, 또 광야에 망대를 세우고 물웅덩이를 많이 파고 고원과 평지에 가축을 많이 길렀으며 또 여러 산과 좋은 밭에 농부와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들을 두었으니 농사를 좋아함이었더라.” 이 본문은 예루살렘 수도에 국가 안보와 경제를 살리고, 산업을 일으켰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그는 국가안보와 경제에 성공한 지도자가 되었고, 당시 가장 중요한 산업인 농업을 장려하고, 스스로 그것을 좋아하는 멋진 인간적인 면모까지 보여줬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죠. 12절에 족장의 총수가 이천육백 명이니 모두 큰 용사요, 그의 휘하의 군대가 삼십만 칠천오백 명이라.” 나라를 지킬 강력한 군대를 양성한 모습이죠. 14절은 각종 무기와 신병기로 무장한 모습입니다. 이보다 더 이상적인 지도자가 있을까요?

이와 같은 그의 부귀영화, 부국강성한 나라의 이 모습을 본문 15절은 한 줄로 정리해 줍니다. 그의 이름이 멀리 퍼짐은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강성하여짐이었더라 웃시야가 그렇게 강성대국의 국가를 이룰 수 있었던 것,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이한 방법으로 도와주셨기 때문이라는 점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이 있기를 소원한다면, 그렇게 형통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길, 또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자와 기도자의 자세를 갖추며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며 살 때 그런 은총을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의 후반기의 삶입니다. 그는 인생 후반기에 실패와 고독 속에서, 좌절과 심판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21절에 보면 웃시야 왕이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가 되었고, 나병환자가 되매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져 별궁에 살았으므로 그의 아들 요담이 왕궁을 관리하며 백성을 다스렸더라.” 그는 통치 후반에 나병에 걸려 왕권의 전면에서 물러난 상태고, 그의 아들 요담이 전면에 나서 통치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가 죽을 때 나병환자인 그는 왕들의 묘실에도 묻히지 못했습니다.

왜 그토록 훌륭한 왕으로서의 성공가도를 달리던 그가, 말년에 이토록 비참해졌는가?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16절에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졌고, 악을 행하며, 범죄하였다는 것, 그의 정치적인 교만함이 종교적인 영역에서도 과시하려 했던 것이죠. 그래서 웃시야 왕이 정치적인 영역에서 승승장구하며 절대적인 권력을 얻게 되자, 그는 종교적인 영역에서도 자신의 절대적인 힘을 과시하고 싶어했죠. 그래서 웃시야가 성전에 들어가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향단에 분향하는 일을 하려 했던 것이죠. 제사장 아사랴가 그 일은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만이 할 일이라고 만류했지만, 웃시야는 오히려 그에게 화를 내는 처지였죠. 그만큼 그는 제사장들의 권위에 의도적으로 도전한 것이었죠.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해서 도전장을 내민 꼴이었죠. 그것이 그의 인생 말년이 한없이 추락하게 된 근본적인 요인이었던 것입니다.

 

잠언 1618절은 이렇게 말씀하죠.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또 야고보서 46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은총을 부어주시고, 창대와 번영의 복을 주실 때 그때에도 무릎을 꿇고 겸손하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생의 초반부도, 중반부도, 그리고 마지막까지도 그런 아름다운 삶으로 주님 앞에 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전자책] 하나님의 시간표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br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br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br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

www.aladin.co.kr

 

 

*사랑하시는 주님.

오늘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며, 기이한 도우심을 베풀어 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내가 나 된 것은 주님의 은혜라.”는 그 고백이 진심의 고백이 되게 하시고,

그 고백이 우리를 천국으로 부르시는 그 날까지 지속되길 원합니다.

그리하여 인생의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게 하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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