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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역대하

왕이 대제사장 여호야다를 불러(대하24:1-27)

by 똑똑이채널 2021.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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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살된 요아스가 왕위에 오르는 모습

 

남유다의 6번째 왕 아하시야가 1년 밖에 통치하지 못하고 북이스라엘의 장수 예후의 칼날에 맞아 죽임을 당했죠. 그건 예후 개인에게 비롯된 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었죠. 하나님 보시기에 그가 악한 길 곧 아합의 길을 좇았던 까닭이죠. 문제는 그런 악행을 좇도록 부추긴 사람이 있었으니 그의 어머니 아달랴였죠. 그런데 아하시야가 1년간 통치하고 비명횡사하자, 이번엔 아달랴가 직접 나서서 왕권을 거머쥐었죠. 그때 정적이 될 만한 모든 왕손들을 몰살시켰고, 여왕의 자리를 꿰찼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영적 암흑기에 제사장 여호야다를 중심으로 그녀를 제거하도록 했고, 대신에 다윗의 혈통 요아스를 왕으로 옹립하도록 준비하게 하셨죠. 암흑의 길에 새 빛을 준비하신 모습이죠.

제사장 여호야다가 종교개혁을 단행하면서 요아스를 왕으로 세울 때 요아스의 나이는 불과 7세였죠. 그러니 제사장 여호야다가 어린 요아스의 후견인 곧 대부 역할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반역과 반란, 피로 얼룩진 왕궁의 역사 한 복판에서 7세 어린 꼬마 요아스를 홀로 내버려둘 수 없었던 것이죠.

그래서 본문 3절에서 여호야다가 그를 두 아내에게 장가들게 하였더니 자녀를 낳았더라.”하고 밝혀줍니다. 어린 요아스가 장가도 가고, 또 선한 정치를 펼칠 수 있도록 제사장 여호야다가 버팀목으로, 영적인 아버지 역할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본문 17-18절은 그 상황이 180도 달라진 것이죠.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유다 방백들이 와서 왕에게 절하매 왕이 그들의 말을 듣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겼으므로 그 죄로 말미암아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니라." 제사장 여호야다가 나이 들어 죽자, 요아스가 한 순간 돌변해버린 모습입니다. 제사장 여호야다의 가르침을 좇아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던 그가 하나님도, 여호와의 전도 다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모습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의 말도 듣지 않고, 하나님의 사람 스가랴 곧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가 나서서 말해도 듣지 않죠. 오히려 그를 돌로 쳐 죽이죠.

그러자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는가? 요아스 왕은 아람 군대와 싸울 때 크게 패하고 부상을 당하죠. 물론 그것으로 끝이 아님을 본문 23-25절에서 밝혀줍니다. 일 주년 말에 아람 군대가 요아스를 치려고 올라와서 유다와 예루살렘에 이르러 백성 중에서 모든 방백들을 다 죽이고 노략한 물건을 다메섹 왕에게로 보내니라 아람 군대가 적은 무리로 왔으나 여호와께서 심히 큰 군대를 그들의 손에 넘기셨으니 이는 유다 사람들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라 이와 같이 아람 사람들이 요아스를 징벌하였더라 요아스가 크게 부상하매 적군이 그를 버리고 간 후에 그의 신하들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들의 피로 말미암아 반역하여 그를 그의 침상에서 쳐죽인지라 다윗 성에 장사하였으나 왕들의 묘실에는 장사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아스가 전쟁통에 부상당하자, 그를 못마땅하게 여긴 신하들이 그를 죽이고 만 것이죠. 더 안타까운 건 요아스가 죽을 때 왕들의 묘실에 장사되지 못했다는 점이죠.

그가 부하들의 미움을 받은 것, 백성들의 미움을 받은 이유가 뭘까요? 역대기의 흐름을 볼 때 그것은 오직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저버린 이유였죠. 사실 그 스스로 잘 난 게 하나도 없었죠. 핏덩이로 태어날 때에도 다른 형들은 할머니 아달랴에 의해 죽임을 당했는데, 자신만 홀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죠. 7살 되던 해에 그가 왕위에 오를 때에도 제사장 여호야다와 많은 레위인들이 나서서 그를 왕위에 올려 40년간 통치하도록 했죠. 그만큼 그 인생의 뒤안길을 돌아보면 자신의 핏덩이 시절부터 지금 왕위에 올라 모든 통치권력의 중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죠. 그런데 여호야다가 죽었다고 해서 어떻게 한 순간에 하나님을 등질 수 있을까요?

우리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그 부분을 요아스 왕의 과오보다 제사장 여호야다의 숨겨진 실책에 눈여겨 본다면 어떨까요? 본문 6절을 보면, 요아스 왕이 대제사장 여호야다에게 명령을 내리는 장면이 나오죠. 불법으로 왕권을 찬탈한 아달랴 여왕과 그의 신복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고, 바알과 아세라 숭배를 위해 성전을 어지럽혔는데, 바로 그 성전의 질서를 바로잡고, 무너진 성전 곳곳을 보수하도록 명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불러 모아 성전을 보수할 헌금을 거두라고 명령을 하죠. 가능한 신속하게 해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5절에 왕이 재촉하죠.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유다 여러 성읍에 가서 모든 이스라엘에게 해마다 너희의 하나님의 전을 수리할 돈을 거두되 그 일을 빨리 하라 하였으나 레위 사람이 빨리 하지 아니한지라.” 그런데 그토록 다급한 왕과는 달리 레위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좀체 움직이려고 하지 않죠. 그들의 발걸음은 더디고 일도 진척이 되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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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가 무엇인지 오늘 본문은 명확하게 설명돼 있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성전을 수리하는 그 일이 진척되지 않자, 요아스 왕이 제사장 여호야다를 불러 6절을 통해 말합니다. 왕이 대제사장 여호야다를 불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레위 사람들을 시켜서 여호와의 종 모세와 이스라엘의 회중이 성막을 위하여 정한 세를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거두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한 마디로 이런 말이죠. ‘어찌 당신이 나서서 레위인들을 움직이지 않는 것이요. 제발 빨리 좀 움직여 주세요.’ 모르긴 몰라도, 그 성전을 보수하는 선한 일을 어찌 제사장 여호야다가 막아설 수 있었겠습니까? 레위인들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 어찌 제사장 여호야다의 책임이겠습니까?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게 있습니다. 아달랴 여왕을 제거하는 거사를 치를 때, 그 모든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심지어 성전의 문지기 역할을 맡았던 그 레위인들조차 그토록 일사분란하게 여호야다의 명령에 움직였다는 사실이죠. 그런데 이번에는 왕이 명령해도 꿈쩍도 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과연 그 이유가 뭘까요?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영향력이 이미 왕을 뛰어넘어 은연 중에 상왕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죠. 누가 왕인지 모를 정도로 그가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죠. 본문 12절을 봐도 성전 수리에 들어가는 비용을 관리하고 집행하고 결산하는 데 왕과 여호야다가 함께 나서는 모습입니다. 성전 건축이나 성전 보수는 유다 나라의 가장 큰 국책 사업이기 때문에 왕이 주도권을 잡고 해야 하는 게 옳죠. 그런데도 여호야다의 주도권이 결코 작아 보이지 않는 모습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호야다의 숨겨진 실책입니다. 여호야다 편에서는 7살 된 요아스 왕이 어리기 때문에 불안했겠죠. 자신이 더 품고 보호하고 가르치고 결혼까지 시켜야 했겠죠. 그러나 언제까지 그렇게 감싸고돌아야 하겠습니까? 그도 늙어가고, 곧 죽음이 임박해 오는데도 말입니다. 본문 15절에서는 그가 죽을 때 130세였다고 밝혀줍니다. 만약에 좀 더 이른 나이에 자기 사후(死後)의 요아스의 내다봤다면, 그 요아스가 영적으로 의식적으로 정치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자신이 뒤로 물러섰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게 전혀 없었던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여호야다 사후에 유다 방백들 곧 유다 지도자들이 요아스 왕 앞에 나와 조잘거리자 왕이 한 번에 훅 가버린 것이죠.

물론 14절에 보면 여호야다는 그가 사는 모든 날에 항상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드리며 신실한 삶을 살았다고 증언합니다. 그만큼 제사장 여호야다는 자기 탐욕과 자기 욕심에 이끌려 왕을 코치하고 지도하려 했던 아니죠. 그러나 그럴지라도 자신이 나서야 할 때와 물러날 때를 구분하고, 좀 더 이른 나이에 요아스가 자립할 수 있도록 뒤에서 봐줬더라면 요아스가 한 방에 무너지지는 않았겠죠.

 

오늘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음성이 무엇일까요? 기업도 그렇고 크고 작은 회사도, 심지어 각 가정도 마찬가지죠. 모든 곳곳의 오너가 늙어 죽도록까지 주도권을 쥐고 있다가 뒤늦게 땅을 치고 후회하기보다 이른 나이에 물러날 때를 감지하여 뒤를 봐준다면 정말로 아름다운 길을 열어주는 자가 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자녀들도 예외이지 않을 것입니다. 가정이든 직장이든 교회든, 우리가 속한 곳곳에서 나서야 할 때와 물러날 때를 명확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는 길임을 잊지 않는 평생의 삶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주님.

7살 된 요아스의 앞날을 생각하며 그를 돌보고 감싸고 그를 결혼시키며

나라를 이끌 길목까지 코치했던 제사장 여호야다였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물러날 때 물러나지 않음으로 인해 영적으로 의식적으로 정치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요아스가 통치 말년에 한방에 훅 가버린 모습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내가 나서야 할 때와 물러날 때를 분별하며 사는 지혜로운 인생을 살게 하시고,

그런 과정 속에 내가 속한 공동체도 내 가정도 더 아름답게 세워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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