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왕국 유다의 8번째 왕 요아스는 7살에 왕이 돼 40년간 통치했습니다. 핏덩이 시절부터 6살때까지, 실은 그 할머니 아달랴가 여왕으로 통치했고, 그때 모든 왕족의 씨를 멸하던 때였는데, 그가 구사일생 살아나 지성소의 침실에서 6년 동안 산 것, 그리고 7살 되던 해에 그가 왕위에 오른 것,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요, 제사장 여호야다를 중심으로 모든 레위인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 결과였죠. 그만큼 그의 뒤엔 제사장 여호야다가 있었는데, 그가 130세에 죽기까지 왕의 배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까닭에 요아스가 영적으로 의식적으로 정치적으로 자립하는데 한계가 있었죠. 그래서 여호야다 제사장 죽자 요아스가 갑자기 하나님을 등지고 우상숭배의 길로 빠져들었고, 급기야 아람 나라와 전쟁을 벌이다 패했고, 최후에는 신하들의 칼에 맞아 죽임을 당하고 말았죠. 어떤 일이든, 어떤 공동체든, 심지어 한 집안에서도, 내가 나서야 할 때와 물러날 때를 구별하는 게 참 중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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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그 요아스 왕에 이어 9번째 왕이 된 아마샤에 관한 기록입니다. 열왕기하 14장에도 이와 같은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다만 오늘 본문의 내용이 좀 더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25세에 왕이 되어 29년간 통치했음을 1절에서 밝혀줍니다. 그가 어떤 길을 걸어갔는가? 오늘 본문은 그의 전 인생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중요한 부분들만 끄집어서 밝혀주고 있습니다. 크게 세 단락으로 나눌 수 있는데, 1-4절이 첫 번째 단락이죠. 2절에 보면 “아마샤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기는 하였으나 온전한 마음으로 행하지 아니하였더라.” 아마샤는 왕이 되어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지만 온전한 마음 곧 전심으로 행하지는 않았다고 밝혀줍니다. 3-4절을 보면 자기 아버지 요아스를 죽인 신하들을 처단하는 장면이 나오죠. 그런데 그 자손들까지 처단하지는 않았다고 밝혀줍니다. 이유인 즉 4절에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함이라” 그만큼 하나님의 율법을 준행하는 아마샤 왕의 모습이죠. 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준행하는 것 같지만, ‘온전한 마음으로 행하지 아니하였다’는 것, 이것이 그의 참 모습입니다. 뭔가를 행하는데 중립지대나 회색지대에 있다는 것이죠. 아마샤는 그만큼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좇지 않은 것이죠.
두 번째 부분은 5-13절까지입니다. 아마샤가 이제 에돔 족속들, 다시 말해 에서의 후예들과 전쟁을 벌이기 위해 군사를 모집하죠. 그때 2만 명을 동원해 나오는 에돔 족속들을 맞서기 위해 5절을 보면이미 30만명을 모집한 상태였죠. 그런데도 부족하다고 판단한 아마샤는 6절에 은 백 달란트로 북이스라엘의 용병 10만명을 고용하죠. 40만명을 이끌고 2만명을 치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당신의 사람을 보내죠. 그래서 7절에서 그 이스라엘 군대를 데리고 가지 말라고 전하죠. 전쟁은 당신이 생각하는 군사의 수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 있다고 말이죠. 하나님은 당신을 의지하는 자들을 능히 돕기도 하시고, 당신을 의지하지 않는 자들을 패하게도 하신다고 전하죠.
그러자 아마샤가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북이스라엘 군대를 돌려보내죠. 그리고서는 담력을 내서 에돔 족속들과 맞서 싸우는데, 그 전투에서 에돔의 자손 곧 세일 자손 만 명을 쳐 죽이고, 또 다른 군대 만 명을 모조리 잡아 바위 꼭대기에서 밀쳐서 몰살시키죠.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그 전투에 북이스라엘 군사를 안 데리고 갔는데, 그렇게 하고서도 그 전투에서 승리를 거뒀는데, 그 상황에 북이스라엘 군대가 일을 벌였죠. 무슨 일입니까? 그들이 조용히 자기네 땅으로 물러간 게 아니라, 가는 길에 남유다 성읍들을 공격하고 약탈한 것이죠.
그렇다면 그런 상황에 아마샤 왕이 어떻게 처신했어야 했을까요?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에돔 족속과 전투를 벌이고 대승을 거뒀는데, 대신에 자신이 군대를 이끌고 나온 자기 성읍 백성들이 약탈을 당하고 고통을 당했다? 그렇다면 그 일을 하나님의 경고로 받아들여야 했겠죠. 이를테면 네가 전쟁에서 승리를 거뒀다고 해서 교만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뜻으로 말이죠. 그러면서도 더욱더 하나님 앞에 엎드리라고 하는 싸인이구나, 하고 받아들였어야 했죠.
그런데 그가 어떻게 합니까? 본문 14절에 보면 엉뚱한 짓을 벌이죠. “아마샤가 에돔 사람들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세일 자손의 신들을 가져와서 자기의 신으로 세우고 그것들 앞에 경배하며 분향한지라.” 에서의 후예인 에돔 족속들, 즉 세일 산 바위 틈에 사는 그 족속들 2만 명을 쳐 죽였는데, 그런데 돌아오는 길목에 그가 에돔 신들을 가져와 예루살렘 성읍에 세우고서 그것들 앞에 절하는 모습이죠. 실로 어처구니없는 짓이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따르는 것 같지만, 실은 반쪽짜리 신앙의 전형적인 모습이죠.
그래서 본문의 세 번째 단락에서 보여주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죠. 그가 아마샤왕에게 말합니다. 본문 15-16절의 말씀이죠. 한 마디로 왕이 하나님을 버렸으므로 하나님께서도 당신을 버려 멸하시기로 작정하셨다고 경고하죠. 그것은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한 사무엘상 2장30절 하반절 말씀과 같죠.
그렇다면 그 경고 앞에 그가 겸비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의지해야 하는 게 옳지 않습니까? 그런데 본문 17절을 보면 그에 대한 반응이나 대책은 전혀 나타나 있지 앟습니다. 전혀 다른 상황이 전개되고 있을 뿐입니다. 그가 방백들과 상의해서, 북이스라엘 왕 요아스를 치러가자는 새로운 상황이죠. 여기에도 북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등장하는데, 실은 요아스라는 이름이 동명이인입니다. 어제 살펴본 남유다 왕국의 8번째 왕도 요아스이고, 본문에서 아마샤 왕 다시 말해 요아스 왕의 아들 아마샤가 북이스라엘의 왕 요아스를 치러가자고 할 때 그 요아스 왕은 북이스라엘의 12번째 왕을 말하는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요아스 왕은 악한 아합 왕의 아들 아하시야를 칼로 처단한 예후 왕의 손자죠. 그런 북이스라엘의 요아스 왕과 군사를 치러 가겠다고 지금 상의하는 장면입니다.
우리에게 무엇을 생각하게 해 줍니까? 그가 에돔의 신들을 섬기는 그 모습 앞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선지자를 보내 그 길에서 돌아서라고 경고를 보냈는데도,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무시한 채, 전쟁에만 몰두하는 모습이죠. 그 결과가 어떻게 됩니까? 본문 21절에 보면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군대와 유대 왕 아마샤가 이끄는 군대가 유대 땅 벧세메스에서 맞서게 되죠. 그런데 22절에서는 그 전투에서 아마샤가 대패하고, 그리고 그가 도망치는 모습입니다. 그야말로 게임이 안 되는 전투였죠.
그런데 그것으로 끝입니까? 아닙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12번째 왕 요아스는 내친 김에 그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 성읍을 진격해 들어갑니다. 그리고서는 성읍의 성벽을 허물고 성문도 열어 제치고, 그리고 성전에 들어가 모든 금과 은을 훔치고, 왕궁의 재물까지 빼앗고, 심지어 사람들까지도 볼모로 잡아 사마리아 땅으로 끌고 가는 형국이죠.
그 모습을 바라 본 남유다 왕 아마샤는 얼마나 큰 수치심을 또 얼마나 큰 패배감을 느끼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아마샤의 말년은 너무나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죠. 본문 27-28절에, 아마샤는, 자기 아버지 요아스의 말년처럼, 그 말년에 부하 장수들의 칼을 맞아 죽임을 당했고, 그리고 그 시체는 열왕의 묘실이 아닌 일반 유다 성읍에서 장사지내가 되었죠.
이상과 같은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성령님의 음성이 무엇입니까? 아마샤가 하나님을 좇고 율법을 준행하는 것 같지만, 온전히 전심으로 좇지는 않았다는 것, 그로 인해 자기 교만에 빠져 더 큰 화를 당하게 되었다는 점이죠. 그것은 마치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초대 7교회 가운데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주님의 말씀과 같죠.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계3:14-16)
*사랑하시는 주님.
아마샤가 하나님을 좇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 같았지만,
온전히 절대적으로 좇지 않는 모습이었고,
자기 교만에 빠져 인생도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오늘 저희들은 어떤 상황과 환경속에서도 미지근한 신앙인이 아니라
온전한 신앙인, 절대적인 신앙인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여
아름다운 인생의 매듭을 짓게 하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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