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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역대하

여호야다가 용기를 내어(대하23:1-21)

by 똑똑이채널 2021.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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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 아달랴를 성전밖으로 끌어내서 처형하려는 여호야다와 제사장과 군사들의 모습

 

남유다의 6번째 왕 아하시야는 1년 밖에 통치하지 못하고 죽었죠. 북이스라엘의 장수 예후가 그의 목숨을 앗아갔지만, 그것은 예후에게서 나온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일이었죠. 왜냐하면 그 아하시야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길을 좇은 게 아니라 자기 보기에 좋은 길, 곧 바알과 아세라라는 풍요와 번영의 신을 좇아 숭배했기 때문이죠. 문제는 그가 그런 악행을 좇도록 부추긴 사람이 있었다는 점이죠. 바로 그의 어머니 아달랴 곧 아합의 딸인 아달랴가 그를 아합의 집의 길로 들어서도록 부추긴 까닭이었죠. 그래서 우리들도 우리의 자녀들을 세상의 바알과 아세라 곧 맘모니즘을 부추기는 가르침이 아니라, 오직 생명과 진리의 말씀으로 가르치는 게 가장 중요한 것임을 살펴봤습니다.

문제는 그 아들로 하여금 풍요와 번영의 신을 좇도록 하다가 그가 죽자, 그 어머니 아달랴는 왕권을 거머쥐었다는 점이죠. 그녀는 자기 욕망에 눈이 멀어 모든 왕자들을 다 죽였고, 곧이어 여왕에 등극하죠. 그녀가 그 6년 동안 여왕으로 군림할 때 과연 어떤 정치를 펼쳤을까요? 그 아들 아하시야에게 가르쳤던 아합의 집의 길을 온 백성들이 신봉하도록 가르쳤던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녀가 그런 길을 제시하고 부추겼으니, 그렇게 해서 자신도 왕권을 거머쥐게 되었으니, 온 백성들도 그런 모습을 본받아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백성들 사이에 사랑이나 관용보다 자기 성공을 위해 물어 뜯는 죄악만 넘쳐났던 것이죠. 그것이 바로 지옥과 같은 모습입니다. 지옥이란 죽어서 가는 불타는 그 어떤 곳이 아닙니다. 지옥은 하나님이 없는 곳, 서로를 경쟁상대로 보고, 어떻게든 상대를 집어 삼키려고 발버둥 치는 곳, 바로 그곳이 지옥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지옥과 같은 곳이죠.

지금 남 유다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역대기 기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혈통을 통해 영원한 왕조를 그 자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약속을 받았다고 해도 그 후손들이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거나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길을 좇았던 게 아니었습니다. 서로 죽고 죽이는 인생, 서로 속고 속이는 인생, 그야말로 지옥 같은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 패역한 길을 좇아 사는 유다 백성들이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새로운 길을 열고 계신다는 점입니다. 이른바 요아스 왕이 그입니다. 여왕 아달랴가 유다의 왕자들을 모조리 죽였고, 그래서 왕권을 거머쥐었고, 모든 유다 백성들에게 아합의 집의 길 곧 바알과 아세라 신을 좇게 만들고, 그 속에 관용이나 사랑이나 공의는 찾아볼 수 없고, 오직 성공과 번영만을 좇아 서로 속고 속이는 삶을 살고 있는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새로운 왕을 준비하고 계셨다는 점입니다. 바로 그가 남왕국 유다의 8번째 왕 요아스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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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긴과 보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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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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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가 어떻게 왕이 되었는지 오늘 본문에서 밝혀주고 있습니다. 본문 1-3절입니다. 제칠년에 여호야다가 용기를 내어 백부장 곧 여로함의 아들 아사랴와 여호하난의 아들 이스마엘과 오벳의 아들 아사랴와 아다야의 아들 마아세야와 시그리의 아들 엘리사밧 등과 더불어 언약을 세우매 그들이 유다를 두루 다니며 유다 모든 고을에서 레위 사람들과 이스라엘 족장들을 모아 예루살렘에 이른지라 온 회중이 하나님의 전에서 왕과 언약을 세우매 여호야다가 무리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다윗의 자손에게 대하여 말씀하신 대로 왕자가 즉위하여야 할지니.”

7살된 요아스가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잘났거나 그가 똑똑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 나오죠. 이른바 제사장 여호야다입니다. 그런데 어제 읽은 말씀을 보면 그 제사장 여호야다보다 더 위대한 인물이 나오죠. 이른바 그의 아내 여호사브앗입니다. 2211절에 보면 바로 그 여호사브앗, 다시 말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인 그녀가 갓난 아이였던 요아스를 몰래 성전에 숨겨서 키웠던 장본인입니다.

왜 그녀와 그녀의 남편 곧 제사장 여호야다는 그 핏덩이 요아스를 성전에 숨겨서 키웠던 것일까요? 어떤 정치적인 입장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세상의 부귀영화 곧 맘모니즘을 숭배한 까닭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녀와 그, 곧 여호사브앗과 그의 남편 여호야다가 핏덩이 요아스를 숨겨 키운 것은 바로 여왕 아달랴 때문이죠. 온 세상에 먹구름을 끼얹은 듯 죄가 판을 치고 있고, 온갖 바알과 아세라 신이 판을 치듯 남유다 땅과 예루살렘 성읍에 죄가 관영한 것을 바라본 제사장 여호야다와 그의 아내 여호사브앗이 그 길목을 차단하고 새로운 하나님의 길을 열고자 그렇게 목숨을 내 놓고 성전에서 그 핏덩이 요아스를 숨겨 키웠던 것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때가 되었다고 판단한 제사장 여호야다가 용기를 낸 것이죠. 그래서 모든 지도자들과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동원해, 이제는 7살된 그 요아스를 왕으로 옹립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래서 4-11절에 요시야를 왕으로 옹립하는 장면, 다시 말해 왕위 즉위식을 거행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일을 추진하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움직이는 모습이죠. 먼저는 왕과 언약을 체결하고, 안식일에 성전의 문을 지키는 자들에게 무기를 주면서 성전의 문을 철저하게 지키게 했고, 11절에 보니까 이제 그런 철통같은 경호 속에서 왕자를 인도해 면류관을 씌워, 율법책을 주고서 왕으로 삼으면서, 모두가 합창하는 모습을 보여주죠. 왕이여 만세수를 누리소서하고 말이죠.

그때 아달랴 여왕이 어떻게 합니까? 본문 12절을 보니까, 그녀가 백성들이 환호하고 열광하는 그 소리를 듣고서 성전으로 뛰어들어가죠. 그때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방백들 곧 지도자들과 온 백성들이 요시야 왕을 열광하자, 아달랴 여왕은 ‘반역이다, 반역이다’하고 소리를 치죠.

그때 제사장 여호야다가 어떻게 합니까? 14절 이하를 보면 제사장 여호야다는 군대를 거느린 백부장들에게 지시를 하죠. 그 여왕 아달랴를 성전 밖으로 끌어내 그녀를 처단하도록 하라고 말이죠. 그리고 이제 그 여왕 아달랴의 후원을 받고 온 세상을 주름잡았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다 처단하도록 했고, 그 바알과 아세라 신전과 주상들을 모두 깨부수도록 했죠. 그리고서는 다시금 제사장들을 세워서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드리도록 했죠.

그만큼 아달랴가 정권을 쥐고 있던 그 6년 동안 예루살렘 성전은 성전으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고 있었던 것이죠. 그곳에서 섬겨야 했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찬양대원들, 성전의 문지기들, 그리고 성전 밖에서 백성들에게 율례와 법도를 가르치며 성전으로 종교교부금을 거둬들이던 레위인들조차도 다들 아달랴 여왕과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의 눈치를 보며 살았던 것이죠. 그런데 그 모든 개혁의 물꼬를 텄고, 이제는 완전히 새롭게 하나님을 향해 번제를 드리며 활발하게 섬기도록 한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와 같은 본문을 통해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음성이 있습니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친다고 하듯이, 온 세상이 아달랴 여왕의 주관 하에 바알과 아세라 신 곧 풍요와 번영의 맘모니즘을 숭배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 속에서도 새롭고 산 길을 열어놓고 계셨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남 유다 백성들이 어떤 훌륭한 일을 행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으신 언약 때문에 그들을 긍휼히 여기신 것입니다. 바꿔 말해 오늘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된 것 역시, 우리가 하나님 앞에 훌륭한 일을 행했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의 언약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없다면 다들 아합의 집의 길로 들어설 인생들 아닙니까? 내 의지와 내 결단이 강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막아주시고 보호해 주시기 때문에 죄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는 것이죠. 그렇기에 이 세상에 죄가 더욱 관영하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죄 가운데 물들어 살 때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더 사모하며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길을 택해 살기를 바랍니다. 그때 아무리 죄가 세상을 주름잡고 있다 할지라도 그 속에서 새로운 길, 구원과 은총의 길을 주님께서 열어가고 계심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주님.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라, 찬양의 가사처럼,

오늘의 나는 내가 능력이 있고 내가 의지가 강해서 이렇게 무릎꿇고 기도할 수 있는 게 아님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한량없는 은혜로 품어주시기 때문임을 압니다.

온 세상이 어둠에 휩 쌓이고 죄가 관영할지라도

그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바라보며 주님의 걸을 걷길 원합니다.

그때 그 어둠 속에서 새로운 길을 열어주실 줄 믿습니다.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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