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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위하여 갈대상자를 가져다가(출2:1-10)

 

이집트의 18대 왕조 아모세 왕은 이전의 이방 세력들의 왕조와 달리, 국수주의 정책을 펼쳤습니다. 왜냐하면 요셉을 국무총리로 기용한 제15대 힉소스 왕조부터 16, 17대 왕조까지는 이민족 혈통을 지닌 왕조였고, 제 18대 왕조부터 함의 열통을 이어받아 친애굽정책을 강화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 일환으로 파라오 아모세는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했는데, 자신의 정치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을 억압하기 위한 정책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로 삼아, 그 현장에 투입하도록 했고, 그 노역에 시달리면 자녀를 낳아서 키울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본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상황속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번성하고 창성했습니다. 그때 파라오 아모세 왕은 산파들을 불러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죽이도록 명령했습니다. 하지만 히브리 산파들은 아모세 왕의 명령보다 하나님을 더 경외했기에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살려내는데 일조했습니다. 그래도 안 되겠다 싶었는지, 파라오 아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내 아이들이 태어나면 모두 나일강에 던져 죽이라는 포고문을 내렸던 것이죠.

바로 그 와중에 태어난 아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한 아이가 모세였던 것이죠. 훗날 바로의 딸, 이집트 왕실 공주의 아들로 40년간 제왕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이후 미디안 광야에서 40년간 양치기로 살다가, 인생 80세가 되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낸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 말입니다.

모세가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 모세가 죽지 않고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것은 그 부모가 아들을 살려야 한다는 굳은 결단력을 보여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는데, 그 용기 역시 하나님의 은혜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온 세상 사람들이 죄와 어둠을 짝하며 살지라도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향한 믿음의 용기를 지니며 사는 것, 그것 역시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하나님의 시간표 | 권성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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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그와 같은 믿음의 용기를 지닌 모세의 부모에 대해 본문 1-2절이 그렇게 소개합니다.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어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여기에서 말하는 ‘레위 가족’이라 함은 ‘레위 지파의 후손’을 말합니다. 같은 레위 지파 사람들끼리 혼인을 했고 자식을 낳았던 것이죠. 그 남자와 그 여자, 그 혼인한 부부에 대한 이름은 소개돼 있지 않습니다. 출애굽기 6장 20절에서 그 부부의 이름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아므람은 그들의 아버지의 누이 요게벳을 아내로 맞이하였고 그는 아론과 모세를 낳았으며 아므람의 나이는 백삼십칠 세였으며” 또한 민수기 26장 59절에서도 이렇게 소개합니다. “아므람의 처의 이름은 요게벳이니 레위의 딸이요 애굽에서 레위에게서 난 자라 그가 아므람에게서 아론과 모세와 그의 누이 미리암을 낳았고.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모세의 아버지는 아므람이요, 어머니는 요게벳이란 사실입니다. ‘아므람’(עַמְרָם)이란 이름의 뜻은 ‘백성을 들어올리다’(exalted people) 하는 뜻이고, ‘요게벳’(יוֹכֶבֶד)은 ‘여호와는 영광이시다’(Jehovah is glory)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모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므람과 요게벳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아들을 살리는 결단을 행한 것입니다.

 

본문 3-4절입니다.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섰더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아이를 살려 키우는데, 그 아이의 울음소리가 커서 더 이상 집에다 키울 수 없었던 것이죠. 그래서 석달 즈음, 그들 부부는 더 큰 결단을 합니다. 아이가 살고 죽는 것을 하나님께 맡긴 채, 갈대상자에 역청과 진을 칠해서 그 상자를 나일강에 띄워 모세의 누나 미리암으로 지켜보게 했습니다. 요나단 탈굼(Targum of Jonathan)에 따르면 미리암은 당시 10-12살이었다고 봅니다.

그 갈대상자는 어떤 상자였을까요? 단순히 비바람이 들치지 않도록 만든 나무 상자였을까요? 이사야 18장 2절에서 “갈대 배를 물에 띄우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른바 이집트의 갈대 곧 ‘파피루스’를 엮어 배를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사람이 탈 수 있는 적지 않는 크기의 배를 만들었다면, 석 달된 모세를 위해 작은 갈대상자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갈대상자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테바’(תֵּבָה)는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놀랍게도 노아의 방주와 그 갈대상자가 똑같은 ‘테바’(תֵּבָה)로 쓰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축구 경기장만한 노아의 테바나, 갈대상자로 역은 모세의 테바나 똑같은 의미의 방주였던 것입니다.

비록 크기와 외형 면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그 테바는 공통된 특징이 있었습니다. 그 테바에는 키나, 노나, 닻도 없다는 점입니다. 노아의 방주 테바도, 모세의 갈대상자 테바도, 동력도 없고, 방향키도 없었던 것입니다. 언제 멈춰서야,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얼마나 빨리 가야 할지, 그 모든 상황을 하나님께 맡겼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전능하신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지 않았다면, 그런 테바를 만들기는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인생 테바도 그와 같은 것 아니겠습니까? 이 험악한 세상의 파도를 넘고, 순풍과 역풍을 만날지라도, 우리 스스로의 동력을 확보해서 휘젓고 나가기보다, 그 모든 주도권을 전능하신 하나님께 내어 맡기는 것 말입니다. 그런 테바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모세의 부모가 지닌 믿음, 아므람과 요게벳의 결단력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죠.

그런 차원에서 좀 더 생각할 부분이 있지 않겠습니까? 유대인 부모와 한국인 부모의 차이점이 있다는 것 말입니다. 유대인 부모들은 ‘한 번 길을 못 찾는 것보다 열 번 길을 묻는 편이 더 낫다.’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자녀들이 질문하는 걸 귀찮아하지 않고 매번 성실하게 답변해 준다고 하죠. 그에 반해 한국의 부모들은 자녀가 질문하는 것 자체를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유대인 부모들은 ‘100명의 유대인이 있다면 100개의 의견이 있다’는 속담을 중시하며 자녀들의 개성과 취향을 존중하지만, 한국인 부모들은 ‘100인 100색’보다 ‘100인 1색’을 강조하는 형국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 부모들은 ‘아이에게 일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도둑질을 하라고 가르치는 것과 같다.'고 하는데, 한국의 부모들은 자녀의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살 집까지 마련해주는 교육을 펼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친다는 유대인 부모와는 달리, 물고기까지 잡아서 입에 넣주려는 한국인 부모의 가치관이 얼마나 연약한지 알 수 있죠.

유대인 부모가 그런 가치관을 형성케 된 풍토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겠습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고난의 역사속에서 배양된 것 아니겠습니까? 고난과 역경이 찾아와도 오직 하나님께 자신들의 인생 테바를 의탁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본문 5-10절은 모세의 인생 테바를 파라오 곧 아모세 왕의 딸이 건져올리는 장면입니다. 아므람과 요게벳이 모세의 인생 테바를 하나님께 맡기며, 나일강 강가 갈대 사이에 띄워놓고 누나 미리암이 지켜보는데, 파라오의 공주가 그곳에 울음소리를 듣고 테바를 열어봤더니 히브리인의 아이가 울고 있는 것이었죠. 때마침 미리암이 나서서 유모를 소개했는데 바로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이었죠. 모세라는 이름은 그렇게 물에서 건져냈다는 의미로 지은 이름인데,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모세를 건져 올려주신 사건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더욱이 모세가 물에서 건짐받은 것은 훗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에서 건짐받은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드라마틱한 과정들은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주도하신 일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인생 테바도, 자녀들의 인생 테바도, 하나님께 전적으로 내어 맡길 때 하나님께서 숱한 인생의 위기 속에서 건져주시는 은혜를 덧입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복음후원계좌_3020306519971(농협, 예금주:권성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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