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hw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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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예화)찬송가 412장은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입니다.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데서 맑은 가락이 올려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플러나와 내 영혼을 고이싸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이 찬송은 미국 출신의 감리교 목사였던 웨렌 도널드 코넬이 작시한 노래입니다.
그는 1889년 전도집회를 이끌던 중에 지쳐서 잠시 쉼을 얻고 있는데 묵상 중에 영감으로 그 시를 쓴 것입니다.
그때 힘들고 지쳐 있었지만 자신을 감싸고 있는 하나님의 놀라운 평화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의 평화를 종이에 네 절의 시로 옮겨 쓴 것이었죠.
그런데 그곳에서 나가는 길에 그 종이를 그만 땅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만약 다른 누군가가 그 종이를 주워서 쓰레기인 줄 알고 버렸다면 어쩌면 그 노래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못했을지 모릅니다.
공교롭게도 작곡자 쿠퍼가 그곳을 가다가 땅에 떨어진 종잇조각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적혀 있는 시를 보게 된 것입니다.
“평화 평화로다 하늘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쿠퍼는 그 시를 보자마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종이를 들고 즉시 오르간 앞으로 갔습니다.
그때 비로소 지금 우리가 부르고 있는 이 찬양을 작곡하게 된 것입니다.
(깨달음)이 찬양의 가사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간직하고 있을 때 맑은 가락이 울러 퍼지는 것이죠.
하나님의 은혜를 내가 깊이 신뢰하고 있을 때 말입니다.
그럴 때면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내 영혼을 고이 싸는 것을 느끼고 깨닫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그 다음의 가사는 ‘평화, 평화로다’입니다.
내 영혼의 그윽이 깊은 데서 맑은 가락이 나와서 내 영혼을 감싸주니까, 하늘 위로부터 나에게 평화가 임한다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나에게는 평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것 아니겠습니까?
가장 높은 곳에서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와 가장 낮은 곳에서 쏟아 오르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곳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 말입니다.
그야말로 기적이죠.
나처럼 볼품 없는 죄인이고 아무런 자랑할 게 없는 자에게 그 크신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를 부어주시는 것 자체가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적용)그렇기에 그 은혜를 아는 사람은 주님과 바른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죠.
마치 김칫독으로 살던 사람에게 된장독을 만들어준다면 그때부터는 온통 구수한 된장독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말입니다.
그것이 실은 성화의 삶이지 않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은혜가 죄로 인해 죽을 내 심령을 살리고 내 심령의 영혼에 하나님의 은혜를 부어주셨으니 이제는 내 자아나 내 의를 좇아 사는 게 아니라 그 분의 은혜를 품고 사는 것 말입니다.
내가 늘 주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때에 은혜와 평강이 날마다 넘쳐나는 것이죠.
그 은혜와 평강을 통해 매일매일 새롭게 태어나고 새로운 구원의 삶을 사는 것이죠.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포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권성권
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 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죠.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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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배)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 11절부터 자기 자신이 부여받은 사도직의 본질적 목적이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데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자의로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목의 직책을 완수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는 길이죠.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과 화목을 이룬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대사 곧 그리스도의 사신이 되어 사는 사명을 부여받은 자라고 했습니다.
바울도 그런 사명을 위해 그리스도의 사도로 그 직무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죠.
저와 여러분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대속의 은혜를 누리고 있다면, 주님의 사신으로 사는 사명을 부여받은 줄 믿습니다.
(본문)오늘 본문 1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읽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깨달음)여기에 바울은 우리가 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라고 명명하고 있습니다.
바울 자신이나 고린도교회 성도들이나 모두가 하나님과 더불어 일하는 자들이라는 말이죠.
다시 말해 하나님의 대사 곧 하나님의 사신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사신이 된 자로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들에게 권면하는 게 뭡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는 것이죠.
(원해)여기에 ‘헛되이’는 헬라어로 ‘케노스’(κενός)는 ‘비어 있는’(empty) ‘헛된’(vain)이란 말입니다.
이 단어는 가득 채워진, 완넌함을 의미하는 ‘플레레스’의 반대말입니다.
그렇기에 이 형용사는 문자 그대로 ‘비어있는 그릇’ 뿐만 아니라 소유물이나 목적이나 발언권이 없는 사람(막12:3, 눅1:53)을 뜻하기도 합니다.
더욱이 실체가 없는 주장이나 지속적인 효과가 없는 계획이나 노력(행4:25,고전15:14,빌2:16).
또 행함이 없는 믿음(약2:20)까지 묘사할 수 있습니다.
(적용)누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비어 있는 상태로 여기는 자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흘러버리는 사람이죠.
쉽게 말해 하나님께서 값없이 우리에게 은혜를 부어주셔서 새 생명이 된 게 중생이죠.
그런 은혜를 받았다면 이제는 나의 의와 바꿔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전에는 내 의, 내 자랑, 내 자아를 위한 삶을 살았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말이죠.
이를테면 김칫독으로 살던 내가 된장을 품게 되었다면 이전에 김칫독의 여운을 다 비워내고 온전한 된장독으로 사는 것이죠.
그런데도 이전처럼 뭔가 집착하고 내 자아와 내 의만을 드러내고자 한다면 궁극적으로 죄의 덩어리와 다를 바 없죠.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 쓸모업게, 무가치하게 여기는 꼴입니다.
그런 그릇을 내려놓고 주님의 의를 좇아 사는 삶, 그것이 성화의 삶이죠.
바울은 지금 그것을 권면하고 그것을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주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지금 저와 여러분들을 향해 그런 은혜 안에 거하도록, 성화의 삶을 살도록 주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사신, 그리스도의 대사로 사는 자라는 것이죠.
그것이 사도로 부름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취할 화목의 자세요,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발자취를 따르는 길이란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길을 열어주셔서 중생하고 구원을 받았죠.
그 다음에 나의 의와 바꿔야 하는데 이것을 바꾸지 않습니다.
인간이 뭔가 집착하고 자기에게 움켜쥐면 그게 궁극적으로 죄 덩어리죠.
그것을 놓아야 하나님의 의를 담는 그릇이 될 텐데 그걸 놓지 않죠.
심정적으로는 구주로 인정하는데 현실적으로는 돌아서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소멸시키죠.
사도 바울은 그 성화의 삶을 살 것을 간청하는 것이죠.
(본문2)오늘 본문 2절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원성)이것은 사도 바울이 이사야 49장 8절 말씀을 인용하고 있는 것이죠.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를 백성의 언약으로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에게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하게 하리라”(사49:8)
(깨달음)사도 바울은 앞에서 의와 죄를 바꿔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은혜를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고린도후서 5장 21절 말씀과 연결된 한 단락을 지금 끝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말씀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전해졌다고 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전해진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분들이 더 이상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어 버리지 말고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초청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구원이 임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에 깨어 있고자 하는 자는 매일 매일이 구원의 날인 것이죠.
(적용)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이 시간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이 말씀이 이 밤에 우리에게 주어졌다고 하는 사실 자체가 하나님의 귀한 은혜를 헛되이 버리는 게 아니죠.
오직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을 누리라는 은혜가 임해 있기에 이 말씀을 듣고 새길 수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매일매일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가는 것이죠.
그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 속에서 전혀 다른 차원의 삶 곧 성화의 삶을 살아가게 되기 때문이죠.
하나님의 시간표 | 권성권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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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고 충만하게 받은 자로 매일매일을 구원의 새 날로 여기는 은혜 안에 거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우리 각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이 땅 위에 험한 길 가는 동안 참된 평화가 어디에서 누구로부터 임할 수 있겠느냐?”
“온통 이 세상은 공중권세 잡은 사탄의 세력이 판을 치고 온갖 이기심과 허형과 시기와 다툼을 판을 치는 시대 속에서 네가 어떻게 해야 마음을 굳게 다잡고 살아갈 수 있겠느냐?”
“오직 하늘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평강과 은혜가 네 심령을 감쌀 때에만 가능하지 않겠느냐?”
“그 은혜를 네가 부여받았기에 예수님의 대속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 아니더냐?”
“그렇다면 그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는 자로서 매일매일 하나님과 더욱 깊은 관계를 엮어나가며 그 분 안에서 살아가야 하지 않겠느냐?”
“네가 주님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중생의 은혜를 덧입었다면 이제는 성화의 삶을 살아가는 것 말이다.”
“그것은 너의 자아와 너의 이기심과 너의 의를 내려놓고 오직 주님의 의를 좇아 매일매일 새롭게 되는 길이지 않겠느냐?”
“바울도 그런 날이 될 때에 매일매일이 구원의 날이요 매일매일 은혜와 평강이 감싼다고 말한 것 아니겠느냐?”
“오늘도 주님은 네 영혼에 평강을 불어넣어주시는 분이요 그 분과 깊은 사귐 속에서 성화의 삶을 살도록 이끌어가지 않겠느냐?”
(찬양)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데서 맑은 가락이 올려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플러나와 내 영혼을 고이싸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내 맘속에 솟아난 이 평화는 깊이 묻히인 보배로다 나의 보화를 캐내어 가져갈자 그 아무도 없으리라
내 영혼에 평화가 넘쳐남은 주의 큰복을 받음이라 내가 주야로 주님과 함께있어 내 영혼이 편히쉬네
이 땅위의 험한길 가는 동안 참된 평화가 어디있나 우리 모두 다 예수를 찬구삼아 참 평화를 누리겠네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평강과 은혜가 없이는 단 한순간도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 분의 은혜가 나를 품고 그 분의 평강이 나를 주장해야 내가 그리스도의 대사로 그리스도의 사신으로 살 수 있는 것이죠.
그런 은혜를 머금지 않게 되면 온통 나의 자아와 내 의만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날마다 죽어야 주님의 은혜 안에 살 수 있는 것이죠.
그것이 매일매일 새롭게 태어나는 구원의 날이요 그것이 성화의 삶인 줄 믿습니다.
그 삶을 위해 주님께서 우리를 불러 구원하신 것이요, 그때에만 매일매일 이 낮고 천한 곳에 사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평강을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 그런 은혜가 충만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시간표 | 권성권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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