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열기)(예화)미국의 어느 목사님이 농부의 집에 하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농부는 예수를 믿지 않고 그 부인은 늘 남편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의 의미를 그에게 설명할 기회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아침에 그 농부가 목사님을 부르더니 닭장엘 같이 가보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닭장에 가보니까 닭장 우리에 암탉이 앉아 있는데 그 날개 밑에서 병아리들이 삐약삐약 소리를 내면서 한 마리씩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농부가 목사님에게 암탉을 건드려 보라고 하는 것이었죠.
그 목사님이 암탉을 툭 건드렸는데 그 암탉은 죽어 있었습니다.
그때 농부가 말했습니다.
“저 머리에 상처를 보십시오. 족제비란 놈이 그 몸에서 피를 다 빨아 먹었는데도 그놈이 새끼들을 잡아먹을까봐 꼼짝도 하지 않고 그대로 죽은 것입니다.”
그때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그랬군요.! 저 암탉의 모습이 그리스도의 모습과 똑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모든 고통을 참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벗어나고자 움직일 수 있고, 십자가에서 내려와 자기 생명을 구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당신과 내가 멸망받을 수 밖에 없기에 주님은 십자에서 그 고통을 모두 받으신 것입니다”
그러자 그 농부는 주님의 십자가 사건을 이해하고서 곧바로 예수님을 자기 구주로 영접했다고 합니다.
(깨달음)어떻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받아들이신 것이 그런 모습 아닙니까?
얼마든지 천군 천사를 이용해 십자가에서 내려올 수 있었지만,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가로막힌 담을 헐고자 친히 십자가 고통을 당하신 것이었죠.
주님의 십자가 공로 덕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의롭다고 인정받게 되었고 그 어떤 세력도 우리를 정죄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적용)그렇기에 주님께서 화목케 하신 그 사랑을 받은 우리에게 남은 것은 오직 그 사랑을 전하는 것 뿐이죠.
사도 바울도 실은 주님의 대사로서 사도의 직분을 충실히 감당한 것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주님의 십자가 대속의 사랑을 더 널리 전하는 주님의 대사로 살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포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바울의 일생과 편지 | 권 성 권 - 교보문고
바울의 일생과 편지 | 바울은 누가 뭐래도 복음 전도자였다. 그가 복음 전도자로 활동한 것은 그의 곁에 위대한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나바, 디도, 실라, 디모데, 누가, 루디아, 야손, 브
product.kyobobook.co.kr
(역배)고린도후서 5장 11절에서 7장 16절까지는 바울이 자신의 사도직 수행에 대해 변호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사도의 직분을 수행케 하는 원동력이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강권적인 사랑에 기인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리스도의 강권적인 사랑이란 예수님께서 자기 목숨을 십자가의 대속물로 내어 놓는 사랑을 말한 것입니다.
그 사랑을 믿고 의지하는 자들은 누구든지 새 생명을 얻는 은혜 안에 거할 수 있기 때문이죠.
지난 시간에는 그리스도의 강권적인 사랑에 힘입어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을 살펴봤습니다.
이전에는 바울이 그리스도에 대해서 자기 육체대로 알았지만 이제는 육체대로 알지 않는다고 선언한 이유도 그것입니다.
예전에는 세상에 속한 기전으로 주님을 바라봤지만 주님을 만나 새로운 피조물이 된 이후에는 영원한 관점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었죠.
그래서 ‘새로운 피조물’이란 ‘카이네 크티시스’(καινὴ κτίσις)인데 그리스도를 통해 재창조에 가까운 새로운 본성을 부여받은 피조물이 된 걸 말한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란 그리스도를 통해 재창조된 피조물을 말하는 것인데 그것은 옛 모습과 비교가 않을 정도로 ‘근본적이며 갱신적인 언약’에 근거한 피조물을 말한 것입니다.
바울은 새로운 피조물에 대해 에베소서 4장 24절을 통해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자’로 말한 바 있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된 하나님의 자녀는 신분이 새로워졌으니 그 신분에 걸맞는 새로운 가치관을 지녀야 하고, 영원한 비전을 품고 사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죠.
(적용)그렇기에 저와 여러분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강권적인 사랑에 힘입어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면 그에 걸맞는 신분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요, 영생의 비전을 품고 사는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걸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본문)18-19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깨달음)바울은 11-17절을 통해 사도의 직분이 그리스도의 강권적인 사랑으로 부여받은 것임을 밝혔습니다.
이제 18절부터 6장 2절까지는 자신이 화목의 직책을 위해 그리스도의 사도직을 받았음을 밝힘과 동시에 성도들에게 하나님과 화목하기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하나님과 화목게 되는 은혜를 헛되게 만들지 말라고 촉구하는 내용입니다.
여기에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다’는 말은 새로운 피조물의 주도성은 하나님께 비롯되었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태초의 첫 창조가 하나님의 주도권에 의해 시행됐던 것처럼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도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역사로 가능하다는 걸 말한 것이죠.
그만큼 인간은 자기 윤리 수준이 높아질지라도, 또 옛 사람을 버리고 새로운 사람이 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자기 노력이나 자기 변화로 가능한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인간의 온전한 재창조는 인간 주도로 가능한 게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물어주셨기 때문이죠.
(원해)여기에 ‘화목하게 하시고’로 번역된 헬라어 ‘카탈라쏘’(καταλλάσσω)는 ‘바꾸다’ ‘교환하다’는 뜻입니다.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과 화목하게 될 수 있는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죄로 인한 심판을 바꿔 주신 것이죠.
죄로 인한 인간의 심판은 십자가 대속을 통해 대신 교환해 주신 것이고, 또 부활을 통해 그 사랑에 힘입어 영원한 생명으로 바꿔 주신 것입니다.
물론 그와 같은 하나님의 대속 사역은 유일회적인 사건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과거에 발생한 사건으로 멈춰지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화목케 하는 그 직책을 통해 새로운 영혼이 새 생명을 얻도록 앞으로도 계속 역사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만큼 이 세상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죄로 말미암아 소외되었던 하나님과의 사이가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으로 온전히 화목하게 된 것입니다.
(원해2)여기에 ‘돌리다’는 헬라어 ‘로기조마이’(λογίζομαι)는 ‘셈하다’ ‘대금을 청구하다’는 말입니다.
죄인인 인간의 죄값을 하나님께서 일일이 청구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땅에 대속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죄의 값을 모두 전가시켰기 때문이죠.
그로서 인간과 우주 만물과 진정한 화목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화목하게 하는 말씀’의 구체적인 내용인 것이죠.
(적용)그렇기에 남은 것이 무어입니까?
우리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주님의 십자가 대속 곧 화목케 하는 직책을 완수하신 주님의 사랑을 전하고 나눠야 할 사명이 있는 것이죠.
바울도 그를 위해 화목케 하는 직책을 부여 받았고 그것을 위해 사도로 부름받은 사역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죠.
저와 여러분들도 기회 있을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목의 대속으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 직책을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본문2)본문 20-21절 말씀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원해)바울은 화목하게 하는 사도로서의 직책을 받은 자로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해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직설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사신이 되다’는 헬라어 ‘프레스뷰오’(πρεσβεύω)는 어원적으로는 ‘노인이 되다’(to be older)는 뜻이지만 후기에 이르러 ‘대사가 되다’(to be an ambassador)는 말입니다.
헬라 시대에 파피루스나 비문 등에도 이 표현이 등장합니다.
그때에는 황제의 사절이 그 직책을 수행하는 것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한 단어입니다.
바울도 황제보다 더 높으신, 황제와 비교할 수 없이 고귀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대사가 되었다고 밝힌 것입니다.
바울은 그걸 일컬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대사가 되었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여기에 ‘대신하여’는 헬라어 ‘휘페르’(ὑπέρ)로서 바울 자신이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직책을 수행한다는 사실을 명시적으로 밝힌 것입니다.
당시 황제의 사절이 황제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자로 황제의 권위를 위임받았듯이 바울도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위임받아 전달하는 그리스도의 사절이라는 사실입니다.
(깨달음)그렇게 그리스도의 사절단으로서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권고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화목하라’는 권면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이겠습니까?
이것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중생한 성도들은 성화의 차원으로 나아가되 매일매일 하나님과 막힘이 없는 화평의 관계를 누리며 살라는 것이죠.
왜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까?
무죄하신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이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의를 소유하게 해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바꿔 말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목케 하는 직책을 완수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의로 인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죄인인 우리를 위롭다고 인쳐주시는 것이죠.
(적용)그것이 법정적인 선언의 칭의입니다.
그렇기에 그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었고 우리 심령에 각인이 되었기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어떤 것도 정죄되지 않는 것이죠(롬8:1)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칭의로 인침받은 우리에게 그 어떤 세력이나 대상도 우리를 정죄하거나 칭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없는 것이죠(롬8:38∼39).
그만큼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화목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이 유일회적이지만 완전하고 영원히 지속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직 화목하게 하신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기회 있을 때마다 바울처럼 그리스도의 대사가 되어 그 사랑을 전하고 나누는 책임이 있는 것이죠.
바울의 일생과 편지 | 권 성 권 - 교보문고
바울의 일생과 편지 | 바울은 누가 뭐래도 복음 전도자였다. 그가 복음 전도자로 활동한 것은 그의 곁에 위대한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나바, 디도, 실라, 디모데, 누가, 루디아, 야손, 브
product.kyobobook.co.kr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통해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화목의 직책을 이루신 것처럼 우리로 하여금 온전한 그리스도의 대사로 사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우리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닭장 속의 어미 닭이 새끼를 보고하고자 족제비가 온 몸을 찢어놓고 피를 빨아 먹어도 죽어가면서까지 그 자리를 지키지 않았더냐?”
“우리 주님께서도 십자가 위에서 죽으실 때 얼마든지 열두 군단되는 천군천사를 동원해 그 자리를 피하고 떠날 수도 있었찌만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화목을 위해 굳게 지킨 것 아니었더냐?”
“그 사랑에 힘입어 네가 주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쳐주신다면 이제는 그 사랑을 전하고 나누는 그리스도의 대사로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기전까지는 세상의 출세와 성공을 위해 살았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후에는 화목케 하는 직책을 완성하신 주님의 대사로 살았으니 말이다.”
“네가 무엇을 하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화평케 하신 주님의 대사로 살아갈 때 어찌 주님께서 너를 기뻐하고 잠잠히 사랑하지 않겠느냐?”
(찬양)너 어디 가든지 순종하라 너 어디 있든지 충성하라
주 너의 하나님 왕 되신 주 영원히 주님만 찬양하라
너 무엇하든지 진실하라 너 무엇하든지 성실하라
주 너의 하나님 도우시리 어디를 가든지 정직하라
너 어느 때든지 기도하라 너 어느 때든지 감사하라
주 너의 하나님 돌보시리 너 어느 때든지 기뻐하라
너 고난 속에서 평화하라 너 핍박 속에서 감사하라
주 너의 하나님 함께하리 승리의 주님을 찬양하라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실 때 얼마든지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 있는 힘과 권세와 능력을 지닌 분이었습니다.
심지어 열두 군단되는 천군 천사를 동원해서 그 자리에 있는 로마 군병들을 다 무리칠 수 있는 권한과 능력이 있었죠.
하지만 주님은 ‘내가 목마르다’ ‘다 이루었다’하시면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둘때까지 그 자리를 굳게 지켰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와 하나님의 사이에 가로막고 있는 죄악의 담을 허물고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기 위함이셨습니다.
그를 통해 우리는 주님 안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 어떤 세력도 우리를 정죄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들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면서까지 화목의 직책을 완성하신 주님의 사랑을 더 널리 전하는 그리스도의 대사로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바울의 일생과 편지 | 권 성 권 - 교보문고
바울의 일생과 편지 | 바울은 누가 뭐래도 복음 전도자였다. 그가 복음 전도자로 활동한 것은 그의 곁에 위대한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나바, 디도, 실라, 디모데, 누가, 루디아, 야손, 브
product.kyobobook.co.kr
728x90
반응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