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무엘서와 열왕기서를 읽어나가면서 다윗의 인생을 10년 단위로 생각해 봤었죠. 이새의 아들 중 8번째 아들 다윗은 형들과 배다른 아들이었고,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양치기 일을 도맡았죠. 다윗의 10대 시절은 유다 베들레헴의 시골 촌뜨기로 살던 10대였고 그 속에서 자립정신을 키웠죠. 10대 후반 곧 20대엔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는데, 골리앗을 쓰러트린 후엔 사울의 칼날을 피해 도망자 신세를 겪었죠. 유다 광야를 중심으로 4년(삼상21-26장)간 살아야 했고, 이후 3년 4개월은 블레셋의 가드 왕 아기스의 통제권인 시글락 지역에서 은둔자 삶을 살았죠. 그리고 30대 시절엔 7년6개월간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의 왕이 되었는데, 그 중 2년은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과 내전을 치르는 세월로, 나머지 5년 6개월은 난공불락의 여부스 성읍을 점령하는 세월을 보냈죠. 그 성읍을 점령한 후에 다윗은 그 성읍을 예루살렘으로 칭했고, 그곳에서 왕궁을 짓고 천도하여 명실상부한 이스라엘 나라의 왕이 되죠.
그렇게 30대 시절에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은 40대가 되어 인생의 성공가도를 달리게 되죠. 그래서 예루살렘에 자기 궁궐을 화려하게 짓고서, 자신이 세우고자 한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 곧 신정국가임을 알리기 위해 하나님의 법궤를 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 집에서 모셔오려고 했죠. 그때 소를 동원해 법궤를 끌고 오는데, 수레를 끈 소들이 나곤의 타작마당에서 뛸 때 웃사가 그 법궤를 만지자 하나님께서 그를 치셨죠. 그 사건을 목격한 다윗은 자기 자신이 그 법궤를 자기부적이나 자기과시로 삼고자 한 사욕이 깃들지 않았는지 점검하게 되죠. 그래서 3개월 동안 오벧에돔의 집에 그 법궤를 모셔두게 한 이후에, 다시금 그 법궤를 모셔오는데, 이번에는 수레에 끌고 오게 하는 게 아니라 모세의 율례와 법도를 좇아 레위인들을 동원해 그 법궤를 메고 오게 했죠. 그 길목에 비파와 수금과 제금과 나팔을 불고 찬양대를 구성해 찬양하면서 법궤를 모셔왔는데, 그때 다윗은 너무나도 즐거워서 옷이 내려갈 정도로 기쁨의 찬양을 하나님께 올려드렸죠. 그 후에 다윗은 법궤를 모실만한 성전도 짓고 싶어했는데 하나님께서 제동을 거셨죠.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행한 하나님이라는 것, 인간의 생각과 틀에 제한당하지 않는 무소부재한 하나님이심을 일깨워주면서, 또한 다윗의 내외적으로 피흘림이 많을 것이라면서, 성전건축을 막으셨죠. 하지만 다윗의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만은 받으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언약을 맺어주시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승리할 것이고, 너의 나라와 후대를 영원토록 견고케 해 줄 것이라고 약속해주셨죠. 그 후에 다윗은 어디를 가든지 승리했죠. 이스라엘의 서쪽 블레셋, 동쪽 모압과 에돔, 북쪽 다메섹과 아람까지도 모두 정복하여 조공을 바치게 했습니다.
그것이 다윗의 40대 시절이었죠. 이제 50대 안정기에 들어설 무렵에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그 시절에 큰 죄악에 걸려 넘어졌고 연쇄적인 죄의 후유증들을 겪지 않았습니까? 이스라엘과 아람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는데, 해가 바뀌면 왕이 전쟁터에 나가 있는 병사들을 위로하고 격려해 줘야 할 책무가 있었죠. 하지만 다윗은 그 책무를 감당치 않고 왕궁에 머물렀는데, 그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했고, 그 남편 우리아까지 최전방에 보내 적의 칼에 죽게 만들었죠. 그때 다윗은 침상을 적실 정도로 회개하며 하나님께 성령을 거두지 말라고 간절히 기도했죠. 하나님께서는 그 회개를 받으셨지만, 그 죄의 후유증은 겪게 하셨죠. 이른바 공식적인 그의 19명의 자녀들 가운데 첫째 아들 암논이 이복여동생 다말을 강간했고, 그 다말의 오빠 곧 다윗의 셋째 아들인 압살롬이 2년간 음모를 꾸며 난을 일으켜 큰 형 암논을 죽였고, 이후 압살롬이 외조부의 나라 그술로 도망가 3년간 살다가, 요압 장군의 청에 의해 예루살렘 궁으로 돌아오는데, 2년 만에 다윗의 얼굴을 보지만, 그로부터 4년 동안 압살롬은 백성들의 송사를 맡아 백성들의 마음을 빼앗았고, 급기야 헤브론에 올라가 쿠데타를 일으켜 왕이 되죠. 내친김에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예루살렘 궁으로 처들어오는데, 그때 다윗은 피난길에 올라 요단강을 건너 멀리 마하나임까지 도망을 가죠. 그러나 다윗의 군사와 압살롬이 진두지휘하는 전쟁 속에서 아들 압살롬은 그만 죽고, 다윗은 다시금 요단강을 건너 예루살렘 궁으로 돌아오죠. 그런 격랑의 사건들이 50대부터 60대 초반까지 있었던 일들입니다.
그리고 이제 60대 후반에 접어들어 무엇을 했는가? 그의 나이 70세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지 않습니까? 그래서 인생 말년에 다윗은 또다시 죄악을 범하는데, 자신이 다스리는 백성들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그 군사력은 얼마나 되는지, 헤아리도록 한 것이었죠. 그렇게 해서 헤아린 숫자가 북이스라엘은 110만, 남 유다는 47만, 합계 157만 명이었죠.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하면 600만 명이 넘었죠. 그것이 역대상 21장에 나온 내용인데 그 일로 하나님께서 7만명 곧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하면 30만명을 치신 셈인데, 그 일로 다윗이 회개의 번제와 화목제물을 드렸는데, 바로 그곳을 성전터로 삼아주셨고, 그래서 이제 자신의 배다른 10번째 아들 곧 솔로몬을 왕으로 세워, 온 문무백관들을 불러 성전을 짓도록 독려하는 것으로 자기소임을 마치고 70세에 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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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다윗의 인생입니다. 우리가 역대상 1-29장까지 살펴봤는데, 역대상 1-9장까지는 아담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후손들 그리고 베냐민 지파 출신 사울 왕을 살펴봤고, 역대상 10장부터 마지막 29장까지 다윗이 왕이 된 것과 성전건축에 관한 말씀이었죠. 그중 역대상 10-20장까지가 다윗의 10대 20대 30대 40대를 압축한 말씀이고, 역대상 21-29장은 다윗의 60대 후반 말년의 일이죠.
우리가 상고한 것처럼 역대기는 바벨론에 패망한 이스라엘이 포로귀환하여 나라를 재건하고자 하면서 쓴 역사실록으로, 그 초점은 가장 왕성한 다윗의 왕국에 포인트를 잡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성전건축에 초점을 맞췄다고 했습니다. 무너진 이스라엘을 재건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과 뜻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길이 바로 성전건축에 달려 있는 것이고, 그런 마음으로 무너진 성전을 다시금 세우고자 한 뜻으로 역대기를 기록한 것입니다.
그런 관점으로 역대기상을 기록하면서 29장에서 끝을 맺었죠. 그렇게 다윗이 인생 말미에 아들 솔로몬을 왕으로 지명하고, 문부백관들을 불러 성전건축을 독려하면서 죽고, 이제 역대하로 넘어오게 됩니다. 역대하는 1-9장까지 솔로몬의 성전건축과 통일왕국의 역사를, 10-36장 21절까지는 북왕국 이스라엘을 뺀 유다왕국의 역사를, 마지막 36장 22-23절까지는 바벨론 제국의 뒤를 이은 바사 곧 페르시아 제국의 고레스 대왕이 칙령을 내려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귀환토록 한 조치까지 담고 있죠.
오늘 읽은 역대하 1장은 솔로몬이 왕이 되어 맨 먼저 무엇을 했는지 보여주는 말씀이죠. 그도 아버지 다윗처럼 문무백관들을 데리고 기브온 산당에 올라가죠. 이유인 즉 자신이 통치하고자 한 나라가 아버지 다윗의 나라처럼 신정국가 곧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국가임을 알리고자 함이죠. 그런 뜻으로 그가 기브온 산당에 올라가 제사를 드리죠. 이 내용은 열왕기상 3장에 나와 있죠. 솔로몬은 그곳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 마리의 희생 제물 곧 번제물을 하나님께 드리죠. 물론 자기 욕망을 이루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 다윗의 배다른 10번째 아들 중에 자기 자신을 왕으로 삼아주신 그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기 위함이었죠.
그것이 1-6절의 말씀인데, 그런데 7절에 하나님께서 그 밤에 솔로몬에게 나타나 무엇을 줄꼬, 하죠. 그러자 솔로몬은 9-10절을 통해 “주께서 나를 땅의 티끌 같이 많은 백성의 왕으로 삼아주셨으니 이 백성들을 바르게 재판하고 다스릴 수 있도록 지혜와 지식을 주시”라고 하나님께 구하죠. 물론 열왕기상 3장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를 달라고 간구하지만, 오늘 본문은 백성들을 바르게 재판하고 다스릴 수 있는 지혜와 지식을 달라고 간구하는 게 다른 점이죠. 그때 하나님께서는 “부나 재물이나 영광이나 원수의 생명이나 장수도 구하지 아니”한 솔로몬에게 그 모든 지혜와 지식은 물론이요 나머지 것들도 다 주시겠다고 하죠. 그렇게 해서 이제 13-17절까지 솔로몬이 왕궁으로 돌아와 나라를 다스린 모습으로 끝을 맺습니다.
오늘 이상과 같은 말씀을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다윗도 그랬지만 솔로몬도 그런 것처럼, 우리의 삶을 초점을 어디에 맞추고 살 것인가는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점이죠. 그것이 삶의 방향과 목적과 질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다윗도 솔로몬도 그 당시 하나님의 성전에 집약시킨 것처럼,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세우는데 우리의 삶을 집약시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주님.
어떤 환경과 배경 속에서 태어났던지, 지금 우리가 어떤 삶의 모습으로 살아가든지,
그 초점을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맞추며 살게 하시고,
그런 저희들의 가정과 후손들을 하나님의 기업으로 세워주시옵소서.
다윗의 일생을 통해 살펴 본 것처럼,
저희들의 남은 날을 지혜롭게 계수하며 영광돌리게 하옵소서.
오늘도 성령을 모신 성전답게,
저희를 부르신 일터를 성소로 알고,
살아 있는 산 제물로, 영적 예배자로 살게 해 주시옵소서.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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