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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역대하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대하2:1-18)

by 똑똑이채널 2021.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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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 죽으면서 솔로몬을 왕으로 삼았습니다. 그때 솔로몬의 나이를 대략 20대 초반으로 성서학자들은 봅니다. 물론 솔로몬은 그 당시 왕이 될 자격조건이 안 됐죠. 다윗의 공식적인 아들들 19명 가운데 10번째 아들인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과 밧세바의 관계 속에서 태어난 두 번째 아들이죠. 그만큼 부정의 자식이라는 구설수에 올라 있었죠. 그런 어린 시절이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를 여디디아로 곧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삼하12:24-25)로 삼아주셨고, 다윗의 첫째 아들 암논이 죽고, 셋째 아들 압살롬이 쿠데타를 일으켜 왕권을 쥐려다가 죽었고, 힘없는 늙은 다윗이 죽어갈 무렵 넷째 아들 아도니야가 왕이 되려고 하는 상황이었죠. 바로 그런 상황속에서 솔로몬이 왕이 되었으니, 어찌 그가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제 살펴본 것처럼 솔로몬이 기브온 산당에 올라가 하나님께 일천 마리의 희생 제물을 드린 이유가 거기에 있었죠. 그때 하나님께서는 네게 무엇을 줄고 내게 구하라고 했죠. 솔로몬은 부귀와 명예와 장수를 구하지 않고, 어린 아이와 같이 출입할 줄 모르는 20살 초반에 왕이 되었으니, 무엇보다도 백성들을 바르게 이끌고 판단할 수 있는 지혜를 구했죠. 그때 하나님께서는 지혜와 지식은 물론, 그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명예와 장수까지도 주시겠다고 약속했고, 실제로 전차와 기마병, 금과 은, 넉넉한 백향목까지 주셨죠. 무엇을 깨닫게 합니까? 물질을 목적으로 삼으면 물질의 노예가 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으로 삼으면 하늘의 은혜와 더불어 우리에게 필요한 물질까지도 채워주신다는 교훈을 얻게 되죠.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은 솔로몬이 성전건축을 준비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10절까지는 두로 왕 후람에게 기술자와 재목을 요청하는 부분이 담겨 있고, 11-18절은 그 요청에 대해 두로 왕 후람이 친절하게 응답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큰 틀인데, 우선 1절을 보시면 솔로몬이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솔로몬이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고 자기 왕위를 위하여 궁궐 건축하기를 결심하니라.” 이른바 성전과 궁궐을 짓고자 한 솔로몬의 결심인데, 우선 순위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열왕기상 6장을 보면 솔로몬은 왕이 된지 4년이 지나 성전건축을 시작하는데 무려 76개월이 걸리죠. 자기 궁궐을 짓는데는 13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기록하죠. 성전과 자기 궁궐을 짓는 총 세월이 20년인데, 솔로몬이 왕으로 통치한 40년의 재위 중에 절반가량이 그렇게 성전과 자기궁궐 건축에 소요된 것이죠. 그런데 오늘 본문 1절에서 강조하는 것은 그 두 가지 것 중에 솔로몬이 어디에 우선순위를 뒀냐는 점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궁궐을 먼저 지을 수도 있는 솔로몬이었는데, 왕으로 삼아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성전건축을 먼저 앞세운 것이죠. 바꿔 말해 우리들도 삶의 우선순위를 하나님의 나라에 둬야 함을 알 수 있죠.

솔로몬이 그와 같은 성전건축에 필요한 인력과 재료를 어디서 뽑고 가져오는가? 인력은 본문 2절처럼 짐꾼 7만명’ ‘석공 8만명’, ‘감독관 3600을 뽑았죠. 재료 곧 나무는 3절처럼 두로 왕 후람을 통해 백향목을 가져오게 하죠. 그래서 사신을 보내 두로 왕에게 성전건축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그에 따른 건축기술을 지닌 재주 있는 사람과 백향목을 배로 실어 보내달라고 사신을 보냅니다. 그러면서 솔로몬이 멋진 말을 하지 않습니까? 본문 5-6절에 내가 건축하고자 하는 성전은 크니 우리 하나님은 모든 신들보다 크심이라. 누가 능히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요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내가 누구이기에 어찌 능히 그를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요 그 앞에 분향하려 할 따름이니다. 두로 왕 히람이여. 내가 짓고자 하는 성전은 큰 성전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신보다 가장 크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찌 내가 그 하나님을 모실만한 성전을 지을 수 있겠습니까? 저 높고 큰 하늘과 하늘들, 또 그 위의 하늘이라도 결코 하나님을 모실 수 없을진데, 온 우주의 주관자요 통치자이신 하나님을 내가 어찌 내 손으로 건축한 이 전에 모실 수 있겠습니까? 다만 내가 성전을 짓고자 하는 것은 그 성전 앞에 나아가 분향하고자 하는 마음 뿐입니다, 하면서 솔로몬이 고백한 것입니다.

어떻게 솔로몬이 이토록 겸손한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이미 우리가 역대하 23장과 역대상 28장을 통해 다윗이 솔로몬과 대신들에게 한 고백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이 솔로몬에게 이야기하기를 나는 성전을 짓고 싶어 했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막으셨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님께서는 여태껏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행하신 분으로, 결코 인간의 사고방식에 제한당하지 않는 무소부재한 하나님이라는 것, 그러니 혹여라도 성전을 짓고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를 성전 안에 가두려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으니, 아직은 때가 아니나, 너는 성전을 짓지 말도록 하라. 또 하나는 너는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이다하면서 성전건축을 제한하셨다고 했죠. 그러나 그때의 피흘림이란 적을 칼로 죽이고 피흘림 곧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피흘림도 있고, 자기 내부의 피흘림 곧 죄악의 피흘림도 있었죠. 그런 모습 속에서 솔로몬에게 내 대에서 성전을 건축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 것이었죠. 다만 하나님께서 제한하실지라도 다윗은 성전건축에 관한 모든 재료를 준비해놓았죠. 바로 두로 왕 히람을 통해서 말이죠.

바로 그와 같은 사실을 다윗이 솔로몬에게 이야기해줬기 때문에, 오늘 본문을 통해 솔로몬도 두루 왕 히람에게 지원요청을 하면서 그와 똑같은 고백을 한 것입니다.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님을 용납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놀라운 것은 오늘 본문의 고백을 솔로몬이 성전을 다 건축하고 봉헌식을 할 때 기도내용에서 똑같이 하나는 점입니다. 역대하 618절에 이 고백이 나와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선한 고백인지 알 수 있죠. 그만큼 우리들도 그런 선한 마음을 본받아야 하겠죠.

솔로몬이 그렇게 지원요청의 사절단과 사실을 보낼 때 두로 왕 히람이 어떻게 응답합니까? 본문 11절 이하를 보면 두로 왕 히름이 답장을 하죠. 이른바 솔로몬의 요청대로 성전건축의 기술자들과 그에 따른 건축재료 곧 백향목을 보내주겠다고 말이죠. 물론 그것은 공짜가 아니었죠. 솔로몬이 밀 이만 고르, 보리 이만 고르, 포도주 이만 밧, 기름 이만 밧을 주겠다고 약조한 상황에서, 두로 왕 히람도 선뜻 그 모든 재원과 백향목을 보내주겠다고 한 것이죠.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본문 17-1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전에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이 이스라엘 땅에 사는 이방 사람들을 조사하였더니 이제 솔로몬이 다시 조사하매 모두 십오만 삼천육백명이라. 그 중에서 칠만 명은 짐꾼이 되게 하였고, 팔만 명은 산에서 벌목하게 하였고 삼천육백 명은 감독으로 삼아 백성들에게 일을 시키게 하였더라.” 이 말씀이 실은 본문 2절에 나온 짐꾼 7만명 석공 8만명 감독관 36백명과 같은 인원입니다. 열왕기상 5장에서는 역군 3만 명 짐꾼 7만 명 석공 8만 명 그리고 감독관 33백 명으로 성전건축에 투입된 연인원이 총183300명임을 알 수 있죠. 중요한 것은 그 인원이 본문 17절에 기록된 이방인의 수, 곧 이방인들 가운데서 차출된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왜 솔로몬은 성전건축에 필요한 인원을 이방인들, 곧 이스라엘 땅에 흘러들어온 나그네와 노예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뽑아서 성전건축을 감당토록 했던 것일까요? 이른바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에 이스라엘 백성들 곧 동족은 종이나 노예로 삼지 말라는 말씀을 준행코자 함이었죠. 그것은 솔로몬만 그런 게 아니라 역대상 222절에서 이미 다윗도 그 율례와 법도를 준행한 바 있습니다. 다윗도 이방 사람을 불러 모아 석공의 일을 준비토록 한 바 있습니다. 솔로몬도 아버지처럼,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따라 이방인들을 그렇게 성전건축에 동원시킨 것이었죠. 물론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과 이방인이라는 차이점이 있긴 하지만, 구속사적인 관점에서는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이방인들이 성전건축에 동원된 것은 그만큼 하나님의 은총이 이방인들에게 흘러갈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대역사가 이방 세계에까지 전파될 수 있다는 것 말이죠. 오늘날 교회당을 건축할 때 믿지 않는 자들이 맡아서 하는 것과 같은 흐름입니다.

아무쪼록 오늘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솔로몬의 겸손한 마음과 이방 세계에까지 하나님의 역사가 전파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하루를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주님. 솔로몬이 성전과 자기궁궐의 건축 중에 성전건축에 우선순위를 뒀고, 그 성전의 재료를 준비하면서 결코 자기과시나 자기허세에 빠지지 않는 겸손한 마음을 지녔습니다. 이방인들을 성전건축에 동원시켰는데,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이방세계에까지 전파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오늘 저희들의 삶 속에서도 그런 겸손한 마음과 복음전파의 삶을 감당케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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