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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역대상

익숙한 자의 수효가 이백팔십팔명(대상25:1-31)

by 권또또 2021.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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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대에 성전건축하는 것에 브레이크를 거신 것을 깨닫고, 아들 솔로몬과 온 대신들에게 성전을 건축하도록 독려했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짓게 되면 이제 레위의 자손들 곧 게르손 고핫 므라리 자손들로 하여금 성전의 직무를 맡도록 했고, 그 중에서도 고핫의 자손들 가운데 대제사장 직무를 맡았던 아론의 자손들로 하여금 제사장 직무를 감당케 했죠. 아론에게는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있었는데,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께 이교도의 불을 드리다가 일찍 죽임을 당했고, 셋째 엘르아살과 이다말의 자손들로 하여금 24개의 반차를 나눠서 공평하게 제비뽑아 제사장 직무를 감당케 했습니다. 물론 엘르아살과 이다말 자손이 아닌 다른 레위 자손들은 무엇을 했는가? 그들 중에는 성전의 기구들을 돌보는 일들, 또 진설병 곧 떡과 전병을 만들기 위해 반죽하고 굽는 일들, 또 금촛대의 불을 밝히는 일들, 번제단의 불을 준비하는 일들, 그리고 성전의 문지기로 섬겨야 하는 일들을 다 감당토록 했죠. 그래서 제사장직을 감당한 엘르아살과 이다말의 자손들만 중요한 게 아니라, 성전과 관련된 다른 일들을 맡은 레위인들이 중요하듯, 오늘날 제사장 격에 속하는 목회자뿐만 아니라 그 당시의 레위인들처럼 온 교우들이 왕같은 제사장으로서 각자 각자 맡은 소임에 최선을 다한 것이 중요하다고 했죠. 그 일을 통해 자기 과시나 자기 허세를 부리는 않는 겸손함, 신실함으로 섬기는 자세 말이죠.

 

오늘 읽은 말씀은 성전의 찬양대와 관련된 말씀입니다. 레위 자손들 가운데에 아론의 자손 곧 엘르아살과 므라리 자손들은 24개의 반차대로 제사장 직무를 제비뽑아 감당토록 했고, 나머지 레위 자손들은 성전의 여러 성물과 문지기와 관련된 일들을 도맡았고, 이제 찬양대와 관련된 직무를 감당한 이들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사실 음악은 만국공통어죠. 나이가 어리든 많든,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음악은 비록 말이 통하지 않아도 시대와 인종과 언어를 초월하는 힘을 갖고 있죠. 그런데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음악은 참으로 신령한 노래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울러 그 찬양가사처럼 우리의 삶이 진정한 찬양이 되도록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죠. 이와 같은 관점으로 다윗이 성전에서 찬양할 찬양대를 조직했는데, 이미 역대상 234절에서 다윗은 찬양대원으로 4천명을 선발했습니다. 오늘 본문 7절에서는 그 4천명 가운데 288명의 찬양대원을 따로 선별했다고 밝혀줍니다. 그래서 12명씩 24개조로 나눠서 찬양을 담당한 담당자들을 9-31절까지 밝혀줍니다.

 

본문 1절은 성전의 찬양대를 주관한 세 명의 지휘자를 밝혀줍니다. 다윗이 군대 지휘관들과 더불어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의 자손 중에서 구별하여 섬기게 하되 수금과 비파와 제금을 잡아 신령한 노래를 하게 하였으니 그 직무대로 일하는 자의 수효는 이러하니라.” 그 세 명의 지휘자는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이고 그들의 자손들 중에 수금과 비파와 제금을 잡아 연주하고 또 노래를 부르게 했죠.

여기에서 아삽이 첫 번째로 등장합니다. 물론 본래부터 아삽이 첫 번째인 것은 아니었죠. 헤만이 첫 번째 위치였습니다. 헤만은 요엘의 아들이고 요엘은 사무엘의 아들이고 사무엘은 고핫의 손자이죠. 그만큼 헤만은 다윗을 왕으로 기름 부은 사무엘 선지자의 손자였죠. 더욱이 헤만은 광야 시절 성막의 중심기구들을 멘 고핫의 자손입니다. 그만큼 중심 지도자 역할을 했던 헤만이죠. 그래서 역대상 639절에서도 아삽은 헤만의 우편에 역대상 644절에서 에단 곧 여두둔은 헤만의 좌편에서 찬양을 담당했다고 밝혀줍니다. 헤만이 그 당시에는 중심 위치를 잡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아삽이 지금부터는 맨 먼저의 위치, 곧 중심에 서게 됩니다. 그 이유가 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아삽이 레위의 아들 중에 첫째 아들 곧 게르손의 후손이라는 점, 또 시편 73편의 찬양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은 그가 솔직하고 신실한 영적 지도자였다는 점이죠. 아마도 다위이 그래서 헤만보다 아삽을 더 세워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중요한 것은 다윗이 그렇게 헤만 보다 아삽을 앞세웠어도 헤만은 불평하거나 원망치 않고 묵묵히 자기 사명을 감당했고, 아삽도 그런 위치에 설 때 결코 우쭐대거나 교만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찬양대장이 나오는데 그가 바로 에단곧 여두둔입니다. 시편39, 시편62, 시편77편의 표제는 영장으로 여두둔의 법칙을 의지하여 한 노래라고 나옵니다. 그 뜻은 에단의 손의 지휘에 의해 부른 노래라는 의미죠. 그만큼 여두둔은 모든 지휘자의 조상으로 최고 지휘자였다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세 사람이 찬양대 지휘관으로서 중책을 맡았는데, 서로 협력하고 합심했다는 점이죠.

 

오늘 이와 같은 찬양대원들의 찬양을 통해 세 가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1, 2, 3절에 그냥 노래라 하지 않고 신령한 노래라는 표현합니다. ‘신령한이란 단어 앞에 숫자 1) 곧 각주가 있죠. 그 의미는 예언을 뜻함이죠. 이른바 신령한 노래가 예언의 노래라는 뜻이죠. 많은 사람들이 예언의 노래라고 해서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아맞추는 그런 예언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나타냄을 뜻하는 말씀입니다. 예언의 초점이 우리를 향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에게 맞추는 것이죠. 그래서 시편의 노래들이 실은 다 신령한 노래, 곧 예언의 노래요,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드러내는 찬양들입니다. 그만큼 신령한 노래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자각 곧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대한 고백이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빌립보 감옥에 투옥된 바울과 실라가 부른 찬양도 마찬가지였죠. 그들은 하나님께 억울하다며 옥터를 요동해달라고 찬양한 게 아니었죠. 오직 그곳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향해 신령한 찬양을 올려드렸습니다. 그래서 그 옥문이 열리는 주님의 영광과 능력을 보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옥문을 뛰쳐 나가지 않았고, 오히려 그곳의 간수장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했죠.

또 하나, 본문 7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들과 모든 형제 곧 여호와 찬송하기를 배워 익숙한 자의 수효가 이백팔십팔 명이라 최초 다윗이 4천명을 선별했고 그 중에 288명을 뽑았고 그 중에 12명씩 24개조로 나눠서 찬양을 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단어는 찬송하기를 배워 익숙한 자의 수라고 나오죠. 익숙한이라는 단어를 표준새번역은 능숙이라고 표현하죠. 본문의 찬양대는 찬양을 배워 익숙능숙했다,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베스트셀러 아웃라이어의 저자 말콤 글래드웰은 성공한 사람들을 분석하여 ‘1만 시간의 법칙을 발표했습니다. 한 사람이 자신의 분야에서 하루에 3시간씩 꼬박 10년을 연습하면 프로 중의 프로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 분야에 프로가 되기 위해 10년간 투자하고 분투하듯이, 본문 속의 찬양대원들도 그에 준한 익숙함 곧 능숙함 자유자재로 찬양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투자하고 준비했다는 뜻이죠. 바꿔 말해 우리의 믿음도 그만큼의 훈련을 거쳐야 한다는 점이죠. 그만큼 삶의 현장에서 주님을 따르는 훈련을 거듭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때 우리의 삶으로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모델이자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위대한 연주가가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 하나, 8절 말씀을 눈여겨 보시기 바랍니다. 이 무리의 큰 자나 작은 자나 스승이나 제자를 막론하고 다같이 제비 뽑아 직임을 얻었으니여기에서 큰 자나 작은 자나, 스승이나 제자를 막론한다는 것, 곧 찬양대원들을 하나님 앞에서 공평하게 뽑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도 불평치 못했던 것이죠. 그만큼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나의 노력이 아까워서라도 반드시 화려한 무대에 서는 주인공이 되길 원하지만 다윗의 찬양대는 자신이 뽑히지 않더라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찬양의 삶을 드리길 원했던 것이죠. 이것이 보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찬양, 곧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어야 하는 것이죠. 실로 다윗도 성전건축을 하여 영광을 돌리고 자기과시와 자기허세를 뽐내고 싶었지만 하나님께서 막으실 때 어떻게 했습니까? 그걸 받아들이고, 묵묵히 성전건축에 관한 모든 재료들을 준비하지 않았습니까? 자신이 주인공이 되지 못해도 밑받침은 다 하는 삶이었죠. 아무쪼록 이 당시의 찬양대원들처럼, 오늘의 시대에 우리에게 맡겨진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위한 위대한 연주가,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보여주는 위대한 삶의 찬양대원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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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긴과 보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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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주님.

저희들의 심령과 입술로 부르는 찬양들이 신령한 노래,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드러내는 찬양의 고백이 되게 하시고,

능숙한 찬양을 부르듯 주님을 찬양하는 삶에 철저한 훈련을 거듭하게 하시고,

비록 주인공의 자리가 아니어도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찬양하는 찬양대원의 삶을 살게 하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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