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은 성전 건축에 관한 모든 재료들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아들 솔로몬과 온 대신들에게 성전을 건축하도록 독려했죠. 그래서 성전을 짓게 되면 레위의 자손들 곧 게르손 고핫 므라리 자손들로 하여금 성전의 직무를 맡도록 했고, 그 중에서도 고핫의 자손들 가운데 대제사장 직무를 맡은 아론의 자손들, 그것도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께 이교도의 불을 드리다가 일찍 죽임을 당해 셋째 엘르아살과 이다말의 자손들로 하여금 24개의 반차를 나눠 공평하게 제비뽑아 제사장 직무를 감당케 했죠.
그 엘르아살과 이다말의 자손이 아닌 다른 레위 자손들은 무엇을 했나요? 그들은 성전의 기구를 돌보는 일들을 맡았죠. 법궤와 분향단과 금촛대와 진설병과 관련된 것들을 준비하고 돌보는 일들을 했죠. 또 어제 살펴본 대로 4천명 가운데 288명을 따로 선별해 12명씩 24개조로 나눠 찬양을 담당하게 했죠. 그 찬양대의 총 책임자가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이었죠. 그들의 주관하에 찬양을 담당했던 찬양대원들은 신령한 노래 곧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경배하는 찬양을 불렀고, 더 나아가 익숙한 찬양 모든 것에 완숙한 찬양을 준비하여 불렀고, 그리고 그 찬양대의 직무를 공평하게 제비뽑아 감당했죠. 그래서 누구 하나 하나님 앞에 불평하거나 원망하는 일 없이, 자신들에게 부여받은 찬양을 성실히 감당했던 찬양대원들이었죠. 궁극적으로 그들이 부른 찬양이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드러내는 삶의 찬양이 되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했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성전 안에서 맡았던 직무 곧 제사와 찬양과 관련된 직무를 맡았던 레위인들 외에, 이제 성전 밖의 직무와 관련된 레위인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문지기, 창고지기, 그리고 일반 행정과 사무와 재판을 맡은 공직자들이 그들입니다.
그래서 1-20절까지는 성전 문지기를 맡은 자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미 역대상 23장 5절에서 그 성전의 문지기로 4천명을 둬서 관리하고 통제하도록 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만큼 성전에 들고 나는 이들을 잘 관리하고 통제하도록 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주된 임무가 무엇이겠습니까? 성전에 들어와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 찾아오는 자들의 자격을 가리는 일 아니겠습니까? 아무한테나 문을 열어주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제사하고 경배하러 온 자들인지, 가리는 것 말입니다. 그래서 문지기들의 역할이 제사장만큼이나 중요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문지기에 대해 시편 84편 10절에서 이렇게 고백하죠.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84:10)하고 말입니다. 다른 곳에서 수도 없는 화려한 삶을 산다 해도 하나님 성전의 문지기로 섬기는 것이 훨씬 더 값지다는 뜻으로 고백한 것이죠. 바꿔 말해 그만큼 성전 문지기의 역할을 소중하게 여긴 까닭입니다.
그런데 이 문지기와 관련하여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12-13절입니다. “이상은 다 문지기의 반장으로서 그 형제처럼 직임을 얻어 여호와의 성전에서 섬기는 자들이라 각 문을 지키기 위하여 그의 조상의 가문을 따라 대소를 막론하고 다 제비 뽑혔으니.” 이른바 그 문지기 직임을 ‘형제처럼 얻었다’고 고백하고 있죠.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문지기 담당자들을 각 반차대로 나눠 제비를 뽑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제비를 뽑지 않고, 대제사장이나 제사장들이 임의로 문지기를 선정했을 경우, 또 그 직무를 반차에 따라 나누지 않고 오래도록 그 직임을 맡겼다면 결코 형제의 관계, 서로서로 감사하며 자족하는 직임이 될 수 없겠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전의 기구들과 관련된 직무도, 24반차로, 찬양대원들도 24반차로 오늘 문지기들도 24반차로 나눠서 제비를 뽑아 그 몫을 감당토록 했던 것입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공평하심의 속성이기 때문이죠.
본문 20-28절 말씀은 두 종류의 곳간을 맡은 자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20절에 “레위 사람 중에 아히야는 하나님의 전 곳간과 성물 곳간을 맡았으며.” 여기에서 두 종류의 곳간이 무엇인지 알 수 있죠. 하나는 ‘하나님의 전 곳간’이고, 다른 하나는 ‘성물 곳간’입니다. 하나님의 전 곳간은 백성들이 하나님께 바친 헌물을 간직하는 창고이고, 성물 곳간은 전쟁에서 승리했을 경우 그 전리품을 넣어두는 창고입니다. 그 전쟁의 전리품을 성물 곳간에 넣어둔 예가 26-27절에 나오죠. “이 슬로못과 그의 형제는 성물의 모든 곳간을 맡았으니 곧 다윗 왕과 가문의 우두머리와 천부장과 백부장과 군대의 모든 지휘관이 구별하여 드린 성물이라 그들이 싸울 때에 노략하여 얻은 물건 중에서 구별하여 드려.”
그만큼 성전의 곳간이든지, 성물의 곳간이든지, 그것들은 모두 하나님께 바쳐진 것들을 보관하는 귀한 창고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도 마태복음 3장 12절에서 그런 비유를 든 적이 있지 않습니까?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하고 말이죠. 그것은 비단 성물만을 비유로 한 것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신실한 자녀들을 칭해 알곡으로 비유해서 말한 것이죠. “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마24:40-41) 저와 여러분들이 쭉정이보다 알곡이 되어 하나님의 곳간 곧 천국에 은혜롭게 입성할 수 있는 은총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29-32절은 레위인들 가운데 마지막 직임을 맡은 자들을 밝혀주는 말씀입니다. 성전에서 봉사하는 레위인들 이외에, 일반 행정과 사무와 재판 곧 공직을 맡은 레위인들의 명단입니다. 이른바 성전과는 동떨어진 사회와 국가의 일을 맡은 이들이라 할 수 있죠.
그 일을 레위인들 중에서 뽑아서 감당토록 했다,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 말씀이겠습니까? 성도는 교회 생활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맡겨진 사회나 국가의 일도 잘 감당하는 자가 돼야 한다는 뜻이죠. 물론 모든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고, 일의 경중이 있기 마련이죠. 그래서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그 모든 초점을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세우는데 맞추는 게 중요하죠.
이상과 같이 레위인들이 맡은 직무를 역대상 24-26장까지 총체적으로 살펴봤습니다. 성전 안쪽의 모든 부분들을 보살피는 일과 찬양하는 일, 성전밖의 문지기 일, 그리고 일반 행정과 사무와 재판을 담당하는 공직자의 일 등, 그 모든 일들이 전문화되도록 했고, 그에 따른 공평성을 갖추기 위해 반차를 나눠 제비를 뽑아 선출해서 감당토록 했다는 것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대제사장 아론이나 제사장으로 감당한 레위인들, 또 성전의 법궤나 분향단이나 금촛대나 진설병을 만들고 준비하고 또 그 부분들을 닦고 관리하는 레위인들도 소중하지만, 그 외에 성전의 안뜰과 번제단의 숯불을 갈고 청소하는 레위인들과 성전에서 찬양대로 찬양을 담당하는 레위인들 그리고 성전의 출입자들을 관리하고 체크하는 문지기 역할을 맡은 레위인들과 마지막으로 일반 행정과 재판을 맡은 공직자로서의 레위인들, 그 모든 레위인들이 맡은 모든 직임이 곧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세우는 일들이라는 점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만큼 아주 작고 사소한 일이라도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천직으로 여기고 성실하게 감당하는 게 중요한 것이죠.
그래서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한 것 아니겠습니까?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하는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16:10)하고 말이죠. 5달란트를 부여받은 직임이든지, 2달란트를 부여받은 직임이든지, 아니면 1달란트를 부여받은 직임이라도, 그것의 크고 작은 기준은 세상의 기준이요,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인 기준으로서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라면 하나님께 기뻐받으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죠. 이 땅에서 많은 것을 했기 때문에 하늘나라에서 큰 상급이 있는 게 아니라 그 일을 통해 얼마만큼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이 있게 엮어가고 있는지, 또 그 일을 통해 정말로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찬양하는 삶인지, 바로 그것을 공의롭게 평가하셔서 상급을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https://www.bookpod.co.kr/goods/goods_view.php?goodsNo=1000001131
*사랑하는 주님.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다고,
고백한 시편 기자처럼,
우리가 세상에 크고 화려한 일보다도 비록 작고 소박해도 저희에게 맡기신 그 일을 통해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세울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내게 맡기신 그 일들을 더욱더 신실하게 감당케 하시고,
우리를 부르시는 그 날 하늘나라의 상급으로 채워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새벽묵상DewSermon > 역대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 모든 일의 설계를 그려(대상28:1-21) (0) | 2021.10.04 |
---|---|
각 반열이 이만사천명씩이라(대상27:1-34) (0) | 2021.10.02 |
익숙한 자의 수효가 이백팔십팔명(대상25:1-31) (0) | 2021.09.30 |
제비 뽑아 피차에 차등이 없이 나누었으니(대상24:1-31) (0) | 2021.09.29 |
항상 여호와 앞에 드리며(대상23:1-32) (0) | 2021.09.2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