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래 이파리 모습이다. 3월 16일 날 처음 접붙인 것인데 이토록 잘 자라고 있다. 빛깔은 다르지만 마치 카네이션 꽃처럼 생겼다. 속에서 작은 이파리들이 자꾸 올라오고 있다. 자식들이 모두 그렇듯, 녀석도 제 어미의 살을 먹고 사는 걸까? 녀석이 더욱 뻗어 열매를 맺기까지 긴긴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할 거다.
“어쩌면 엄마가 형의 몹쓸 병을 가져갔는지도 모른다. 우리 엄마라면 충분히 그럴 분이다.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형의 병까지 함께 하늘로 가져갔을 분이다. 하늘에 계신 엄마도 편안히 우리를 보고 계실 것 같다. 그래, 그 정도면 됐다. 살펴보면 어느 집에나 힘든 일은 있다. 우리 집은 다른 집들보다 좀 더 큰 일이 있었을 뿐이다.”(207쪽)
김도윤 작가의 〈엄마는 괜찮아〉에 나온 이야기다. 30대 초반 우울증과 조현병을 앓던 형이 7년 만에 세상에 나온 모습을 보고 한 말이다. 엄마가 하늘나라로 떠나면서 형의 아픔까지 모두 가져갔노라고. 형과 아버지 때문에 엄마도 우울증을 앓다 천국으로 갔지만 지금도 엄마는 그곳에서 괜찮다고 말할 것이란다.
이 책은 엄마에 대한 추억여행이자 애도의 책이다. 새벽 5시에 전화하면 고시원의 아들이 일찍 깰까 싶어 아침 7시에 전화 한 엄마. 처음으로 방다운 방이 생겼다면서 오피스텔에서 엄마와 함께 잠을 자던 그 날을 떠올린다. 더욱이 대기업에 다니던 아버지가 실직해 5년간 풀 죽어 살 때나 20년간 택시를 몰 때도 여전히 가정의 버팀목으로 산 엄마를 추모한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 유튜브 〈김작가 TV〉를 봤다. 경제 전문가들을 불러 흐름을 소개하는 채널이다. 그가 바로 이 책의 저자였던 거다. 그런 그가 2년간이나 우울증을 앓았다니! 그는 자기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이 총합처럼 밀려드는 게 우울증이라고 생각했다. 의사의 약물치료와 심리상담사의 상담을 받을 때는 좋았지만 결코 나은 게 아니었다.
어떻게 헤쳐나왔을까? 그는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은 제쳐놓고 할 수 있는 것만 골라 처절하게 노력했다. 우울과 불안을 느낄 틈도 없이 호기심과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작가와 강사와 유튜브를 닥치는 대로 했다. 그때 빛이 보이는가 싶었지만 다시금 원점으로 돌아간 경우가 많았다. 그런 일들을 수십 번 겪고서야 지금의 상태까지 회복된 거다. 우울증과 함께 평생 살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조급증은 내려놓고 인내 속에 기다림의 과정을 거친 거였다.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아뢰되 내가 유다 한 성읍으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다윗이 아뢰되 어디로 가리이까 이르시되 헤브론으로 갈지니라”(삼하2:1)
다윗이 블레셋의 ‘시글락’(Ziklag)에서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슬퍼했다. 그 후에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유다 지역 헤브론으로 올라간 상황을 증언하는 말씀이다.
시글락은 블레셋의 남쪽 해안과 유대 내륙 브엘세바 사이에 위치한 곳이다. 여호수아는 그 땅을 시므온 지파에게 정복토록(수15:31) 했지만 사울이 왕이 된 뒤로도 블레셋이 통치하고 있었다. 다윗은 4년간 사울의 칼날을 피해 유대광야를 중심으로 도망치다 블레셋의 가드 왕 아기스에게 들어갔다. 아기스는 다윗의 군사 600명이라면 남쪽 국경을 넘보는 아말렉을 대항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다윗을 받아들였다.
다윗은 그곳 시글락에서 3년 4개월간 머물렀고, 아기스와 함께 이스라엘을 맞설 위기도 처했다. 하지만 블레셋의 장수들이 말렸고, 그 길로 3일 만에 돌아왔다. 그런데 아멜렉 족속이 시글락과 남방 지역을 불태우고 부녀자들과 모든 것을 약탈해갔다. 그때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 그들을 추격해 모든 것들을 되찾았고, 그 전리품을 유대 동족들에게 골고루 나눠줬다(삼상30:26-31).
그 사이 블레셋 군대와 전쟁을 치른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이 길보아 전투에서 죽은 것이었다. 그때 다윗이 시글락에서 그 소식을 듣고 침통했는데, 그 후에 곧장 하나님께서 ‘헤브론’으로 올라가게 한 것이다. 왜 하필 헤브론이었을까?
본래 ‘기럇 아브바’(창23:2)인 헤브론은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 남방에서 첫 제단을 쌓은 곳이다. 그의 아내 사라가 죽었을 때 매장지로 썼다. 그의 조카 롯과 헤어진 후에 요단강 땅을 포기한 체 메마른 땅을 헤매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곳에 살게 했다. 헤브론(חֶבְרוֹן)은 ‘연합’(association) 곧 ‘교제’를 뜻하는 말이다. 고독한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라는 주문이었다.1)
다윗도 마찬가지였다. 시글락에 있던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과 요나단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할 때, 하나님은 다윗에게 헤브론으로 올라가게 했다. 그곳에서 7년 6개월간 유다 지파 왕으로 섬기게 했다(삼하2:11). 그중 2년은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과 내전을 했고, 5년 6개월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던 중 30살 때(삼하5:4)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삼하5:1-3).2)
헤브론은 다윗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헤브론은 다윗에게 복종과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일깨워 준 곳이다. 다윗에게 기다림은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의도된 설계였다.3) 헤브론은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33년간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는 모판과 같았다. 어머니의 품과 같은 그곳에서 다윗은 더 큰 세상과 싸울 실력을 준비한 거였다.
접붙인 다래도 그렇고 김도윤 작가도 마찬가지다. 이 땅의 모든 생명체는 어머니의 살과 피를 먹고 산다.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온갖 세균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어머니의 젖을 빨며 영양분을 공급받고, 어머니의 품속에서 세상과 맞설 힘을 기른다.
다만 인내와 성실이 필요하다. 다래도 긴 기다림 끝에 하나둘 열매를 맺는다. 김도윤도 9년간 7권의 책을 낸 후에야 23만이 구독하는 크리에이터가 됐다. 다윗도 7년간 헤브론의 모판에서 33년간 예루살렘의 터전을 일굴 준비를 했다. 내가 아는 그도 7년간 씨름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맞는 헤브론으로 이끄신다. 그때 조급하지 말고, 어머니의 품으로 삼고 겸손과 성실로 식물을 삼으면 하나님께서 그 소원을 이루실 것이다(시37:3-4).
1)https://firmisrael.org/learn/before-jerusalem-there-was-hebron-king-davids-first-capital/
2)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00328
3)https://bible.org/seriespage/4-waiting-lord-2-samuel-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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