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것도 아닌 일들을 가지고 식탁에서 입씨름이 벌어지곤 했다. 그는 토론할 줄을 몰랐기 때문에, 난 항상 내가 옳다고 생각했다. 또 그가 먹고 말하는 방식에 대해 이것저것을 지적했다.” (p.91)
아니 에르노(Annie Ernaux)의 〈남자의 자리〉에 나오는 내용이다. 배운 게 많고 똑똑했던 딸은 무식한 아버지를 늘 이겨 먹은 것이다. 때론 못난 아버지 때문에 자신의 신분 상승도 늦어졌다고 생각을 했고. 모든 불행을 아버지 탓으로 돌리고, 모든 행복은 자기 능력으로 귀결시킨 것이었다.
그렇듯 이 책은 자식의 아버지로 살아온 한 남자의 삶을 되짚어 준다. 소를 치는 목동에서, 공장 노동자로, 소상인으로, 신분을 높여가는 동안 아버지는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일했다. 그 과정에서 배움의 기회를 얻은 딸은 자신이 동경하는 반열에 올라섰다. 그러는 사이 아버지와 딸의 간격은 점점 멀어만 갔다. 그래도 아버지는 제 딸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한없는 희생으로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나갔다.
그런 아버지 모습은 흡사 〈국제시장〉에서 희생의 아이콘으로 등장하는 아버지와 같다. 아니 그보다 더 막막하고 애잔한 모습이다.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한 딸은 아버지가 죽고 난 뒤에야 깨달았다. 무뚝뚝하고 애정없던 아버지가 그나마 버팀목이 되어 주었기에 지금껏 자신이 세상에 우뚝 설 수 있었노라고.
“압살롬은 도망하여 그술 왕 암미훌의 아들 달매에게로 갔고 다윗은 날마다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슬퍼하니라”(삼하13:37)
다윗이 47세 곧 50대에 이르러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했다.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통해 그 죄악을 정면으로 고발했다. 그때 다윗은 통회자복했다(시51:1-11). 하지만 뉘우치는 것으로 그칠 수 있기에 죄의 후유증을 예고했다. 그 집에 칼이 끊이지 않고, 그 집에 재앙이 임하고, 그가 아내를 빼앗기고, 그 일들이 백주대낮에 일어날 것이라고(삼하12:10-11).
정말로 그런 일들이 일어났다. 다윗의 큰아들 암논이(삼하3:2-5) 이복동생 다말을 강간했다. 왕위 계승자 암논이 다말에게 복종을 요구한 것이었다. 다윗은 그 일을 알고 심히 노했지만(삼하13:21) 징계치 않았다. 그때 다윗의 셋째 아들이자 다말의 친오빠인 압살롬은 마음에 칼을 갈았다. 2년 뒤 에브라임 곁 바알하솔에서 양털을 깎는 일, 자기 생일잔치와 같은 일을 벌여 여러 형제를 초청했다. 그날 종들에게 암논을 죽이도록 했다(삼하13:29). 다윗이 우리아를 죽게 한 것과 흡사했다.
압살롬은 그때 갈릴리 동편 외가(外家), 그술왕 암미훌의 아들 달매에게 도망쳤다. 그곳에서 3년을 보냈는데, 군대 총사령관 요압은 아모스의 고향 드고아에서 한 여인을 불러 왕의 마음을 돌이키고자 했다. 그를 계기로 압살롬이 돌아왔지만 다윗은 가택연금에 처하듯 2년간 아들을 보지 않았다. 그 무렵 요압은 다윗의 마음이 솔로몬에게 향한 줄 알았는지 어떤 중재도 하지 않았다. 결국 압살롬이 요압의 보리밭을 태웠을 때 요압의 주선으로 아버지와 입맞춤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건 형식적이었다. 그로부터 2년 뒤 압살롬은 쿠데타를 일으켰다.1)
이와 같은 일들은 분명코 하나님의 징계였다. 다윗에게 죄의 후유증을 겪게 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다윗은 연약한 모습을 보였다. 암논이 근친상간(레18:9)을 했을 때 공의로운 채찍질(잠23:14,엡6:4)을 가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그것은 3년 만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압살롬을 향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왜 그랬을까? 암논이 장차 왕위계승자라 생각하여 그의 명예와 권위를 지켜주려 함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이 이미 부도덕한 성범죄를 저지른 장본인이라 차마 아들의 죄악에 대해 책망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던 까닭일까? 그것은 살인죄를 저지른 압살롬에 대해서도 동일한 마음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공의를 세우지 못한 일로 훗날 압살롬이 아버지를 죽이겠다며 쿠데타를 일으킨 화근이 되고 말았다.2)
어느 아버지가 자식의 인생길에 성공을 바라지 않겠는가? 그런 자식이 실수할 때 어찌 아버지로서 바른길을 제시해주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아버지는 아버지 대로 가슴앓이할 때가 많다. 자식이 기가 죽을까 봐, 자식이 훗날 후회할까 봐, 자식이 훗날 아버지를 탓하고 원망할까 봐.
자식에게 아버지가 종종 져주는 이유가 그것이다. 자식의 말에 아버지가 꼰대 부리지 않는 이유가 그렇다. 자식 스스로 제 인생길을 헤쳐나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자식들이 때로 아버지를 그림자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이 들어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길러보면 아버지의 자리가 든든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것이 아버지의 자리다.
2)https://freedailybiblestudy.com/september-18th-bible-meditation-for-2-samuel-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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