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최고의 시간 도둑이 TV였다면 21세기는 단연 스마트폰이다. 이년 반의 뉴욕 체류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을 때, 가장 놀랐던 것은 지하철 내부의 모습이었다. 예전에는 무가지라도 읽고 있던 시민들이 이제는 하나같이 스마트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김영하 인사이트 3부작 〈보다 읽다 말하다〉에 나온 이야기다. 어렸을 적 〈보물섬〉에 사로잡혀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살았는데, 지금은 스마트폰에 모든 시간을 뺏아긴 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어디 시간 뿐이랴? 애플과 구글 그리고 아마존 같은 글로벌 IT기업의 주식까지 사게 만들고 있다.
그렇듯 이 책은 저마다 독서를 통해 고유한 내면을 쌓도록 조언한다. 누구든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보고 싶은 관점을 갖고 있지 않으면 보여주는 대로만 바라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인생은 구글에서 빅데이터의 한 점으로만 여기거나 정당에서 표 하나로 여기는 부속물처럼 전락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삼하24:1)
사무엘하서의 마지막 장 말씀 첫 부분이다. 인생 말년의 다윗이 인구 조사를 벌인 일로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데 그 일로 인구 7만 명이 죽는다. 그때 다윗은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 모든 재앙이 멈추게 된다.
과연 다윗은 그때 몇 살쯤 됐을까? 다윗은 47살에 밧세바를 범한 이후 죄의 후유증에 시달렸다. 큰아들 암논이 이복여동생 다말을 범했고, 2년 뒤 압살롬이 큰 형 암논을 죽였다. 그날 압살롬은 외가로 달아났고 3년간 지냈다.
그 무렵 솔로몬이 태어났으니 그때가 다윗의 50세 무렵이었다. 그때 요압 장군이 나서서 압살롬을 예루살렘에 돌아오게 했는데, 다윗은 압살롬을 2년간 가택연금처럼 지내게 했다. 물론 요압의 중재로 다시 다윗을 만나게 됐지만 둘은 형식적인 관계였다. 그때 압살롬은 4년간 백성들 마음을 훔쳤고 급기야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때 다윗의 나이 60세였다. 물론 압살롬의 쿠데타는 삼일천하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자 다윗은 예루살렘 왕궁으로 다시금 돌아왔다. 하지만 그 무렵 3년에 걸쳐 기근을 겪었다(삼하21:1). 여호수아가 맹세한 일을 사울이 깨트린 죄악으로 인해 그런 고통을 겪은 것이었다. 그때 다윗은 그 실마리를 찾아 곧바로 해결했다.
이제 다윗에게 남은 인생은 7년이다. 70세에 다윗이 하나님의 최후 부름을 받은 까닭이다(삼하5:4, 왕상2:11). 바로 그 어간에 다윗이 인구 조사를 벌인 것이었고, 그 일로 이스라엘 백성 7만 명이 죽었다. 무엇 때문에 인생 말년에 다윗이 인구조사에 매달린 걸까?
사실 이스라엘이 인구수를 헤아린 것은 몇 차례 된다. 야곱이 70명 가족과 애굽에 내려갈 때(출1:5), 시내광야 금송아지 사건 때(출32:28), 출애굽한 지 2년 2월 1일 백성이 광야행진을 시작할 때 (민1:19), 그 백성이 40년 행진한 끝에(민26:51) , 여호수아가 땅을 분배할 때(수11:23), 사울이 암몬(삼상11:8)과 아말렉을 칠 때(삼상5:14), 본문의 다윗 왕 때(삼하24:1), 에스라의 포로귀환 때(스2:2),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일에서도(렘33:13, 계14:1).
다만 직접 하나님께서 나서서 수를 헤아리게 한 것은 세 차례였다. 광야행진 출발 전과 40년 행진 끝에, 또 다윗의 인생 말년에. 광야행진 전에 왜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백성의 수를 헤아리게 했을까? 야곱의 70명 가족이 애굽에서 400년동안 하나님께 얼마나 복을 받은 존재였는지 점검토록 했고, 그와 함께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 때까지도 하나님께서 동행하신다는 걸 일깨워주기 위함이었다. 그것은 40년 행진 끝자락에서 모세와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그 수를 세게 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은혜로 이끄신 것처럼 가낭나 땅에 들어가서도 한결같이 인도하실 것을 깨닫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만큼 그들 모두가 별과 같은 소중한 존재임을 알게 한 것이었다. 하나님께 접속된 존재로 계수될 때 그 영혼이 하나님께 연결돼 있고, 개개인의 내면은 서로 연결된 존재라는 것 말이다. 그것은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모든 생명체와 파트너십을 이루는 일부임을 깨닫도록 한 것이다. 인생 말년의 다윗에게 그 수를 헤아리게 한 것도 마찬가지였다.1)
하지만 다윗은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보다 자기 우월감에만 초점을 둔 것이다. 물론 포로기 이후의 기록인 역대기(대상21:1)에는 ‘사탄’이 다윗을 충동한 것으로 나오지만, 누가 격동했든지 간에, 그 책임은 다윗에게 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향해 진노할 때 다윗은 중재하지 못했고, 자신도 그 중심을 놓치고 말았던 것이다. 다만 이때 회개할 수 있는 은혜를 베푼 하나님의 은혜로 다윗은 왕위를 물려받을 솔로몬에게 백성들 앞에 바른 중재자로 살 지침(왕상2:1-12)을 내려줄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코로나 19 백신 접종율이 접종을 시작한 2월 26일 이후 3달 만에 10%를 돌파했다. 북을 치고 춤을 출 정도로 고무적이다. 나도 지난주에 아스트라제네카를 맞았으니 접종율을 높이는 데 힘을 보탠 셈이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최단기간에 최고 접종률을 보일지라도 사람 목숨을 정쟁의 부속물로 여겨서는 안 될 일이다.
국민의힘이 11일 전당대회를 열어 이준석 후보를 새로운 당대표로 선출했다. 36살 청년이 유력 정당 대표에 오른 건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그의 돌풍은 제1야당의 파격적인 혁신의 물꼬를 트게 할 수 있다. 다만 국민여론조사에서 압승을 거뒀어도 당원투표에서는 밀렸다. 젊은 청년의 거침없는 화법이 어떤 인생 경륜으로 이어질지는 지켜볼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다. 그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을 것이라고. 그것은 그 후손들 모두가 하나님과 접속된 존재들이요 서로가 생명체의 파트너십을 이루는 일부임을 잊지 말라는 뜻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빅데이터의 한 점이거나 권력의 부속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든지 우리와 연결된 개개인을 별처럼 존중하며 살아야 한다.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기 때문이다(요일4:20). 그것은 멋진 수사나 거침없는 화법을 넘어 삶의 경륜으로 드러날 때 진정한 감동을 받는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원한 것, 오늘 우리에게 원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1)https://www.chabad.org/kabbalah/article_cdo/aid/1527864/jewish/Counting-with-a-Blessing.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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