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기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공동체가 다시금 나라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쓴 기록이라고 했습니다. 과거 역사를 회상하면서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 또 다짐하는 역사실록 말이죠. 하나님께서 분명히 다윗과 같이 하나님을 섬기고, 다윗을 쫓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걸으면 이스라엘 나라가 영원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지만, 분열왕국 이후에도 그들이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좇아 살지 않고 이방 신상과 우상을 좇아 살 때 북이스라엘은 앗수르 제국에 의해, 남 유다는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을 당했고, 남유다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겪어야 했죠. 물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한 언약, 또 다윗과 한 언약을 잊지 않으시고 페르시아 제국을 들어 바벨론을 정복케하시사, 페르시아의 고레스 대왕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포로 귀환을 명령케 하셨죠.
바로 그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유다 백성들 곧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금 고국으로 돌아와 나라를 재건하고, 무너진 성전을 재건했죠. 그런 과정 속에서 과거 역사를 교훈삼아 새롭게 나라를 세우고, 신앙도 세워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나라를 재건코자 했던 것이죠. 그래서 역대기의 기자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다윗 왕가와 남 유다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더 나아가 성전건축에 초점을 맞추어 기록한 것이죠. 그만큼 북이스라엘의 패역한 왕들의 역사나 우상숭배의 역사는 철저히 부정하고 거부한다는 것,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왕국을 다시금 세워나갈 수 있다는 차원에서 그렇게 편집을 한 것이죠.
그렇다면 그와 같은 이스라엘의 역사와 우리 자신의 모습은 별개이겠는가? 결코 그렇지 않죠. 우리들도 때로 하나님 앞에 실수하고 죄를 범하는 연약한 인간이지 않습니까? 빛 되신 주님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의 인생길을 비춰주지 않으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는 죄의 구렁텅이에 빠질 수밖에 없죠. 그 정도로 하나님 앞에 실패와 과오로 점철된 역사가 우리의 모습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런 우리를 향해 죄를 벌하시기도 하고 때론 매를 들기도 하죠. 다윗도 밧세바를 범했을 때 수많은 어려움과 환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윗을 향한 저주가 아니라, 바로 세우고자 하신 징계죠. 징계는 자식 편에서는 고통스럽지만 부모 편에서는 자식을 바로 세우려는 사랑이죠. 그만큼 다윗도 그렇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렇고, 그 죄의 징계와 바벨론에 포로생활 70년을 통해 하나님의 친 백성으로 거듭나게 하셨던 것이죠.
그래서 참된 신자에게 복된 것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그 특권이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어떤 목적과 소원성취를 이루는 것도 중요할 수 있지만, 그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언제 어디서든지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자녀가 된 것, 그것보다 더 큰 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아무리 아버지의 재산 절반을 가지고 타지에 나가 방탕한 삶을 살았어도 그 탕자가 아버지 품에 돌아오기만 넉넉히 받아주는 아버지가 있다는 것, 그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러한 관점에서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을 조명해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지난번 읽은 말씀과 연잇고 있는 말씀입니다. 어제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궤 곧 법궤를 예루살렘 성읍에 모셔 온 이후에, 블레셋 지역과 모압 지역과 아람과 다메섹과 소바 지역까지 모두 정복했습니다. 그리고 나라의 안정을 꾀하기 위해 국방을 담당할 군대사령관과 나라 살림을 책임질 행정장관, 성소와 제사를 담당할 제사장과 율법을 보전하고 가르칠 서기관들을 세웠죠.
바로 그와 같은 연장선상에서 오늘 본문 말씀이 진행되고 있는 것인데, 오늘 읽은 말씀도 다윗이 암몬과 아람 지역을 쳐서 제압한 장면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이른바 18장에서 다윗이 이스라엘의 남서쪽에 위치한 블레셋 지역과 요단강 남동쪽에 위치한 모압 지역과 이스라엘의 북쪽에 위치한 아람과 다메섹과 소바 지역을 점령했죠. 오늘 읽은 19장에서는 다윗이 암몬 지역 곧 이스라엘의 동쪽 지역이자 모압의 북쪽 지역에 해당하는 지역은 물론 아람 지역 곧 이스라엘의 북쪽 지역으로 다메섹과 소바 지역의 인근 지역을 가리키는데 그 북쪽지역까지 모두 정복한 사실을 밝혀주고 있죠. 이제 20장에 넘어가면 다윗이 암몬의 수도 성읍인 랍바를 함락시키고 또 블레셋까지 항복시키는 장면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22장에서 성전건축에 관한 준비사항을 다루게 되죠.
이런 모습만 보면 정말로 다윗이 용맹한 장군으로서, 모든 초점을 전쟁의 승리에만 염두에 둔 결과지상주의, 일중독자처럼 생각할 수 있죠. 그러나 오늘 본문 5절은 결코 그렇지 않는 모습입니다. 암몬 왕 나하스가 죽고, 아들 하눈이 대신 왕이 되었을 때 다윗이 이전에 선왕이 베푼 은혜를 기억하여 조문객을 보냈는데, 그 하눈의 신하들이 다윗의 조문객들을 염탐꾼이라고 여긴 채 그들의 볼기짝에 구멍을 내고 수염까지 잘러버리는 치욕을 보였죠. 그때 다윗이 보여준 행동이 본문 5절이죠.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가서 그 사람들이 다한 일을 말하니라 그 사람들이 심히 부끄러워하므로 다윗이 그들을 맞으러 보내 왕이 이르기를 너희는 수염이 자라기까지 여리고에 머물다가 돌아오라 하니라.” 다윗은 그 수치를 당한 조문객들, 곧 자기 부하 장수들에게 여리고에서 수염이 자랄 때까지 쉬었다가 돌아오라고 전갈을 보낸 것입니다. 만약 결과지상주의자요, 일중독주의자였다면 결코 그런 대우를 생각하지는 않았겠죠. 그만큼 전쟁의 승리를 중요하게 여긴 다윗이었지만, 사람에 대한 배려를 갖고 있던 다윗으로, 결과나 일중심보다도 그 과정을 중히 했던 다윗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윗은 군대장관 요압을 필두로 모든 병사들을 소집해 암몬 족속들과 전면전을 치르게 하죠. 그 소식을 들은 암몬 왕 하눈도 전투태세를 갖추는데, 그는 6절 말씀처럼 은 천 달란트를 들여 그들의 북쪽에 위치한 아람나라의 용병들을 사오죠. 그만큼 대대적인 군사를 모집해 이스라엘과맞서는 장면입니다.
그때 요압 장군이 어떤 자세를 취하는가? 본문 13절에 “너는 힘을 내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힘을 내자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군대장관이자 총사령관인 요압은 암몬의 연합군과 맞서 싸울대 부하 장수들에게 그런 주문을 요구한 것이죠. 우리가 저들을 치고자 한 것은 우리의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읍 곧 하나님의 나라를 지키고 승리하기 위함이라는 것 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밀알이 되고자 하는 자세를 보인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의 도우심 속에서, 아람 군대가 패하게 되고, 이제 다윗이 요단강을 건너 그 아람 군대를 물리친 장면을 본문 17절에서 밝혀줍니다. 그리고 18절에서는 다윗이 죽인 아람의 병사들 곧 병거 7천 대의 군사, 보병 4만 명을 죽이고, 그들의 지휘관 소박까지 죽인 모습이죠. 더 나아가 부하 장수들이 다윗에게 나와 화친을 청하고, 이제부터는 암몬 자손을 돕지 않겠다는 아람 사람의 약조까지 받아낸 모습이죠.
오늘 이와 같은 다윗이 부하들의 치욕을 보고 배려하는 과정중심의 모습을 보일 수 있었던 것, 다윗의 군대장관인 요압이 그 부하들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지키는 과정으로 한 알의 밀알이 되고자 하는 자세를 겸비할 수 있었던 것, 그런 과정을 통해 다윗이 블레셋의 전투에 이어 오늘 암몬 자손의 전투에서도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지난번 살펴본 말씀처럼 하나님의 법궤를 온전히 메고, 그 언약의 말씀을 좇아 살기로 다짐한 ‘그 후’입니다. 그래서 본문 1절에서 “그 후에”라는 말씀을 강조한 것이죠. 그만큼 허물어진 이스라엘 나라를 진정으로 다시 세울 수 있는 길은 오직 다윗처럼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기반으로 할 때 온전하게 세울 수 있다는 사실이죠. 그렇기에 저와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말씀에 신실한 기반을 둘 때 가정과 자녀들과 직장과 사업장과 교회도 하나님께서 굳건하게 견고하게 세워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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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주님.
연약한 저희들 죄성 때문에 때로 죄의 유혹에 넘어가 실수하고 허물을 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들을 친자녀로 삼아주신 아버지께서 매를 들어서라도 바르게 세워주시는 사랑을 깨닫습니다.
연약한 다윗도 그런 과정을 통해 바로 세워주시고,
죄악에 빠진 이스라엘 나라도 포로생활을 통해 다시금 바로 세워주셨고,
이제 허물어진 나라와 각 가정들도 다시금 세워가게 하셨습니다.
그 초석을 오직 말씀 위에 기반을 두게 하셨습니다.
오늘 저희들의 교회도, 가정도, 자녀들도, 일터와 사업장도
오직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 위에 기반을 둘 때
그런 은총과 능력을 친히 회복시켜 주시고 바르고 굳게 세워주실 줄 믿습니다.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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