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오벧에돔에 있는 법궤를 자기 성의 붙박이 장막, 곧 성막에 모시고자 했죠. 그래서 새 수레에 법궤를 끌고 오고자 했던 일의 실패를 거울삼아, 이번엔 법궤를 메고 오려 했죠. 대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을 통해 모든 레위인들을 불러 모아 법궤를 어깨에 짊어지고 오게 했고, 제금과 비파와 수금과 나팔까지 불면서 찬양을 함께 부르며 모셔왔죠. 그때 다윗은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속살이 드러나는 것도 모른 채 춤을 추었죠.
오늘 읽은 본문은 그 법궤를 장막 곧 붙박이 성막에 모신 이후에 행한 일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 1-3절에 “하나님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그것을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에 두고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께 드리니라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 드리기를 마치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고 이스라엘 무리 중 남녀를 막론하고 각 사람에게 떡 한 덩이와 야자열매로 만든 과자와 건포도로 만든 과자 하나씩을 나누어 주었더라.” 다윗은 그 법궤를 붙박이 성막에 모신 후에,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의 제사를 드렸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들을 축복하고, 그 백성들에게 떡과 과자와 건포도 과자를 하나씩 주었다고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4-6절이 이어지고 있는데, 이 말씀은 그 법궤 앞에서 찬양을 담당했던 찬양대를 꾸린 내용입니다. 어제도 살펴봤지만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으로 하여금 그 찬양대를 주관하게 했죠. 그들 중에 일부는 제금을 치고, 일부는 비파를 타고, 일부는 수금을 타고, 또 일부는 나팔을 불었죠. 그 음악 소리에 맞춰 아삽과 그 형제들이 찬양을 불렀는데, 8-36절까지가 찬양대원들이 부른 찬송가의 가사 내용이죠. 특별히 36절은 찬양대원들의 찬양이 끝나자, 백성들이 ‘아멘’하고 여호와를 찬양했다, 곧 화답했다고 밝혀주는 말씀입니다. 37-42절 말씀은 그 법궤의 문을 지키는 자들, 찬양대를 구성하여 찬양을 담당한 자들을 각기 밝혀줍니다. 그리고 마지막 43절은 이렇게 끝을 맺고 있죠. “이에 뭇 백성은 각각 그 집으로 돌아가고 다윗도 자기 집을 위하여 축복하려고 돌아갔더라.”하고 말입니다.
본문의 내용을 깊이 살펴보면 이 말씀은 단순한 행적의 기록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적어도 다윗이 법궤를 모셔오고, 첫 번째로 제사를 드린 그 형식을 갖춘 내용이죠.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 당시 번제와 화목제, 곧 제사를 드릴 때 어떤 형식과 내용을 갖춰 제사를 드렸는지, 또 어떤 찬양을 드렸는지 알 수 있는 내용이죠. 그리고 찬양이 끝날 때 온 백성들이 아멘으로 화답했고, 그리고 이제 모든 제사가 끝나자, 각기 백성들이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는 말씀이죠.
그렇다면 오늘 이 본문을 통해 우리가 유심히 들여다봐야 할 부분이 무엇이겠습니까? 비록 다윗이 법궤를 성막에 모셔온 이후에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긴 했지만, 이 제사가 실은 감사제의 형식을 갖춘 제사라는 점이죠. 번제란 양이나 염소 또는 소들 중에서 흠없는 수컷을 완전히 불태워 드리는 제사로, 일종의 감사가 담겨 있는 제사죠. 화목제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에 대한 감사제사의 성격을 지닌 제사죠. 그렇듯 다윗이 지금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있는 그 제사의 형식은 일종의 감사제입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무사히 모셔 온 데 대한 감사의 제사를 실제로 드린 것이죠. 더욱이 이제부터 자신이 세우고자 하는 왕국, 곧 하나님나라의 토대를 법궤를 통해 세워나갈 수 있게 되었으니, 더더욱 감사한 것이죠.
오늘 우리가 이 새벽에 나와 예배를 드리며 간구하는 자세 역시 다윗의 마음과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에 주님 앞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간구하는 자세, 이것은 실은 번제와 화목제가 결합된 감사의 제사라는 점이죠.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감사의 고백이 우리의 심령 속에 담겨 있어야 하는가? 그 내용은 본문 속에 담겨 있는 찬양대원들의 찬양의 고백 속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은 먼저 ‘베푸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본문 2-3절에 “백성들을 축복하고 떡 한 덩이와 야자열매로 만든 과자와 건포도로 만든 과자 하나씩을 나누어 주었습니다”하고 밝혀주죠.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면서 백성들에게 떡과 과자를 나누어줬습니다. 그만큼 감사하며 사는 사람은 이웃과 함께 나누기를 좋아하는 삶을 사는 자라는 점이죠. 그렇다고 우리가 매일매일 떡과 과자를 이웃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하죠. 그러나 그것보다 더 의미있는 나눔의 삶은 충분히 할 수 있죠. 출근길에 교통정체로 차가 밀려들 때 살짝 양보해 주는 것, 또 비가 오는 날에는 보행자자 잘 갈 수 있도록 물을 튀기지 않도록 천천히 운전하는 것, 건널목에 운전자가 있으면 잠깐 기다려주는 것, 또 얼마 전 주일에 말씀드렸듯이 외로운 이들에게 차 한 잔 나누는 삶의 헌금 역시 이웃을 향한 감사의 삶으로 충분하죠.
두 번째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본문 8-10절에 “너희는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행하신 일을 만민 중에 알릴지어다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고 그의 모든 기사를 전할지어다 그의 성호를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마다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그리고 12절에서도 “그의 종 이스라엘의 후손 곧 택하신 야곱의 자손 너희는 그의 행하신 기사와 그의 이적과 그의 입의 법도를 기억할지어다” 과연 하나님의 어떤 점을 알리라고 하는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죠. 늙도록 자식 하나 없던 아브라함에게 이삭과 그 손자 야곱을 주시고, 궁극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만들어 주신 것, 더욱이 강대국들의 사이에서 그 영화로운 다윗의 왕조를 일으켜 세우신 것, 그렇게 이스라엘을 세워주신 그 모든 역사를 알리라는 것이죠. 그것을 오늘날에 대입하자면 어떻게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오늘의 나를 나 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나의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죠. 아무리 내가 신앙인이라고 외쳐도 신앙인답게 살지 못한다면 누구도 나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고, 반대로 내가 무수한 하나님의 능력을 말하지 않아도 내 삶이 진정으로 변화된 삶을 보이면 그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믿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세 번째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은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하는 사람입니다. 본문 19절에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제물을 들고 그 앞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여기에서 제물 곧 물질이 나오는데, 물질과 관련하여 얼마 전 주일날 말씀을 드린 바가 있죠. 우리가 십일조를, 감사헌금을, 주일예물을 드리는 이유가 있다고 말이죠. 인간이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돈을 사랑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에게 속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졌음을 고백하는 믿음의 증표로 드리는 행위라고 말이죠.
네 번째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은 이 땅에 심판이 있음을 믿는 사람입니다. 30-33절에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지어다 세계가 굳게 서고 흔들리지 아니하는도다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며 모든 나라 중에서는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통치하신다 할지로다 바다와 거기 충만한 것이 외치며 밭과 그 가운데 모든 것은 즐거워할지로다 그리 할 때에 숲 속의 나무들이 여호와 앞에서 즐거이 노래하리니 주께서 땅을 심판하러 오실 것임이로다” 시험을 볼 때 공부한 학생은 두려울 게 없지만, 공부하지 않은 학생에게는 두렵기만 하죠. 주님께서 심판하시러 오시는 그 날 신실한 주님의 자녀들은 두려울 게 없죠. 상급을 받는 날이기 때문에 말이죠. 그러나 말씀대로 살지 않는 자들은, 주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그 날이 두렵기만 할 것입니다.
마지막 여섯 번째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본문 34절에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신 이유는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함이죠. 그런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이스라엘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라, 온 인류를 향해 있죠. 그렇지 않았던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오늘 우리에게까지 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마음과 자세를 갖추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곧 하나님을 향해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자들의 삶입니다. 오늘도 그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는 하루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우리가 무엇이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통해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해주셨습니까?
그 긍휼을 생각할 때마다, 저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앞에 감사할 수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주님을 뵈옵는 그날까지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게 하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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