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법궤를 자기 성읍으로 모신 이후에, 가는 곳마다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승리의 주된 배경은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이기도록 해 주셨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스라엘의 서남쪽 블레셋도, 이스라엘의 동남쪽 모압도, 그 모압의 위쪽 암몬도, 그리고 이스라엘의 북쪽 다메섹과 아람 지역들까지도 차례로 정복할 수 있었죠. 물론 그 일은 다윗이 혼자 한 게 아니라 군대장관 요압과 더불어 수많은 병사들이 함께 그 나라를 세우고자 자기 생명을 바친 결과였죠. 그때의 나라란, 단순히 이스라엘 나라만이 아니었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가 구현될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스라엘 땅에 세운 것이었죠. 그만큼 다윗 왕과 군대장관 요압 그리고 온 병사들이 참전한 전쟁이 곧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싸움이었죠.
문제는 하나님의 은총 속에서 전쟁에서 승리하게 됐는데, 다윗이 점점 더 강한 나라가 되자 교만했죠. 그로 인해 전쟁에 나설 군인들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헤아려 보려했죠. 자기 능력을 과시하고픈 마음이었죠. 그때 요압 장군도 말렸지만, 계속 재촉하는 다윗의 뜻을 거절할 수 없어, 그 군사의 수를 파악했는데, 그 수가 북이스라엘서만 110만 명, 남 유다의 군인들 수가 47만 명, 합계 157만이었죠. 여자와 어린이를 포함한다면 당시 이스라엘 전체 인구는 600만이 훨씬 넘는 숫자로서, 오늘날의 580만에 해당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수보다 훨씬 많았으니, 얼마나 강대국인지 알 수 있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자기 과시에 빠져 군인들의 수를 헤아릴 때, 그 일로 3일간 전염병으로 백성들을 쳤고 7만명이 죽어났죠. 하나님께서 그렇게 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의 수 곧 군인들의 수를 자랑하지 말고, 그것으로 과시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삶을 살라는 것이었죠. 그래서 다윗이 그 일로 인해 자기 죄악을 깨닫고, 백성들에게 그 죄값을 묻지 말고, 자신에게 그 죄값을 물으라고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드렸죠. 그때 바로 하나님께서 갓 선지자를 통해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올라가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도록 했는데, 다윗은 직접 자기가 그 타작마당도 돈을 주고 샀고, 번제와 화목제물과 소제물과 장작까지도 직접 자기 돈을 주고 사서,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물을 드렸죠. 그러자 하나님께서 하늘의 불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이후의 사건을 보여주고 있는 내용입니다. 이른바 바로 그 곳의 타작마당에 성전이 들어서도록 한 것, 그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다윗이 무엇을 얼마만큼 준비했는지, 또 준비한 이후에 그 아들 솔로몬을 불러 어떻게 성전을 건축하게 하는지, 그 내용이 기록된 말씀입니다.
본문 1절에 “다윗이 이르되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이요 이는 이스라엘의 번제단이라 하였더라.” 다윗이 그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회개의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하나님께 드렸을 때 하늘로부터 불이 임하자, 그때 고백한 말씀입니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이라.’하고 말이죠. 이 말은 마치 야곱이 형 에서의 낯을 피해 밧단 아람으로 도망치는 과정에 벧엘에서 돌베개를 하고 잘 때 하늘의 사닥다리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고, 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다가와 나는 ‘네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아버지 야곱의 하나님이로다. 내가 너와 네 자손을 땅의 티끌같이 많게 할 것이고, 내가 너를 통해 내 일을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할 것이라.’ 하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런 하나님을 만났을 때 그가 고백한 내용과 똑같죠. 이른바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창28:17) 야곱도 그때 그곳을 벧엘, 하나님 집이라 칭하였고, 다윗도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하나님의 응답, 하나님의 현현을 고백하고, 이곳이 바로 ‘하나님의 성전이라’하고 고백하는 것과 똑같은 모습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제 다윗은 하나님의 응답, 하나님의 현현이 임한 그곳에 성전을 건축할 계획을 세우죠. 그래서 성전 건축에 관한 모든 재료들을 준비하게 되죠. 그것이 본문 2-4절에 나와 있는 말씀이죠. 성전 못에 쓸 철을 ‘많이 준비하고’, ‘무게를 달 수 없을만큼 심히 많은 놋을 준비하고’, ‘백향목을 무수히 준비하여’ 시돈과 두로 사람이 그 백향목을 수운하여 오게 했다고 밝혀줍니다. 물론 이 내용은 사무엘서나 열왕기서에는 기록돼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오늘 본문에서는 다윗이 얼마나 많은 재료를 준비했는지 ‘심히 많은’, ‘무게를 달 수 없을 만큼’, ‘무수히’, ‘많이’라는 표현이 여러번 기록돼 있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진정어린 준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밝혀주고자 함인 것입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와 같은 철과 놋과 백향목이 뭔가 넉넉하고 평화로울 때, 다시 말해 뭔가 잘 나갈 때 준비한 것들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14절이 이렇습니다.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금 십만 달란트와 은 백만 달란트와 놋과 철을 그 무게를 달 수 없을 만큼 심히 많이 준비하였고 또 재목과 돌을 준비하였으나 너는 더할 것이며.” 이른바 환란 중에 있을 때에, 전쟁을 치르는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성전을 위한 건축 재료들을 준비했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곧 금 십만 달란트, 은 백만 달란트, 놋과 철을 ‘무게를 달 수 없을 만큼 심히 많이’ 준비했고, ‘재목과 돌까지도 그때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왜 이런 말씀을 밝혀놓고 있는 것일까요? 본문 6절에 보면 다윗이 그 아들 솔로몬을 불러 이야기하는 고백이 나옵니다. 내가 성전 건축에 관한 모든 재료들을 다 준비해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내가 피를 많이 흘린 것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게 하신 것 같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제 주변 모든 대적들로 하여금 다 제압하게 하고 평안한 시대를 맞이하게 하셨고, 또 너를 통해 성전을 건축하게 하신다, 그러니 너는 지금껏 내가 준비한 바탕에 위해 더욱 열심히 준비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전을 짓도록 해라, 하고 당부한 말씀이 12절까지 나온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왜 역대기 기자는 다윗이 그 재료들을 환란 가운데서 준비했다고, 다윗이 힘든 여정 속에서, 더 구체적으로 말해 전쟁에서 거둔 그 전리품들을 모두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바쳤다고, 기록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이른바 그것은 다윗이 ‘피를 흘렸다는 것’과 관련돼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비록 전쟁터에서 심히 많은 피를 흘렸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결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 게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구속사적인 의미를 지닌 것임을 일깨워주기 위함입니다. 다윗이 그 전쟁들을 치르면서 흘린 피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자 한 것으로서, 그때 피흘림이 없으면, 결코 세울 수 없는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바꿔 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림을 통해 인류가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 그 하나님의 나라를 일구는 것과 똑같은 이치죠. 바로 그런 구속사적인 피흘림이 있었기에 그 이스라엘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었고, 그 피흘림을 통해 거둔 전리품들을 통해 성전 건축에 관한 재료들을 준비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리고 바로 그 바탕, 다윗이 모든 피흘림을 통해 대적들을 다 정리하고, 평안한 시대의 바탕을 마련해 놓은 다음에, 이제 그 아들 솔로몬, 평화라는 샬롬을 뜻하는 그 아들이 평안의 시대에 그 성전을 짓도록 했던 것이죠. 그만큼 다윗의 피흘림은 결코 단순한 전쟁의 승리가 아니라, 구속사적인 피흘림이요, 그런 피흘림을 통해 평화의 발판을 마련했고, 또 성전건축에 관한 모든 재료들을 준비할 수 있었다는 것이죠.
그런 다윗이었기에, 아들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을 명하면서도 성전을 짓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밝히 말하고 있는 것이죠.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자가 되라고, 본문 13절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너의 길에 형통하게 할 것이라고 당부하고 있죠.
아무쪼록 오늘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다윗은 다윗대로 최선을 다해 성전 재료와 토대를 마련했고, 솔로몬은 솔로몬대로 성전 건축을 이뤄나갔다는 점이죠. 그렇기에 우리도 우리 각자에게 부여하신 하나님의 사명에 최선을 다하는 길이 바로 그것입니다. 오늘도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의 승리와 영광으로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자신의 명예와 자랑을 위해 최고가 되려는 욕심의 시대 속에서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삶을 선택하는 지혜의 사람이 되게 하시옵소서.
각자 받은 사명도 달란트도 다 다르지만,
그 모든 초점을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가는데 전심을 쏟게 하시고,
그때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시는 능력과 영광을 맛보게 하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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