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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묵상LifeBible

미켈란젤로의 자화상 다윗의 자화상

by 똑똑이채널 2021.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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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피렌체 피에타' https://www.wga.hu/frames-e.html?/html/m/michelan/1sculptu/pieta/pieta.html 

 

1499년 미켈란젤로는 피에타를 조각했다. 축 늘어진 예수의 시신과 슬픔에 잠긴 성모 마리아의 모습이다. 그의 나이 24살 때 일이다. 1504년 그의 나이 29살 때는 5.2m다비드상을 조각했다. 151236살엔 4년에 걸쳐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완성했다. 길이40m 14m 천장에 구약성경의 300여 명의 인물 군상을 담았다.

 

1536년 교황 바오로 3세는 미켈란젤로에게 시스티나 성당의 벽화를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25년 만에 그가 성당에 돌아온 셈이다. 그때 높이13.7m 12m의 벽에 최후의 심판을 그렸다. 재림한 예수, 구원받고 천국에 올라간 이들, 지옥에 떨어진 이들까지 300여 명의 인물 군상을 담았다.

 

154675살의 미켈란젤로는 바오로 3세로부터 새로 증축된 파올리나 성당의 벽화를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는 4년에 걸쳐 십자가에 못 박힌 베드로와 기독교로 개종한 사울의 모습을 그렸다. 80살을 바라보는 말년의 미켈란젤로는 최후의 조각상을 완성한다. 24세에 조각한 피에타와 구분하기 위해 피렌체 피에타로 불리는 조각상이다.

 

미켈란젤로는 그런 그림과 조각상에 자화상을 새겨넣었다. 시스티나 성당 벽화에는 산 채로 참수돼 껍질 채 축 늘어진 바돌로매의 모습 속에, 피올리나의 성당 벽화에는 베드로가 못 박히는 광경을 지켜보는 군중의 한 사람 모습 속에, ‘피렌체 피에타로 불리는 조각상에는 맨 뒤에서 예수님의 시신을 떠받치는 니고데모의 모습 속에 자기 자화상을 새겼던 것이다.

 

정중원의  〈 얼굴을 그리다 〉

 

 

그런 이야기는 초상화가 정중원의 에세이집 얼굴을 그리다에 잘 나와 있다. 정중원은 그의 작품 중에서도 피렌체 피에타를 가장 선명하게 기억한다고 한다. 이유가 뭘까? 규모로는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를, 아름다움으로는 다비드를 따라갈 수 없지만, ‘피렌체 피에타의 니고데모 속에는 그가 겪었을 고뇌와 회한(悔恨)이 조각상 표면 위에 꿈틀거리는 것 같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밤에 하나님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내가 거할 집을 건축하지 말라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올라오게 한 날부터 오늘까지 집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이 장막과 저 장막에 있으며 이 성막과 저 성막에 있었나니 네 생명의 연한이 차서 네가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면 내가 네 뒤에 네 씨 곧 네 아들 중 하나를 세우고 그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니 그는 나를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역대상17:1-12)

 

다윗이 법궤를 예루살렘 장막에 모신 후 성전을 짓고 싶어 할 때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해 예언한 말씀이다. 사무엘하서와 흡사한 내용이다. 다윗이 여부스 성읍을 점령하고 예루살렘으로 명명하여 왕도를 천도한 일(삼하5:1-10,대상11:4-9), 그 후 왕궁을 건축한 일(삼하5:11-12,대상14:1-2), 그 뒤 법궤를 예루살렘 장막에 모신 일(삼하6,대상15-16) 등. 그 무렵 법궤를 모실 성전을 건축코자 하는데 하나님께서 막으면서 다윗의 언약을 약속하셨다(삼하7, 대상17). 그때 다윗은 성전건축을 못하지만 아들이 태어나면 성전을 건축할 거라는 예언을 듣게 된 것이다.

 

거기까지는 역대상이나 사무엘하서가 똑같다. 하지만 다윗이 밧세바를 간음한 죄’(삼하12)나 남편을 죽게 한 살인죄’, 아들 암논이 이복동생 다말을 강간한 죄’, 압살롬이 이복형 암논을 죽인 살인죄’, 압살롬이 쿠데타를 일으켜 왕궁을 찬탈하고 다윗의 후궁들을 범한 그런 연쇄적인 죄악들(삼하13-15) 역대상에 빠져 있다. 그저 장성한 솔로몬에게 성전건축을 당부할 때 하나님께서 자신을 막은 이유, 네가 내 앞에서 피를 땅에 피를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대상22:8) 하는 그 말씀만 넣고 있다.

 

그런 피흘림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윗의 성전건축을 막으셨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하지만 다윗의 피흘린 고백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결집시키고자 한 의도에서 삽입한 내용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정말로 그것 때문에 막으셨다면 이스라엘이 패망한 죄악을 드러내는 사무엘하서에 더더욱 기록했을 것이니 말이다.

 

과연 하나님께서 다윗의 성전건축을 막으신 이유가 뭘까? 솔로몬이 태어나기 전에 주신 다윗의 언약에는 없던 다윗의 피흘린 고백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그것은 다윗의 밧세바 간음사건을 두고 말한 것이다.1) 그로부터 연쇄적인 죄악의 고리들이 이어져 피를 많이 흘렸으니 말이다. 그것은 이방 세계에 대한 피흘림이 아니라 다윗 내부의 피흘림에 관한 죄의 고백인 셈이다. 모세의 율법에는 간음죄를 살인죄처럼 처벌토록 하고(20:10), 에스겔은 간음과 피 묻은 손을 동일시하고(23:37,45), 예레미야도 하나님께서 성전을 파괴한 이유 중 하나로 예루살렘의 선지자들이 간음하고(23:14) 백성들도 간음하며 산 까닭(5:1-17)이라고 밝힌다.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임재를 모시는 성전이 구별되길 원하신 것이었다.

 

성경학자들은 다윗과 솔로몬의 관계를 모세와 여호수아의 관계로 생각한다. 모세가 불순종한 죄악으로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가게 했는데 여호수아가 그걸 계승해 완수했듯이 다윗도 간음죄로 성전을 짓지 못하게 했을 때 솔로몬이 그걸 완수했다는 게 그것이다. 만약 모세나 다윗이 자기 고집대로 하고자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나님처럼 신격화되었을지 모른다. 그걸 내다봤기에 다윗은 모세처럼 하나님께서 금하도록 하신 일에 온전히 순종하여 받든 것이다. 더욱이 솔로몬이 그 과업을 완수하도록 성전 설계도와 재료들까지 모두 준비해 준 것이었다.

 

사실 성전의 설계도는 다윗이 하나님께 받은 것이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성막설계도를 받은 것처럼 말이다. 만약 그 시절에 벽화를 그려 넣을 수 있다면 어떻게 했을까? 미켈란젤로가 자화상을 새겨 넣은 것처럼 다윗도 그렇게 했을까? 다윗은 그마저도 신격화될 수 있기에 멈춰섰을 것이다. 물론 자신의 자화상은 아니더라도 자신을 긍휼히 여겨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새기고픈 마음은 간절했을 것이다. 다윗이 솔로몬을 통해 성전의 두 기둥 이름을 야긴보아스’(대하3:17)로 명명하여 새기게 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것은 미켈란젤로의 고뇌와 회한이 담긴 자화상과는 달리 하나님의 긍휼과 감사에 대한 자화상임에 틀림 없다.

 

성전의 두 기둥 '야긴과 보아스'

 

 

아무리 선한 일이라도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지 물어봐야 한다. 그것이 없이 사람들의 재촉 때문에 마지못해 끌려가듯이 하는 일이라면 나중에 회한만 남기 마련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일이라도 하나님께서 멈추라고 하신다면 기꺼이 순종해야 한다. 나머지 여백은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통해 완성해 가시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행한 그 일에 멋진 자화상을 그려놓고자 할 때가 있다. 그때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의 이름값을 새기기보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긍휼과 감사의 고백을 새겨넣으면 충분할 것이다. 다윗도 연약하고 형편없는 자기 자신을 건져주시고 그의 후대에 영원한 메시아가 오실 것을 약속해 주시는 그 언약을 통해 야긴과 보아스에 자기 자화상을 새겨넣었으니 말이다. 

 

 

 

 

 

1)https://drbarrick.org/files/papers/other/David_and_the_Temple.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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