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표 목사의 〈나는 죽어도 행복합니다〉
이중표 목사는 어린 시절은 가난해서 배앓이를 앓았다.
소년기는 폐결핵을 앓았다.
청년기는 담낭염을 앓았다.
중년기는 담석증 등을 앓았다.
이 책은 70을 바라보는 말년에 담관암 수술이라는 네 번째 수술을 받은 후에 쓴 책이다.
10시간이 넘는 수술대 위에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진정으로 죽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태어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준비하며 살아야 할지 깨달았다.
이 책에 좋은 예화들을 인용한 게 있어서 옮겨 적는다.
1. 미국에서 한 10대 소년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밤중에 양 손에 보따리를 들고 있는 소년을 향해 “잠깐 멈추시오”라고 말했다.
그런데 소년은 냅다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밤길을 질주 하던 소년은 얼마 못 가서 경찰에 붙잡히고 말았다.
평소 육상 선수처럼 빠르게 달리던 소년이 경찰에게 힘없이 붙잡힌 데는 그 이유가 있었다.
소년의 바지가 자꾸 흘러내려 더 이상 도망을 갈 수 없었던 것이다.
소년의 주머니에서는 훔친 동전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동전 들로 인해 소년의 바지가 계속 흘러내렸던 것이다.
주머니에 가득 들어있는 동전을 모두 세어보니 100달러도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인생이라는 이름의 주머니에 무언가를 넣고 질주한다.
그것이 가치있는 것인지, 아니면 동전처럼 무겁기만 한 것 인지는 생각하지도 않고 무조건 달린다.
이것이 바로 무지한 인간이 저지르는 오류다.
하나님을 모르는 인생, 영생의 소망이 없는 죽음은 얼마나 비극적인가.
별세의 소망이 없는 인생은 얼마나 힘겨운가.
우리는 정말 소중한 것을 망각한 채,
무가치한 것에 너무 많은 열정을 쏟아붓는다.
마치 양 주머니에 동전을 가득 넣고 달리는 어리석 은 소년처럼.
2. 히스기야는 죽음의 병 앞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생명을 연장했다.
그러나 생명을 연장받은 다음, 그 인생은 연장받은 목적을 성취하지 못했다(대하 32:26.
그는 교만해졌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지 못했다.
병이 나은 후 2년 만에 얻은 아들의 양육에 실패했다.
왕위를 이을 후사를 얻은 마음에 들떠 그 아들을 너무 애지중지했다.
그러다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망각했다.
그는 자식에게 신앙의 바른 모범을 보이지 못했다.
아들 므낫세는 하나님 앞에 좋은 왕이 될 수 없었다.
므낫세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자, 그는 아버지가 폐했던 산당을 다시 세웠다.
그리고 백성들을 우상숭배의 길로 오도하였다(대하33:1~3)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예수와 함께 사는 별세의 은혜가 없는 것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니요,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예수와 함께 죽은 자만이 예수와 함께 살 수 있는 것이다.
3. 한 목회자가 절망에 빠졌다.
갑자기 도시에 불어닥친 전염병으로 인해 사람들은 속절없이 죽어나갔다.
교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떻게 손을 써 볼 방도도 없었다.
그는 하나님께 이 비 적 상황을 종결시켜 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속 침묵을 지키실 뿐이었다.
어느 날, 목회자는 한 교인의 장례식을 집례하고 돌아와 쓰러졌다.
인간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한계상황을 절감한 것이다.
그때 이 사람은 환상을 보았다.
하늘 문이 열리고 광채가 나면서 예수님이 나타나셨다.
예수님은 못 박힌 손을 그에게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피에 붉게 젖은 손바닥을 펼쳐 보이시며 슬픈 표정을 짓고 계셨다.
이 목회자는 문득 잠에서 깨어났다.
그의 머리에는 온통 예수님의 피 묻은 손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그는 수없이 중얼거렸다.
“예수의 피, 예수의 피….”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예수의 피’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너무 감격해서 펜을 들고 정신없이 시를 쓰기 시작했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나를 정케 하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이 가사에 곡을 붙인 것이 바로 찬송가 184장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이다.
이 목회자가 바로 미국 뉴욕 브루클린 침례교회 담임인 로버트 로우리 목사다.
4. 이스라엘 우화 중 ‘새들의 불평’이라는 것이 있다.
하나님께서 모든 짐승을 창조하시고 각각 자연으로 돌려보냈다.
기린은 긴 목을 자랑하며 초원으로 향했다.
물고기는 날렵한 몸을 흔들며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런데 새들이 주둥이를 뾰루퉁하게 내밀고 불만을 나타냈다.
“하나님, 왜 우리에게는 사자와 같은 강인한 치아를 주지 않습니까. 그리고 왜 저희들의 양 겨드랑이에 이런 거추장스러운 것을 매달아 놓으셨나요.”
하나님은 침묵으로 응답하셨다.
그때 독수리란 놈이 겨드랑이에 난 거추장스러운 것을 움직였다.
그러자 몸이 공중으로 붕 날아올랐다.
자신의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온 세상이 일시에 시야에 들어왔다.
새들의 가슴에 달린 것은 거추장스러운 짐이 아니라 날개였던 것이다.
처음에는 그것이 무거운 짐 같으나 사실은 그것이 구원의 도구인 것이다.
5. 성 다미엔은 나환자를 위해 일생을 헌신한 선교사이다.
하와이 군도 몰로카이 섬에서 선교를 할 당시 그 섬은 나환자들의 거주지라 지옥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나환자들 사이에는 매일같이 분쟁이 그칠 줄 몰랐고, 또한 자살자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만 갔다.
다미엔은 그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하며 소망과 위로와 기쁨을 주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그러나 돌덩이처럼 굳어 있는 그들의 심령은 매우 냉담하여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도리어 그들은 다미엔의 모습을 보며 비웃기까지 하였다.
“뭐, 하나님의 사랑? 그것은 당신같이 건강한 자들이나 외쳐 대는 잠꼬대에 불과해. 우리에게는 아무런 희망도 기쁨도 없고, 이렇게 살다가 죽어갈 뿐 내세에 대한 아무런 소망도 없어.”
이 말을 들은 다미엔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이 나병 환자가 되어 저들의 심령을 주님께 인도하는 도구로 사용해 달라고 간절히 간구하였다.
얼마 안 되어 그에게도 나병이 발병했다.
다미엔은 한없이 기뻐했다.
이제는 자신을 비웃는 무리 앞에 자신 있게 설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랑하는 형제들아, 나를 보라. 나의 얼굴, 나의 손, 나의 온 몸을 보라. 나의 형체는 날로 변해 가고 있다. 그러나 나의 영혼 을 보라. 육체가 어떻게 되든지 내 속에는 영원한 평안을 누리고 있는 영혼이 있다. 형제들아, 나를 따라 예수를 믿자!”
나환자들은 큰 감동을 받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
그들의 삶에 평화가 찾아왔고, 하늘의 소망을 품은 자들로 변해 갔다.
다미엔의 희생을 통해 주님께서 몰로카이 섬에 기적을 이룬 것이었다.
6. 미국의 로저 봅슨 기자가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을 인터뷰하고 있었다.
대통령이 로저 봅슨 기자에게 물었다.
“당신은 왜 북미가 남미보다 훨씬 잘 사는지 아는가. 남미는 지하자원도 많고 물 사정도 좋은 편이다. 그리고 유럽의 백인들이 먼저 도착한 곳은 남미였다. 그런데 왜 북미가 더 잘 사는가.”
로저 봅슨 기자는 대답을 하지 못한 채 머뭇거렸다.
그때 대통령이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유럽인들이 남미를 먼저 찾은 것은 사실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황금을 얻기 위해 남미에 도착했다. 그러나 북미에 도착한 사람들은 신앙의 자유를 갈망했던 영국의 청교도들이었다. 그 들은 대륙을 찾은 목적이 완전히 달랐다. 그리고 오늘날 이렇게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무엇이 신대륙인가? 무엇을 찾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항해하는 순례자들이다.
7. 거북의 수명은 보통 200년이다.
그러나 호랑이의 수명은 채 20년이 되지 못한다.
무엇의 차이인가.
하나님은 성질이 급하고 사나운 짐승일수록 단명하도록 창조했다.
거북은 초조함을 모른다.
알을 낳기 위해 1,800km의 산란여행을 떠난다.
햇볕이 내리쬐면 그늘에서 잠시 쉬어간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평소 분을 자주 내는 사람들 중 장수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유순한 사람일수록 장수한다.
독일의 한 탄광에서 일어난 일이다.
갱도가 무너져 7명의 광부들이 갱 내에 갇히는 사고가 발생했다.
광부들은 1주일 만에 구조됐다. 그런데 사망자는 단 한 사람이었다.
그는 왜 사망했는가.
그의 팔에는 시계가 채워져 있었다.
그는 시계를 바라보면서 불안과 초조에 떨었다.
그런 심리적 불안감이 그를 사망으로 몰고 간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 사람들은 1 주일이 흐른 지도 모르고 있었다.
별세의 신앙인은 쉽게 분노하지 않는다.
그리스도 안에서 제 갈 길을 묵묵히 가는 사람이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과 과오를 항상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다.
8. 유명한 신학자 타울러는 자신에게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교제가 없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는 친밀한 교제를 나눌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어느날 묵상을 하던 중 “지금 교회로 가면 네가 찾고 있는 사람을 만날 것이다”하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황급히 황급히 교회로 달려갔는데 교회에 거지 한 명이 있었다.
타울러는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좋은 날입니다!”
“제 기억으론 저에게 나쁜 날은 단 하루도 없었습니다. 배가 고파도, 비나 눈이 와도, 집이 없어도 하나님을 찬양했답니다. 멸시를 당하거나 나쁜 일을 만나더라도 하나님께 감사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전 항상 행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뜻하 시는 것은 모두 누리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이 제게 무엇을 주시 든, 저는 기쁨으로 받습니다. 그러면 행복하거든요.”
“만약 당신이 영원한 형벌을 받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제겐 두 팔이 있습니다. 그것은 겸손과 사랑이지요. 이 두 팔로 주님을 꼭 껴안을 것입니다. 제가 지옥에 들어가야 한다면 그분도 저와 함께 들어가지 않을 수 없도록 말입니다. 그분과 함께 지옥에 있는 것이 그분 없이 천국에 있는 것보다 더 행복할 것입니다.”
“언제 하나님을 발견하셨나요?”
“모든 피조물에 대한 집착을 버렸을 때 나는 왕이 되었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그리스도께서 저를 위해 피 흘리시며 주신 하나님 나라가 항상 자리하고 있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엔 가난하고 한없이 비천한 자 같으나 이 거지는 누구보다 부요한 자요, 마음속에 천국을 소유한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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