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병주 목사의 〈오후 5시에 온 사람〉
오후5시 인력시장 인부들처럼 인간이 좌절하는 그때가 하나님이 예비하신 교착지임을 일깨워주는 책이다.송 목사님도 그랬다.
그는 55살의 자기 아버지를 색전술 항암치료 중에 천국으로 떠나보냈다.
그 뒤 향상교회 유학생으로 학비전액과 매달생활비까지 지원받는 약속과 함께, 박사학위 귀국 후 신학대학교수로 약속받았다.
꿈을 안고 미국에서 정신없이 공부하는데, 어머니의 뇌종양 말기 판정 소식을 들었다.
어머니는 대소변을 못 가리는 처지라 사위 보기에 미안하고 딸 보기도 부끄럽다며 전화를 했는데, 미국 땅에서 전화기에 대고 울 수밖에 없었다.
그 무렵 박사과정 진학을 포기하고 어머니의 장례를 마쳤다.
그 뒤 다시 공부하여 박사과정 지원을 앞에 두고 있었는데 막내 아들의 유치원 원장이 면담을 요청했다.
“아무래도 준영이가 자폐인 것 같습니다.”
그때 ‘무슨 소리냐’며 화를 냈다.
하지만 밤마다 두세 번씩 깨서 울기 시작하면 한 시간 반 동안 내리우는 준영이 앞에 그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그의 마음은 하나님을 향한 원망으로 가득찼다.
미국에 왔던 계획을 수정하며 유학을 지원한 교회의 비전을 이루지 못한 실패자라는 자격지심까지 들었다.
그러던 중에 시편 22편을 묵상하면서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다”는 다윗의 심정을 알게 되었다.
그때 성령님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시편이 다윗의 노래이며, 네 고통의 노래라고 생각하느냐?
인간의 고통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결코 아니다.
이것은 십자가에 달린 내 수난의 시였고, 고통의 노래였지.
내 손과 발에 구멍이 났고 내 마음에도 큰 구멍이 났단다.
그래서 네 가슴에 난 그 큰 구멍이 어떤 것인지 내가 잘 안다.”
그때제야 그에게 이런 고백이 흘러나왔다.
“주님, 제 고통을 아시는군요. 제 절망을 당신께서 너무나 잘 아시는군요.”
1. 전문인 선교모임에 간 적이 있다.
발제를 담당한 모든 사람들이 대단한 전문인들이었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강남의 소아과 전문의로 활동하다가 중앙아시아 선교지로 가는 사람,
세무대학 교수로 지내다가 동남아시아 대학 교수 선교사로 가는 사람,
카이스트에서 원자력 공학박사학위를 받고 중앙아시아 대학의 교수 사역자로 가는 사람까지,
그들의 이력은 다양하고 놀라웠다.
그런데 마지막 순서에 등장한 한 사람의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그의 외모는 수더분했고 말도 어눌했다.
“여러분, 저도 나름대로 전문인이락 생각하고 오늘 이 자리에 왔습니다.
그런데 다른 선교사님들을 보니 제가 나설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계속 고민했습니다.
저는 대학도 나오지 못한 소위 ‘공돌이’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평생 ‘닦고 조이고 기름 치자’라는 구호를 붙들고 기름땀을 흘리며 살아온 인생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그가 선교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다가 깨달은 점이 있었습니다.
공산권이든 이슬람권이든 십자드라이버와 멍키스패너가 안 들어가는 나라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결단을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십자드라이버와 멍키스패너 뒤에 십자가를 품고 어디든 들어가겠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영혼을 닦고 조이고 기름 치며 섬기겠습니다.
십자드라이버나 멍키스패너가 필요 없는 곳이면 걸레질이라도 하며 섬기겠습니다.”
그 젊은 선교사의 짧은 메시지에 다들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떻습니까?
나의 작음을 알고 그 분의 크심을 알 때 하나님께서 쓰지 않겠습니까?
2. 몽골에 단기선교를 다녀 온 후배 목사의 간증이다.
그 몽골 선교에 중고등부, 대학청년부, 장년들까지 많은 분들이 참여했어따.
한 마을에서 전도사역을 한 다음날, 몇 몇 병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치유해달라고 교회로 찾아왔다.
선교팀의 어떤 지체들이 전날 기도하면서 예수님은 앉은뱅이도 일으키시고, 병든 자를 치유하신 분이라고 전도한 게 문제였다.
마을 주민들은 그들이 들려준 성경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믿은 것이었다.
그래서 교회로 찾아와서 자신들의 질병을 고쳐달라고 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우리는 고신 측 교인들이라 그런 것은 못해요”하면서 돌려보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치유집회를 시작했다.
찬양으로 집회를 시작했는데, 쉽게 멈출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은혜가 충만해서라기보다는 찬양으로 시간을 끌다가 그냥 끝났으면 좋겠다 싶은 상황이었다.
찬양을 마치고 설교가 시작됐는데,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처럼 믿음으로 주님의 옷자락을 붙들라는 요지의 말씀을 전했다.
우리는 자신이 없으니 당신들이 믿음을 갖고 주님의 옷자락이라도 붙들라는 것이었다.
말씀을 전하는 시간이 끝나고 드디어 첫 환자가 앞으로 나왔다.
그는 중풍으로 몸이 완전히 마비된 아주머니였다.
처음에 표가 덜 나는 당뇨 환자나 위장병 환자가 나왔다면 부담이 덜했을텐데, 너무 표가 나는 사람이 나와 당황했다.
그 아주머니를 두고 기도하는데, 선교팀의 기도가 멈추지 않고 강력했다.
간절함도 있었지만 도저히 기도를 마치고 결과를 볼 자신이 없어서 계속 기도했던 것이다.
이윽고 기도가 끝났다.
모두가 눈을 뜨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 아주머니가 팔을 돌리기 시작하더니 무릎을 굽혔따 폈다 하면서 기뻐 뛰기 시작했다.
“예수가 고쳤다. 예수가 고쳤다”라고 외쳤다.
그녀의 아들은 엄마 품에 뛰어들었고, 온 마을 사람들도 모두 놀라고 말았다.
그런데 이들보다 더 놀란 사람들은 바로 그 선교팀원들이었다.
그 이후 선교팀원들은 어디를 가든지 모든 두려움을 내려놓고 주님께 내어맡기며 기도했다고 한다.
3. 호레이시오 게이츠 스패포트(Horatio Gates Spafford 1828-1888)는 시카고의 변호사이자 무디장로교회의 장로였다.
그는 매사에 성실했고 열심을 다해 교회를 섬김 믿음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시카고의 대화제로 집과 재산이 모두 불타버렸고, 무디장로교회마저 불타버렸다.
그는 충격을 받은 병약한 아내와 네 딸을 위해 가족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하지만 교회의 재정을 담당하고 있던 터라, 교회를 재건하는 일과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어, 아내와 네 딸들만 휴양지로 먼저보내고 나중에 합류키로 했다.
그런데 불탄 교회의 재건을 위해 수고하던 중 엄청난 사고 소식을 들었다.
뉴욕항을 떠나 대서양을 건너던 여객선이 영국의 철갑선과 충돌해 226명의 승객과 함께 바다로 침몰했다는 것이었다.
구조된 인원은 겨우 40여명이었다.
절망과 마지막 희망이 교차하는 그 시간이 지난 얼마 후, 그는 아내가 보낸 전보를 받았다.
“Saved alone(혼자 살아남음)”
그 말은 아내가 살았다는 소식이기도 했지만 네 명의 딸들을 가슴에 묻어야 한다는 소식이었다.
영국에 있는 아내를 데리러 가기 위해 출발한 스패포드는 사고 해역을 지나게 되었다.
선장은 그에게 사고난 지점을 알려주었고, 그는 주체할 수 없는 피같은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하나님, 왜 이렇게 하셨습니까?”
불타버린 집과 교회,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네 딸들.
그는 누구도 설명해 줄 수 없는 절망 속에 고뇌의 밤을 보내야 했다.
그런 아픔과 고뇌에도 불구하고 깊은 밤을 밀어내고 떠오르는 태양빛이 선실을 비춰오자, 그의 마음 속에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찬양으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팠던 원망과 분노가 사라지면서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늘의 평강이 밀려들었다.
그때 그 감동을 종이에 옮겨 적은 것이 바로 ‘내 평생에 가는 길’이라는 찬송가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4. 엘리 비젤(Elie Wiesel)은 1986년 인권운동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작가이다.
그는 열다삿살에 온 가족들이 게토로 끌려가서 여러 수용소를 전전하다가 누이와 어머니가 소각로에서 산 채로 화장당하는 것을 지켜봤다.
기차로 수송될 때 같이 탔던 사람들 중에 대부분이 얼어 죽은 것을 지켜봐야 했다.
아버지 역시 산 채로 소각장에 던져지는 것을 자켜봤던 그다.
어느 날에는 수용소의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세 명이 교수형을 당했다.
먼저 노인과 중년의 남자가 고통스럽게 죽었다.
그때 비젤의 뒤에서 누군가 조그만 소리로 질문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어디에 계십니까? 하나님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마지막으로 겁에 질려 있는 어린 아이가 서 있던 의자를 발로 차버렸다.
그 아이는 고통스러워했지만 어른들처럼 단번에 죽지 않았다.
깡마른 몸에 무게가 얼마 나가지 않아서그런지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숨이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그 정도 되면 살려줄 법도 한데, 독일군 장교는 처참하고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그 아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또 다시 비젤의 뒤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하나님, 어디에 계십니까?”
그런데 그때 비젤의 마음에 이런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하나님은 바로 저 아이가 몸부림치고 있는 저 십자가 위에 눈물을 흘리면서 함께 계신다.”
그랬다. 하나님이 가장 계시지 않는 것처러 여겨지는 그곳에서 하나님은 같이 고통받고 함께하고 계셨다.
제2차 세계대전에 끝나고 독일 나치 정권은 패망했다.
그리고 연합군이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탈환한 후 방을 점검하던 미국인 병사가 벽을 살피던 도중 이런 글귀를 발견했다.
“Where is God?”(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그 병사도 ‘이런 곳에 있었다면 당연히 이런 생각이 들겠지’하고 생각하다가 그 밑에 있는 또 다른 글을 발견했다.
“God is here”(하나님은 여기 계신다.)
그리고 그 아래 한 신앙인이 남겨 둔 찬송시를 발견했다.
그 병사는 한 시간 동안 그 찬송시를 읽고 또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다 형용 못하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위에
죄범한 영혼구하려 그 아들 보내사
화목제로 삼으시고 죄 용서하셨네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며
영원히 변치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5. 모세가 40년 동안 절망과 낙심 속에 있던 ‘만성질환자’라고 한다면,
엘리야는 40일만에 모든 것을 버리고 포기해버린 절망의 ‘응급환자’라고 할 수 있다.
40년 만성이든 40일 급성이든, 하나님은 호렙에서 이들을 회복시키셨다.
그래서 이 산은 모세의 산도, 엘리야의 산도 아니다.
그저 ‘하나님의 산 호렙’이다.
처절하게 절망한 인생들을 다시 일으켜 사망의 지팡이를 붙들게 한 땅이다.
하나님의 회복을 막을 절망은 없다.
하나님의 은혜를 막을 저주는 없다.
하나님의 사랑을 막을 죄는 없다.
구겨진 체면보다 동굴 속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엘리야를 중요하게 여겨 사랑을 전하신 분이 엘리야의 하나님이시다.
회초리로 매를 때리고 싶은 상황에서도 세미하게 음성을 들려주신 분이 엘리야의 하나님이시다.
바로 그 엘리야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산 것이 죽은 것만도 못할 때, 그때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소망이시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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