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냐민 지파 출신의 사울은 온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뽑혔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백성들 앞에서 왕으로 기름 부어 세웠죠. 그때만 해도 겸손했던 사울이었죠. 하지만 왕이 된 후에 달라졌습니다. 점차 자기 왕권에만 집착한 채 블레셋과의 전투 앞에서 백성들 앞에 자기 과시용 제사를 무례하게 집례했죠. 그래서 “너의 날이 길지 못할 것이다.”(삼상13:13-14) 말씀하셨죠. 그 뒤 아말렉과의 전투 앞에서도 하나님의 명령을 멸시한 채 좋은 짐승들을 취했죠. “오늘 하나님께서 당신의 나라를 당신에게서 떼어 왕보다 나은 사람에게 줄 것입니다.”(삼상15:28)하고 말씀하셨죠.
사울이 왕이 되어 그렇게 타락할때 하나님께서 유다 지파,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 다윗을 기름부어 왕으로 삼으셨죠. 물론 곧장 왕위에 오른 건 아니었죠. 서서히 사울 곁에 나아가 왕이 해야 할 일들을 지켜보게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블레셋의 가드 출신인 육척장신 골리앗과 맞서 쓰러트린 이후에 사울의 군대장관이 되어 사울을 지근거리에서 보필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었죠. 그로서 왕은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백성들을 이끌어가야 하는지 몸소 배우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로다’하는 백성들의 소리를 들은 사울은 다윗을 경계하기 시작했고, 다윗을 죽일 방도를 꾸몄죠. 블레셋 군사 100명, 200명을 쳐죽인 자에게 자기 딸을 아내로 삼게 하겠다는 공포였죠. 그런데 다윗은 그때 죽임을 당한 게 아니라 오히려 블레셋 군사를 모조리 목을 베고, 졸지에 사울 왕의 사위, 곧 부마가 되었죠. 시골 촌뜨기 다윗, 배다른 7명의 형들의 틈바구니에서 자란 다윗이, 하루아침에 왕의 부마, 최고 중심에 서게 된 것이었죠.
그러나 사울 왕은 다윗의 명성이 점점 높아가는 걸 지켜보지 못했고, 급기야 자기 별동부대 3천명을 동원해 다윗을 잡아오라 명령했죠. 바로 그때부터 다윗은 피난길, 곧 8년 가까운 도피행각을 벌이게 되죠. 최초 놉 땅에서 아둘람 동굴로, 블레셋의 가드 지역으로, 증조할머니 롯의 고향 모압 땅으로, 유대 땅 헤렛 수풀로, 그 헤렛에서 인근 십 광야로, 그리고 마온 광야로 계속해서 도망쳤죠. 그리고 그 마온 광야로 사울이 추격해 올 때 때마침 독안에 든 생쥐꼴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블레셋 군대를 일으켜 사울이 어쩔 수 없이 블레셋 군대와 맞서게 했고, 그 틈을 타서 다윗은 마온 광야에서 서해바다 해변가 엔게디 동굴로 도망쳤죠. 그리고 사울이 또다시 추격해 오자 다윗은 유대 최남단 바란 광야로 도망쳤고, 그 뒤에 십 광야 황무지로 나아갔죠. 8간의 도피행각은 이미 사무엘상 16-26장을 통해 읽었던 내용입니다.
다윗이 그렇게 도피한 곳들은 대부분 유다 광야 지역이었습니다. 사무엘상 21장에 블레셋의 가드 왕 아기스 밑으로 들어간 적도 있고, 사무엘상 22장에 증조할머니 롯의 고향 땅 모압 미스베 성으로 들어간 적도 없지 않지만, 전반적인 도피행각은 유대 광야 지역이었죠. 왜 광야였을까요? 자기 힘, 자기 능력, 자기 자랑거리, 자기가 의지하는 것들의 힘을 빼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함이었죠.
그리고 그 뒤에 어디로 들어갔는가? 블레셋의 가드 왕 아기스의 부하장수로 들어갔죠. 그래서 ‘시글락’ 지역을 할당받아 살게 되죠. 그곳에서 다윗과 함께 한 600명의 군사와 식솔들까지 살게 되었죠. 그러면서 다윗은 블레셋을 위해 싸우기보다 자기 동족 유다 지파의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앞장섰죠.
그리고 사무엘상 마지막 장인 31장에 보면 사울 왕이 블레셋과의 최후 일전을 적의 화살에 맞아 피를 흘리다가, 자결하는 것으로 자기 생을 마감하게 되죠. 그렇다면 그때 다윗이 곧바로 왕 위에 올랐는가? 아니죠. 다윗은 그 때 당시에는 유다 지파의 왕이 될 뿐이었죠.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왕도도 ‘헤브론’으로 정하게 되었죠. 그 헤브론에서 7년 6개월 간 유다 지파의 왕이 되었는데, 그 헤브론은 단순한 지역이 아니었죠. ‘교제의 자리’, ‘연합의 자리’를 뜻하는 바 하나님과의 교제, 하나님과의 연합의 자리를 택하도록 하나님께 그곳으로 불러올리셨던 것이죠.
그렇게 7년 6개월간 헤브론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서서히 그의 영토를 넓혀가고, 또 이방 족속들의 침략도 막아내고, 다른 지역들까지 영토를 확장해 가는데,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함께 해 주셨고 승리하게 해 주셨죠. 그리고 그 7년 6개월이 다 지나갈 무렵엔, 이제 그 난공불락의 성읍 여부스를 무너뜨리게 되는데, 그 성읍은 이스라엘 지파 가운데 그 누구도 정복하지 못한 성읍이었던 바 그 성읍을 무너뜨리는 사람이 명실상부한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받을 수 있는 분기점이 되었죠.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그런 담대함과 용맹함을 불어넣어주셨고, 드디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그 난공불락의 성읍 여부스를 점령하고서 그곳을 예루살렘으로 곧 ‘평화의 터전’이라 명명했고, 남은 왕정 33년간을 그곳에서 보내게 된 것이죠. 그것이 사무엘하 1-5장까지 읽은 내용이었죠. 그때부터 다윗이 명실상부한 온 이스라엘의 왕다운 왕이 된 것입니다.
왜 그렇게 사무엘상 16장부터 사무엘하 5장까지의 역사를 더듬어 본 것입니까? 오늘 읽은 역대상 11장 1절 말씀 때문입니다. “온 이스라엘이 헤브론에 다 모여 다윗을 보고 이르되 우리는 왕의 가까운 혈족이니이다.” 여기에서도 ‘온 이스라엘’(1,4,10)이라고 나오는데, 실은 이때 모든 지파 자손들이 다윗에게 나온 때는 아니었죠. 그럼에도 역대기 기자는 패망한 이스라엘을 재건하는 마음으로 그때부터 온 이스라엘이 다윗을 왕으로 추대했다고 의도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3절에 나온 말씀,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가 헤브론의 다윗에게 나아가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맺고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았다”는 것 역시 7년 6개월간의 헤브론의 기간이 지난 이후의 일임을 우리는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대기의 기자는 바로 헤브론에서부터 온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한 마음으로 연합하였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이죠. 바꿔 말해 패망한 이스라엘을 재건하는데 그렇게 처음부터 하나가 되면 좋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죠.
본문 4-9절까지는 앞서 말씀드린 헤브론 이후의 여부스 성읍의 정복을 밝힌 말씀입니다. 철옹성 여부스는 가나안 정복때부터 사울 왕 때까지 약 400년간 정복하지 못한 성읍이었는데, 다윗이 정복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을 9절에서 이렇게 밝혀줍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셨기에 다윗이 그 성읍을 점령할 수 있었다는 거죠..
본문 10-47절은 다윗의 용사들에 대한 부분입니다. 특별히 다윗이 아둘람 동굴에 도피하고 있을 때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떠온 세 용사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용감했던 다른 용사들과 여러 용사들의 이름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는 정말로 많은 용사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다윗을 위해 목숨을 바친 용사들이죠.
생각해 보십시오. 자신의 목숨을 걸고 나를 생각해 주는 자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복입니까? 자기 목숨을 걸고 내게 충성을 다하는 자가 있다면 그보다 더 큰 기쁨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바울도 로마서 마지막 장에서 자기 동역자들의 명단을 밝혀주고 있죠. 바울이 바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철저히 하나님의 은혜인데, 그 은혜의 여정 속에 자신을 위해 동고동락하며 자기와 생을 같이 한 사람들, 자기를 위해 희생해 준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이죠. 저와 여러분들의 관계도 그런 관계이면 더 없이 좋겠고, 또 여러분들의 생애 가운데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다면, 무엇을 주고 바꿀 수 있겠습니까?
물론 그 중에서도 최고의 친구이신 예수님이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요한복음15:13-15절에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우리 최고의 친구이신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진실한 친구를 얻고, 누군가에게 필요한 신실한 친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참 포도나무이신 주님의 가지로 사는 은혜가 충만하길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주님.
우리가 사는 삶은 다윗처럼 질곡의 인생일 수도 있습니다.
수많은 문제들 난관들을 만나 헤치고 살아야하는 전쟁터와 같습니다.
그때 인생의 광야도 만나게 하시지만, 또 좋은 동역자들,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희생하는 좋은 군사와 같은 동역자들도 주님께서 만나게 해 주셨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도 그런 동역자 관계가 되게 하시고,
누군가 필요한 이에게 기꺼운 친구가 되며 살게 하시옵소서.
저희들의 최고 친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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