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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예화)저는 주일날 예배 후에 정집사님과 신권사님이 말을 해 줘서 알게 되었습니다.
무한공항에 비행기가 추락한 사고가 있었다고 말이죠.
그래서 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오후에 뉴스를 통해서 피해상황을 보고 또 저녁무렵에 다시 봤을 때 정말로 큰 사고였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제주항공 비행기에 탑승한 승객 181명 중에 179명이 숨지고 승무원 2명만 생존했습니다.
생존한 승무원들도 비행기 꼬리 쪽에 앉아 있다가 비행기 동체에서 떨어져 나가서 목숨을 건진 것이었죠.
그 사망자들 중 10대 이하가 5명이고, 팔순잔치 가족이 9명, 부모와 자녀와 손자 손녀까지 3대 일가족이 참변을 당했습니다.
영광에 사는 분도 있었고 화순에 사는 분도 있었고 진도에 사는 분들도 있었고 목포시 공무원 2명도 이번 일을 겪었습니다.
목포 인근에 사는 분들은 제주도나 동남아시아를 여행할 때 제주공항 항공기를 이용합니다.
저가 항공사이기도 하고 또 이쪽에서 손쉽게 동남아 여행을 떠날 수 있기 때문에 동남아 여행객이라면 누구라도 한 번쯤 타 봤지 않을까 싶습니다.
(깨달음)그런데 왜 하필 그 분들이 그런 일을 겪어야 했을까요?
그것은 왜 그런지 그 누구도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버즈 스트라이크 곧 조류 충돌이 한 두 번 일어나는 게 아니라 다반사로 있는 일이고, 기체결함이 있어도 랜딩기어를 수동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왜 그렇지 못했는지, 누가 사고 원인을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사고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밝혀내고 추후에 동일한 사고가 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너무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 사고로 내가 죽을 수 있도 있었을 일을 그 분들이 대신 죽었구나 하는 마음을 갖고 애도하고 기도하는 마음을 품는 거죠.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 앞에 그 누구도 이러쿵저러쿵 함부로 말할 수가 없습니다.
안타깝긴 하지만 그 분들을 먼저 데려가신 분도 하나님 아버지이시고 나를 이 땅에 남겨 놓은 분도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적용)그렇기에 언제 어느날 하나님께서 나를 데려가실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존재들이 우리 자신들입니다.
내가 모든 것을 볼 수 있을 것고 예측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당장 내일 무슨 일을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는 1년 후의 일도 10년 후의 일도 20년 후의 일도 내다볼 수 없는 연약한 존재들이죠.
그저 하루하루 앞서 가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그 삶이 가장 복된 삶인 줄 믿습니다.
2024년을 보내고 2025년 새 해를 맞이하는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는 오늘 이 시간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포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이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역배)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해방일지입니다.
애굽에서 400년간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센 땅에 빠져나와 시내광야까지 당도한 여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 백성의 탄식소리를 들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켰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유월절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게 하셔서 그 피를 보고 이스라엘의 죽음을 넘어가셨습니다.
그래서 넘을 유, 넘을 월, 마디 절, 이라 해서 유월절이라 부르고, 히브리어로는 ‘페사흐’, 영어로는 패스오버라고 부르죠.
물론 어린 양의 피가 없는 애굽 전역에는 모든 장자와 짐승의 초태생이 죽어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야말로 애굽 온 땅에 통곡 소리가 끊이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이미 9번째 재앙까지 거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이 임계점에 달했는데 10번째 그 재앙 앞에 그만 둑이 터지듯 터녀버렸습니다.
그러니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더 이상 붙잡아 둘 수 없었고 모두들 그 땅에서 나가라고 부탁할 지경이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자와 아이들까지 포함해 250만 명 이상이 숙곳을 거쳐 에담을 거쳐 홍해 앞 비하히롯에 당도했습니다.
그 백성이 홍해 앞에 다다랐을 때 뒤에는 애굽의 최정예 부대가 추격해왔고 앞에는 폭 32km의 홍해가 가로 막고 있었죠.
모두가 긴장하고 이제는 죽었다고 생각하던 그때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갈라 마른 땅처럼 통과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 후 그 백성은 수르협곡을 거쳐 마라를 지나 엘림을 거쳐 신광야(2개월15일, 출16:1)에 당도했습니다.
그때 빈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 후 돕가를 지나 알루스를 거쳐 르비딤(민33:12)에 당도했고 그곳의 반석을 쳐서 생수를 공급해주시는 은혜를 베풀어주셨죠.
이제 애굽을 빠져나온지 3개월이 된 시점 정확히 50일째 되는 날에 시내광야(3개월, 출19:1)에 도착해 하나님과 언약식을 체결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내산으로 불러올려 십계명이 기록된 두 돌판과 레위기의 율법서와 성막설계도를 주셨습니다.
물론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있는 동안 시내광야에 있던 백성들은 황금송아지를 만들고 굿판을 벌인 일이 있었습니다.
그 일로 다시금 언약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7개월간 걸쳐 성막설계도의 모형대로 성막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출애굽한 지 1년이 지난 2년 1월 1일 정월 초하룻날에 성막을 펼쳐 세웠습니다.
그것이 출애굽기의 전체적인 내용입니다.
출애굽기 1∼24장은 애굽의 고센 땅에서 시내광야까지 당도한 모습이고 25∼40장까지는 성막을 만들어 펼친 모습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성막을 만들도록 하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38년 광야 행진 속에 그들과 친히 함께 거하시고 그들과 동행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는 표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떠나지 않고 자기 백성과 늘 동행하는 아버지이심을 알도록 하는 증표와 같은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앞서 가시면서 그 백성을 인도하는 분임을 만 천하에 알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본문)그것은 오늘 읽은 본문 말씀도 마찬가지인데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그들이 숙곳을 떠나서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치니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깨달음)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빠져나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는 40년 여정길입니다.
그 중에 출애굽기의 내용은 2년간의 과정입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38년의 여정길은 민수기에 나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본문은 애굽의 고센 땅에서 시내광야까지 2년의 과정 중에서 그 첫 주간의 모습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애굽의 고센 땅에서 숙곳을 지나 에담 끝에 장막을 친 장면은 홍해를 건너기 전의 모습입니다
고센 땅에서 에담까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3일 길게는 7일이 걸리는 거리입니다.
그 길은 시내광야까지 당도하여 성막을 펼치는 2년에 비하면 그야말로 출발선상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에담 끝에 장막을 치고 하룻밤 잠을 자는 모습은 앞으로 38년간 광야에서 잠을 자는 모습의 첫 번째 광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뭐든 시작이 좋아야 끝이 좋은 법 아니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빠져나와 지금 첫 번째 잠을 청하는 모습입니다.
이 첫 번째 잠을 자는 모습이 앞으로 40년 광야 길에서 잠을 자는 모습과 똑같지 않겠습니까?
1주일간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걷고 또 걸었을 그들이 그 지친 몸을 이끌고 어떻게 텐트 속에서 편안한 밤을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까?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면서 길을 열어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뙤약볕을 차단하여 시원케 해 주셨고 밤에는 사막의 한기를 덮여줄 불기둥을 보내서 그들을 따뜻하게 품어주셨던 것입니다.
심지어 수많은 도적떼들과 이방 세력들조차도 천군천사를 동원해 다 몰아내주셨기에 광야 40년 첫발을 내딛는 그 모습 앞에 편안한 첫 밤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시작점이 앞으로 방향을 결정하지 않겠습니까?
이 시작점이 앞으로 목적지를 결정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어느 방향으로 얼마만큼 느리게 혹은 얼마만큼 빠르게 행진할지 전혀 알지 못하지만 앞서 가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을 인도하시고 지켜주신다는 것 말입니다.
(원해)그런데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할 때 ‘가시다’는 히브리어 ‘할라크’(הָלַךְ)는 ‘가다’(to go)는 능동분사형입니다.
한 번 앞서 가시고 만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한 번 앞에서 갔으니, 봐라, 이제는 너희들 스스로 알아서 나아가도록 해라, 하시는 분이 결코 아닙니다.
그런 하나님이라면 시계공이 시계를 만들어 놓고 시계가 알아서 움직이도록 내려버두는 것과 같은 이신론적인 하나님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만들어 놓고 인간의 원리대로 움직이도록 내버려두는 하나님이 아니라 친히 인간의 삶에 내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한 번 앞서 가시는 분이 아니라 시내광야에 당도해 성막을 만들 때까지 계속 앞서 가시는 분입니다.
그 후 광야 38년 동안에도 그 백성을 떠나지 않고 친히 앞서 가시는 하나님이심을 알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할라크 능동분사형의 의미입니다.
(원성)그런데 이와 똑같은 말씀이 신명기 1장 30-33절에 나와 있습니다.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깨달음)신명기는 모세가 광야 40년을 거쳐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둔 요단강 앞 모압 평지에서 설교한 내용입니다.
모세는 광야 40년을 거치면서 출애굽 1세대가 죽고 1.5세대와 광야에서 태어난 2세대를 향해 고별설교한 것입니다.
지난 40년간 하나님께서는 먼저 가시는 하나님이셨다고 말입니다.
그 하나님은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들을 친히 안아서 여기까지 이르게 하신 분이라고 말입니다.
그 하나님은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앞서 가시는 분으로, 낮엔 구름 기둥으로 밤엔 불기둥으로 인도하셔서 장막 칠 곳을 인도하신 분이라고 말이죠.
그런 뜻에서 볼 때 오늘 본문의 에담 끝에 장막을 친 이 모습은 앞으로 광야 40년 행진을 어떻게 인도하실지 가늠할 수 잇는 부분 아니겠습니까?
뭐든지 시작을 잘 해야 끝도 아름다운 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그 시작점에 이스라엘 백성이 각자의 인생을 맡기면 그 끝지점도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적용)2024년 한 해를 보내고 2025년 한 해를 새롭게 시작하는 우리의 모습도 그와 똑같습니다.
첫 해 첫 시작을 예배자로 하나님 앞에서 시작할 때 2025년 한 해의 마지막 지점도 예배자로 우리를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2025년 첫 시작을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시작할 때 하나님께서 마지막 지점도 믿음으로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그런 믿음과 소망으로 2025년 한 해를 시작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께서는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는 저와 여러분에게 2025년 한 해에 앞서 가시는 은혜를 베풀고자 하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 그래서 이 시간에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무안공항에서 제주항공 여객기가 추락한 사고로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는데, 인간이 어찌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있겠느냐?”
“그날 죽은 사람들 중에는 10대도 많았고 20대도 30대도 있었고 일가족도 많이 있지 않았더냐?”
“그들의 죽음은 그들만의 죽음으로 끝이 아니라 너를 대신해 죽었다는 생각으로 더 겸손하게 더 성실하게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고센 땅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켜 광야 40년을 이끄셨고 마침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분이지 않더냐?”
“그 시작점의 첫 밤을 에담 끝에 장막을 치고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도록 앞서 가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하신 모습이지 않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에담 끝에 텐트를 친 이 시작점이 이후 40년간 인도하신 하나님이 한결같은 모습이지 않더냐?”
“광야에 도적떼가 들끓고 이방 세력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천군 천사를 보내서 그 대적들을 몰아낸 것 아니더냐?”
“앞서 가시는 하나님께서는 첫 출발지점에서부터 광야 40년간 그들이 행진할때까지 계속 앞서 가시는 하나님으로 역사하신 분 아니더냐?”
“뭐든 시작점이 중요하듯이 2025년을 시작하는 너의 첫 출발도 예배자로 믿음의 삶으로 출발하길 하나님이 원치 않겠느냐?”
“네가 믿음의 삶으로 2025년을 시작할 때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삶으로 2025년을 친히 인도하지 않겠느냐?”
“2025년 한 해 동안 네가 어떤 일을 겪을지 알 수 없지만 매 순간순간 앞서 가시는 하나님과 동행할 때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으로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맛보게 하지 않겠느냐?”
(찬양)내게로부터 눈을 들어 주를 보기 시작할 때 주의 일을 보겠네 내 작은 마음 돌이키사 하늘의 꿈 꾸게 하네 주님을 볼 때
내게로부터 눈을 들어 주를 보기 시작할 때 주의 일을 보겠네 내 작은 마음 돌이키사 하늘의 꿈 꾸게 하네 주님을 볼 때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느낄 때 내 삶은 주의 역사가 되고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네
성령이 나를 변화시켜 모든 두렴 사라질 때 주의 일을 보겠네 황폐한 땅 한 가운데서 주님 마음 알게 되리 주님을 볼 때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느낄 때 세상은 주의 나라가 되고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네
주님의 영광 (주님의 영광) 임하네 주 볼 때 (주 볼 때) 주님의 영광 (주님의 영광) 임하네 주 볼 때 (주 볼 때)
주님의 영광 (주님의 영광) 임하네 주 볼 때 (주 볼 때)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느낄 때
내 삶은 주의 역사가 되고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네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네
(예화)외줄타기를 하는 한 서커스 단원이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미국과 캐나다 사이에다 강철줄을 걸어 놓고 줄타기를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고 손에 땀을 쥐면서 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열심히 이리 건너오고 저리 건너가고 하면서 시종일관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사람들 앞으로 와서 그가 말했습니다.
“누가 내 어깨 위에 올라타겠습니까?”
“내가 한 사람을 어깨에 메고 건너보겠습니다.”
사람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누구 하나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때 꼬마 소년이 ‘저요’하면서 손을 들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그 아이를 어깨에 태우고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더 많은 박수를 보냈습니다.
나중에 사람들은 그 소년에게 물어봤습니다.
“얘야, 너 겁나지 않았어? 어떻게 그렇게 용기를 낼 수 있었어?”
그러자 그 소년이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하나도 무섭지가 않았어요. 저 분이 내 아버지거든요!”
(깨달음)우리 앞에 놓인 2025년 인생이 외줄타기 인생처럼 참 힘겨운 삶이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어린 소년이 외줄타는 아버지를 믿고 어깨에 올라타듯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의 아버지를 신뢰하며 2025년 한 해를 믿음으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때 우리보다 앞서 가시는 하나님께서는 2025년 한 해를 합력하여 선으로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찬양)주께서 내 길 예비하시네 주께서 내 길 예비하시네 이제 하루하루를 주를 위해 살리라 주께서 내 길 예비 하시네
나 이제 주를 따라 가려네 나 이제 주를 따라 가려네 세상죄 길 버리고 생명길을 찾았네 나 이제 주를 따라 가려네
나 이제 겸손하게 살리라 나 이제 겸손하게 살리라 이제 하루하루를 겸손하게 살리라 주께서 내 길 예비하시네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4년 한 해를 앞서가시는 하나님께 의타하며 살아왔는지 이 시간 돌이켜보시길 바랍니다.
애굽을 빠져나온 이스라엘 백성은 1주일만에 에담 끝에 장막을 치고 편안하게 잠을 잤습니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보호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광야 40년을 향한 첫걸음이자 시작지점입니다.
그만큼 그 시작점을 앞서 가시는 하나님께 전적을 의탁할 때 광야 40년 인생길도 친히 인도하신다는 증거입니다.
2025년 한 해가 어쩌면 외줄타는 그 서커스단처럼 힘겨운 삶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나보다 앞서 가시는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면서 하나님의 어깨에 타올라 하나님과 함께 가는 2025년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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