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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예화)빌리 그래함 목사님과 같이 사역을 했던 ‘킴 윅스’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킴 윅스는 한국전쟁 때 실명을 했고 고아원에서 자라난 분입니다.
훗날 미군 중사의 도움으로 미국에 건너가 인디아나 주립대학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 후 오스트리아에서 성악 수업을 하여 훌륭한 성악가가 되었죠.
그 과정 속에서 그녀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때 빌리 그래함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고 집회 때 그녀도 그런 간증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장님인 나를 인도할 때, 저 100미터 전방에 뭐가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앞에 물이 있으니 건너뛰라고 말하고 층계가 있으니 발을 올려놓으라고 합니다.”
“나를 인도하시는 분을 내가 믿고 한 걸음씩 걸음을 옮기기만 하면 나를 인도하시는 분이 성실할 때 나는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꼭 도착합니다.”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하시는 간증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방법도 그와 똑같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10년 후를 알지 못합니다.
20년 후도 알 수가 없습니다.
오늘 무엇을 해야 할지를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오늘을 살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내일을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하나 하나 밟다 보면 마침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곳에 도착하게 된다는 것이죠.
(예화2)지금은 고인이 되어 천국에 있는 사랑의 교회를 담임한 옥한흠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그 분이 30년 목회의 뒤안길을 정리한 책을 냈는데 그 책에서 그런 간증을 했습니다.
그분은 다섯 살까지 거제도 산골 마을 ‘삼거리’에 있는 초가집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 초가집 교회는 증조부가 처음 예수님을 믿고 마련한 곳이었습니다.
그 증조부가 선교사들에게 예수님을 소개받고 영접한 후에 고려 왕씨 후손의 흔적을 지우고 옥씨로 변성을 해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그토록 완고하게 신앙생활하면서 믿음을 지킨 가문이었습니다.
어린 옥한음도 초등학교 때 부흥사경회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그 후 2차대전이 터지고 잠시 일본에서 살았는데, 소학교 1학년 때 주변의 강압에 못이겨 신사참배한 게 분통이 터졌습니다.
그 과정에서도 은혜를 받았고 주변 사람들은 목사가 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시골 교회의 목사님들은 굶기도 많이 하고 가난하게 살아서 그게 싫었다고 합니다.
나름대로 그래서 돈을 많이 벌 수 있고 또 복음도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 해군 사관학교를 지원했습니다.
그런데 두 번씩이나 낙방을 한 것입니다.
멀쩡한 몸인데도 신체검사를 받으러 가면 고혈압 판정을 받아 들어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훗날 그 시절을 회상한 옥한흠 목사님은 그 또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음을 그 책에서 고백했습니다.
(깨달음)마찬가지죠.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길로 우리를 인도하시기 위해서 뭔가 육신적인 아픔이나 실패나 고통을 경험케 하시는 분입니다.
실패와 좌절을 통해 참된 믿음의 길로 인도하시고 때로는 더욱 성숙케 하시는 분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지금 당장은 실패요 좌절 같지만 먼 훗날 인생의 뒤안길을 돌아보면 그것이 앞서 가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을 고백하게 되는 것이죠.
2024년 송년주일 예배를 드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포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역배)출애굽기는 애굽에서 400년간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센 땅에 빠져나와 시내광야까지 당도한 여정을 기록한 책입니다.
우리나라 일제강점기 36년도 고통스러운 일인데 400년간 종살이했다면 너무나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이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 백성의 탄식소리를 들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켰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유월절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게 하셔서 그 피를 보고 이스라엘의 죽음을 넘어가셨습니다
하지만 그 피가 없는 애굽 전역의 땅에는 첫째 아들과 모든 짐승의 초태생이 죽임을 당하는 재앙 앞에 통곡소리가 끊이지 않았죠.
물론 장자의 죽음은 6개월간에 걸친 10번째 재앙 중에 10번째였습니다.
그러니 그 6개월간에 걸친 10번째 재앙을 거치는 동안 애굽은 그야말로 초죽음 상태를 매번 경험한 것 아니었겠습니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버틸만했지만 모든 장자와 짐승의 초태생에 죽어나자 더 이상 바로도 버틸 수가 없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나가도록 한 것이었죠.
그 후 여자와 아이들까지 포함해 250만명 이상의 이스라엘 백성은 숙곳을 거쳐 에담과 홍해 앞 비하히롯에 당도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민족 뒤에는 애굽의 최정예 군대가 추격해오고 있고 앞에는 홍해 바다가 가로 막고 있었죠.
모두가 긴장하고 있던 그때 하나님께서는 폭 32km의 홍해바다를 갈라 마른 땅처럼 통과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 후에 수르협곡을 거쳐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바꿔주셨고 엘림을 거쳐 신광야(2개월15일, 출16:1)에 당도했습니다.
그때 빈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돕가를 지나 알루스를 거쳐 르비딤(민33:12)에 당도했고 그곳의 반석을 쳐서 생수를 공급해주시는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애굽을 빠져나온지 3개월이 된 시점이자 정확히 50일째 되는 그 날에 시내광야(3개월, 출19:1)에 도착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언약식을 체결하게 되죠.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내산으로 불러올려 십계명이 기록된 두 돌판과 레위기의 율법서와 성막설계도를 주셨습니다.
물론 모세가 시내산에서 머무르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아론을 대동해 황금송아지를 만들고 굿판을 벌인 일로 아픔을 겪고 언약을 재확인하게 되죠.
그로부터 이제 7개월간 성막설계도를 따라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필두로 성막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출애굽한 지 1년이 지난 정월 초하룻날 곧 2년 1월 1일에 성막을 펼쳐 세웠습니다.
그 내용이 출애굽기에 나오는 전체적인 아웃 라인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의 전반부는 애굽을 빠져나와 시내광야에 당도해서 언약식을 체결한 모습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면, 후반부는 성막과 관련된 내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왜 성막이 중요할까요?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하나님께서 ‘거하신다’는 것, 하나님께서 그 백성과 함께하신다(with)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함입니다.
성막을 통해 그 백성과 임마누엘로 함께 하시고 그 백성을 이끌어 가신다는 것을 알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실질적으로 출애굽을 준비하는 장면은 출애굽기 7장부터 나옵니다.
그러면 출애굽기 초반부에 무슨 내용이 나오는 것일까요?
모세의 출생배경이 나옵니다.
그 시절에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로운 파라오가 등극하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역을 시키는데 사내 아이가 태어나면 장차 애굽의 대적자들이 되겠다 싶어 모두 죽이도록 하죠.
하지만 히브리 산파들은 파라오의 명령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들이라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함부로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 무렵에 모세가 태어났고 점차 목소리가 커지자 더 이상 집 안에 키울 수 없어 갈대상자를 엮어 나일강에 뛰워보내죠.
죽으면 죽으리라 하면서 하나님께 그 생명의 주권을 맡기면서 말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섭리 가운데 모세의 생명을 살려내주십니다.
그 무렵에 파라오의 딸이 시녀들을 데리고 애굽의 나일강에 목욕하러 갔다가 아이 울음소리를 듣고 그 아이를 왕실로 데려가 자기 양아들로 키우죠.
그렇게 40년간 왕실에서 애굽의 정치경제문화군사력까지 모든 것들을 모세가 배우는데, 그 무렵에 애굽의 병사가 이스라엘 백성을 학대하자 모세가 애굽 병사를 떼려 죽였고, 다음날 그것이 탄로가 나자 미디안 광야로 도망치죠.
그때부터 40년간 빈털터리로 장인의 양을 치면서 미디안 광야에서 보내는데 어느날 하나님의 소명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 지도자로 부름받게 된 것이었죠.
(깨달음)그래서 깨달을 수 있는 게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250만명이 넘는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시켜 광야 40년을 거쳐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는데, 그걸 앞서서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는 게 출애굽기의 서론이라는 점입니다.
출애굽의 서막을 여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고, 그 민족을 이끌 리더를 삼는 과정을 준비하신 분이 하나님이란 사실이죠.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한 민족을 해방시키고 광야로 인도하시는 과정에 앞서서 한 개인의 운명을 이끄시는 분임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본문)그것은 오늘 본문 말씀도 마찬가지인데 본문 20-22절을 다시 한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그들이 숙곳을 떠나서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치니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원해)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400년간 종살이하며 살던 애굽의 고센을 빠져나와 숙곳을 거쳐 에담에 장막을 친 모습입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홍해 앞 비하히롯에 당도하게 되는 상황이죠.
아직 홍해를 건너지 않는 상태로서 애굽을 간신히 빠져나온 그들이 숙곳을 지나 에담 끝에 당도하기까지 3일, 많게는 7일이 걸린 상태입니다.
그야말로 밤낮없이 쉬지 않고 걷고 또 걸어서 에담에 도착한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그 길을 떠난 것은 12명의 정탐꾼이 떠난 것도 아니고 250만명이 넘는 민족이 대이동을 한 것입니다.
한 번도 광야를 향해 나아가 본 적도 없고, 이방 세력과 싸운 적도 없는 민족이 이동을 한 것입니다.
적어도 3일 길게는 7일간 밤낮없이 걷고 또 걸어서 에담에 당도해 천막을 지고 이제 잠을 자는 모습이죠.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를 오늘 본문에서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면서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뙤약볕을 차단해주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추위를 몰아내주셔서 그곳까지 당도했다는 것입니다.
어디 구름기둥 불기둥 뿐이겠습니까?
광야에 얼마나 많은 도적떼들이 들끓고 있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천군천사를 동원해 그 도적떼들과 이방 세력들을 다 몰아내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그날 에담에 도착해 두 발을 뻗고 평안한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바로 그런 분이십니다.
우리 인생길에 앞서 가시는 하나님 말입니다.
앞서 가시는 하나님이셨기에 400년 동안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다보시면서 유월절을 통해 그들을 해방시켜주셨습니다.
앞서 가시는 하나님이셨기에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는 길목에 모든 대적들을 몰아내시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감싸주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할 때 ‘가시다’는 히브리어 ‘할라크’(הָלַךְ)는 ‘가다’(to go)는 능동분사형입니다.
한 번 앞서 가시고 말았다는 게 아닙니다.
계속해서 그들 앞에서 가시고 계속해서 그들을 인도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시는데 한 번 인도하시고 나머지는 너희들 알아서 해라 하면서 내버려두신 분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죠.
앞으로 홍해를 건너 신광야와 르비딤에 당도하고 또 시내광야에 당도할때까지 계속해서 앞서 가시는 분이셨다는 것입니다.
그 후에 성막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38년간 행진할 때도 늘 앞서 가시는 하나님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돌봐주셨다는 뜻입니다.
(원성)그래서 출애굽기 23장 20절에서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로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라.”
또 출애굽기 23장 23절에서 그렇게 약속하고 계십니다.
“나의 사자가 네 앞서 가서 너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에게로 인도하고 나는 그들을 끊으리라.”
(깨달음)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예비하신 곳에 당도할 때까지 친히 당신의 사자들을 앞서 보내 사방의 길을 열어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시내광야에 당도할 때까지 당신의 사자를 보내서 아모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광야에 우글거리는 도적 떼와 이방 족속을 다 쳐부추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광야 38년 행진에 앞서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 아니겠습니까?
(예화)그래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가장 많이 체험한 사람 중의 하나인 죠지 뮬러, 고아들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도 인생의 좌우명을 그렇게 삼고 살았었죠.
“하나님보다 앞서 가지 말자!”
왜 그런 인생의 좌우명을 삼았겠습니까?
고아들을 돌보면서 먹을 것을 공급해줘야 하는데 자기 힘으로 안 된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사람들을 고아들에게 먹을 것을 공급해주시는 분이시기에 하나님보다 결코 앞서서 일을 실행하거나 판단하지 말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 것이었죠.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은혜)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앞서 가시는 은혜를 우리의 인생길에 친히 펼쳐보여주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주님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우리 각자에게 친히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빌리 그래함 목사님과 같이 찬양사역을 했던 킴 윅스라는 여성이 장님이었지만 100m 앞을 인도받은 게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 인도받고 목적지에 도착한 것 아니었더냐?”
“옥한음 목사님도 가난이 싫어 해군사관학교에 들어가려 했지만 멀쩡한 그 몸에 고혈앞을 통해 신학교로 인도하신 하나님이지 않았더냐?”
“네가 실수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준비했는데도 인생에 실패와 좌절을 맛보았다면 그 또한 앞서 가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지 않겠느냐?”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 후에 에담 끝에 장막을 칠 수 있었던 것도 앞서 가시는 하나님께서 밤에는 불기둥으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친히 인도하시는 은혜이지 않더냐?”
“그렇다고 하나님께서는 한 번 앞서 인도하신 후에 너희들끼리 가라고 내버려두시는 분이 아니라 가나안 땅에 당동할때가지 친밀하게 그들과 동행하시면서 앞서 인도하신 분이지 않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네 인생의 발걸음도 10년 후 20년 후를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느냐?”
“그저 하루하루 주님께 순종하다 보면 마침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곳에 네가 도착해 있지 않겠느냐?”
“애굽 땅에서 400년간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 40년 이끄시고 가나안 땅으로 들이기까지 그들도 앞서 가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좇아간 것 아니었더냐?”
“그 하나님께서는 한 번만 앞서 가시는 분이 아니라 그들이 목적지에 당도할 때까지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끊임없이 앞서 가시며 길을 열어주신 분 아니더냐?”
“2024년 송년주일인 오늘 네 인생의 2024년을 돌아볼 때도 앞서 가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너를 인도하시분 아니더냐?”
“그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한다면 새로운 한 해의 앞길도 앞서 가시는 하나님께 온전히 의탁할 수 있지 않겠느냐?”
(찬양)주께서 내 길 예비하시네 주께서 내 길 예비하시네 이제 하루하루를 주를 위해 살리라 주께서 내 길 예비하시네
나 이제 주를 따라가려네 나 이제 주를 따라가려네 세상 죄길 버리고 생명 길을 찾았네 나 이제 주를 따라가려네
나 이제 겸손하게 살리라 나 이제 겸손하게 살리라 이제 하루하루를 주를 위해 살리라 나 이제 겸손하게 살리라
나 이제 기도하며 살리라 나 이제 기도하며 살리라 이제 하루하루를 기도하며 살리라 나 이제 기도하며 살리라
나 이제 승리하며 살리라 나 이제 승리하며 살리라 이제 하루하루를 승리하며 살리라 나 이제 승리하며 살리라
(예화)요셉은 야곱의 11번째 아들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이제 아버지가 양을 치고 있는 형들의 안부를 묻고 오도록 심부름을 보냈죠.
그런데 그때도 채색옷을 입고 갔으니 형들이 얼마나 시기했는지 오히려 요셉을 구덩이에 넣어 죽이고자 했죠.
다행히 다른 형이 애굽에 가는 미다안 상단에 요셉을 팔아넘겼고 아버지에게는 짐승이 물어 뜯어 죽였다고 했죠.
애굽에 끌려간 요셉은 파라오의 비서실장격인 보디발의 종으로 살게 되었죠.
그곳에서 성실하게 감당할 때 그의 경제권을 다 맡아서 살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내가 유혹했고 오히려 죄를 뒤집어 쓰고 감방살이를 했는데, 얼마나 분통했겠습니까?
하지만 요셉은 그 또한 하나님의 예비하심 앞서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믿고 온갖 일을 도맡았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 애굽의 국무총리로 발탁이 되었죠.
(깨달음)앞서 가시는 하나님께서 억울한 일을 통해서 새 역사를 써내려가시는 분임을 일깨워주는 사건입니다.
앞서 가시는 하나님은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우리를 건져 올려 새로운 길을 열어주시는 분임을 알게 하시는 것이죠.
(예화2) 2001년 9월 11일은 9·11 테러가 있던 날이었습니다.
테러리스트에 의해 납치된 두 대의 항공기가 세계무역센터 건물로 충돌했고 110층의 그 건물은 완전 붕괴되고 수천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그 당시 세계무역센터협회 부총재인 이희돈 박사도 무역센터에 사무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무역센터에 테러가 있던 9월 11일 그는 출근하기 위해 워싱턴 D.C 집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비행기를 타기 전에 공항에서 먹은 오렌지쥬스 한 잔 때문에 탈이났습니다.
이제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생리적인 현상을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동안 무역센터로 가는 시간이 지체되게 되었는데 그 시간에 그만 무역센터 건물이 무너지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깨달음)어떻습니까?
그날 아침 배탈이 난 것은 고통스런 경험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섭리로 이끄시기 위해 오렌지주스를 예비해두신 것이었습니다.
앞서 가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렇듯 우리 자신을 반드시 좋은 길로만 인도하시는 분은 아닙니다.
시험의 길도 걷게 하시고 환란의 길도 통과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요셉을 구덩이에 집어 넣도록 하시고 또 종으로 팔려가게 하시고 오렌지주스 한 잔에 배탈이 나게도 하시는 분입니다.
하지만 그 어떤 길이든 우리 인생 길에 앞서 가시는 하나님은 언제나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란 사실입니다.
(내기도)그렇기에 우리가 주님 앞에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내 인생의 길도 요셉처럼 이희돈 박사처럼 항상 좋은 길만 있는 게 아니라 때로는 구렁텅이에 빠지기도 하고 쥬스 한 잔에 배탈이 나기도 하시네요.”
“하지만 구렁텅이에 빠지고 종으로 팔려나간 요셉이 앞서 가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순종할 때 놀라운 새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이희돈 박사가 아침에 마신 쥬스 한 잔을 배탈이 나 출근 시간이 늦어지는 불상사가 생겼지만 그것이 생명을 건지는 하나님의 섭리의 길이었네요.”
“이스라엘 백성을 시내광야로 인도하기까지 모세를 미리 준바히신 분도, 그 백성을 에담 끝에 장막을 치고 잠을 잘 수 있게 하신 분도, 앞서 가시는 하나님의 온전한 인도하심인 줄 믿습니다.”
“주님. 2024년 한 해를 그렇게 선하신 길로 인도하셨사오니, 새 해에도 앞서 가시는 하나님께 온전히 의탁하며 살 수 있게 해 주세요.”
(찬양)주님 내 길 예비하시니 나 기뻐합니다 주님 내 길 예비하시니 나 기뻐합니다
여호와 이레 여호와 이레 주님 내 길 예비하시니 여호와 이레
주님 내게 평화주시니 나 기도합니다 주님 내게 평화주시니 나 기도합니다
여호와 샬롬 여호와 샬롬 주님 내게 평화주시니 여호와 샬롬
주님 내게 승리주시니 나 찬송합니다 주님 내게 승리주시니 나 찬송합니다
여호와 닛시 여호와 닛시 주님 내게 승리주시니 여호와 닛시
주님 나를 치료하시니 참 감사합니다 주님 나를 치료하시니 참 감사합니다
여호와 라파 여호와 라파 주님 나를 치료하시니 여호와 라파
주님 나를 사랑하셨네 날 구원하셨네 주님 나를 사랑하셨네 날 구원하셨네
할렐루야 아멘 할렐루야 아멘 주님 나를 사랑하셨네 할렐루야 아멘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인생길을 진리와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앞서 가시는 아버지이십니다.
400년간 애굽 땅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해방을 주시고 광야 40년을 거쳐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분이 앞서 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백성을 출애굽시켜 시내광야에 당도하는 50일까지 그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이시고 반석을 쳐서 생수를 공급하시는 분이 앞서 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보여주고 일깨워주고자 그들이 고센 땅을 나와 숙곳을 거쳐 에담 끝에 진을 치고 잠을 잘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앞서 가시는 하나님께서 사방의 대적들을 몰아내시고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친히 보호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고아들의 아버지 죠지 물려도 그래서 인생의 좌우명을 “하나님보다 앞서 가지 말자”하고 다짐한 것 아닙니까?
요셉이 국무총리가 되기까지 구렁텅이에 빠지고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고 온갖 수치와 수모를 당하면서도 믿음으로 인내한 것은 앞서 가시는 하나님을 신실하게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9·11 테러가 있던 그 날 이희돈 박사가 출근길에 마신 오렌지 쥬스 한 잔이 배탈을 일으킬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만은 그 길을 통해 그의 생명을 연장시켜주신 분이 앞서 가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우리가 10년 후나 20년 후를 알 수도 없고 알지도 못하지만 매 순간순간 앞서 가시는 하나님께 의탁하며 살아갈 때 지난 한 해를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2025년의 인생도 친히 앞서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그런 은총의 주인공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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