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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로도∼바다라
밀레도에서 에베소교회의 장로들과 작별한 바울 일행은 배를 타고 남쪽으로 70km 지점에 위치한 고스(Cos)에 상륙했다. 무역의 중심지였던 고스는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의 출생지다. 그 당시 질병을 고치고자 하는 이들은 원근 각처에서 그 섬을 찾았다. 고스에는 그리스 신화에 의술의 신으로 등장하는 아스클레피오스(Asklepios) 신전도 있었다. 그만큼 평생 지병에 시달린 바울은 히포크라테스의 고향이자 유명한 의학교가 있는 모든 병자의 이상향인 고스에서 자신을 질병을 고치면서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바울은 날이 밝자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배를 타고 동남쪽으로 80km 떨어진 로도(Rhodes)로 갔다. 로도 섬은 화려한 장미꽃이 피어 있는 곳이고 웅변과 수사학으로 유명한 대학도 있었다. 더욱이 그곳에는 에베소의 아데미 신전과 함께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헬리오스 거상이 있었다. 헬리오스 거상은 사람 모양을 한 36m의 청동으로 된 동상이다. 로도 시민들은 그것을 12년에 걸친 B.C.280년경 완공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56년이 지난 B.C.224년에 지진으로 무너졌다. 뛰어난 설교자였던 바울은 웅변과 수사학이 발달한 장미의 섬 로도에서 웅변과 수사학을 가르치면서 보다 안정된 노후를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일행과 함께 로도에서 배를 타고 동쪽으로 85km 떨어진 소아시아 반도 남쪽 항구 바다라(Patara)로 갔다. 바다라는 지정학적 이점 때문에 계절에 상관없이 수백 척의 상선들이 항상 경유하는 해상교통의 요충지였다. 또한 그리스 본토의 델피 신전에 필적할만한 아폴로 신탁소가 있는 곳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바울은 그곳 바다라에서 천막제조업으로 노후에 큰 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지만 결코 집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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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게∼두로∼가이사랴
이후 바울 일행은 바다라에서 베니게(Phoenicia)로 직행하는 배를 탔다. 베니게는 오늘날 레바논 지역으로서 당시 로마지역의 행정 구역상 수리아에 속한 항구였다. 바다라에서 지중해를 건너 베니게로 가는 바닷길은 650km로 당시의 선박으로 1주일 걸린 거리였다. 작은 연안선을 타고 밀레도를 출발해 고스와 로도스를 거쳐 해상교통의 요충지인 바다라에 도착한 바울 일행은 그곳에서 큰 상선으로 갈아타고 베니게로 간 것이다. 이후 그 상선은 200km에 걸쳐 북동쪽으로 뻗어 있는 구브로 섬을 지나갔다. 바울은 최소 하루 이상에 걸쳐 구브로 섬을 보면서 13년 전 첫 선교지로 부르신 감회를 새롭게 느꼈을 것이다. 더욱이 지난 13년간 자신을 이끌어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했을 것이다.
이후 바울 일행이 탄 배는 두로(Tyres)에 정박해 화물선 짐을 내렸다. 바울은 그곳에 7일간 머무르면서 두로에 있는 주님의 제자들을 방문하고 격려했다. 그들과 교제하는 동안 그들은 성령의 감동 속에서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바울은 단념하지 않았다. 그 주가 끝날 때쯤 여자들과 아이들을 포함한 모든 성도가 바울과 그의 동료들과 함께 부두로 갔다. 그들은 함께 모래 위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행전21:5∼6). 작별 인사를 한 뒤 바울 일행은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48km 떨어진 톨레마이(Ptolemais)로 가는 다른 배를 탔다. 그들이 톨레마이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 있는 성도들의 환영을 받았고 하룻밤 그들과 함께 지냈다(행21:7). 이튿날 그들은 톨레마이에서 64km 떨어진 가이사랴(Caesarea)로 향했다.
가이사랴에 도착한 바울 일행은 전도자 빌립의 집으로 들어갔다. 빌립은 초대교회가 처음 임명한 일곱 집사 중 한 명이었다(행6:1∼7). 그는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난 후(행8:26∼40) 가이사랴로 왔다가 동쪽의 여러 사마리아 마을을 돌며 복음을 전하다가 그곳에 눌러 앉았다(행8:4∼8). 빌립에게는 딸 넷이 있었는데 그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예언을 했다(행21:8∼9). 바울 일행이 그 집에서 1주일간 머무르며 102km에 달하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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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극심한 기근을 예언했던 아가보(행11:27∼30)가 바울을 만나고자 유대에서 왔다. 그는 빌립의 집에서 바울의 허리띠를 잡고 그의 손과 발을 묶으며 그 띠 임자를 유대인들이 결박할 것이라고 예언했다(행21:11). 그러자 그곳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울을 향해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도록 권했다. 하지만 바울은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해 결박당할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모두가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길 바란다면서 그를 막아서는 걸 그쳤다(행21:13∼14). 여러 날 후 바울 일행은 짐을 꾸려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그때 구브로 사람 나손(Mnason)도 동행했다. 그는 부유한 이방인으로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바울 일행이 자기 집에서 쉼을 얻도록 제공하고자 따라나섰다(행21:16). 그렇게 바울은 총 4년에 걸친 3차 전도여행을 마쳤다. 족히 5,000km가 넘는 여행길이었다. 그때가 A.D.57년 그의 나이 57세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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