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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고린도전서

가장 좋은 길을 보이리라(고전12:31-13:3)

by 똑똑이채널 2024.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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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에는 많은 지체들이 있습니다. 손과 발, 눈과 코, 그리고 입과 같이 외적으로 드러나 보이는 지체가 있고, 신장, 폐, 장기들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내적 지체들도 있죠. 각각의 지체는 고유한 형태와 특성을 지닙니다. 하지만 개별적으로 따로 노는 게 아니죠. 모든 지체들은 하나의 몸을 이루면서 완전한 조화와 통일을 이루고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죠. 우리는 성격도 배경도 개성도 다릅니다. 그러나 다 각각 다르다고 해서 무관한 존재는 아닙니다. 우리가 서로 무관하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자리에 있을 까닭이 없죠. 우리는 모두 개별적인 존재지만 하나 된 마음과 자세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을 확인하고 심화시키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손쉽게 ‘친교’를 떠올릴 수 있죠.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는 최선의 방법은 친교가 아닙니다. 바로 세례에 있습니다.

 

귀먹은 하나님 응답하소서 | 권성권 | e퍼플- 교보ebook

"성경으로 문화 읽기를 접목한 세 번째 책이다. 첫 책은 출애굽기로부터 시작해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까지의 내용이 담겨 있다. 두 번째 책은 여호수아로부터 시작해 사사기, 룻기, 사무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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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 13절을 통해 이렇게 밝혀주었습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2천년 전 유대인과 이방인, 상전과 노예가 결코 한 자리에 있을 수 없었죠. 서로 죽었다 깨어나도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다 하나가 되는 길이 있는 길은 성령의 역사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세례 속에서 전혀 다른 그들이 한 몸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바울은 로마서 6장 3절을 통해 세례를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 말했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우리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의 죽음과 연합하는 것이죠.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로마서 6장 4-5절을 통해 이렇게 밝혀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했다는 것은 우리의 옛 사람이 죽는 것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난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무덤에서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다시 사는 삶이 세례라는 것이죠. 바로 그 세례를 통해 주님과 수직적인 연합이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가 한 몸으로 연합된 것이 세례임을 사도 바울이 말한 것입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죠.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권성권 - 교보문고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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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으로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는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태복음 3장 15절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죠.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세례 요한이 막았지만 예수님은 그에게 세례를 받는 걸 허락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야만 모든 의를 이룰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과연 그 ‘의’라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바로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께서 임마누엘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연합을 보여주는 것, 더불어서 인간과의 수평적인 연합을 이루는 것이 바로 그 의입니다. 그 두 가지가 완성된 것이 십자가와 부활 곧 세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세례를 통해 삼위 일체 하나님과 연할될 뿐만 아니라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각자가 주님 안에서 한 몸을 이루며 온전히 하나되는 연합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체,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룬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고린도전서 12장 31절에 이렇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여기에서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는 말씀은 은사 중에 크고 작은 우열이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주님의 몸 된 교회에 더 큰 유익을 끼치는 은사를 사모하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했죠. 이른바 교회에 가장 유익을 끼칠 수 있는 좋은 길을 보여 주겠다는 것이죠.

그것이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몸 속에 여러 지체들이 있는데, 나에게 가장 유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이 지체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죠. 어디를 가려고 해도 오른 발은 저리로, 왼 발은 이리로 가자고 하고, 나는 교회 가서 설교 듣고 싶은데, 왼쪽 귀는 드라마를 듣는다면 문제가 크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사랑하면 주님의 한 몸을 이루는데 부족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몸된 교회에 가장 유익한 길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서로 사랑하는 것 이외, 달리 있을 수 있 없습니다. 그래서 13장 1절부터 이렇게 말하는 것이죠.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서로 다투고 싸울 때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방언 때문이었습니다. 서로 내 방언이 진짜라고 하는 것 때문에 말입니다. 그래서 네가 여러 방언을 하고 천사의 말을 한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왜 하필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겠습니까? 2천 년 전 헬라 문명의 세계에서 우상을 섬기는 이방인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이 우상 신전에 찾아가 제사 드릴 때, 술을 먹고 춤을 추며 괴성을 부르며 친 것이 구리와 꽹과리입니다. 그런데 그들 한 사람 한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입니까? 전혀 무관한 사람들이죠. 그들은 단지 자신들의 감정에 사로 잡혀 돌멩이와 쇠붙이에 불과한 우상이 이루어 주리라 착각한 자들이죠. 그런 욕망 때문에 눈이 멀어 열광하고 괴성을 지르는 것이죠. 그래서 내가 성령의 은사를 많이 받았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그런 모습과 똑같다는 뜻입니다.

2절입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하나님의 모든 섭리와 비밀을 다 안다? 이 산을 명해서 저리로 옮기라면 옮길 정도의 믿음이 있다? 대단한 것이죠.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You are nothing 곧 ‘너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하는 뜻이죠. 한 평생 열심히 했는데 사랑이 없으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3절입니다.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내게 속해 있는 모든 소유를 팔아서 구제한다? 대단히 열정적인 사람이죠. 내 몸을 던져서 불사를 만큼 내게 주어진 임무에 충실하게 한다? 대단한 사람이죠. 하지만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죠?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 밖에 안 되기 때문입니다. 가령 오른쪽에 팔이 붙어 있는데, 이 팔이 나의 명령을 받들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을 자꾸 칩니다. 그것은 내 손이 아닌 것이죠. 만약에 나의 손이라면 반드시 서로 사랑하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그렇게 서로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이죠. 지체끼리는 서로 사랑하는 것인데, 사랑이 없다면 결코 그리스도의 지체가 아님을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니,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야긴과 보아스 | 권성권 - 교보문고

야긴과 보아스 |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 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 이 책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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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서로 사랑을 해도 사랑의 원천은 나 자신에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죠. 바로 그 분의 사랑에 힘입어 사랑하며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그 분의 사랑 안에서 누군가를 그리스도에게 접붙이는 삶,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사는 세례의 삶, 곧 서로 사랑하며 사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가장 좋은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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