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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고린도전서 8장1절부터 11장1절까지,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고 마시는 문제에 대한 목회적 답변을 전해주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선과 악의 차원에서 다룬 게 아니라 내가 하는 행동이 다른 사람을 유익케 하는가, 아니면 실족케 하는가의 차원으로 답변을 했죠. 그리고 8장에서 10장 마지막 절까지 긴 내용의 결론을 어떻게 정리했습니까?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고 했죠.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이었습니까? 10장 32절을 통해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고 남의 유익을 위해 구하는 삶이 그것이었죠. 이른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그것이죠. 그래서 바울은 11장 1절에 그렇게 말했죠.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바울이 예수님을 담고 살듯이, 너희들도 그렇게 주님을 본받고, 주님을 담고 살라고 한 격려였습니다.
이제 오늘부터 살펴 볼 11장 2절에서 14장 마지막 절까지의 말씀은 공적 예배에 대한 사도 바울의 목회적 답변입니다. 그 중에서도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 볼 11장 2-16절은 예배 시에 여자가 머리에 수건을 쓰는 문제에 대한 바울의 답변이죠. 가톨릭 신자들은 지금도 미사 곧 예배를 드릴 때 미사포라는 하얀 수건을 쓰죠.
오늘 본문을 알기 위해서는 2천년전 헬라문명 사회의 관습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헬라문명 사회에서 여자들이 집에 있을 때는 괜찮지만, 밖에 나간다거나 공식적인 모임에 참여할 땐 머리에 수건을 꼭 써야만 했죠. 그 수건을 썼던 것은 그런 의미가 있었죠. 여자에게 머리가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은 맞지만 나는 머리가 아니라는 뜻이죠. 바꿔 말해 남자가 내 위에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여자가 머리에 수건을 가렸던 것은 철저한 남성우월주의 사회의 모습이었죠. 그것이 교회의 공적 모임인 예배 때도 여자들은 예배포를 쓰고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헬라사회에서 예배포를 안 쓰는 여자들도 있었습니다. 노예들은 쓰지 않았죠. 더욱이 정상적인 옷을 입고 있고 외모로는 멋쟁이처럼 보였어도 창녀들은 수건을 쓰지 않았습니다. 창녀가 수건을 쓰지 않는다는 뜻은 밖에 나가 남자를 유혹하는 것이었죠. 또한 동성애자들도 쓰지 않았습니다. 레즈비언들 가운데 남자 역할을 하는 이들 말이죠.
그런데 초대교회 안에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배를 드리는데 교회에 들어 온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남자만 성령의 은사만 받은 게 아니었죠. 여자도 성령의 은사를 받았고, 예언도 하고, 기도하면 병이 낫는 은사를 받았죠. 대표기도를 하는데 남자만 하는 게 아니라 여자가 하는데 은혜가 되죠. 그러니까,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자유를 강조하는 여자들이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죠. ‘왜 우리만 예배포를 써야 하냐?’ ‘남자나 여자나 교회에서 똑같은데 왜 우리만 써야 하냐?’하면서 예배 때 예배포를 쓰지 않는 여자들이 나타난 것이죠. 또한 본문 4절의 말씀처럼 남자가 예배포를 쓰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밖에서 쓰는 남자들은 동성애자들로서 곧 여자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었죠. 그런데 예배 때 남자들이 그렇게 예배포를 쓰고 예배당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에 예배당에 여자들과 남자들이 들어오는데, 그 광경을 떠올려보시기 바랍니다. 대다수의 여성들은 예배포를 쓰고 들어오는데 몇 몇 여성들은 예배포를 쓰지 않고 있다, 반대로 대다수의 남자들은 예배포를 쓰지 않고 들어오는데 몇 몇 남자들이 예배포를 쓰고 들어왔다면 말입니다. 다들 그렇게 생각지 않겠습니까? 저 여자들은 창녀 아니냐? 또 저 남자들은 동성애자들 아니야? 하고 말이죠. 그런 모습이라면 결코 교회의 덕을 세울 수가 없었겠죠. 그래서 바울이 여자는 공적인 예배자로 나올 때 예배포를 쓰라고 했고, 남자들은 그걸 쓰지 말고 공적인 예배당에 나오라고 한 이유를 이제는 알 수 있죠. 그 당시 남성 우월주의 사고방식에서 예배포를 쓰라고 한 게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교회의 덕을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위해서 예배포를 쓰라고 한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이와 같은 사전 이해를 갖고서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랍니다. 2절에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전통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바울의 모든 일을 기억하고 있다고 바울이 칭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그랬습니까? 아니죠. 그들은 바울을 잊어버린 채 말씀대로 살지 않았고, 심지어 게바파 아볼로파, 하면서 바울을 험담하는 사람들도 있었죠. 그런데도 바울은 지금 새로운 주제로 들어가기 전에, 너희들이 나를 기억한 것을 칭찬한다고 시작을 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바울이 다시금 심호흡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사실 고린도전서의 전체 내용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질책하고 책망하기 위함이었죠. 그러면서 간간히 사랑한다, 고 바울이 다독이고 격려해주었습니다. 오늘 공적인 예배에 대한 내용을 새롭게 쓰면서 똑같이 ‘사랑한다’ 곧 ‘칭찬한다’고 격려해주면서 시작하는 모습입니다. 누군가 잘못을 했을 경우 계속 질책만 하면 질책하는 것 자체에 이성을 잃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질책하다가 다시금 호흡을 가다듬으면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됩니다. 마찬자지죠. 바울이 뭔가를 질타하다가 심호흡을 가다듬고 칭찬하는 것은, 바울 자신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죠.
3절에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시고, 여자의 머리는 남자라고 이야기합니다. 사도 바울은 절대로 남성우월주의 사상으로 이런 이야기를 한 게 아닙니다.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하다거나, 여자가 남자보다 열등하다는 관점에서 말 한 게 아닙니다.
그 증거가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이 본문에서, 그리스도의 머리는 바로 하나님이시다, 하고 말했습니다. 성자 하나님의 머리가 성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죠. 그런데 바울이 이렇게 이야기 할 때, 성자 하나님보다 성부 하나님이 우월하거나 성자가 성부보다 열등하기 때문입니까? 그렇지 않죠. 똑같은 분이신데, 그럼에도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본체의 열등과 우월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질서 차원에서 이야기하는 것이죠. 두 분 다 동등 된 분이고 똑같지만 성부성자성령 하나님의 질서 속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뜻이죠.
그것처럼 남자와 여자도, 본질적으로 생명의 가치 차원에서는 하나님 앞에서 똑같은데, 그런데도 남자가 여자의 머리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남자를 먼저 창조하셨고, 하나님의 질서 차원에서 볼 때 여자보다 남자가 먼저라는 뜻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세상은 혼돈이었습니다. 카오스였죠. 그 혼돈을 하나님께서 새롭게 하셔서 ‘코스모스’ 곧 질서가 잡혔죠. 그래서 하나님의 창조세계는 질서 속에 있는 것입니다. 해가 떴다 지는 것, 하늘의 별이 움직이는 것, 모두 질서 속에 있는 것이죠. 자동차 부품이 많이 있지만, 따로 떨어져 있으면 절대로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가정이라는 공동체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하나님의 질서, 존재의 질서, 영적인 질서, 그런 차원에서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여자의 머리는 남자고,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고, 그리스도의 머리는 성부 하나님이시다, 하고 말이죠.
오늘 공적인 예배에 대한 사도 바울의 목회적인 답변을 듣는 첫마디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질서의 전통을 지키길 원하시는 분이란 사실입니다.. 여자보다 남자를 먼저 지으신 것도, 남자의 머리로 그리스도를 주신 것도, 그리스도의 머리로 성부 하나님이 계신 것도 다 질서와 조화의 차원이라는 뜻입니다. 회사든 직장이든, 하나님의 나라든 교회든 카오스가 아닌 코스모스가 될 때 멋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오늘도 가정이나 일터나 교회에서 나를 부르시고 내게 부여하신 위치를 기억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한 질서를 존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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