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기가 변한 것은 모르고 세상이 변했다고 말하지. 푸른 하늘이 흐린 하늘이 됐다고 하늘이 변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막상 변한 것은 시대 흐름을 따라가는 우리네 마음이다.”
한돌의 〈늦었지만 늦지 않았어〉에 나온 말이다. 세상 흐름에 쉽사리 흔들리지 말고 마음 중심을 잡고 살라는 주문이다.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겪은 삶의 연륜 속에서 터득한 이치다. 그는 〈홀로 아리랑〉, 〈개똥벌레〉, 〈여울목〉, 〈꼴지를 위하여〉 등 명곡을 쓴 사람이다. 이 책은 그 곡들이 나오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고 있다.
〈개똥벌레〉는 친구 하나 없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자신을 자연 속 개똥벌레에 비유해서 쓴 곡이라고 한다. 〈홀로 아리랑〉은 독도에 가기 위해 고기잡이배를 탄 때부터 떠나올때 갈매기 떼들의 돌격을 받던 그 모습을 풀어 쓴 노래라고 한다. 〈뿌리 깊은 나무〉는 우리말을 잃어가는 상황을 슬퍼하며 우리의 것을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모든 곡들이 자기 능력에서 나온 게 아니라 하늘에서 빌려준 것이라고 고백을 한다. 다만 세상 명예를 좇아 노래를 마구 고쳤던 지난 삶을 반성하고 있다. 아울러 자라나는 세대가 자신처럼 성공과 명예를 위해 꿈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외면치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품고 있다. 그만큼 세상의 욕망에 변질되기보다 오뚝이처럼 마음 중심을 잡고 살기를 바라는 심정을 담고 있는 책이다.
“유다의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 지 삼십칠 년 곧 바벨론의 왕 에윌므로닥이 즉위한 원년 십이월 그 달 이십칠일에 유다의 왕 여호야긴을 옥에서 내놓아 그 머리를 들게 하고 그에게 좋게 말하고 그의 지위를 바벨론에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왕의 지위보다 높이고 그 죄수의 의복을 벗게 하고 그의 일평생에 항상 왕의 앞에서 양식을 먹게 하였고 그가 쓸 것은 날마다 왕에게서 받는 양이 있어서 종신토록 끊이지 아니하였더라”(왕하25:27-30)
남왕국 유다의 19번째 왕 여호야긴이 바벨론 감옥에서 37년 만에 풀려났다는 말씀이다. 당시 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Nebuchadnezzar)이 그 아들 에윌므로닥(Evil-Merodach)이 새 왕이 되어 여호야긴을 배려한 것이었다(렘52:31). 이로서 열왕기상 12장에서 시작된 분열왕국이 열왕기하 25장 마지막에서 끝을 맺고 있다.
그런데 다윗의 언약에 기초한 남왕국 유다가 왜 바벨론 제국에게 멸망했을까? 사실 남왕국 유다의 13대 왕 히스기야는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 아들 므낫세는 악의 종합선물세트였다. 그런 므낫세가 죽자 그 아들 요시야가 왕이 됐다. 그는 할아버지 히스기야보다 더욱 온전한 종교개혁을 이뤘다. 유월절만 해도 히스기야는 타협했지만(대하30:1-5) 요시야는 순전히 지켰다(대하35:1). 문제는 그가 애굽 왕 느고(Pharaoh Necho)와 맞서다 허망하게 죽었다는 점이다.
그러자 요시야의 아들인 23살의 여호아하스가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애굽 왕 느고는 3개월 만에 그를 끌어내렸고, 요시야의 다른 아들인 엘리야김을 왕으로 앉혀 ‘여호야김’으로 불렀다. 여호야김은 11년간 통치했는데 처음 3년은 애굽의 신하로 섬겼지만 4년째부터는 바벨론의 가신이 됐다. B.C.605년 신바벨론 제국의 창시자 나보폴라사르(Nabopolassar)가 애굽 군대를 유다 변방으로 몰아낸 까닭이었다. 다만 B.C.601년 나보폴라사르의 아들 느부갓네살 왕이 되어 애굽 군대와 대치할 때, 여호야김은 바벨론을 배척하고 애굽과 손을 잡았다.1)
하나님께서는 그때 예레미야를 통해 바벨론에게 항복할 것을 선포했다(렘27:17). 하지만 여호야김과 대신들은 불순종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느부갓네살을 선동해 아몬과 모압과 아람에서 모집한 갈대아 군대를 보내 예루살렘을 침공케 했다. B.C.598년 12월의 일이었다. 결국 여호야김은 예레미야의 경고대로 죽고 말았다(렘22:18-19).
그때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이 18세에 왕위에 올랐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임명한 것이었다. 다만 성미가 급하고 미성숙한 그는 바벨론에게 등을 돌렸다. 그러자 느부갓네살은 군대를 보내 예루살렘을 공격케 했다. B.C.597년 3월의 일이었다. 그 일로 여호야긴과 수많은 관리와 자녀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 여호야긴은 그로부터 37년간 감옥에 갇힌 것이었다.
그 사이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긴의 삼촌 맛다냐를 왕으로 세워 ‘시드기야’로 불렀다. 시드기야는 요시야의 세 번째 아들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와는 달리 악한 길을 좇았다. 더욱이 그의 통치 11년째 되던 해, 이전에 여호야김의 반란 실패 후 9년이 지난 B.C.588년의 해, 그는 바벨론에 반역하고 애굽과 동맹을 맺었다. 그 일로 느부갓네살은 세 번째 군대를 보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성전을 불태워버렸다. B.C.586년의 일이었다. 그때 성문을 빠져 도망치던 시드기야는 결국 바벨론으로 끌려갔는데, 그가 보는 앞에서 아들들은 처형당했고 그의 두 눈은 뽑히고 말았다(왕하25:7).
이로써 B.C.722년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한 이후 136년이 지난 B.C.586년 남왕국 유다도 바벨론에게 몰락했다. 두 왕국 모두 이방 나라의 침략으로 끝난 것 같지만 실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던 일이었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다윗과의 언약(삼하7:16)을 생각하셔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남왕국 유다 백성들이 7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게 해 주셨다.2)
그런 점에서 볼 때 열왕기하서를 끝맺는 마지막 구절이 이해가 된다. 남왕국 유다의 19번째 왕 여호야긴이 바벨론에 감옥에서 37년 만에 풀려났다는 그 의미 말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 욕망에 이리저리 흔들릴때 하나님은 징계하지만 그 속에서도 긍휼을 잊지 않으신다는 뜻이다. 물론 유다 백성들을 향한 징계는 70년이 다 차야 했지만 여호야긴의 석방을 통해 소망의 하나님을 바라며 중심을 잡으라는 뜻이었다. 그들에게 참된 미래와 희망(렘29:11)은 오직 주님께 달려 있기 때문이다.
1953년생인 작가 한들은 올해로 67세다. 그의 글만 보면 왠지 어리숙하고 느리고 세상 기준에서 한 참이나 모자란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하늘의 사랑을 받는 게 아닐까 싶다. 그는 작은 것에 하나에도 기쁨과 깨달음을 얻고 산다. 그만큼 하늘 아래 겸손한 삶을 살고 있는 그다.
글은 그 사람의 얼굴이라고 한다. 그의 책을 읽고 있으면 그의 순수하고 따뜻한 심성이 얼굴이 그려진다. 그만큼 그는 자기 마음에 밀려드는 세상 욕망을 끊임없이 비워내고 있다. 그가 쓴 명곡들은 그래서 하늘에서 선물로 빌려준 게 아닐까? 세상이 복잡하고 흔들릴수록 미래와 희망되시는 주님께 마음 중심을 두고 우직직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1)https://www.worldhistory.org/Nebuchadnezzar_II/
2)https://www.chabad.org/library/article_cdo/aid/2836114/jewish/Under-Babylonian-and-Persian-Rule.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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