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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11장까지는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는 교리적인 부분에 관한 말씀이고, 12-16장까지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실천부분에 관한 말씀이라고 했죠. 다만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진실된 삶도 오직 하나님 앞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속에 답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죠.
지난 시간에 읽은 로마서 12장을 통해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영역 중 네 가지 관계, 즉 하나님과의 관계, 우리 자신과의 관계, 서로와의 관계, 원수와의 관계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에 대한 총체적인 관점은 사랑이었죠. 한 마디로 하나님을 사랑하듯이 이웃과 원수까지도 내 몸처럼 사랑하며 사는 것 말입니다. 물론 우리 스스로의 의지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기에 하나님의 은혜의 이슬을 머금을 때에 사랑할 수 있다고 했죠.
오늘 읽은 로마서 13장은 권세자 곧 국가와의 관계, 율법과의 관계, 그리고 주님의 재림의 날에 대한 관계에 대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먼저는 국가 곧 권세자들에 대한 권면입니다. 1-2절입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바울은 먼저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이야기를 해 줍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하고 말이죠. 왜 그런 요구를 하는 걸까요? 국가의 권위가 하나님으로부터 유래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1절 중반절에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다’고 또 1절 하반절에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고, 그리고 2절 상반절에서도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권세자들 곧 권력을 잡은 통치자들을 향해 남녀노소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복종한다는 말은 그 아래에 거하라는 뜻입니다. 그 말은 위에 있는 자를 위에 있는 자로 인정하며 살라는 것이죠.
왜 그렇게 그들에게 복종해야 하는 것입니까? 그들의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물론 정치인들 가운데는 부도덕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들에게 복종하기는커녕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기 싫을 때도 있죠. 그런데도 그들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 자리를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 사람이 대통령일까? 왜 그 사람이 국무총리일까? 왜 하필 어처구니없는 그 사람이 장관일까? 하나님의 섭리가 그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바라볼 때 나의 판단기준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시각에서 그들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관점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심문받으실 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요한복음 19장 1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죠.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니”하고 말입니다. 그 포악하고 불의한 빌라도의 권력이라도 위에 계신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물론 빌라도는 자신에게 부여하신 하나님의 그 권세를 잘못 사용해서 예수님을 정죄하고 말았죠.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그의 권세조차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으로 믿고 받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통치자들이 어떻게 통치하든, 불의하게 통치할 때도 비굴하게 굴복하고 아무런 말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까? 그렇지는 않죠. 우리가 부도덕한 정권에 대해서는 대항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부도덕한 정치인에 대해 맞서야 하는 것이죠. 성경에는 그런 예들이 나와 있습니다. 애굽 왕 바로가 히브리인 산파들에게 사내 아이들이 태어나면 죽이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그때 그 산파들은 그들의 명령에 순종하기를 거부했죠.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을 어기고 남자를 살린지라”(출1:17) 뿐만 아니라 바벨론 느부갓네살 대왕이 모든 신하에게 금 신상에 엎드려 절을 하라는 포고령을 내렸는데, 그때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순종하기를 거부했죠. 그것은 곧 하나님 앞에 우상숭배와 같은 일이었기에 때문에, 풀무불에 던져질 지언정 왕의 명령에 따를 수 없다는 것이었죠. 또 있습니다. 페르시아 다리오 왕이 삽십 일 동안 아무도 자기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기도해서는 안된다는 칙령을 내렸을 때, 다니엘 역시 순종하기를 거부했죠. 비록 사자굴에 던져져 사자의 밥이 될지언정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겠다면서 왕의 명령에 불복종했죠. 그런가 하면 신약성경에 산헤드린 공회가 제자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전파하지 말라고 명령했지만, 사도들은 그들의 권세보다도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복음전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렇듯 불의한 통치자들의 행위에 대해서는 맞서는 지혜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권세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에 우선순위를 둬야 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상황에서라도 그들을 잠시나마 권세자로 세우신 하나님의 뜻을 먼저 바라보는 신앙의 관점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이 없으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서서 심판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게 되면 끊임없는 폭력의 악순환이 반복이 되고 마는 것이죠.
그렇다면 권세자의 자리에 있는 이들은 어떤 자세로 그 권세를 사용해야 할까요? 3-5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무슨 말씀입니까? 국가의 권세를 위임받은 자들은 하나님과 백성들을 두려워하며 섬기는 자세로 선을 행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하면 백성들이 선한 길로 나아갈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선을 증진하고 악을 억제할 수 있는지, 모든 권세자들은 하나님의 사자로서의 기능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하나님의 칼 곧 심판을 자초하는 일이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이 국가의 임무요, 국가의 권세자들이 하나님과 백성 앞에서 취할 자세라는 것입니다.
본문 6-7절입니다.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이것은 국가와 통치자들에 대한 긍정적인 개념이자, 곧 백성들이 행해야 할 바를 제시하는 말씀입니다. 성실한 그리스도인 시민은 국가의 권위에 복종하고, 그들을 존중하고. 세금을 납부하며, 국가의 복지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맡기신 국가를 통해 백성들이 선하고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역할을 맡은 통치자들 곧 국가를 위해서 크리스천 국민들은 기회가 되는 한 국가의 일에 적극적으로 성실하게 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종종 크리스천들 가운데에는 내세지향적인 신앙관을 지닌 크리스천들이 있습니다. 반면에 크리스천들 중에는 현실지향적인 크리스천들도 있습니다. 내세지향적이란 곧 죽어서 가는 천국에만 관심을 두는 신앙인이죠. 반면에 현실지향적인 크리스천이란 이 땅의 현실정치에 깊숙이 관여하는 신앙인을 일컫습니다. 진실한 크리스천은 둘다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신앙인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죠. 크리스천 신앙인이라면 죽어서는 가는 저 천국을 바라보면서도, 이 땅에서 내가 천국을 일굴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고 또 성실하게 행할 것을 성실하게 행하고, 그리고 나라와 통치자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사는 것 말입니다. 그리하여 이 땅에 보다 더 아름답고 선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 말입니다. 그것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국가와 통치자들을 향해, 또 크리스천 시민으로서 지녀야 할 가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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