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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WednesdaySermon/고린도전서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고전12:8-11)

by 똑똑이채널 2024.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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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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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예화)사랑의교회 제3회 한국교회 섬김의 날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신학생들까지 8천명 정도 참석했습니다.

한 번도 사랑의교회 예배당을 들어가 보지 못한 궁금증도 있었고 오정현 목사의 목회관점도 알고 싶어서 참석했습니다.

지난 20년간 오정현 목사님이 사랑의교회를 섬겨왔는데 큰 교회는 큰 교회대로 어려움이 있고 작은 교회는 또 작은 교회대로 어려움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오정현 목사님의 목회는 찬양목회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강대상에 사역자들과 장로들을 앉혀 주님을 바라보게 하는 목회 스타일은 쇼윈도우 같은 모습에서 좋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세미나 쉬는 시간에 교회 예배당 곳곳에 숨어 있는 8경을 감상하기도 했습니다.

그 중에는 성도들 가운데 미술계에 헌신한 직분자가 멋진 설치미술 작품을 전시해 놓은 게 있었는데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 모릅니다.

35m 높이에 6.5m폭의 스크린 판을 예배당 벽에 설치했고 위에서 아래로 빛이 떨어지고 폭포수가 떨어지고 그리고 달이 떨어지는 그림이었습니다.

얼핏 보면 그저 그림 같았지만 태초의 빛이자 예수님의 생명이 지구상에 떨어지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후에 지면에 비가 내리는데 순식간에 폭포수와 같은 비로 변했고 온 세상을 뒤덮는 홍수와 같은 비로 변했습니다.

저녁 무렵에는 반딧불과 나비가 날아들고 그리고 달이 하늘 위에서 바다에 떨어지고 그 달이 위로 올라가면서 이제 끝나는 설치미술 작품이었습니다.

 

(깨달음)왜 그런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까?

교회의 성도든 예배당이든 그 무엇 하나 저절로 세워지는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피와 땀의 헌신을 통해 하나씩 하나씩 세워지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각자의 달란트 곧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통해 더욱더 아름다운 교회를 세워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적용)그 은사가 어떤 은사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 아니겠습니까?

어떤 이에게는 말씀의 은사, 지혜와 지식의 은사, 믿음의 은사, 병고치는 은사, 예언의 은사, 신유의 은사, 또 긍휼히 여기는 은사, 섬김의 은사 등 다양한 은사들을 성령님은 선물로 주시는 분입니다.

그 은사로 자기 명예를 추구하라는 게 아니라 교회와 성도들을 더 헌신적으로 섬기도록 주신 것이죠.

그리하여 오직 하나님만이 영광받으시도록 말이죠.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포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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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장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묵상하기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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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배)고린도전서 12장은 영적 은사에 관한 말씀입니다.

바울은 1-2절 말씀을 통해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신령한 은사에 대해서 반드시 알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이방인으로 있을 때 이방 신전과 우상 앞에서 했던 행위를 교회 안에서도 그대로 행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말 못하는 우상 앞에서 이교도의 사제가 이끄는 대로, 신전 분위기에 휩쓸린 대로, 열광적으로 소리 지르는 모습을 교회 안에서도 그대로 행한 것이었죠.

교회 안에서 방언을 할 때도 이교도의 신전 앞에서 행하듯 무질서하고 광란적으로 성도들 앞에 과시하는 모습으로 행하기 때문이죠.

 

성령을 받은 자가 어떻게 분별없이 그렇게 행할 수 있냐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든지 성령으로 아니고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할 수 없다고 바울을 말했습니다.

그렇게 성령을 받은 자는 자의로 함부로 말을 내뱉은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말을 하는 자여야 하지 않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서로가 자기 은사가 크고 자신이 영적으로 깊다고 자랑하고 다닌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너희들이 성령님의 관점에서 생각지 않고 성령님보다 위에 서려고 하는 모습이지 않느냐 하는 것이었죠.

그렇기에 너희가 진정으로 성령을 받은 자라면 자기 은사나 지혜를 내세울 게 아니라 성령님의 기뻐하심을 따라 화평과 성도들의 덕을 좇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4절에서 은사를 헬라어로 ‘카리스마’(χάρισμα)로 썼는데 그것은 ‘선물’(gift)입니다.

은사를 가리켜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부른 까닭은 은사의 주체자가 철저하게 성령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뜻입니다.

임금이 신하에게 선물을 줄 때도 신하가 설령 못마땅하게 여겨도 그 선물의 주체는 임금에게 있는 것과 같은 격입니다.

 

(깨달음)물론 선물로 주시는 그 은사가 ‘여러 가지다’하고 말합니다.

‘여러 가지’로 번역된 헬라어 ‘디아이레시스’(διαίρεσις)는 ‘나눔’ ‘분배’(division)를 뜻하는 말입니다.

은사의 다양성(diversty)을 말하는 것 같지만 성령이라는 한 뿌리에서 나온 열매와 같은 것을 그런 다양성(distribution)을 말하는 것이죠.

성령님을 뿌리로 할 때 성령님께서는 당신의 것으로 분할해 주시지만 사람에게는 다 다른 형태로 나타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성령님께서 선물로 주신 은사는 인간의 자랑거리가 될 수 없는 것이죠.

 

(적용)7절에서 각 사람에게 다양한 형태의 은사를 분할해 주시는 것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하죠.

성령님께서 내게 은사를 주신 것은 나 개인의 유익을 위함도 있지만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고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정말 신령한 사람인가, 아니면 아직도 내가 신령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것은 공동체의 유익을 끼치고 있는 여부로 알 수 있는 것이죠.

그렇기에 저와 여러분들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과 공동체 앞에서 자기 은사와 자기 직분을 통해 겸손한 삶을 추구해야 신령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본문 8-10절까지는 은사의 종류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원해)지혜는 헬라어로 ‘소피아’(σοφία)로 ‘지혜’(wisdom)를 말하고 ‘지식’은 ‘그노시스’(γνῶσις)로 ‘지식’(knowledge)과 ‘이해’(understanding)를 칭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지혜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은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똑같이 읽는데 그 감추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입니다.

지식의 말씀은 그 깨달은 말씀을 내 삶에 적용하고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는 것입니다.

지혜의 말씀은 내가 성령을 읽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무릎을 치면서 깨닫는 것이죠.

그런데 삶의 현장에 가면 생각이 나야 하고 누군가 설명해줘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면 지식의 말씀이 부족한 것이죠.

 

(본문2)본문 8절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깨달음)믿음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더 큰 믿음을 갖기 위해서 우리가 의지적으로 노력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항상 어느 시점에서 뒤 돌아보면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 내가 더 큰 믿음을 가지려고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밖에 없도록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때 내가 하나님 앞에 씨름했던 것은 내 마음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이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내가 더 큰 믿음을 사모하면 사모할수록 되돌아 보면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사임을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병고치는 은사’가 있습니다.

헬라어 원문은 복수형(Plural)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이는 육체적인 질병만 의미하는 게 아니라 영적인 치유까지도 말하는 것입니다.

 

(본문3)본문 10절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원해)‘능력’은 헬라어로 ‘뒤나미스’(δύναμις)로 초월적인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9절에서 병고치는 은사를 이야기했으니까 여기의 능력이란 병고치는 은사는 아닌 것이죠.

성경에 능력 행하는 부분이 사도행전에 나오는데 바울이 구브로에 전도하다가 박수 엘루마의 눈을 멀게 한 일 있습니다.

그것이 능력 행함의 은사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이 나오는데 ‘예언’은 미리 예자가 아니라 말씀을 맡아 말씀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은사입니다.

엊그제 서울에서 내려오다가 어떤 목사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결혼했는데 아이가 생기지 않자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새벽에도 기도했는데 아이가 생겼습니다.

그 후에 더 열심히 헌신하는데 뭔가 잘 풀리고 건강마시자 사업도 너무너무 잘 되자 나태해지고 신앙이 게을러지는 것이었죠.

그 성도를 향해 그토록 간절히 기도해줬는데 신앙이 변질되니까 이제는 포기하기 되고 하나님께 맡기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신앙이 나타할 때 그 목사님이 겸손하라고,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얼마나 선포했겠습니까?

그때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다시 서게 되면 복이 되는 것이고, 그것이 말씀으로 시대와 상황을 해석해주는 것이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의 은사를 주시는데 무슨 말씀입니까?

지금 이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데 그것이 성령의 일인가, 아니면 악한 영에 사로잡혀서 한 것인가, 분별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함’의 은사를 주시는데 한 방언이 아니라 여러 방언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방언이 구체적으로 어떤 은사입니까?

그 다음을 보니까 ‘방언들 통역함을 주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순절 방언과는 다른 방언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순절 날 임한 방언은 세계 17개국에서 온 사람들이 자기네 말로 알아듣는 방언이었습니다.

하지만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임한 방언은 통역이 필요한 방언인 것입니다.

 

(깨달음)지금 바울이 여러 가지 은사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영들을 분별한다거나 방언들을 통역한다거나 하는 은사들은 중요치 않습니다.

그때는 기록된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기 때문에 누군가 해석하고 통역하면서 저 말이 성령의 말인지 분별을 해야 했죠.

 

하지만 오늘날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경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2천 년 전 성경이 없던 시절의 은사와는 다른 형태의 은사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이를테면 오늘날 아프리카에 선교사들이 가면 국내에서는 전혀 없던 신유의 은사가 나타나고 병자가 낫는 일이 허다하게 일어나죠.

왜 그렇습니까?

21세기를 사는 우리나라에는 의술이라는 선물을 주셨지만 그 나라에는 의술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유는 기도해서 낫는 것도 신유요 의술의 기술을 통해서도 낫는 게 신유에 해당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2천년 전과 은사의 형태도 지금의 은사가 본질은 비슷하지만 그 내용과 형태가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4) 본문 11절입니다.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깨달음)이토록 다양한 은사는 성령님께서 행하시는 일이요 성령님의 뜻대고 나눠주시는 것이란 말씀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말 성경에 빠져 있는 게 있는데 “각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나눠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100명 200명 다 모아 놓고 단체로 주시는 게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 인격적으로 대하시고 그 신앙 경륜과 자질을 보시고 그에게 필요한 은사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어떤 은사를 갖고 있다 할지라도 결코 나의 자랑거리가 될 수 없고 남의 은사를 경시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세상 적인 관점으로 볼 때 나는 보잘 것 없어 보일지라도 하나님 안에서는 나나 그나 귀한 은사를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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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은 우리에게 성령의 은사를 주셔서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은혜를 누리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은사는 성령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것이니 결코 너의 자랑이나 과시욕으로 삼을 수 없는 것 아니겠느냐?”

성령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그의 인성과 성품에 맞게 은사를 주신 것이니 그 은사로 높고 낮음을 따질 수 없는 것 아니겠느냐?”

주님께서 너에게 은사를 주신 것은 나만의 유익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주신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하지 않겠느냐?”

세상에서 받은 선물은 작아지고 소멸되지만 성령님께서 주시는 은사는 쓰면 쓸수록 커지는 법 아니겠느냐?”

지혜와 지식의 말씀도 믿음과 병고치는 은사도, 능력과 예언과 영분별과 각종 방언과 통역도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면 더 커지고 깊어지지 않겠느냐?”

그런 은사들은 본질은 같지만 각 나라의 각 지역마다 다른 모습을 나타날 수 있으니 그 다양성을 존중하고 영적인 분별력을 갖고 섬겨야 하지 않겠느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주님께서 너에게 맞는 특별한 은사가 있다면 그것을 더욱 개발하고 더욱 확대하여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 사용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것으로 너의 교만함을 삼을 게 아니라 성도들의 섬김을 위한 봉사의 삶으로 말이다.”

성령의 은사는 반드시 열매로 나타나야 하는 것이니 사랑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로 나타나길 소망했으면 좋겠구나.”

비록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그 은사를 자기 자랑과 교만의 도구로 삼았지만 성령님은 그 은사를 섬김과 봉사의 도구로 쓰기를 원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찬양)성령 하나님 나를 만지소서 상하고 깨어져 지친 나를

새롭게 하소서 성령의 바람 시들은 내 영 살리소서

성령 하나님 이 땅 고치소서 죄악의 어둠 속 헤매는 우리

태워주소서 성령의 불로 세상 헛된 맘 태우소서

임하소서 성령 하나님이시여 지금 이곳에 임하소서

바람처럼 불처럼 성령이여 임하소서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알맞은 은사를 주시는 분입니다.

그 자녀의 성품과 인격과 성향에 맞는 은사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세워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어떤 이에게는 지혜와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믿음의 은사와 예언과 병고치는 은사, 섬김과 긍휼의 은사등 다양한 은사를 주십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각자에게 맞는 은사를 주신 주님의 뜻을 따라 교회와 성도들을 잘 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때 교회는 이전보다 더 아름다운 교회로 주님께서 세워가실 줄 믿습니다.

그런 은총의 주인공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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