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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7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겪는 내적 갈등과 번민이 나와 있었죠. 반면에 로마서 8장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이들이 누리는 승리와 영광을 다룹니다. 이 같은 내용을 다루기 때문에 로마서 16장 가운데 8장이 가장 중요한 장으로 꼽히죠. 어떤 신학자는 성경 한 권을 몽땅 잊어버려도 로마서 8장만 기억하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데 무리가 없다고 하기도 하죠. 그만큼 로마서 8장이 중요하다는 뜻이죠.
로마서 8장 1절은 “그러므로.”라는 단어로 시작합니다. 이 단어가 로마서 7장 전체를 받고 있는 셈이죠. 그만큼 7장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으면 8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죠. 로마서 7장의 기초 위에서 로마서 8장이 시작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 우리는 로마서 7장을 마무리하면서 세 가지 교훈을 얻었습니다. 첫째로, 그리스도인과 성화의 관계였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사람은 성화, 곧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죠. 거룩한 삶이란 율법의 내용과 정신을 실천하는 삶이죠.
둘째로, 그리스도인과 자기 발견의 문제였죠. 바울이 복음의 진리를 깊이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정확하게 알았기 때문이죠. 만약 바울이 자기 자신을 스스로 의를 행할 수 있는 존재라고 착각했다면,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바울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죄인이요 ‘에노스’ 곧 죽을 수밖에 없는 무력한 존재임을 알게 될 때 복음의 진리를 정확하게 깨닫게 되죠.
셋째로, 그리스도인과 갈등의 문제였죠.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마음 속 갈등을 고통스럽게 토로했죠. 그 갈등은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없던 것인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하나님의 자녀로 살지 못하여 생긴 갈등이죠. 이 갈등이 크면 클수록 우리는 주님을 더 바라보게 되고, 하나님의 법에 더 단단히 묶이게 되죠. 그리고 회개를 거쳐 성화의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죠.
이상 세 가지 내용의 공통된 핵심은 우리가 하나님의 법에 묶여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토대 위에서 로마서 8장이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1절) ‘이제’라는 단어는 성경 전반에서 중요한 의미로 사용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지금 믿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지금 내가 주님을 향하고 있습니까, 세상을 향하고 있습니까? 지금 내 마음이 하나님의 법을 향하고 있습니까, 세상의 법을 향하고 있습니까? 이처럼 지금 나의 상태가 중요하죠. 주님깨서 언제 오시든지 내가 바로 서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법에 늘 묶여 살아야 하죠.
그 다음 구절인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그리스도 예수를 닮는 것을 삶의 목표로 하는 사람이죠. 주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하죠. 여기에서 ‘정죄’라는 헬라어 단어 ‘카타크리마’는 ‘형벌’ ‘심판’이라는 뜻입니다. 바꿔 말해,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에게는 필경 형벌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어떤 정죄함도 없다고 하죠. 이유가 무엇인가?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2절)
여기에서 서로 대립되는 두 가지 법이 있죠. 하나는 성령의 법 곧 생명의 법이고, 다른 하나는 죄의 법 즉 사망의 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법이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 안에 있으면, 우리에게 형벌이 있을 수 없죠. 여기에서 중요한 단어가 ‘해방’입니다. 생명의 법이 사망의 법을 ‘폐지’한다고 하지 않고, 사망의 법에서 ‘해방’한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죄의 법, 사망의 법은 여전히 이 땅에서 효력을 미치며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갑니다. 그러나 사망의 법이 아무리 흥왕해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그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간부터는 성령님께서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신다 해도, 우리가 과거에 지은 수많은 죄는 어떻게 해결받을 수 있는 것일까요? 그에 대한 답을 3절에서 해 주고 있습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하나님 아버지께서 인간에게 의로운 법을 주셨는데, 타락한 인간은 스스로 그 의를 알 수도 없고 지킬 수도 없죠. 그래서 ‘육신에 죄를 정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으로 하여금 우리의 죄를 짊어지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형벌을 대신 받게 하심으로, 우리가 이전에 지은 모든 죄를 해결해 주신 것이죠.
본문 5-6절은 생명의 법과 사망의 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고 있고, 생명의 법을 따르는 삶과 사망의 법을 따르는 삶이 어떤 차이가 나는지를 말씀해 줍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이 왜 사망입니까? 육신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죄의 법에 매여 있는 사람이죠.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육신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그 삶이 겉으로 아무리 우아하고 화려해도 결국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7-8절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육신을 좇는 자녀들의 생각을 원수처럼 보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신을 좇는 동안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는 것은 불가능하죠.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마음속에 담겨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본문 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는 것이죠.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마음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절대로 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지 않는 사람은 육신을 좇을 수밖에 없고, 육신을 좇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원수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마음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신다는 것이 어떤 증거로 드러나게 될까요? 첫째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함으로 둘째는 신령한 생각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면, 가정에서나 일터에서 내가 가졌던 해묵은 생각들이 바뀝니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우리가 하루에 2만 여 가지의 생각을 한다고 하는데, 오늘 아침에 일어나 하루를 마감할 때가지 수많은 생각들을 하겠죠. 그 중에 주님을 위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한 생각이 얼마나 되는지, 순간 순간 묻고 선택하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그것이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영'입니다. 아홉 번 등장하죠. 바울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영을 강조합니다. 바울이 어떻게 영에 주목하게 되었을까요? 로마서 7장에는 ‘나’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나왔습니다. 바울이 자기 자신을 바르게 인식함으로 성령님을 바라보는 삶을 좇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은 돌아보니 흉측한 죄인 중에 괴수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자기 속에는 선을 행할 능력도 없고 생명을 살릴 능력도 없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달은 것이죠. 그때 비로소 성령님을 좇아 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헬라어로 ‘좇다’라는 단어는 ‘성령님을 따라 걷다’는 뜻입니다. 걷는다는 것은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행위죠. 평소에 우리가 성령님을 좇는 훈련을 반복하면 어떤 경우에서든지, 언제든지 육신이 아닌 성령님을 좇아 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오늘도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반복 훈련하며 좇아갈 수 있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임재하고 계시는 주님을 체험적으로 믿고 의지하며 살 수 있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주님. 하나님 아버지께서 저희에게 의로운 법을 주셨지만 타락한 저희들은 스스로 그 의를 알 수도 없고 지킬 수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받을 형벌을 대신 받게 하심으로 저희들의 모든 죄를 해결해 주심 감사드립니다. 이제부터는 죄에 매여 살지 않게 하시고 저희 마음 속에 거하시는 성령님의 뜻을 좇아 살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무슨 생각이든 신령한 생각으로 드러나게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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