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SMALL
본래 인간은 하나님의 아름답고 선한 계획에 의해 창조되어, 행복한 삶을 누렸습니다. 인간을 창조하신 후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1:31)하고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나 첫 사람 아담의 교만과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죄를 지었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채 그 후손인 모든 인간에게 고통과 아픔이 들어왔고, 심판을 받아 죽음과 영원한 형벌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본문 12절에서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그런데 어떻습니까? 사람들은 그런데도 죽음의 이유를 알지도 못한 채 당연한 운명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죽음의 원인이 되는 죄가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한 채 살아가죠.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은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의 존재도 모르고 있거나, 알고 있다고 해도 믿지 않은 채 ‘무신론자’로 살아가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율법을 통해 죄악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셨고, 그들에게 회개의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바로 13절 말씀이 그것입니다.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런데 어떻습니까? 율법을 안다고 해서, 율법을 지킨다고 해서, 완전한 죄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죄인인 인간은 자기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죠. 물론 사람이 죽음으로서 죄의 대가를 치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죽음으로서 그저 멸망하는 것일 뿐입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영원히 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스스로는 여기에 도달할 수 없죠. 그래서 인간은 죄와 죽음, 고통과 절망 속에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근원적인 죄악과 본질적인 한계 안에 살다가 반드시 죽는 게 인간의 삶이죠. 다만 ‘조금 일찍 가느냐?’ 아니면 ‘조금 더 있다 가느냐?’ 하는 시간 차이만 있을 뿐, 모든 인간이 죽음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는 존재죠.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이심으로, 우리의 죄값을 치르게 하셔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 곧 구원의 길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이 사실을 진심으로 믿고 따르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라고 여겨 주시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그런 자들에게 오늘도 주님은 영원한 생명을 보장해 주시는 분이시죠.
단지 믿기만 하면, 단지 우리를 향한 주님의 그 사랑을 받아들이고 의탁하기만 하면, 그 믿음으로 우리를 의롭게 여겨주시는 분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되고, 죽음과 죄의 심판으로부터 해방되게 해 주셔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는 소망을 갖게 하시는 것이죠.
요한복음 1장 12절을 통해 그런 약속을 해 주신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또한 요한1서 5장 11절과 12절에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우리의 죄값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 아들을 믿는 자, 그 아들을 모시고 사는 심령에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와 영원한 생명의 은혜를 부어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런 자들에게는 어떤 환란과 고통이 뒤따른다 해도 마음 속에 평화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런 뜻에서 볼 때 진정한 신앙은 고통의 현실을 넘어서서 궁극적인 소망을 발견하고, 그 안에 기쁨과 평화를 누리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저 자신만 봐도 그런 구원의 특혜를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게 아닙니다. 저의 인격이 고매한 것도 아니고 생활이 건실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죠. 세상에서 대단히 뛰어난 지식을 가진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에게 커다란 공헌을 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영원한 생명의 특권을 받았습니다. 왜죠? 특별한 행위에 있는 게 아니라 죄인인 나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복된 소식을 믿기 때문이죠. 그 소식과 그 은혜는 값 없이 주어진 선물과 같은 것이죠. 그 사실을 본문 15절이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제가 아는 어떤 목사님이 용인에 있는 샘물 호스피스 병원에 문병차 다녀온 일이 있습니다. 어린 아이와 남편을 둔 젊은 엄마가 말기 암으로 입원해 계셨던 것이죠.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를 두고 고통 속에 누워계시는 그 분을 볼 때 너무 마음이 무겁고 어려웠다고 하죠. 그런 고통스런 상황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도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 성도님에게 그 어떤 인간의 위로와 안부가 힘이 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겠죠. 하지만 천지를 지으시고, 우리의 생명을 만드신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마음을 나누는 것이 그 분에게 궁극적인 위로와 해답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결론 부분인 21절에서 이렇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이 본문은 우리에게 두 가지 권세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아담으로부터 전해진 죄와 사망의 권세입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님으로부터 나온 은혜와 의의 권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어느 권세 아래에 속해 있는가, 그것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은 친히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5장 24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우리가 이 말씀을 믿기만 하면,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게 되는 것이죠. 말기 암 환자인 성도님은 그런 구원의 확신을 갖고 계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을 잃지 않았다고 하죠. 왜 그렇겠습니까? 더 이상 그 분을 죄가 죽음으로 왕 노릇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죄와 죽음에 의해 지배당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본문 21절의 새번역성경을 보면 그 뜻이 더욱 분명해 집니다. “그것은, 죄가 죽음으로 사람을 지배한 것과 같이, 은혜가 의를 통하여 사람을 지배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는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의를 통해 우리를 다스려주시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실 용인의 샘물 호스피스에 입원한 그 분만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게 아니라 우리도 시한부 인생이기는 마찬가지죠. 주님께서 오늘이라도 우리의 코끝의 호흡을 거두어가시면 당장이라도 영원한 나라로 가야 할 인생들이죠.
그런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기뻐하는 것이죠. 어떤 환란과 역경 속에서도 참고 인내하며 주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아들의 생명이 그 안에 있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주님께서 주시는 생명과 소망으로 이 세상을 이기며 사는 복된 하루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으로 죄와 사망의 심판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과 막힌 담이 허물어지고 그 관계도 회복케 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생명이 저희의 심령 안에 살아 역사하시길 원합니다. 그 생명으로 심판에 이르지 않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셨음을 믿습니다. 오늘도 저희의 인생 속에 어떤 환란과 역경이 몰아쳐와도 주님의 생명과 소망을 이길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728x90
반응형
LIST
'새벽묵상DewSermon > 로마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4년 10월 8일 3분새벽묵상_시한부 인생(롬5:21) (1) | 2024.10.06 |
---|---|
그의 죽으심과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롬6:1-11) (1) | 2024.10.06 |
2024년 10월 4일 3분새벽묵상_흔들리는 심령을 붙잡 주시는 은혜(롬4:1-2) (1) | 2024.10.03 |
환란 중에도 즐거워하나니(롬5:1-11) (0) | 2024.10.03 |
할례시나 무할례시냐(롬4:1-25) (0) | 2024.10.0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