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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사도행전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행16:1-10)

by 똑똑이채널 2024.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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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전도여행 후 수리아 안디옥교회에 붉어진 문제를 제1차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매듭을 잘 지었습니다. 그 후에 2차 전도여행을 떠나려고 하는데, 바울과 바나바의 의견이 상충되고 심히 다투게 되었죠. 결국 두 팀으로 나누게 되었습니다. 바나바는 요한 마가를 데리고 수리아 안디옥교회에서 배를 타고 구브로 섬으로 가는 여행길이었습니다. 그곳은 바나바와 요한 마가의 고향이기도 하죠. 그런가 하면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선교여행을 떠나죠. 그때 바울팀이 나선 길목은 뱃길이 아닌 도보였습니다. 바울팀은 수리아안디옥교회에서 출발해 그 위쪽 지역인 수리아 지역들을 돌았고, 이어서 바울의 고향 길리기아 다소로 나아갔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그 이후의 바울팀에 관해 조명해 주는 말씀입니다. 뭐랄까요? 카메라의 시선이 바나바팀에게 비추는 게 아니라 바울팀에게 비추는 모습입니다. 왜죠? 거기에 더 중요한 초점이 있었기 때문이겠죠.

본문 1절입니다.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여기에 나오는 ‘더베’와 ‘루스드라’는 어떤 곳입니까? 이곳은 바울과 바나바가 제1차 전도여행을 통해 2년간 돌아다녔던 갈라디아 남부지역들입니다. 바울은 제1차 전도여행 때 배를 타고 구브로로 맨 처음 갔고, 그곳 구브로에 ‘바보’에서 바예수라는 거짓 선지자의 눈을 멀게 하는 기적을 행했고, 이후 그곳에서 배를 타고 밤빌리아의 ‘버가’에 당도했죠. 그런데 ‘버가’의 해안가 기후로 바울의 몸에 병이 생겼는데, 그곳에서 험난한 타우로스 산맥을 넘어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가서 복음을 전했죠. 물론 그곳에서 쫓겨나 ‘이고이온’ 지역으로 내려와 복음을 전하죠. 하지만 그곳에서도 핍박을 받고 이제는 ‘루스드’라고 옮겨왔는데,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놀라운 기적을 행했죠. 그런데 그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온 유대인들이 바울에게 돌을 던져 바울이 죽게 되었죠. 하지만 주님의 은혜 속에 바울은 다시 살아났고 곧장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복음을 전했죠. 그리고 이제 역에서 그곳 더베에서 루스드라로, 이고니온으로,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버가로, 그리고 버가의 아랫 지역 항구인 앗달리아 배타고 수리아 안디옥교회로 돌아오는 1차선교여행의 길목이었죠.

그런데 바울은 지금 2차 전도여행의 길목을 어떤 노선으로 정하고 있습니까? 수리아안디옥교회의 위쪽 수리아 지역들, 길리기아 다소, 그리고 이제 1차전도여행의 맨 마지막이었던 ‘더베’를 맨 먼저 방문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루스드라’로 가게 되는 상황이죠. 그 다음은 이고니온-비시디아 안디옥‘ 바로 그런 순으로 돌아볼 생각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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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권성권 -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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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금 ‘더베를 지나 ‘루스드라’에 이르렀을 때 누구를 만난 것입니까? “디모데”라는 주님의 제자를 만난 것이죠. 디모데는 이때 이미 “주님의 제자로 살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바울의 2차 전도여행 전부터 말입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학자들의 추정에 의하면 바울이 디모데를 만났을 당시 디모데는 10대 청소년에 불과하다고 여깁니다. 그런데도 그를 주님의 ‘제자’로 여기는데 그 이유가 뭘까요? 본문 1절 하반절은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하는 것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이방인이었을지라도, 그 어머니가 신앙심이 깊은 유대인이었다는 뜻입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디모데후서 3장 15절에서는 그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배우고 알았”다고 증언하는데, 디모데후서 1장 5절에는 이렇게 증언하죠.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디모데가 어려서부터 주님의 제자로 살았던 것은, 그가 어려부터 외할머니와 어머니를 통해 성경도 배우고, 신앙의 깊이도 깨닫게 된 까닭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디모데를 바울이 2차 전도여행의 ‘루스드라’에서 만난 것입니다.

그런데 디모데의 신앙심이 얼마나 좋았던지 그의 고향 ‘루스드라’ 뿐만 아니라 그 인근의 ‘이고니온’ 지역까지 소문이 나 있었음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 까닭에 바울이 어떻게 합니까?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게 하죠. 왜죠? 사실 바울은 무할례주의자였습니다. 그런데도 굳이 디모디에게 할례를 시행케 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1차 전도여행때 경험한 것 때문이죠. 같은 유대인들을 만나면 할례라는 공통점을 찾아 더 많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말입니다. 그런 공통점이 없었기에 많은 어려움을 당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래서 이제 헬라파 유대인인 실라, 그리고 할례를 행한 헬라파 유대인인 디모데, 그리고 둘을 데리고 세 명이 한 팀이 되어 ‘루스드라’에서 어디로 향합니까? 1차 전도여행지의 역순으로 따라, ‘이고니온’으로,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그리고 이제 갈라디아남부 지역의 첫 번째 지역이었던 부르기아의 ‘버가’로 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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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권성권 | 북팟- 교보ebook

하루 한 장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묵상하기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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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본문 6-7절입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바울은 본래 ‘비시디아 안디옥’에 도착해서 그곳 인근의 ‘부르기아’ 지역, 그리고 그 갈라디아의 왼쪽 지역인 ‘무시아’에서 복음을 전하고, 이제 부르기아의 위쪽 다시 말해 ‘비시디아 안디옥’의 위쪽인 지금의 흑해 남부지역인 ‘비두니아’로 가서 복음을 전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예수의 영, 곧 성령님께서 그 길목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죠. 대신에 어떻게 이끄십니까? 본문 8-10절입니다.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바울은 제2차 전도여행을 진행하며 당시의 아시아 지역에 복음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성령님께서는 지금 바울로 하여금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신 것이죠. 오히려 마게도냐 사람에 관한 환상을 보여주며 그가 전혀 계획하지 않았던 마게도냐로 발걸음을 옮기라고 하시는 상황입니다. 마게도냐는 아시아가 아닌 유럽을 향한 관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보인 반응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곧바로 순종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어떻습니까? 바울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하는 신앙교훈이 무엇입니까? 바울은 자기 자신이 선교사역의 주체가 아닌 객체임을 잊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 자신들도 내가 내 인생의 주체가 아닌 주님의 객체라는 사실을 늘 잊지 않는 게 중요하죠. 그래서 나 보기에 좋은 길이 아닌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길을 택해 하는 것 말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제자훈련'이라는 이름하에 신앙교육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성경의 지식을 배우는 모임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죠. 진정한 제자의 모습은 성경의 지식을 공부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그 말씀에 ‘순종’하는 데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나 자신은 주님의 참된 제자인지 아닌지, 겉모습만 그리스도인인지 아니면 속사람도 그리스도인인지, 어떻게 그 여부를 우리 스스로 알 수 있겠습니까? 내 마음의 계획과 주님의 뜻이 대치될 때, 과연 나는 바울처럼 그 궤도를 수정하여 순종하는 자인가, 그렇지 않는가, 하는 점이겠죠. 저와 여러분들은 바울처럼 주님의 이끄심에 순종하는 속사람의 심령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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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긴과 보아스 | 권성권 | 북팟- 교보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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