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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바울 일행의 1차 전도여행을 살피는 중에 있습니다. 바나바의 조카 요한 마가는 버가에서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가려던 바울 일행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버렸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아픈 몸을 이끌고 자기 일행과 함께 험난한 타우로스 산맥을 넘어 비시디아 안디옥에 당도했죠. 그리고는 곧장 안식일이 되어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곳에 모인 유대인들과 이방인 유대인들은 여태 그런 생명의 복음 곧 은혜의 복음을 듣지 못한 터라 모두가 놀랄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그곳의 유대인들은 바울 일행이 전하는 주님의 복음에 시기심이 들끓었고, 그로 인해 시내의 유력자들을 선동해 바울과 바나바를 쫓아내버렸습니다.
그때 바울 일행은 이고니온으로 옮겨가서 복음을 전하게 되죠. 이고니온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동남쪽으로 180km나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곳입니다. 바울 일행은 그렇게나 먼 거리를 도보로 이동했는데, 그곳에서도 유대인의 회당을 찾아 복음을 전합니다. 그런데 바울 일행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겪었던 일과 똑같은 일을 이고니온에서도 겪게 됩니다. 본문 1-2절입니다.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그러나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
바울 일행이 복음을 전했을 때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믿고 따랐던 것처럼 이고니온에서도 복음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처럼 이고니온에서도 ‘순종하지 않는’ 유대인들은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대적해서 모함하고 무리들을 선동한 것이죠.
하지만 바울 일행은 그들에게 굴복당하지 않았습니다. 본문 3절에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
바울과 바나바 곧 바울 일행은 그곳 이고니온에서 겪는 핍박과 박해 앞에서도 더욱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그만큼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언제나 반대자들의 위협이 있다는 것을 바울 일행이 감수한 것입니다. 왜일까요? 복음에는 ‘심판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접했을 때 그 복음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나뉘는 것이 그것입니다. 복음 앞에서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복음을 거부하고 핍박하는 불신앙이 있기 마련입니다. 바로 그와 같은 복음의 심판성을 믿기에 핍박과 박해 앞에서도 바울 일행이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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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일부 유대인들은 바울과 바나바가 전한 복음을 듣고 극렬하게 반대의사를 표시합니다. 그들은 복음을 거부하고 핍박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 스스로 복음과는 상관없는 자들, 곧 영생을 주기로 작정되지 않은 자로 스스로 자처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반대는 매우 위협적이었고 죽음을 불사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본문 5절에서 그들의 모습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리들이 두 사도를 모욕하여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무엇을 일깨워주는 것입니까? 유대인들뿐 아니라 이방인과 그 관리들까지 합세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죽이려 했던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에 의해 선동된 자들입니다. 그 관리들은 유대인들의 모함으로 거짓된 정보를 가지고 바울과 바나바를 잡으려 한 자들입니다. 그런 행정 당국의 묵인 하에 바울과 바나바는 모독을 당하고 돌에 맞아 죽을 위기에 처했던 것이죠.
그런 핍박과 박해를 받은 바울 일행은 이고니온을 떠나 루가오니아 지역으로 갑니다. 본문 6절에서 그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들이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가서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 왜 바울 일행이 핍박과 박해 앞에서 또 다른 곳으로 옮겨가 복음을 전합니까? 복음은 한 번 전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평생토록 전해야 하는 생명의 복음이기 때문에, 그렇게 계속 복음을 전하는 것이죠.
그런데 본문 8절에 놀라운 희소식을 보여줍니다.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하던 바울은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 곧 선천성 하반신 장애인을 만난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경청하며 빠져들었고,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그의 영적 변화를 감지한 바울은 그를 향해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고 말했고, 바울의 말대로 그는 일어나 걷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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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광경을 지켜보았던 사람들은 경악하게 되었습니다. 이제까지 그런 역사가 일어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그들은 바울을 헤르메스로 바나바를 제우스 신으로 여기고 그들에게 제사를 드리며 경배를 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을 제지하면서 본문 15절을 통해 이렇게 말합니다.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바울은 자신들 역시 그들과 같은 성정을 지닌 ‘사람’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 그리고 믿음이란 눈에 보이는 ‘헛된 일’을 버리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것임을 말해준 것입니다. 그만큼 복음을 전했을 때 일어나는 놀라운 기적과 능력들은 자신들의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기적과 능력이 하나님의 것임을 잊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이것은 목회자도, 그렇고 평신도들도, 늘 경계해야 할 부분입니다. 주의 복음을 전하고, 누군가에게 기도해 줬을 몇 몇 표적이 나타나고 기적이 나타나 고침을 받을 때, 자기 스스로 교만해지는 그 마음을 내려놓는 것 말입니다.
그렇게 바울 일행이 루스드라의 사람들이 자신들을 경배하려는 그 행동을 제지하고 바른 믿음에 대해 일깨워줬는데,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본문 19절입니다.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호사다마라고 하듯이 그 놀라운 복음의 능력을 경험한 바울이었는데, 이전에서 복음을 전했던 안디옥과 이고니온 지역에 유대인들이 그곳까지 좇아와서 바울을 돌로 쳤던 것입니다. 이 때 얼마나 심하게 돌로 내리쳤는지 바울은 쓰러져버렸고, 그들은 바울이 죽은 줄 알고 시외로 끌어다가 던져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본문 20절에서는 바울이 혹시 숨을 거두었으면 장례를 치러주기 위해 제자들이 모였는데, 바울은 그들 가운데서 일어나 그 성읍으로 다시 들어갔고,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주님의 복음을 전했다고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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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1-28절은 여태껏 1차 전도여행을 누비며 복음을 전했던 곳들을 다시금 돌아보면서 수리아 안디옥으로 되돌아오는 길목을 전해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른바 더베에서 루스드라로, 루스드라에서 이고니온으로, 이고니온에서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버가로, 버가에서 앗달리아로, 그리고 앗달리아 항구에서 배를 타고 최초 목회지였던 수리아 안디옥교회로 다시금 돌아온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1차 전도여행이 약 2240km의 여정길이요 2년 동안에 걸쳐 전한 길목입니다. 이 길목을 통해 갈라디아교회가 세워진 것이죠. 이때 온 마음을 열고 바울이 전한 복음을 받아들인 이들도 있었지만, 유력자들을 선동해 바울을 고소하고 돌로 쳐 죽인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그 복음을 포기하지 않고 전했습니다. 주님의 복음이 영생의 복음이기 때문에, 주님의 은혜의 손길이 자신과 함께 함을 믿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2024년도의 우리의 삶에 어떤 상황과 환경이 닥쳐오더라도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주님의 은혜의 손길을 의탁하면서,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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