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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예화)어떤 어머니가 아들을 군대에 보낸 후에 너무나 염려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 모습을 본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은 익살스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댁의 아들은 앞으로 후방에 배치되거나 아니며 전방에 배치될 것입니다.”
“후방에 배치되면 별로 염려하실 필요가 없고 전방에 배치되면 조금은 염려가 되겠지요.”
“그러나 전방에 배치되어도 둘 중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전방에서도 덜 위험한 곳이나 위험한 곳에 배치될 것입니다.”
“덜 위험한 곳에 배치되면 크게 염려하실 필요가 없고 위험한 곳에 배치되면 조금은 염려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위험한 전방에 배치되어도 둘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부상당하거나 부상당하지 않거나 할 것입니다.”
“부상당하지 않으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될 것이고 부상당하면 조금은 염려가 되실 것입니다.”
“그러나 부상당해도 둘 중 하나 될 것입니다.”
“회복되거나 아니면 죽거나 할 것입니다.”
“회복되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되고 죽는다면 염려해 봐도 소용이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제발 염려하지 마시고 사십시오.”
(깨달음)맞는 말이지 않습니까?
우리 인생을 살아가는데 염려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어니 젤린스키라는 심리학자가 염려를 분석한 결과를 다음과 같이 발표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염려하는 내용의 40%는 현실에서 결코 일어나지 않을 가상의 일입니다.
또 30%는 이미 과거에 일어난 일입니다.
20%는 염려하지 않아도 될 사소한 것들입니다.
4%는 걱정해도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들입니다.
나머지 4%만이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들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그만큼 우리가 염려하는 내용의 96%는 쓸데 없는 염려와 걱정이라는 것입니다.
(적용)우리 인생의 앞날에 어떤 일이 닥칠치 누가 염려나 걱정을 하지 않고 살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 염려와 걱정을 내가 한다 한들 실은 96%가 쓸데 없는 것들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니 그 염려와 걱정을 우리 마음 속에 몰아내는 게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오직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채우는 것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속에 있어야 내 심령이 평안하고 든든히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속에 있어야 내가 그 말씀을 좇아 기도하면서 걱정과 염려를 몰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깊은 호수에는 아무리 돌덩이를 던져봐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얕은 길 웅덩이는 돌덩이 하나를 던져도 물이 다 튕기지만 깊은 곳은 절대 흔들림이 없습니다.
그 심령을 하나님의 말씀이 깊이 감싸고 있는 사람은 아무리 염려와 걱정의 돌덩이가 날라와도 흔들림이 없는 법이죠.
그만큼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포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116349
(역배)시편은 이스라엘의 역사 전반을 다루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전승에 따르면 시편 139편은 아담이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시편 110편은 멜기세덱이 쓴 것으로, 시편 89편은 아브라함이 쓴 것으로, 시편 90편은 그 내용 그대로 모세가 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외에도 다윗과 솔로몬과 다윗 이후의 찬양대원들이 쓴 시편도 많이 있습니다.
그 모든 시편들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물론 어느 한 시대의 역사를 담고 있는 게 아닙니다.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 대대적인 편집과정을 거쳐 오늘날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죠.
시편은 총 다섯 권으로 나눕니다.
시편1편~41편까지 제1권, 시편42~72편까지 제2권, 시편73~89편까지 제3권, 시편90~106편까지 제4권, 시편107~150편까지 제5권입니다.
1권은 1편과 2편과 10편과 33편을 빼고는 모두 다윗이 쓴 시입니다.
하나님의 이름도 ‘엘로힘’도 있지만 ‘야훼’라는 이름이 훨씬 많습니다.
엘로힘은 공동체가 부를 때 사용하는 하나님 이름이고 야훼는 개인이 부를 때 사용하는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제2권은 시편42~72편인데 그 중에 43편의 작자미상을 제외하고 모두 고라 자손이 쓴 시입니다.
고라 자손은 광야시절 이동식 성막의 기구를 어깨에 매고 다녔는데 불평과 원망을 하다가 다단과 아비람과 함께 반역을 꾀하다가 지진이 일어나 땅이 집어 삼켜 죽임당했죠.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속에서도 후손을 살려주셨고 훗날 다윗의 성전시대에 성전에서 섬기면서 찬양시를 쓴 겁니다.
제2권에서는 야훼보다 엘로힘이라는 하나님의 호칭이 훨씬 많이 나옵니다.
제3권은 시편73~89편까지인데 시편73~83편까지는 아삽이, 시편84~88편까지는 고라 자손이 쓴 시입니다.
물론 시편 86편은 다윗이 쓴 시편으로 나와 있습니다.
제3권의 하나님 호칭은 야훼가 44회 엘로힘이 43회 기록돼 있습니다.
그만큼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부르고 의지하기도 하고 공동체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의지하고 기도하는 것이죠.
제4권은 시편90~106편까지인데 시편101과 103편은 다윗이 쓴 시이고 시편90편은 모세가 쓴 시이고 나머지는 작자 미상입니다.
하나님의 호칭도 야훼가 104회 엘로힘이 7회 기록돼 있습니다.
마지막 제5권은 시편107~150편까지인데 특별히 시편119편은 하나님의 율법 곧 말씀에 관한 시입니다.
제 5권은 야웨라는 호칭이 236회 엘로힘이라는 호칭이 7회 나옵니다.
그처럼 총 150편을 담고 있는 시편은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처럼 모세오경처럼 다섯권으로 분류하죠.
그 중 1권과 2권과 3권은 바벨론 포로 이전의 시로, 제4권은 바벨론 포로기의 시로, 제5권은 바벨론포로 이후의 시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물론 중간 중간에 섞여 있고 하나님의 이름도 개인적으로 야훼로 부르기도 하고 엘로힘으로 공동체가 부르기도 합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60620580
(전개)그 중에서도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19편은 율법의 시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시입니다.
율법에 관한 시는 시편1편과 시편19편 그리고 시편119편입니다.
그것을 통칭 ‘토라시’라고 부릅니다.
히브리어 ‘토라’가 곧 율법이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율법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로 해야 그 인생이 바로 설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근간으로 해야 한 가정도 자녀들도 일터와 사업장도 바르게 세워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시편 127편 1절에 그런 말씀이 나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하나님께서 가정을 세워주셔야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을 지켜주셔야 사업도 기업도 국가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야 파수를 보는 사람이 헛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정을 세워가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업도 세워가야 하고 나라도 세워가야 한다는 뜻이죠.
그 말씀이 깊이 뿌리내려 있으면 깊은 호수에 돌맹이를 던져도 흔들림이 없이 가정도 사업장도 나라도 흔들림이 없다는 뜻입니다.
(본문)오늘 시편19편은 다윗이 쓴 ‘토라시’인데 본문 7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시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원해)여기에 영혼을 ‘소성시키신다’는 히브리어 ‘슈브’(שׁוּב)는 ‘돌아가다’(turn back) ‘회복시키다’(restored)는 뜻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이 왜 완전하다고 말씀합니까?
그 영혼이 하나님께 돌아설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고 그 영혼이 하나님께 돌아가면 그 영혼을 회복시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서는 죽은 영혼이 살아나고 병든 영혼이 치유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자연계의 식물을 살리는 햇볕과 같고 인간의 영혼을 치유하는 광선과 같은 것입니다.
(원성)그래서 구약과 신약성경에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말4: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히4:12)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1:23)
(깨달음)하나님의 말씀이 그 영혼에게 비추면 그 영혼을 치유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디 영혼 뿐이겠습니까?
그 혼과 영과 육체의 관절과 골수까지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셔서 새롭게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그 말씀을 받는 영혼은 죽은 영혼에서 살아나는 영혼으로 거듭나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그렇기에 혹시라도 내 영혼이 지금 죽은 영혼과 같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돌아가야 다시 살아날 수 있고 그때 비로소 내 영과 혼과 육에 회복이 일어나게 하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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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용)실로 다윗이 그렇지 않았습니까?
다윗이 15살 무렵에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골리앗을 쓰러트린 후에 사울 왕의 시기와 질투심 때문에 도망자 신세를 겪었죠.
이스라엘의 놉 땅을 비롯해 유다 광야를 거쳐 외조모 룻의 모압 땅으로 그리고 유대 광야를 거쳐 이방 블레셋 지역까지 숨어들어갔죠.
무려 10년이 넘는 세월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광야에서 밤 이슬을 맞고 동굴에 숨어들어가며 광야에서 잠을 잘 때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때마다 다윗은 ‘야훼여’ ‘나의 하나님이여’하면서 탄식의 기도를 드리지 않았겠습니까?
그렇지만 다윗의 심령 속에는 그때마다 말씀이 깊이 박혀 있어서 그렇게 기도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23:1-4)
“야훼여.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을 줄 믿습니다.”(시34:10)
아무리 사울이 위협하고 자객이 죽이려고 돌맹이를 던져도 말씀으로 깊이 뿌리내린 다윗의 심령은 하나님의 평강이 지켜주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울 왕이 죽고 30대 시절에 왕이 된 후에 40대에 접어들어 이방 지역을 모두 점령하고 50대 들어 평안하고 안전하다고 할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때가지도 온전히 말씀으로 깊이 뿌리내리고 있던 다윗이 순식간에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남편을 적장의 칼에 죽게 만들고 그리고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죠.
겉모습으로는 하나님께 제사드리고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모습 같았지만 그 영혼은 죽은 영혼과 다름 없었죠.
중요한 것은 다윗의 영혼을 향해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해 뼛속을 자르는 회개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것이었죠.
그때 다윗은 비로소 하나님께 돌아와 회개했고 그 영혼이 다시금 소생케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다윗이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고백하면서 시를 쓴 것 아니겠습니까?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시며”
(깨달음)우리도 마찬가지죠.
내 삶에 염려나 걱정이 밀려올 때 그때 실은 우리 심령에 말씀이 깊이 들어차 있는지 먼저 점검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 삶의 겉모습은 평온하고 안전한 것 같은데, 일이 잘 풀리고 있는 것 같은데, 왠지 내 영이 죽은 것 같다면, 그때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돌아갈 때이지 않습니까?
그래야만 나의 죽은 영혼이 살아날 수 있고 내 영과 혼과 육체가 새롭게 소생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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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은혜)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의 영혼이 주님의 말씀에 앞에 돌아와 우리의 영혼이 소생케 되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딸아.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네 키를 염려한다고 한 자라도 더 크게 할 수가 있더냐?”
“인생의 염려 중에 96%는 염려해도 소용 없는 슬떼 없는 것들이지 않더냐?”
“그러니 네 심령에 염려고 가득 채우기보다 오직 말씀으로 깊이 뿌리내려 하나님의 평강과 치유를 누려야 하지 않겠느냐?”
“다윗이 광야 도망자로 살고 이방 세력과 싸우는 힘든 시기에도 말씀으로 무장할 때 하나님의 평강안에 거하지 않았더냐?”
“하지만 50대 사추기에 접어들어 죄악을 범한 후에는 겉모습은 그럴싸 해도 그 심령은 완전 죽은 심령이지 않았더냐?”
“그런 다윗이라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돌아와 회개할 때 그 영과 혼과 육, 그 심령을 다시 소생시켜 준 것 아니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기보다 오직 하나님의 완전한 말씀으로 네 심령을 채우고 뿌리내려야 하지 않겠느냐?”
“하나님의 완전한 말씀이 너의 심령에 뿌리내리고 있지 못하면 세상 유혹과 죄악에 순식간에 빠져들어 죽은 영혼처럼 살지 않겠느냐?”
“하나님의 완전한 말씀이 너의 심령을 지배하고 있으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께서 너의 영혼육을 소생시키고 치유하고 굳건하게 세워주지 않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시는 말씀임을 네가 온전히 믿고 의지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이 네 심령을 지배하고 있으면 네가 어려울 때 회복케 하는 광선을 발하셔서 외양간의 송아지처럼 뛰노는 역사를 베풀어주지 않겠느냐?”
(찬양)주께 가오니 날 새롭게 하시고 주의 은혜를 부어주소서
내 안에 발견한 나의 연약함 모두 벗어지리라 주의 사랑으로
나의 눈 열어 주를 보게 하시고 주의 사랑을 알게 하소서
매일 나의 삶에 주 뜻 이뤄지도록 새롭게 하소서 주의 사랑으로
주 사랑 나를 붙드시고 주곁에 날 이끄소서
독수리 날개쳐 올라가듯 나 주님과 함께 일어나 걸으리 주의 사랑 안에
(전개)인생은 수많은 선택과 판단으로 만들어지는 결과물입니다.
그 판단을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지혜를 주십니다.
누군가 인생이란 영어의 알파벳 B.C.D. 세 가지 철자로 나타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B는 Birth 곧 출생을 의미하고, D는 death 곧 죽음을 뜻합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C choice 곧 선택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인생은 출생에서 죽음까지 수많은 선택의 결과물입니다.
그 선택을 잘 하면서 사는 게 지혜입니다.
그 지혜가 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예화)트럼프와 해리스가 11월에 미국 대통령 선거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미국인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부동의 대통령 1위는 에이브리햄 링컨입니다.
링컨에게 어떤 사람이 와서 물었다고 하죠.
“리더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하고 말이죠.
그러자 링컨은 주저 없이 ‘지혜’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면 그 지혜를 어떻게 사용해야 합니까?”하고 말이죠.
그러자 링컨은 ‘바른 판단’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또다시 그가 물었습니다.
“그 바른 판단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하고 말이죠.
그러자 링컨은 또 대답합니다.
“틀린 판단도 해 봐야 알지요.”
그가 다시 물었습니다.
“바른 판단과 틀린 판단은 어떻게 구별하는 것입니까?”
그러자 링컨이 다시 대답합니다.
“그것이 바로 지혜지요.”
그러자 그는 마지막으로 물었습니다.
“그 지혜를 당신은 어디서 얻습니까?”하고 말이죠.
그때 링컨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내게 지혜의 원천은 어려서부터 내 어머니께 배운 성경말씀에 있습니다.”
(원성)그렇습니다.
오늘 시편 기자도 7절 하반절에 그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증거란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 말씀이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8절에서는 그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하나님의 말슴은 정직하게 하고 마음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한다고 말입니다.
‘눈을 밝게 한다’는 말씀이 바로 ‘인사이트’ 곧 바른 판단력을 얻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링컨이 대통령이 되기까지 아니 대통령의 자리에서 백성을 바르게 이끌 수 있었던 것도 말씀을 통해 올바른 판단력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왕이 된 이후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말씀을 통해 올바른 판단력을 얻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나이 50의 사추기에 접어들어 방황할 때, 다시 말해 말씀이 그 심령에서 떠날 때 올바른 판단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죄가 급격히 그 심령에 파고 든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어지러진 영혼을 다시금 새롭게 할 수 있었던 것도 말씀 앞에 돌아가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 앞에 바로 섰을 때 그의 심령이 다시금 소생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기도)그렇기에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가 주님앞에 기도할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아브라함 링컨이 바른 판단력으로 이 세상을 이끌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성경말씀에 근거를 뒀기 때문이네요.”
“다윗도 말씀을 가까이 할때는 바른 판단력으로 그의 리더십이 빛을 발휘했지만 말씀을 떠나 있을 때는 죄가 급속하게 파고들었어요.”
“그러나 그의 어리저린 영혼이 새롭게 소생케된 것도 말씀 앞에 다시 돌아가 회개했기 때문이요 그때 그의 영혼육이 새롭게 소생되었어요.”
“주님. 저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 판단력인 줄 믿습니다.”
“그 판단력이 흐려지지 않고 세상을 바르게 살 수 있는 길은 말씀을 가까이 하는 길이요 말씀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사는 길인 줄 믿습니다.”
“그 말씀을 매일매일 묵상하고 그 말씀 앞에 내 심령을 비추고 그 말씀 속에서 바른 판단력을 얻어 이 세상에서 승리하게 해 주세요.”
“주님의 말씀이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임(시119:105)을 믿습니다.”
(찬양)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서리다
나의 가고 서는 것 주님 뜻에 있으니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뜻하신 그곳에 나 있기 원합니다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리니
연약한 내 영혼 통하여 일하소서 주님 나라와 그 뜻을 위하여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자연계시를 통해 말씀하시고 깨닫게 하시지만 특별계시인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찾아오시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을 품고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자라야 어떤 돌맹이를 던져도 결코 흔들림 없는 평온속에 살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세상에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기보다 우리 심령을 말씀으로 더욱 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말씀이 우리 심령에 없으면 죽은 심령과 다를 바 없고 죄악으로 걸려 넘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 앞에 돌아가게 되면 우리의 심령이 살고 우리의 영혼육에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지금도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고 좌우의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육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시며 치유하시고 회복케 하시는 능력의 말씀인 줄 믿습니다.
그 말씀 앞에 서면 그 어떤 심령도 회개하여 회복이 일어나고 그 말씀을 통해 바른 판단력을 얻어 이 세상을 승리케 될 줄 믿습니다.
그와 같은 은총의 주인공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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