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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예화)서방언론은 중동의 제 5차전쟁이 발발할 수 있다고 말을 합니다.
지난 4월 이란이 미사일로 이스라엘 본토를 공격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은 아이언돔이라는 방어 시스템으로 이란의 공격을 무력화시켰습니다.
왜 그토록 이란과 이스라엘은 적대국을 전락했을까요?
사실 이란과 인접한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레바논과 이집트는 모두 이슬람 국가입니다.
물론 이슬람 국가라고 해도 모두가 알라를 신으로 숭배하지만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뉩니다.
수니파는 정통 마호멧트의 후계자가 아니라 해도 종교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시아파는 마호메트의 후계자만 종교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여깁니다.
그렇게 정통파를 고수하는 나라가 이란이고 나머지 국가들은 시아파로서 누구나 종교지도가 될 수 있습니다.
이란은 자기들이 이슬람 국가의 정통파 리더가 되길 바라고 다른 나라들은 자기들 이권에 따라 움직이는 국가들이죠.
중요한 것은 이란과 이스라엘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쉽게 전쟁을 벌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란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무장세력 하마스와 헤즈볼라와 예멘 후티 반군을 적극 지원하죠.
그 무장세력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집어삼키려고 하고 이스라엘을 완전 해체시키려고 하는 것이죠.
하지만 이스라엘이 쉽게 무너지겠습니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의 나라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는 약속 땅입니다.
더욱이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은 지금도 미국의 경제주권을 쥐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이 실리콘밸리나 미국에서 창업을 할 때 성공률이 높은 것은 모두 이스라엘의 군복무 중에 배운 기술입니다.
그런 유대인들이 미국에서 창업하고 성공한 CEO가 되기 때문에 미국의 대통령 후보자들도 그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죠.
(깨달음)서방 언론들은 중동의 5차전쟁이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하지만 결코 쉬운 게 아닙니다.
이란이 직접적으로 이스라엘을 공격하기에는 명분도 없고 아이언돔에 막힐 게 뻔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하마스와 헤즈볼라와 예맨후티 반군세력들을 우회적으로 지원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가 민심을 잃고 있는 상황에서 그걸 전쟁으로 뚫고 나가려고 하지만 그 역시 만만치 않는 상황입니다.
무엇보다도 이스라엘 민족이 전쟁보다 평화를 원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5차 중동전쟁보다 세계평화를 더욱 원하시는 분입니다.
만약 이란과 이스라엘이 서로 공격한다면 러시아도 미국도 전쟁의 기름을 붓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이런 상황속에서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정치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개인의 욕망보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더 생각하는 지도자가 되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이죠.
이란의 팔라비가 정권을 잡았을 때는 여성들이 히잡도 벗고 살았지만 지금의 호메이니는 완전한 신정국가로 통치하려는 욕심이 앞서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통령도 협치를 해야 상생하는 정치를 펼칠 수 있고 백성들은 그나마 좋을 수 있는 것이죠.
(적용)그런데 이런 상황이 2024년을 살아가는 우리 시대에만 있었는가?
그렇지 않다는 점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800년 전 곧 주전 8세기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윗과 솔로몬 통치 이후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분열되고 북왕국 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을 필두로 19명의 왕들이 통치했죠.
남왕국 유다는 르보호암을 필두로 20명의 왕이 통치했죠.
그중 주전 8세기는 남왕국 유다의 10번째 왕 웃시야로부터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왕 때까지 통치한 상황입니다.
웃시야는 52년간 남왕국 유다를 다스렸는데 교만해서 문둥병에 걸렸고 아들 요담이 대리청정했죠.
웃시야가 죽자 그 아들 요담이 11번째 왕으로 나서는데 19년간 남왕국 유다를 다스렸습니다.
요담이 왕위에 있을 때 아람 왕 르신과 북왕국 이스라엘의 연합군이 쳐들어왔습니다.
그 위태한 상황에 요담은 숨을 거두고 그 아들 아하스가 12번째로 왕위에 오르게 되죠.
아하스는 20세에 왕이 되어 16년간 통치했는데 연합군이 쳐들어올 때 그가 어떤 일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물러가게 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응당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데 그는 앗수르 왕에게 머리를 굽히고 도움을 요청하죠.
더욱이 앗수르의 신을 숭배하고 그 신전 제단을 본떠 예루살렘에 세우고 인신 제사까지 드립니다.
성전의 문을 완전히 폐쇄시켜 성전의 제사까지 차단해 버린 왕이었습니다.
그가 그렇게까지 한 것은 앗수르 제국이 그 무렵에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수르의 힘만 두려워한 채 앗수르 왕이 시키는 대로 왕이 섬긴 신전을 세워 숭배한 것이죠.
그만큼 그는 눈에 보이는 세력만 두려워한 채 온 세계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그가 죽고 그 아들 히스기야가 남왕국 유다의 13번째 왕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그때 히스기야는 아버지처럼 앗수르 제국을 두려워하고 앗수르 왕이 시키는 대로 앗수르의 신을 숭배하면서 머리를 조아렸습니까?
히스기야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께 간구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 일로 하나님께서 앗수르 대군 18만5천명을 하루 저녁에 전염병에 걸려 다 몰아내게 하셨고 앗수르 왕도 본토에 가서 아들들의 칼에 비명횡사하죠.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916043
(역배)그 네 명의 유다 왕들 곧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가 통치하던 시대에 활약한 선지자가 이사야였습니다.
물론 주전 8세기의 선지자는 이사야만 있는 게 아니라 아모스와 호세아와 요나와 미가도 있었죠.
아모스와 호세아와 요나는 북이스라엘을 향해 친 선지자였고 이사야와 미가는 남왕국 유다를 향해 외친 선지자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북왕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통치하심보다 열강의 군사력만 믿다가 패망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남왕국 유다의 왕과 백성들도 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균형잡힌 외교력을 펼쳐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하지만 히스기야 시대에는 왕과 백성이 바로 섰지만 그 후에 통치한 왕들은 요시야를 빼고 모두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
그로 인해 남왕국 유다는 B.C. 586년 바벨론 제국에게 멸망을 당했고 그때부터 1차 2차 3차에 걸쳐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죠.
그러니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전 8세기의 세계정세가 급변하게 돌아가는 상황이었다면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께 바로 서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살아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앗수르의 눈치를 보고 애굽과 결탁하여 바벨론을 몰아내려고만 했을 뿐입니다.
그 일로 유다 백성들은 완전 몰락했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폐기처분한 분이 아니셨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유다 백성들을 70년만에 다시금 고국으로 귀환케 해 주셨습니다.
그 일을 바벨론 제국이 아니라 바벨론 제국을 무너뜨린 고레스 대왕을 통해서 행하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깨달음)그렇기에 우리도 지금 내게 주어진 상황이나 세계정세를 눈에 보이는대로 바라볼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온 세계를 통치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모자이크 판을 하나씩 붙여가며 완성하신다는 것을 믿음으로 분으로 볼 수 있기 바랍니다.
(적용)우리가 요즘 새벽묵상을 통해 나눈 말씀도 그것입니다.
스데반 집사의 순교로 초대 예루살렘교회에 대 핍박과 환란이 불어닥쳐왔습니다.
그때 사도들을 제외한 나머지 제자들은 유다와 사마리아로 빠져나갔고 거기서 주님의 복음을 전했죠.
그때 초대교회를 핍박한 원흉은 사울이란 자였는데 멧돼지가 옥수수 밭을 쑥대밭으로 만들듯 교회를 잔멸하는데 앞장섰죠.
물론 그가 주님을 만나기 전의 모습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환란과 핍박 앞에서도 성도들은 주님을 의지하며 복음을 전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인생에 핍박과 환란이 불어닥칠 때도, 마치 유다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갈 때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선택한 자녀를 내팽개치는 분이 아니라 환란 속에서도 품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이 선택한 자녀를 당신의 모자이크로 하나씩 붙여가면서 그 인생을 완성케 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흩어진 무리 중에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에 성에 들어가 복음을 전한 일을 사도행전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때 빌립 집사가 복음을 전할 때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고침받는 역사가 일어났죠.
그 모습을 바라본 마술사 시몬이 주님을 믿겠다고 했고 세례까지 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 지역에 복음의 역사를 확인하러 온 베드로와 요한이 그 지역 사람들에게 안수할 때 성령이 임하는 걸 마술사 시몬이 봤습니다.
그때 그는 돈을 들여서 자신도 성령의 권능을 행하려고 욕심을 부렸죠.
그때 베드로는 그에게 말하기를 “너의 악함을 회개하고 주님께 기도하라”고 선포했죠.
그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인생도 핍박과 환란을 당할 수 있고 우리 인생도 승승장구하는 인생을 살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신앙이 있습니다.
내 인생의 핍바과 실패 속에서 좌절하기보다 끝까지 주님을 신실하게 신뢰하며 사는 것입니다.
내 인생에 승상장구의 역사가 펼쳐칠 때도 내 힘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컨트롤하려고 하지 말고 더욱 겸손하게 주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내 인생의 모자이크 판을 가장 잘 아시고 하나씩 끼워맞춰가며 완성케 가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7610049
(본문)오늘 본문 2절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깨달음)지난 시간에 나눈 말씀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 ‘야곱아’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야곱은 형의 장자권을 팥죽으로 가로챘고 축복권까지 가로챘습니다.
그 일로 밧단 아람으로 도망쳤는데 루스에서 꿈에 사닥다리를 타고 내려온 하나님을 만났죠.
그때 하나님께서는 내가 어디로 가든지 너와 함께 할 것이고 너를 통해 내 뜻을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해주셨죠.
그러나 그 약속이 무색하리만큼 야곱은 그곳 밧단 아람에서 20년간 죽을 고생하며 살았죠.
급기야 하나님께서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하셨는데 그 무렵에 엄청난 소와 양의 복을 주셨죠.
하지만 고향길에 당도할 무렵에 형이 야곱을 죽이려고 400명 군사를 동원해서 벼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야곱은 얍복강에서 하나님 앞에 처절하게 기도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죠.
그밤에 야곱은 하나님께 처절하게 매달렸고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통해 야곱의 환도뼈 곧 고관절을 치셨습니다.
그 모습으로 다음날 형 에서를 만나러 갈 때 에서는 측은지심이 생겨 야곱과 화해했고 야곱의 선물을 받고 돌아갔죠.
그날 밤 하나님께서 얍복강의 야곱을 만나주지 않았던들 우리가 아는 야곱의 인생은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얍복강에서 하나님께서 야곱을 만나 주셨고 야곱의 고관절을 치셨기에 그가 에서와 화해하고 새로운 이스라엘로 변화되어 약속의 후손을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적용)그래서 지난 시간에 살펴본 말씀 곧 ‘야곱아’ 하고 부르신 의미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찾아와주시고 인생의 실패 속에서 만나주실 때 그때가 새롭게 태어난 때라는 것 말입니다.
내 인생의 좌절과 실패 속에 있을 때 그때가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건져주실 때라는 것 말이죠.
그래서 본문 2절에서 약속하시는 것도 그런 의미이지 않겠습니까?
“얍복강에서 내가 너를 만나 너의 인생을 이스라엘로 바꿔준 것을 네가 알고 있다면, 내가 어찌 너를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네가 비록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강을 건널지라도 강물이 너를 침몰치 못하도록 나 여호와가 지켜주지 않겠느냐?”
“마치 네 선조들이 홍해를 건널 때 애굽 군대 속에서도 그 홍해 물결 속에서도 너희 선조를 지켜준 것처럼 말이다.”
“비록 네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갈 때 창칼이 위협하고 포탄이 떨어지는 불꽃이 너를 위협할지라도 그 불꽃이 너를 사르지 못하도록 나 여호와가 지켜주지 않겠느냐?”
지금 주님께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다 민족들을 향해 선포하는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들이 비록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국제정세의 힘만 믿다가 바벨론에 멸망해 포로로 끌려갔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정하신 때에 그들을 새롭게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마치 야곱을 얍복강에서 만나주셔서 새로운 이스라엘이란 이름으로 탄생하게 하셨듯이 말입니다.
교회의 박해자요 대적자였던 사울을 주님께서 만나주셔서 그를 통해 복음을 널리 전하도록 새롭게 빚어주셨듯이 말입니다.
시몬이란 마술사가 자기 재력으로 성령을 제한하고 하나님을 컨트롤하려다가 그게 아님을 깨닫고 회개한 것처럼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네타냐후가 자기 정치력을 입증코자 언제든지 이란을 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너머에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게 하시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만큼 바벨론에 포로 끌려가는 이스라엘 민족의 인생도, 이란과 이스라엘의 전쟁도, 그리고 우리 개개인의 인생도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는 모자이크 속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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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께서는 국제정세든 한 개인의 인생이든 주님의 모자이크로 하나씩 채워가시는 그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주음성)그렇기에 오늘 말씀을 통해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네 인생을 네가 결정하는 것 같지만 너를 선택하여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네 인생의 모자이크 판을 완성해가지 않겠느냐?”
“남왕국 유다 민족이 바벨론에 멸망해 포로로 끌려갈지라도 그들을 강물 속에서도 불꽃 속에서도 지켜주신다고 하지 않더냐?”
“하나님께서 야곱의 인생을 얍복강에서 새롭게 빚어주셔서 이스라엘로 바꿔주셨듯이 유다 민족도 그렇게 지켜주는 분이지 않겠느냐?”
“지금 이란과 이스라엘이 전쟁을 벌여 5차 중동전쟁이 일어날지라도 그 너머의 주권은 네타냐후 총리나 이란의 호메이니에게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 있는 것 아니겠느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네 인생에 핍박과 환란이 겹쳐 올 때 그때도 그때도 하나님께서 너의 인생을 붙잡고 계시고 네 인생의 모자이크 판을 붙여가고 계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지 않겠느냐?”
“네 인생이 승승장구하고 뭐든 잘 풀리는 때라면 그때도 네가 하나님을 컨트롤하려고 하지 말고 온전히 주님께 맡기며 더욱 겸손해야 하지 않겠느냐?”
“이스라엘과 이란의 5차 중동전쟁도, 대만을 두고 중국과 미국이 힘겨루기를 할지라도, 아니 네 인생에 가장 다급한 그 문제가 어떤 일일지라도, 온전히 주님께 내어 맡기는 모자이크판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때 네가 물 가운데 지날지라도 불가운데 지날지라도 강물이 너를 침몰치 못하도록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도록 지켜줄 것이다.”
“너의 육신의 연약함과 인생의 부족함마저도 주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온전히 의지하여 주님의 일하심을 맛보았으면 좋겠구나.”
(찬양)주께 가오니 날 새롭게 하시고 주의 은혜를 부어주소서
내 안에 발견한 나의 연약함 모두 벗어지리라 주의 사랑으로
주 사랑 나를 붙드시고 주 곁에 날 이끄소서
독수리 날개 쳐 올라가듯 나 주님과 함께 일어나 걸으리 주의 사랑 안에
나의 눈 열어 주를 보게 하시고 주의 사랑을 알게 하소서
매일 나의 삶에 주 뜻 이뤄지도록 새롭게 하소서 주의 사랑으로
주 사랑 나를 붙드시고 주 곁에 날 이끄소서
독수리 날개 쳐 올라가듯 나 주님과 함께 일어나 걸으리 주의 사랑 안에
(예화)나폴레옹의 군대가 적국을 통과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신실하게 의지하는 과부가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는 동네를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나폴레옹의 병사들이 자기 집으로 쳐들어와 재산을 빼앗고 아이들을 잡아가지 않을까 두려워했습니다.
그날 밤 그녀는 가정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아이들과 한자리에 모여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집 주위에 성벽을 쌓아 우리를 적에게서 지켜주시옵소서.”
예배를 마친 후 아이들은 잠자리에 들어가며 말했습니다.
“엄마. 좀 전에 기도할 때 성벽을 쌓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렸는데 그게 무슨 뜻이예요?”
“아마 내일이 되면 알 수 있을 거야.”
불안과 공포의 긴 긴 밤이 지나고 마침내 아침이 되었습니다.
그때서야 그 아이들은 어머니의 기도에 담긴 그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밤사이 많은 눈이 내려 눈보라가 쳤고 그 눈과 눈보라 때문에 그 집 전부가 눈으로 뒤덮였다는 사사실입니다.
그 일로 나폴레옹의 병사들은 그곳에 집이 있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지나갔던 것입니다.
(깨달음)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녀들을 신묘막측한 방법으로 지키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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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2)북아프리카에서 복음을 전하다 박해를 피해 도망쳐다닌 프레드릭 놀란 선교사님이 있습니다.
그 분은 자신을 붙잡으려는 아프리카 원주민들을 피해 언덕과 골짜기로 쫓겨 다녔습니다.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너무나도 지쳐서 이제는 붙잡힐 각오를 하고 한쪽 동굴로 들어갔습니다.
임박한 죽음을 생각하며 그는 거미가 거미줄을 치고 있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습니다.
몇 분이 지나지 않아 그 조그마한 거미가 동굴 입구에 멋진 기미줄을 모두 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좇는 원주민들이 그 거미줄을 헤집고 동굴 안에 들어와 자신을 끌고 갈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 동굴 입구에 서 있던 원주민들은 그저 멈춰섰고 그 거미줄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무런 말도 없이 모두가 발걸음을 돌리는 것이었습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동굴 입구에 새롭게 쳐진 거미줄이 하나도 뜯겨 진 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동굴 안으로 누구도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들이 판단하고 모두 돌아선 것이었습니다.
(깨달음)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그런 방법으로 지키시고 보호해주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눈보라를 통해 나폴레옹의 적군을 통해 지켜주셨고 거미줄을 통해 당신의 선교사를 보호해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강물을 건너 바벨론에 끌려갈 때도 전쟁의 포탄이 넘치는 불꽃 속에서도 하나님은 지켜주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내기도)그렇기에 우리가 주님께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주님께서는 눈보라 속에서도 당신을 신실하게 의지하는 자녀와 아이들을 지켜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이 사랑하시는 프레드릭 선교사를 거미로 하여금 거미줄을 치게 하셔서 그 동굴 속에서 보호해주셨습니다.”
“주님.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갈 때 강물이 넘치고 포탄이 떨어지는 불꽃 속에서도 지켜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저도 주님을 더욱더 신뢰하길 원합니다.”
“제 인생에 핍박과 박해가 몰려와도, 제 인생에 승승장구 길이 열려도, 주님께서 제 인생의 모자이크를 완성해 가신신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 주세요.”
“핍박과 환란이 닥쳐와도, 강물이 집어 삼켜도, 불꽃이 사를지라도, 그 속에서도 지켜주시는 하나님을 더욱더 신뢰하며 살게 주세요.”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내 믿음이 연약할지라도, 오직 무릎으로 주님만 의탁하며 살게 해 주세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도, 5차 중동전쟁이 일어난다 해도, 내 인생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내 육신에 힘이 빠져도, 오직 주님 안에 가하여 주님이 세워주시길 원합니다.”
(찬양)언제나 내 모습 너무나 부끄러워
무릎으로 주님께 기도로 가오니
나 홀로 서 있는 죽은 내 영 깨우사
주님만 나를 세워 내 영 살게 하소서
주님 내 안에 주님 내 안에 내 안에 계시고
주님 내 안에 주님 내 안에 나를 세워 주소서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과 이란이 서로 공격하여 5차 중동전쟁이 일어난다고 서방 언론들이 난리입니다.
하지만 그 전쟁의 주관자는 하나님께서 결정하실 일입니다.
북이스라엘이 앗수르 제국에 멸망하고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해 포로로 끌려간 것 하나님께서 모자이크 인생으로 역사하신 일입니다.
교회의 핍박자 사울을 복음전도자 바울로 변화시킨 분도, 돈으로 하나님을 컨트롤하려는 시몬을 회개케 하신 분도 하나님이셨습니다.
사기꾼 기질로 살아온 야곱을 얍복강에서 만나 이스라엘로 변화시켜 주신 분이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 아버지이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에 끌려갈 때 강물이 넘칠지라도 전쟁의 포탄이 떨어질지라도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신실하게 의지하는 가족을 눈보라 속에서도 지켜주셨고 거미줄을 쳐서 그 생명을 보호해주셨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그 하나님을 신실하게 의지하며 살아갈 때 우리를 향해서도 당신의 모자이크로 하나씩 채워가시는 그 은총을 베풀어주실 줄 믿습니다.
그런 은총의 주인공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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