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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7장 스데반 집사의 순교내용이 담겨 있었고, 사도행전 8장은 빌립 집사가 예루살렘을 벗어나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까지 들어가 복음을 전한 내용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9장은 사마리아의 위쪽인 다메섹에서 주님의 대적자 사울에게 주님께서 찾아와 그를 만나주시고 변화시켜주신 내용을 담고 있었죠.
그렇게 사울이 주님을 만난 사건을 통해 그가 다메섹에서 아라비아광야로 또 예루살렘으로, 그리고 고향 땅 다소로 낙향하는 그 과정을 그려주는 게 사도행전 9장의 모습이었습니다. 주님의 복음이 그렇게 예루살렘을 벗어나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을 향해 발동을 거는 모습입니다.
과연 그때 주님의 사도 중 한 사람인 베드로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게 사도행전 9장 후반부의 내용이었습니다. 룻다에 사는 애니아가 8년간 중풍으로 누워 있었는데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녀를 일으켜세운 사건, 그리고 욥바의 주님의 제자 곧 선행과 구제의 삶을 살아 온 다비다가 병들어 죽었는데, 바로 그녀를 주의 이름으로 살려낸 사건이 사도행전 9장 후반부의 모습이었죠.
그리고 10장의 내용은 이방인 고넬료 다시 말해 로마 장교 백부장이 가이사랴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고 유대 백성들에게 선행과 구제를 일삼는 경건한 사람이었죠. 더욱이 그는 하루 세 번씩 유대인들처럼 기도하는 자였습니다. 그가 기도할 때 주의 사자가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청하라고 했죠. 그래서 하인 2명과 군사 1명을 보냈죠.
욥바에서 가이사랴까지 50km 정도 걸리는 거리요 만 하루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인데 그 세 명은 이틀이 걸려 베드로가 묵고 있는 무두장이 곧 피혁제조업자의 집에 당도했죠. 때마침 베드로도 기도하고 있었는데, 그때 부정한 네발 달린 짐승과 날 것들이 보자기에 쌓여 내려오는데, 베드로에게 잡아 먹으라고 하죠. 하지만 베드로는 레위기 11장에 금한 그 부정한 짐승을 잡아 먹을 수 없다고, 여태껏 나는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다면서 거부하죠. 그것은 곧 “나는 뼛속까지 유대인입니다.”하는 주장이었죠. 그 환상과 음성을 세 번씩이나 보고 들을 때, 드디어 그 세 사람이 찾아와, 자초지종을 이야기할 때, 베드로가 그들을 불러들여 함께 유숙하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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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들이 머문 방 안의 사람들, 도란도란 이야기도하고 코를 골면서 잠을 청하는 그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욥바는 예루살렘에서 이방인 지역에 해당하는 곳입니다. 감히 유대인이 찾아갈 수도 없는 곳입니다. 더욱이 베드로가 묵고 있는 그 집은 짐승을 잡아 가죽을 무두질해서 피혁제조업을 하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입니다. 유대인들은 그의 집을 부정한 집으로 간주하여 상종조차 하지 않을 사람의 집이죠. 그런데 거기에 베드로가 함께 머물고 있습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그곳에 로마 장교 고넬료가 보낸 집안 하인 2명과 로마 군사 1명이 함께 잠자리를 청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곳이야말로 주님 보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이자, 정말로 기뻐하는 모임의 터전입니다. 어떻게 서로 다른 출신과 배경과 유대인인 부정하게 여기고 짐승처럼 취급하는 그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하고 잠을 청할 수 있는 것입니까? 그 자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모이게 된 자리요, 그 자리에 성령님이 그들 모두를 하나 되게 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그보다 더 멋진 밤을 보내는 사람이 과연 어디에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그 이후의 모습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본문 23하반절입니다. “이튿날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갈새 욥바에서 온 어떤 형제들도 함께 가니라” 이른바 고넬료가 보낸 하인 2사람과 군사 한 사람과 더불어 베드로가 욥바에서 가이사랴로 올라가는 모습입니다. 본문 24절을 보니까 그들이 가이사랴에 도착한 때가 ‘이튿날’이라고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올 때도 이틀이 걸렸고, 또 다시 도착할때도 이틀이 걸렸으니, 고넬료 집안 하인과 군사는 그야말로 사흘 간을 그렇게 왔다 갔다 한 꼴입니다.
어찌 보면 무의미한 일 같아 보이지만, 그런 수고와 땀이 있었기에, 베드로가 그들과 함께 고넬료 집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주님의 복음, 생명의 복음을 듣게 되는 것이죠. 본문 25절을 보면 베드로가 고넬료 집에 당도했을 때 어떤 자세를 취합니까?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그야말로 주님을 대하는 자세로 고넬료가 베드로 사도를 맞이하는 모습이죠.
이때 베드로가 보여준 행동을 주목해 보십시오. 26절입니다. “베드로가 일으켜 이르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나도 사람이라’, 이게 무슨 의미겠습니까? 고넬료는 베드로 사도를 신적인 존재로 섬기는 모습인데, 베드로는 “나도 당신과 똑같은 사람에 불과합니다.” “나도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인간입니다.”하는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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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베드로는 예수님과 공생애 사역 때 세배대의 아들들 요한과 야고보가 영의정 좌의정 자리를 탐할 때 비난하던 자였고, 베드로도 그 높은 자리를 탐하던 제자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나도 사람이라”하면서 겸손한 모습으로 변화돼 있는 모습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성령안에 거하고 있기 때문이죠. 성령 안에 거하지 않을 때에는 오직 이 세상의 높은 자리만 탐하던 자였는데, 지금은 성령 안에서 완전히 180도 달라진 모습입니다.
더욱이 본문 28-29절을 보면 전에는 유대인과 다른 이방인과는 상종조차 하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속되거나 깨끗한 것을 구별치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어디든 부르시면 간다는 심정으로 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고넬료가 본문 30-33절을 통해 그 동안에 있었던 자초지종을 설명하죠. 자신이 기도할 때 성령님께서 욥바의 베드로를 청하라는 음성을 듣고, 지금 베드로 사도를 청하여 이렇게 모두가 함께 앉아 있는 것이라고 말이죠. 그러면서 33절 마지막 부분에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단순히 베드로라는 사람 앞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집안 모든 사람들은 지금 하나님 앞에 있는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자세가 바로 이와 같아야 하지 않나 싶은 깨달음을 얻습니다. 비록 내게 익숙한 사람이나 혹은 낯선 사람이 있어도, 내가 처한 곳이 그 어떤 일터나 다른 자리라 할지라도, 나는 늘 하나님 앞에 있는 심정으로 살아가는 것 말입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본문 34절부터 43절까지, 입을 열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죠. 그 분이 성령과 능력으로 마귀에게 눌린 자를 고치셨고, 예루살렘의 사람들이 그 분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만 하나님께서 사흘 만에 다시 살리셨다고 말입니다. 그와 같이 부활하신 모습을 먼저 된 나와 12제자에게 보여주셨고, 부활하신 그 분이 우리에게 당신의 증인이 될 것을 당부하셨다고 말입니다. 그렇기에 내가 주님의 증인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그 누구든지 죄 사함을 받는다고 주님의 복음을 전한 것이죠.
베드로가 그렇게 고넬료와 집안 사람들에게 주님의 복음을 설교할 때 그곳에서 말씀듣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님께서 임하셨고, 그 중에는 욥바에서 베드로를 따라 온 할례받은 신자들도 그 모습을 보고 놀라게 되었죠. 그때 베드로는 그와 같은 놀라운 역사를 보고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 어떻습니까? 베드로는 룻다와 욥바에서 겪은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 이방인에게도 성령이 내리신 것, 이방인에게도 주님께서 치유하시고 회복케 하시는 것, 다시 말해 복음에는 차별이 없다는 것을 고넬료 집안 사람들을 통해 생생하게 목격하게 되는 것이죠.
이것이 곧 성령님께서 당신의 능력과 권능으로 주님의 복음을 믿게 하는 놀라운 역사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삶 가운데 마리아에게 임한 성령의 능력과 권능이, 고넬료와 집안 사람들에게 임한 그 분의 능력이 덮어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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