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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성도들이 급증하는 가운데 구제 문제를 둘러싸고 성도들 사이에 불만과 원망이 생겼습니다. 그 일로 열두 사도는 구제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자신들은 말씀전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에 전념하고자 했죠. 그래서 선택받은 사람이 7명의 집사였습니다. 그들 7명의 집사 곧 7명의 이꾼들은 모두 해외파 유대인들이었습니다. 12사도가 히브리파 유대인들이라면 그들은 헬라파 유대인들이었고, 12사도가 오랜 신앙의 연륜을 지닌 자들이었다면 그들은 거의 새신자에 불과했죠. 그러나 그 7명의 집사들이 구제하고 섬기는 일만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도 12사도 못지않게 주님의 복음을 담대하게 전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스데반 집사였습니다. 그는 믿음과 성령이 충만했고, 은혜와 권능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복음을 전할 때 민간에 큰 기사와 표적이 일어났고, 논쟁에서 그를 당해낼 사람도 없었죠.
물론 그 일로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해외에서 온 자유민들이 스데반을 모함하여 고발했고, 스데반이 하나님의 성전과 하나님의 율법을 모독했다는 죄목으로 산헤드린 법정에 섰죠. 그때 스데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과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 그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 광야의 삶으로 인도하신 광야교회의 삶을 통해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그들보다 앞서 인도하신 하나님을 전했죠. 그와 더불어 그 이동식 성막, 그 증거의 장막은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까지 함께 했는데,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후에 드린 봉헌 기도를 통해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님을 용납하지 못할진데, 어찌 인간의 손으로 지은 이 전에 주님을 모실 수 있겠습니까?”하면서 인간의 건축물 안에 하나님을 제한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곧 산헤드린 의원들이 성전 건축물로 하나님을 제한하려는 것과 같다는 것을 꼬집은 것이었죠. 그 까닭에 스데반 집사는 막판에 그들을 향해 “목이 곧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성령을 거스르는도다”하면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거부한 자들이고, 그들이 곧 모세의 율법을 완성케 하시러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자들이라고 비난했죠. 그러자 그들이 스데반을 몰고 가서 돌로 쳐 죽였습니다. 그것이 곧 스데반 집사를 향한 하나님의 모자이크의 완성체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자기 인생의 모자이크 색종이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붙여 가실지 몰랐지만, 그저 하루하루 순종하는 마음으로 맡겨 드렸고, 급기야 그런 죽음으로 최후를 맞이한 것이었죠.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죠. 그의 이름 뜻 그대로, ‘면류관’이라는 그의 이름 뜻 그대로 스데반 집사는 하나님 나라에서 금빛보다 찬란한 면류관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스데반 집사를 향한 영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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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본문 말씀은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순교를 당한 그날부터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 대대적인 박해가 일어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때 사도들 외의 나머지 제자들은 모두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졌음을 본문에서 전해주고 있습니다. 1절의 후반부 말씀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그 박해가 과연 누구로부터 촉발된 것입니까? 본문 1절의 상반절에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스데반 집사를 돌로 때려죽일 때 그 증인들은 자신들의 옷을 벗어서 사울이라는 청년의 발 앞에 벗어둘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사울이라는 청년이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는데 주모자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스데반의 순교와 함께 예루살렘 초대교회에 박해가 더욱 거세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박해의 선봉장 역할을 맡은 사람이 바로 사울이라는 청년이었던 것입니다. 그가 바로 훗날 바울이 된 사람이죠. 그 모습을 본문 3절에서 증언해 주고 있죠.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여기에서 ‘잔멸할새’라는 ‘뤼마이노’(λυμαίνω)는 ‘모욕을 줘서 더럽히다’는 뜻과 함께 ‘멧돼지가 옥수수 밭을 마구 짓밟는 행위’를 가리키는 뜻입니다. 길길이 날뒤는 멧돼지처럼 사울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교회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그와 같은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박해를 통해 주님께서는 오히려 온 유대와 사마리아로 당신의 복음이 전파되는 계기를 마련케 하셨다는 점입니다. 본문 4절 말씀이 그것입니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스데반 집사의 처형에 관한 주모자였던 사울이 이제는 교회의 박해에 선봉장으로 나섰는데, 그때 그리스도인들은 그 박해를 피해 유대와 사미리아까지 흩어져 복음을 전했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들이 전한 것은 말 그대로 ‘복음’, 곧 ‘복된 소식’이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단지 어떠한 이론이나 사상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죄에서 해방시켜주는 구원의 능력이기 때문이죠. 본문 7-8절은 복음의 능력이 어떠한 것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이것은 스데반 집사에 이어 또 한 사람의 집사, 곧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 성읍에 들어가 복음을 전할 때 민간에 나타나 표적과 기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스데반 집사처럼 빌립 집사도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었고, 사도들이 예루살렘을 빠져 나가지 않는 그 시점에 오히려 빌립 집사와 같은 이가 사마리아 땅을 밟아 복음을 전했고, 그때 사도들과 같은 동일한 역사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로 인해 그 성읍에 큰 기쁨이 있었다고 8절에서 전하는데, 그때의 큰 기쁨이란 구원얻는 기쁨이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본문을 기록한 누가는 그와 같은 큰 기쁨 속에서 그 성읍의 한 사람에게 집중하고 있습니다. 바로 ‘시몬’이라는 마술사죠. 그에 대해 9-11절은 이렇게 소개합니다.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따르며 이르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오랫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그들이 따르더니” 마술사가 어떤 사람입니까? 사람을 교묘한 속임수로 속이는 사람이죠. 우리나라의 이은결 씨도 그 중 하나죠. 하지만 아무리 그가 현란한 마술공연을 펼친다 하더라도 그를 신적인 존재로 숭배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시몬은 사람들에게 신비한 영적인 능력이 있는 것처럼 사람들 앞에 자신을 속여왔던 사람입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잘 알고 있었겠죠.
그런데 빌립 집사가 민간에 행하는 능력은 결코 인간의 속임수가 아니었던 것이죠. 그것은 마술사 시몬이 보기에도 확연하게 알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내면이 근본적으로 변화되는 능력이요 큰 기쁨을 얻는 능력이기 때문이죠. 그런 능력을 보았던 마술사 시몬이었기에 본문 13절에서는 그가 세례까지 받았다고 증언해 줍니다. 그 점만 놓고 본다면 참으로 그가 변화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4-24절을 보면 예루살렘에 있는 베드로와 요한이 그곳 사마리아 땅에 와서 주님을 믿겠다며 세례를 받은 사람들에게 안수하는데, 그때 성령을 받는 모습을 그 마술사 시몬이 보게 된 것이었죠. 그리고는 그것을 돈을 주고 사려고 한 모습이 나옵니다.
그런 모습을 통해 볼 때 시몬의 영적인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분명 그는 빌립집사의 전도를 통해 주님을 영접했지만, 과거 마술을 통해 돈을 벌고 사람들로부터 경외의 대상이 되던 그 때를 여전히 잊지 못한 상태였던 것이죠. 사도들의 안수를 통해 성령님께서 임하시는 그 모습이 마치 사도들의 능력인 것처럼 보였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삼으려 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에 의해 컨트롤 당하는 분이 결코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붙여나가시는 모자이크 판의 그림도 우리가 맘대로 붙이고 떼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죠. 그렇기에 오늘 우리의 삶에 핍박과 고통이 주님의 영광이 되게 하시고, 내 속에 마술사 시몬과 같은 욕망과 탐욕도 온전히 제거해 주셔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색지를 내 인생의 모자이크 판에 잘 붙여주실 수 있도록, 주님께 내어맡기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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