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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사도행전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하더니(행7:37-43)

by 똑똑이채널 2024.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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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7장은 산헤드린 공회에서 행한 스데반 집사의 설교 내용이 기록돼 있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이처럼 자신을 변론하고 있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았습니다. 로마가 일으킨 전쟁 중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해방이 된 유대 자유민들이 모인 회당에서, 그들이 스데반 집사와 논쟁을 벌였죠. 그런데 그 논쟁에서 패한 몇 몇 자유민들이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서 거짓말을 퍼트렸죠. 스데반 집사가 거룩한 성전과 거룩한 경전인 모세의 율법을 거슬려 말했다고 말입니다. 그만큼 스데반 집사는 지금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것입니다. 그 일로 스데반 집사는 산헤드린 공회에 고소를 당해, 그들의 심문대 앞에 서게 된 것이었죠.

그때 스데반 집사는 천사의 얼굴을 하면서 그들을 향해 ‘부형들이여’하면서 그들에게 예의를 다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의 섭리와 약속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이어서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의 섭리와 관련하여 그 모세를 거부하고 배척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이야기했죠. 과연 그렇게 대조해서 밝혀준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400년간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탄식과 고통소리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그들을 구원해 내려고 했죠. 그래서 나이 40세까지 애굽의 통치방식과 모든 군사력을 다 배우게 했고, 나이 80이 되기까지 처절하게 빈털터리로서 하나님만 의지하게 했고, 그리고 이제 80이 된 모세를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까지 인도하도록 부르셨던 것이죠. 그렇게 모세를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나타나게 했는데, 그들의 처음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누가 너를 우리의 관리와 재판장으로 삼았단 말이냐?”하면서 모세를 모두가 거부했죠.

스데반 집사가 지금 모세의 그 이야기, 모세를 거부한 백성들의 이야기를 거론한 이유가 있었죠. 그들처럼 당신들도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들이 거부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었습니다. 바꿔 말해 지금이라도 하나님께서 구원자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들의 주와 그리스도로 모시도록 하라는 뜻이었습니다. 그것을 한 번 더 비유적으로 해석한다면 그런 뜻도 포함돼 있는 이야기이죠. 지금 여러분들 앞에 그 모세와 그 예수님을 이야기하도록 나를 이곳까지 보내신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것 말입니다. 스데반이 비록 그들의 뜻에 의해 붙잡혀서 공회 앞에 선 것 같지만, 실은 하나님께서 그 일을 당신의 섭리가운데서 주도하신 일이라는 것이죠. 그렇기에 당신들은 나를 이곳에 보내신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여러분들이 거부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여 영생을 얻도록 하라는 취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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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먹은 하나님 응답하소서 | 권성권 | e퍼플- 교보ebook

"성경으로 문화 읽기를 접목한 세 번째 책이다. 첫 책은 출애굽기로부터 시작해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까지의 내용이 담겨 있다. 두 번째 책은 여호수아로부터 시작해 사사기, 룻기, 사무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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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본문 37-43절 말씀은 그 백성들의 어리석음에 관한 이야기를 한 번 더 해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무슨 어리석음이겠습니까? 모세와 함께 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마실 물과, 먹을 고기와 심지어 의복조차 헤어지지 않도록 40년간 먹이고 입히고 보살펴주신 하나님이신데, 그들은 그 하나님의 날개 아래 거하는 것보다 오직 눈에 보이는 우상을 좇아 섬기는 그 모습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스데반 집사는 38절을 통해 ‘광야교회’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서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증표로 광야교회, 곧 이동식 성막을 통해 그들과 40년간 동행하신 하나님이셨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출애굽기와 민수기를 읽을 때 무엇을 깨달았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 삶이 실은 광야교회와 같은 삶이었습니다. 그들이 성막을 중심으로 광야를 행진했는데,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보호하시고 추위를 이겨낼 수 있도록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광야에서 이동식 성막을 중심으로 한 광야교회의 삶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스데반 집사가 그와 같은 광야교회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겠습니까? 광야를 행진해 갈 때 눈에 보이는 것 없고 손에 붙잡히는 것이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너희들에게 성막을 중심으로 함께하는 하나님이심을 잊지 않도록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내일 그들 앞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지만,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실 것이기에, 걱정하거나 근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자신들의 인생을 하나님께 내어 맡기면 된다는 것이라는 말씀이죠. 한 마디로 말해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모세를 통해 매일매일 말씀해 주시는 그 하나님, 매일매일 그들에게 필요한 물과 양식을 공급해주시는 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들이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하며 광야교회의 삶, 곧 이동식 성막 중심의 삶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내어맡기며 살았습니까? 아니죠. 그들은 여전히 애굽의 삶, 곧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쥐고 살아야 만족하게 되었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바로 그들의 모습을 본문 39-41절에 이렇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모세에게 복종하지 아니하고자 하여 거절하며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향하여 아론더러 이르되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애굽 땅에서 우리를 인도하던 이 모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고 그 때에 그들이 송아지를 만들어 그 우상 앞에 제사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하더니.”

무슨 말씀입니까? 이 내용은 출애굽기 32장의 말씀을 스데반 집사가 산헤드린 공회원들에게 상기시켜주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인도하에 시내광야 곧 시내산에 당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었죠. 그리고는 곧장 모세를 시내산으로 불러올렸는데, 그곳에서 40일 동안 지냈는데, 그렇게 시내산에 올라간 모세가 내려오지 않자 산 아래의 백성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자신들이 애굽에서 가지고 나온 금붙이 은붙이들을 모두 꺼내고, 그것을 불에 넣어 주조물을 만들었는데, 바로 황금송아지를 만들어낸 것이었죠. 그 황금송아지를 일컬어 그들은 출애굽기 32장 8절에서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하면서 춤을 추면서 경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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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권성권 | 북팟- 교보ebook

성경으로 문화읽기2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오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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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스데반 집사가 왜 그들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겠습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의 이야기까지는 하나님의 섭리와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이야기했고, 모세를 통해서는 그 약속을 성취하시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교회의 삶을 살도록 성막을 중심으로 40년간 인도한 삶을 살게 해주셨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그 우상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까? 지금 그 공회원들의 심령 속에도 그와 같은 우상숭배의 마음이 깃들어 있음을 우회적으로 일깨워주기 위함이라는 사실입니다. 지금껏 그들이 공회원으로 살 수 있도록 하신 것도 실은 하나님의 섭리와 은총에 의한 일이지 않겠느냐는 것이죠. 그렇다면 그들은 매일매일 말씀으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면서 동행하는 광야교회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 공회원들 역시 모세 시절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눈에 보이는 탐욕과 자기 욕망이라는 우상숭배자가 되어 있다는 스데반 집사의 설교죠.

그런데 그렇게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만을 믿고 좇고자 하는 게 어디 이스라엘 백성들만의 모습이겠습니까? 그것이 어디 산헤드린 의원들, 스데반을 붙잡고 심문대 앞에 세운 그들만의 욕심이요 탐욕이요 우상숭배의 모습이겠습니까?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들도 얼마든지 그런 우상숭배의 마음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는 것이죠.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막막한 상황이 되면 그렇게 손에 잡히는 것과 눈에 보이는 것만을 위해 달려들 수 있는 우리의 연약한 심령 때문이죠. 그렇기에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스데반 집사처럼, 영원한 것에 소망을 두고 사는 하루가 될 수 있도록 주님께 의탁하며 사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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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권성권 | 북팟- 교보ebook

하루 한 장 욥기서 읽고 묵상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 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죠.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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