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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사도행전

그 모세를 하나님은 보내셨으니(행7:17-36)

by 똑똑이채널 2024.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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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6장에서 초대교회가 세운 7명의 집사 가운데 한 사람인 스데반을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은 초대교회 구제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을 골고루 구제하고 봉사하는 일만 했던 게 아니었죠. 그는 12명의 사도들처럼 복음을 전하는 일꾼이기도 했습니다. 그때 12사도처럼 민간에 많은 기사와 표적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그런 스데반의 복음전파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 자유인들, 로마에 끌려갔다가 풀려나 다른 지역에 살다가 이제 예루살렘 온 그 자유인들의 음모에 의해 스데반 집사가 공회 앞에 붙잡혔습니다.

그러나 천사의 얼굴을 한 스데반은 전혀 두려워하거나, 신경질 내는 것 없이 오히려 그 공회원들을 향해 “부형들이여”하면서 그들 모두를 주님의 마음으로 품었습니다. 이어서 스데반은 그들에게 성령에 이끌려 설교 곧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스데반은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이야기부터 꺼냈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이가 하나님이셨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갈대아 우르에서 이곳 가나안 땅까지 오게 되었다는 것이죠. 그런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씨로 이삭을 주셨고, 이삭을 통해 야곱을 주셨고, 야곱이 가나안 땅에 기근이 왔을 때 가족들을 이끌고 애굽에 내려갔는데, 그곳에서 묻혔을 때, 그 아들 요셉이 아버지의 유골을 매고 가나안 땅까지 와서 장례를 치렀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자신들의 조상이 있는 그 가나안 땅, 자신들의 조상과 약속하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땅으로 머잖아 나아가기 위한 예비하신 일임을 설파했죠. 그렇기에 아브라함을 통해 요셉까지 이야기한 그 이야기의 핵심이 무엇이었습니까? 나아 여러분 부형들이 이 성전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성전보다 크신 하나님의 언약과 약속에 의한 일이지 않느냐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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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귀먹은 하나님 응답하소서

성경으로 문화 읽기를 접목한 세 번째 책이다. 첫 책은 출애굽기로부터 시작해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까지의 내용이 담겨 있다. 두 번째 책은 여호수아로부터 시작해 사사기, 룻기, 사무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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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말씀은 그 이후에 전하는 내용인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에 이어 모세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내용입니다. 모세에 관한 이야기는 유대인들에게는 너무도 잘 알려진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스데반은 왜 이미 잘 알고 있는 모세의 이야기를 다시금 꺼내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의 구원자로 모세를 세우셨는데도, 그들이 모세를 거역한 것을 상기시켜주기 위함입니다.

17절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워 옴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번성하여 많아졌더니.” 이 말씀은 창세기 22장 17절에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한 내용입니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바로 그 말씀, 그 약속처럼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은 민족을 이루게 된 것이죠. 그만큼 애굽에서 400년간 종살이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이 이제는 애굽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될 때가 가까이 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이룰 사명자로 모세를 선택하셨다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모세를 어떻게 선택하셨습니까? 그 무렵 애굽의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를 억제하기 위해 산파들에게 사내 아이가 태어나면 나일강에 다 던져 죽게 했죠. 하지만 히브리 산파들은 애굽의 바로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여 죽이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키우던 어머니와 아버지가 더 이상 아이의 울음소리 때문에 집에서 키울 수가 없어서 갈대 상자를 엮어서 나일강에 띄웠고, 그때 마침 바로의 딸 공주가 목격하여 그 물에서 건져내서, 애굽의 궁궐에서 양자로 자라게 해 주셨습니다. 그 모든 때가 들어맞지 않았다면 모세의 생명은 살아날 수가 없었겠죠. 그 모든 때를 섭리하시고 역사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

그 후에 애굽의 왕실에서 성장한 모세는 애굽의 지도자가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나이 40이 되었을 때 유모요 곧 어머니로부터 배운 이스라엘의 민족사에 대한 관심이 생겼는데, 애굽 병사가 자기 동족을 학대하는 것을 보고 모세가 때려죽여버렸죠. 그런데 그 일이 다음날 들통이 났고, 급기야 애굽의 궁궐에서 살 수 없는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치지 않습니까? 그곳에서 장인이 될 이드로의 양을 치게 되는데, 그때부터 30년 동안 빈털터리로서 가냘픈 지팡이 하나만 의지한 채 양치로 전락한 모세였습니다.

그렇기에 40년 동안 양치기하던 그 끝자락, 곧 그의 나이 80이 되었을 때, 모세는 그동안 기다려온 하나님의 부름을 받죠.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지만 불에 타지 않는 그 희한한 광경을 보러 모세가 나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곳은 거룩한 곳이니 너의 신발을 벗으라’고 하시면서 모세를 만나주셨고, 곧장 내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께서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신 일이었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그런 모세의 일생을 본문에서 세 부분으로 나누어 설교하고 이는 상황입니다. 본문 23절의 말씀처럼 나이가 사십이 되매 곧 나이 40세가 되기까지 애굽에서 왕자의 신분으로 자라면서 모든 정치경제사회문화예술군사력 등 그 모든 것들을 배우던 때가 제 1기 모세의 삶의 이었습니다. 제 2기는 30절 말씀처럼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 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곧 미디안 광야 40년 삶이 끝나가던 그 시점을 말하는 것이죠. 곧 그의 나이 80세가 되어 하나님의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부름을 받던 때입니다. 그리고 제 3기는 36절의 말씀처럼 “이사람이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고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느니라” 하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애굽에서 가나안 땅 직전까지 다다른 그 시점의 40년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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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하나님의 시간표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br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br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br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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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와 같이 하나님의 섭리와 약속과 선택에 의해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내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내는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시고자 하는데, 그 백성들이 어떻게 했다고 설교하고 있습니까? 본문 34-35절이 이렇습니다. “내 백성이 애굽에서 괴로움 받음을 내가 확실히 보고 그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그들을 구원하려고 내려왔노니 이제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내리라 하시니라 그들의 말이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은 가시나무 떨기 가운데서 보이던 천사의 손으로 관리와 속량하는 자로서 보내셨으니.

여기에서 스데반 집사가 강조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왜 스데반 집사가 굳이 모세의 이야기를 꺼내는지 말입니다. 이유는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누가 너를 우리들의 관리와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면서 거절했다”는 것 말입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스데반 집사가 공회원들에게 하는 것이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대한 태도와 똑같다는 것을 말해주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냈을 때 모세를 거부하던 것처럼, 지금 여러분들도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는 것 말입니다.

바꿔 말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신 것을 처음에는 거부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중에 깨닫고 받아들였던 것처럼, 지금에라도 여러분들이 죽인 예수님을 메시아로 구원자로 그리스도로 모시어야 한다는 뜻이죠.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거부한 모습이 비단 그들만의 일이겠습니까? 우리의 삶 가운데에도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 있는데, 그 뜻과 섭리를 때로 거부할 때가 우리들에게도 있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처음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기까지, 내게 인격적인 주님으로 다가오시기까지, 많은 시간들 속에서 거부하지 않았냐느냐는 것이죠.

그렇기에 이제부터는 그 은혜와 섭리를 깨닫는 자로서, 누군가 산헤드린 의원과 같은 심정으로 주님을 거부하는 자들에게, 또 모세를 보내신 하나님의 거부한 그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살고 있을지도 모를 그 누군가를 향해 스데반 집사처럼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통로로 살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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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으로 문화 읽기를 접목한 세 번째 책이다. 첫 책은 출애굽기로부터 시작해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까지의 내용이 담겨 있다. 두 번째 책은 여호수아로부터 시작해 사사기, 룻기, 사무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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