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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사도행전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행3:11-26)

by 똑똑이채널 2024.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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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세나 되는 사람, 근 40년 동안 선천성 하반신마비 증세를 앓아 온 장애인이 주님의 은총으로 낫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오후 3시 무렵에 기도하러 성전 미문에 올라갈 때였죠. 그날도 그 장애인은 성전 미문에 앉아서 베드로와 요한을 쳐다봤죠. 다른 사람들처럼 한 푼이라도 적선해 주기를 바라는 그런 눈빛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온 마음으로 쏟아 붓는 마음으로 그를 집중하여 바라봤습니다. 그러면서 진실된 마음으로 자신들을 바라볼 것을 그에게 주문했는데, 그때 그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남다른 무엇이 있을 것이란 기대감으로 쳐다보았습니다. 그렇게 베드로와 요한의 시선과 그 장애인의 시선이 마주칠 때, 비로소 주님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날 베드로와 요한의 눈빛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사랑의 눈빛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말할 때, 그가 일어났고, 발과 발목에 힘이 생겨 성전으로 함께 뛰어들어갔던 것이죠.

오늘도 티끌이요 재와 같은 우리 자신들, 참새와 제비와 같은 우리 자신들의 시선을 주님께서는 우리 자신에게 두기보다, 오직 당신을 향한 시선을 견지하길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때 나는 할 수 없지만,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시는 새 일을 보게 하신다는 사실이죠.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은 그 이후의 사건을 전해주고 있는데, 솔로몬 행각에 모인 많은 사람들 앞에서 행한 베드로의 설교 내용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 설교내용은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성령강림 직후에 행한 설교 내용와 같습니다. 세계 16개국에서부터 온 사람들이 120명의 제자들이 행하는 방언을 듣고서, 새 술에 취해서 그런 것이라고 할 때, 베드로가 일어서서 설교한 내용이 있었죠. 제 삼시 곧 오전 9시인데 우리가 어찌 술에 취할 수 있겠느냐? 우리는 술에 취한 게 아니라 요엘서의 예언의 말씀대로 성령에 이끌려서 방언을 말하는 것이요, 너희들에게도 성령이 임하면 얼마든지 우리처럼 방엉늘 할 수 있다, 다만 너희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주와 그리스도로 믿고, 회개하여 세례를 받으면, 너희들도 얼마든지 성령에 이끌려 우리와 같이 될 수 있느니라, 하는 설교내용이었죠. 오늘 본문은 그때 행한 사도행전 2장의 속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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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먹은 하나님 응답하소서 | 권성권 | e퍼플- 교보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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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1절입니다.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태어나면서부터 40살 때까지 하반신마비 증세를 앓으면서 걷지 못한 그 장애인이 드디어 주님의 서신과 주님의 손을 붙잡고 일어나 걷고, 뛰는 놀라운 역사가 임했습니다. 그렇게 뛰어가다가 순간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았다”고 증언해 줍니다.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말 ‘붙잡으니’라고 번역된 헬라어 ‘크라테오’는 ‘붙들어 매다’라는 뜻과 함께 ‘등에 기대다’, ‘등을 껴안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 앉은뱅이 하반신마비를 앓고 있던 그가 나음을 받고서 두 사도의 등을 꼭 껴안았던 것입니다. 그만큼 그들을 떨어지지 않으려는 몸짓이었습니다.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생계를 위해 구걸하던 처지에서, 이제는 영적으로 굶주린 영혼이 되어 베드로와 요한을 따르고자 한 것이죠.

그 광경을 목격한 수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합니까? 솔로몬의 행각에 모여들죠. 왜죠? 어떻게 그런 놀라운 일이 일어났는지, 그 사람도 보고, 그를 고친 이들도 보고, 그들에게서 뭔가 듣고자 하는 까닭이었습니다. 바로 그때부터 베드로는 사도행전 2장에서 행한 오순절 설교의 속편을 오늘 본문을 통해 거침없이 전파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본문 12절입니다.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베드로는 설교를 시작하면서 무엇을 먼저 꺼냅니까?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을 고친 능력이 자신들의 권능과 능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3-16절을 통해 그를 고치게 한 능력의 근원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설교합니다. 그 핵심이 무엇입니까? 40년 동안 앉은뱅이로, 선천성 하반신마비증세를 겪어 온 이 장애인을 낫게 한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그 예수를 빌라도가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놓아주고자 했지만 여러분들이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한 그 예수님이고, 그 생명의 주님을 여러분들이 죽였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는 것이죠. 그 일에 지금 우리는 증인이요, 그 이름의 능력이 그를 고쳐 낫게 한 것입니다, 하고 설교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16절에 나와 있는 핵심 말씀입니다.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그래서 베드로는 오순절 날 설교했던 것처럼, 똑같은 패턴으로 19절에 연이어 설교하죠.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베드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유대인들의 조상의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이제 여러분들이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으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님으로부터 임하게 될 것이라고 설교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새롭게 되는 날”을 원문에 가깝게 직역하면 “숨통이 트이는 때”라는 뜻입니다. 죄는 우리의 영혼을 병들게 하고 영혼의 숨통을 짓누르고 마비시키는 세력입니다. 그렇기에 회개하고 돌이켜 죄사함을 받게 되면 그 숨통이 트인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것이 곧 주님과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요, 주님과 화평을 이루는 길이기 때문이죠.

이어서 베드로는 22-24절까지 모세와 사무엘을 걸쳐 구약시대의 모든 선지자가 예수님의 때를 증거 한다고 선포하고 있고, 마지막 26절에서는 그 예수 그리스도를 세워 복을 주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그런데 26절에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복으로 여긴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그것을 복 중의 복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도행전 2장에서도 베드로가 오순절 날에 세계 16개국 이상에서부터 온 사람들에게 이와 비슷한 내용의 설교를 전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그때는 어떻게 했습니까?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그들은 ‘우리가 어찌할꼬?’하면서 탄식하고 괴로워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너희가 각각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면 성령의 선물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삶을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영혼들이 3천명이나 되었다고 증언해주고 있죠.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예루살렘 성전의 솔로몬 행각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사도행전 4장에 넘어가면 1-3절은 그 설교를 들은 성전관계자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잡아서 감옥에 넣었는데, 그 날 솔로몬 행각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 중에 주님을 믿겠다고 한 이들이 5천명이나 되었다고 증언해 줍니다.

 

그 얼마나 놀라운 입니까?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베드로와 요한의 개인적인 능력 때문이 아니죠. 하반신마비 증세를 겪고 있는 그 장애인을 일으키신 주님의 능력이 지금 솔로몬 행각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있는 이들의 심령을 움직이셨기에 그들이 주님을 믿겠다고 한 것이죠. 그렇기에 성전의 웅장함이나 화려함 속에 역사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어떤 사람 자체에도 그 능력의 근원이 있는 게 아니죠. 건물이나 사람은 한낱 피조물에 불과할 뿐이요, 우리에게 일어나는 능력은 오직 창조주이신 주님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하루의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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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먹은 하나님 응답하소서 | 권성권 | e퍼플- 교보ebook

"성경으로 문화 읽기를 접목한 세 번째 책이다. 첫 책은 출애굽기로부터 시작해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까지의 내용이 담겨 있다. 두 번째 책은 여호수아로부터 시작해 사사기, 룻기, 사무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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