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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사도행전

학문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행4:1-22)

by 똑똑이채널 2024.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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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넘게 하반신마비 증세로 고통 속에 살아 온 앉은뱅이가 일어서서 성전을 향해 뛰어갈 정도였습니다. 그때는 그는 베드로와 요한을 꼭 붙잡았습니다. 아니 등 뒤에서, 꼭 껴안았죠. 그 전까지만 해도 육신적인 필요를 채우려는 입장에서 베드로와 요한을 바라본 그였지만, 이제는 영적인 필요를 채우고자 베드로와 요한을 등 뒤에서 꼭 껴안았던 것이죠.

그 모습을 바라 본 수많은 사람들은 그가 어떻게 낫게 되었는지, 그를 낫게 해 준 베드로와 요한에게는 어떤 신통한 능력이 있는지 알고자, 솔로몬 행각으로 나아갔죠. 그때 베드로와 요한은 사도행전 2장 후반부에 나오는 그 설교 내용처럼, 오직 이런 역사와 능력을 행한 분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설교했습니다. 그 예수님은 너희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님이시고, 그 예수님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너희 조상의 하나님께서 생명의 주님으로 살려내주셨고, 오늘도 그 분을 믿고 의지하는 자들에게 “새롭게 되는 날”, 곧 너희 죄로 인해 숨통이 짓누르고 있는데부터 그 숨통이 트이는 역사, 그 복된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고 설교했죠. 그렇기에 너희들의 악함을 회개하고 돌이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여 새롭게 되는 날, 영적으로 숨통이 트이는 날을 맞이하라고 전했습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겠다고 나선 이들이 5천명이나 되었다는 걸 어제 살펴봤습니다. 물론 그것은 오늘 본문 4절에 나오는 말씀 때문입니다.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솔로몬 행각에 모인 사람들 중에 베드로가 전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겠다고 나선 이들이 남자가 약 5천명, 여자와 아이들까지 하면 1만5천여명은 족히 되고도 남겠죠. 마치 벳세다 벌판에서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토막으로 남자 장정만 5천명을 먹이신 그 숫자와 비슷하다는 것이죠. 문제는 그렇게 5천명의 남자들이 주님을 믿겠다고 하지만, 여자와 아이들까지 1만 5천명이나 되는 군중들이 주님을 믿겠다고 나섰을 때, 과연 종교 당국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하는 점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들이 행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 1-3절입니다.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솔로몬 행각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그 군중들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에 대해 설교하고 있을 때, 그렇게 많은 군중들이 주님을 믿겠다고 하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죠. 그때 예루살렘 성전과 관련된 자들이 어떻게 합니까? 제사장들과 성전 책임자들과 정치적인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사두개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하는 사도들을 잡아들이는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튿날까지 감옥에 가둔 것이었습니다.

왜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감옥에 가둬버린 것입니까? 백성들로부터 받고 있는 존경심, 백성들을 지배하고 있는 지배력을 잃게 될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실은 그들이 그 백성들을 조정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장본인들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살아 역사하실 때에도 그들은 백성들로부터 예수님이 사랑받고 존경받는 것을 경계하던 그들이었죠. 그 까닭에 예수님을 잡아서 죽이려고 몇 번이 움직였었죠. 하지만 하나님의 때가 되지 않았기에 그들이 잡아들일 수가 없었지만, 결국 하나님의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붙잡히게 되었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이었죠. 그만큼 그들은 예수님이 살아 있을 때에도 눈엣가시와 같았는데, 지금 죽어서도 부활했다면서 백성들의 마음을 빼앗고 있었으니, 그들은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죠. 그리고 지금 40년 넘게 앉은뱅이로 살아 온 하반신마비 증세를 앓고 있는 장애인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일으켰으니, 어찌 가만히 앉아서 불구경하고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그 일의 통로가 된 베드로와 요한을 잡아들인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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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본문 6절의 말씀처럼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 서로 장인과 사위였죠. 또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 사람들까지 참석해서, 베드로와 요한을 그들의 심문대 앞에 세운 것이었죠. 그러면서 질문을 던집니다. 너희가 무슨 권세로, 누구의 허락으로 이런 일을 행했느냐고, 말입니다. 그때 8절의 말씀처럼 베드로는 “성령이 충만하여”그들에게 담대하게 말합니다.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이 얼마나 멋진 모습입니까? 이 얼마나 담대한 증언입니까? 이 얼마나 논리정연한 복음의 핵심을 전하는 것입니까? 성령충만하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우리에게 깊이 깨닫게 하는 모습이죠. 베드로는 40년 넘게 고통 가운데 있는 그 병자가 살아난 것은, 그를 살려내 것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너희들은 비록 그 분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려내셨으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받을만한 이름은 아무도 없고, 오직 그분만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신다고 설교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때 그들의 반응이 어떻습니까? 13절에 보면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전하는 그 모습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진 것이죠. 왜냐하면 본래 그들이 갈릴리 어부 출신임을 알고 있었고, 배운 바가 전혀 없는데, 이토록 논리 정연하게 복음의 핵심만을 전하고 있으니, 놀라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더욱이 그렇게 병 나은 사람도 지금 자신들 앞에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서 있으니, 무슨 증인을 더 요구할 수 있겠냐면서, 아무런 말도 못하는 상황이 돼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무엇입니까? 본문 17-18절입니다.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베드로와 요한에게 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해 말하지 말라고, 경고한 것입니다.

그때 베드로와 요한이 순순히 그렇게 하겠다고 합니까? 19-20절 말씀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성전과 관계된 자들은 ‘좋은 게 좋은 거다’는 식으로 제자들과 적당한 타협을 하려고 한 것입니다. 하지만 베드로와 요한은 영원한 생명과 진리에 관한 한 결코 타협과 양보를 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구원에 관한 한, 영생에 관한 한 중간지대나 회색지대는 없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외에는 다른 길이 없기 때문이죠.

 

오늘 이와 같은 말씀 속에서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가 무엇입니까? 성전 관계자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무식한 자들이라고 무시했지만 오히려 그들을 통해 주님께서는 진리와 생명을 전하는 도구로 사용하셨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배움이란 꼭 글로 읽고 쓰는 것을 통해서만 배우는 게 아니라는 것이죠. 몸으로 경험하고 체득해서 배운 것도 있고. 그게 오히려 더 깊이 간직된다는 사실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주님을 부인하고 도망친 적도 있었지만 3년 동안 주님을 따르면서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몸으로 배운 것이 지금 성령 안에서 역사하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겠죠. 당장 눈앞에 나타나는 게 없어서 헛돼 보일 수 있지만, 주님이 성령 안에서 쓰시는 때에 놀라운 통로로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은총이 저와 여러분들의 삶에 임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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