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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WednesdaySermon/고린도전서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참는 것(고전9:4-15)

by 똑똑이채널 2024.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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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참는 것.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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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예화)20세기 유명한 설교가 로이드 존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회자가 강단에 설 때는 사자가 되시오”

“그러나 강단에서 내려온 후에는 양이 되시오.”

“영혼을 한없이 사랑하시오. 그러나 그 영혼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때는 한없이 가혹하시오!”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목회자는 강단에서 사자처럼 설교하지만 강단 아래에서는 온순한 양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영혼을 사랑하되 그 영혼을 바르게 인도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화2)독일의 신학자이자 목회자인 본회퍼는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당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가졌다는 말은 축복이 아니라 책임이다”

 

(깨달음)이 말은 본회퍼 목사가 또 다른 목회자들에게 한 이야기입니다.

오늘을 사는 목회자들에게는 많은 것을 요구한다는 것이죠.

그만큼 요구가 많다는 것은 영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목회자는 내적으로 외적으로 삶이 선하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 가짐으로 정직하고 신실하며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목회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만큼 진정한 목회는 수단이나 재주나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가슴으로 하는 것이 목회죠.

 

그런 의미에서 목회자는 강단에서는 사자일지 모르지만 강단 아래에서는 모범을 보이는 양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역배)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1-2절을 통해 자신이 주님의 사도라고 말했습니다.

‘사도’란 헬라어로 ‘아포스톨로스’(ἀπόστολος)인데 ‘보냄을 받은 자’입니다.

바울은 다른 사람에게는 아닐지라도 너희들에게 만큼은 내가 사도이지 않냐 하고 말한 것입니다.

 

왜 바울이 그렇게까지 말한 것입니까?

그 당시에 사도 바울을 가리켜 사도가 아니라고 하는 무리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을 옹호하는 사람들만 있었던 게 아니라 바울을 비판하는 이들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가롯 유다가 죽고 맛디아를 사도로 뽑을 때 주님과 동행한 자요 부활의 목격자를 그 기준을 뽑았는데 바울은 그렇지 못한 자가 아니냐, 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9장을 보면 바울은 체포조를 동원해 다메섹 도상을 가는데 부활하신 주님께서 찾아왔고 그 주님을 목격했습니다.

그때 바울이 눈이 멀어 식음을 전폐하고 있을 때 다메섹의 아나니아에게 바울에게 찾아가라고 하면서 주님이 말씀하셨죠.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다”(9:15)하고 말이죠.

그래서 바울의 사도성을 부정하는 이들 앞에 바울은 그만큼의 정당성이 있는 것이죠.

나는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한 자요, 주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사도라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사랑의 종노릇하는 바울이라면 이렇게까지 밝히기보다 그냥 포용하고 수용하면서 넘어가도 되지 않겠습니까?

굳이 이렇게까지 자신의 사도성을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당당하게 밝힌 이유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자기 자신이 사도임을 부정하는 사람들의 모함을 가만히 내 버려 두면 사도로서 전한 복음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죠.

복음의 순수성과 완전성이 그들에 의해 훼손되는 것을 막고자 당당하게 사도성을 밝힌 것입니다.

더욱이 바울이 전한 복음이 훼손되면 복음 위에 세워진 교회가 훼손될 수 있기 때문에 당당하게 밝힌 것입니다.

 

(깨달음)이단 사이비들이 때때로 기존 교회의 순수성을 훼손하려고 합니다.

기존 교회 목사들은 삯꾼이요 교회를 강도의 소굴로 만든다고 말입니다.

이때 기존 교회에서 그들을 사랑한다면서 가만히 내버려두면 더욱 기고만장하게 기존교회와 목사를 깎아 내리겠죠.

그렇게 되면 기존 교회의 순수성과 복음의 완전성이 훼손되기 때문에 우리는 함께 공동체를 헐뜯는 무리에 대해 대응하고 나서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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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오늘 본문 4-7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깨달음)여기에서 우리가 먹고 마시는 권이 없겠느냐, 하는 뜻이 무엇입니까?

고린도전서 8장 말씀처럼 우상의 제물을 먹고 마시는 그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 교회로부터 먹고 마시는 경제적인 부양을 받을 수 있는 권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죠.

 

그런데 5절 말씀을 보면 바울이 이 편지를 에베소에 쓸 때가 주후 50년 경인데 다른 사도들은 선교여행 때 아내와 함께 다녔다는 걸 알 수 있죠.

그 당시는 교통편도 좋지 않고 여러 상황이 여의치 않기 때문에 아내들이 밥도 해주고 도움을 준 것이죠.

그런데 바울도 그런 권리가 없겠느냐 하고 말하는 것을 봐서 바울도 이미 결혼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아내와 사별했는데, 아니면 같은 유대교 아내가 바울이 기독교로 전환하는 것을 두고 이혼했는지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바나바와 일한 것을 말하면서 교회에서 돈을 받고 복음을 전할 권리가 없겠느냐 하는 거죠.

사도행전 18장에 바울이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할 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와 함께 텐트를 만들어 팔면서 복음을 전했죠.

그러면서 바울이 바나바 이야기를 하는데 바나바는 고린도에 같이 갔던 사람이 아닙니다.

1차 선교여행 때 같이 갔던 사람이지만 2차 선교여행 때 바울은 바나바와 헤어지고 다른 곳으로 갔죠.

그런데 3차 선교여행을 하는 에베소에서 편지를 쓰는 가운데 바나바 이야기를 다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걸 볼 때 2차 여행 때 다퉜던 그 부분을 이미 주님 안에서 화해한 것을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7절을 통해 군복무를 하는 사람도 자기 비용이 아니라 국가에서 먹고 자게 해 준다는 것이죠.

군대에까지 먹고 마실 것을 싸 가지고 가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죠.

그처럼 포도를 심고 양 떼를 기른 사람은 포도와 양의 젖을 먹는 게 당연한 것처럼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자는 교회로부터 먹을 권리가 있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깨달음)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깨달을 수 있는 게 무엇입니까?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 사람들과 악과 선의 문제 때문에 결별할 수 있습니다.

같이 진리를 쫓으면서도 견해 차이 때문에 서로 결별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도 바울은 끝까지 결별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화해하고 그와 동역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적용)이것은 오늘 새벽에도 나눈 말씀인데 왜 오순절날 120명의 제자들에게 난곳 방언을 주셨습니까?

그 방언으로 자기 과시를 하라고 주신 것입니까?

그 방언을 통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 되도록 하기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남이 알아듣지 못한 방언은 자기 개인 기도를 위해 매우 유익이 됩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타인과 소통하지 못하고 담만 쌓고 지낸다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령의 사람이 아니죠.

그렇지만 비록 유창한 방언은 못해도 타인과 소통하며 이해심이 깊은 사람은 진정으로 성령충만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바울도 3차 전도여행을 떠난 땅끝의 사람이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견해차로 결별한 바나바와도 화해한 땅끝의 사람이었다는 점입니다.

오늘 나도 내 곁의 사람과 담을 쌓은 경험이 있지만 그와 화해를 했고 소통하고 있다면 나도 땅끝의 사람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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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2)본문 8-10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깨달음) 바울이 지금 교회를 섬길 때 교회로부터 지원받을 권리를 밝힌 게 실은 율법에서도 말하는 바라는 점입니다.

어떤 율법이기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요?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추수 때가 되어 수확이 끝나면 한 동네의 공터에서 공동으로 타작을 합니다.

큰 방아를 설치하고 그 방아를 소나 나귀로 하여금 돌리게 하죠.

그래서 여러 사람이 단 시간 내에 타작을 끝냈습니다.

 

본래 이 공동타작은 이집트에서 전래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집트 사람들이 공동타작 할 때는 반드시 소나 나귀에게 망을 씌웠습니다.

왜냐하면 소나 나귀가 방아를 돌리면서 자꾸 먹어치우기 때문이죠.

그만큼 너희 소나 나귀는 먹지 말고 일만 하라는 것이죠.

 

문제는 그런 애굽의 관습이 이스라엘 땅에 들어온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땅에서 애굽의 관습을 따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그 백성들에게 명령하기를 절대로 짐승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고 먹게 하라고 한 거죠.

짐승도 먹을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명기 25장 4절 말씀의 내용인데 오늘 본문 10절 상반절에 인용한 것입니다.

그것이 소나 나귀만을 위한 게 아니라 우리를 위해 기록된 것이라고 하면서 말이죠.

 

(적용)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짐승만 그렇게 위해 하라는 것입니까?

짐승도 그토록 돌보시는 하나님이라면 하물며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지 않겠냐 하는 것입니다.

 

(본문3)오늘 본문 11-15절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깨달음) 바울은 너희에게 진리의 복음을 전했는데 그 대가로 우리의 생계를 원하는데 그런 권리를 과하다 할 수 있겠냐는 것이죠.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당연한 권리이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밤낮없이 애쓰면서 복음을 전하면서 고린도 교회를 세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너희들이 생계의 부담을 짊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말입니다.

물론 바울은 그런 권리가 있지만 참는다는 것입니다.

 

(원해)여기에 ‘참는다’는 헬라어 ‘스테고’(στέγω)는 ‘덮는다’(to cover)는 뜻입니다.

나도 내 권리를 사용하고 싶지만 주님의 복음에 아무런 장애가 없도록 하고자 그 마음을 꼭꼭 닫아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에서 일하는 레위인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었죠.

그것은 복음전하는 자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복음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복음으로 인해 그 생계가 부양되도록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원성)마태복음 10장 10절에 주님은 제자들에게 전도여행을 보내면서 말씀하셨죠.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누가복음 10장 7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그만큼 복음을 위해 애쓰는 자는 마땅히 부양받을 권리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바울이 그 권리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그것이 자기 자랑거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적용)그렇다면 바울이 왜 이렇게까지 말하는 것입니까?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세운 주님의 사도이기에 교회로부터 생계비를 대접받을 권리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그것은 구약의 율법처럼 레위인이 성전에서 나오는 것을 먹고 살았던 것과 같은 이치죠.

그런데도 바울이 그런 권리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우상의 제물을 먹지 않겠다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바울이 주님께 부름받은 사도지만 자신의 대접받을 권리만을 주장하면 자칫 복음의 순수성이 훼손될까봐 그 권리를 사용치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바울은 사랑의 종노릇하는 관점으로 자기 권리를 포기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바울은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울 때는 사자와 같이 외쳤지만 평소의 삶은 모범을 보이는 양과 같은 삶을 산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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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이 내 권리만을 주장하기 타인을 위해 내 권리를 포기할 줄 아는 그런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네가 설교 단상에서는 사자처럼 외칠지라도 단상 아래에서는 모범을 보이는 온전한 양이 돼야 하지 않겠느냐?”

바울도 고린도교회를 세웠고 그들로부터 육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었지만 사랑의 종노릇하는 마음으로 내려놓았듯이 말이다.”

율법에도 레위인들이 성전의 것들을 먹고 살았듯이 바울도 그럴 권리가 있었지만 복음의 순수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자발적으로 내려놓은 것 아니더냐?”

애굽에서는 일하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않았지만 하나님나라에서는 일하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않도록 했듯이 교회의 일을 하는 자들이 생계를 유지하도록 주님은 배려한 것 아니겠느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너도 교회에서 주어진 권리만 누리기보다 그 권리조차도 주님 앞에서 내려놓고 겸손한 양이 되는 걸 주님이 기뻐하지 않겠느냐?”

바울도 복음을 전하는 곳마다 그리고 로마에 갇혔을 때 각 교회로부터 부조를 받고 지냈듯이 그것이 주님이 원하는 방식이지 않았더냐?”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게 마땅하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말이다.”

하지만 그 권리에 집착한 채 먼저 본을 보여야 할 양이 되는 길을 포기한다면 그 또한 권리만 탐하는 자이지 않겠느냐?”

그러니 비록 바울처럼 살지는 못해도 바울이 강조하는 그 삶의 덕목을 좇아 사는 걸 주님이 기뻐하지 않겠느냐?”

 

(찬양)주 사랑이 나를 숨쉬게 해 세상 그 어떤 어려움 속에도 

주 은혜로 나를 돌보시며 세상 끝날까지 지켜주시네

주 사랑이 나를 이끄시네 내가 갈 수 없는 그 곳으로

주의 사랑 나를 붙드시며 세상 끝날까지 인도하시네

주님만이 내 아픔 아시며 주님만이 내 맘 어루만지네

어느 누구도 나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네

주님만이 내 능력이시며 주님만이 나의 구원이시네

어느 누구도 나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네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목회자는 강단에서 사자처럼 외치지만 강단 아래에서는 양처럼 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늙은 양 젊은 양 어린 양 앞에 모범을 보이는 양 말입니다.

바울도 그런 모습으로서 어디를 가든 대접받을 권리가 있었지만 스스로 그 권리를 내려놓고 섬기는 모습의 삶을 살았죠.

그만큼 복음의 순수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사랑의 종노릇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교회를 세워나갈 때 내 권리만 주장하기보다 사랑의 종노릇하는 마음으로 겸손한 양처럼 살아갈 수 있는 복된 자녀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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