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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예화) 2024년 프랑스 파리 올림픽 경기가 한창입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금메달 5개로 전체 순위 5위에 올라가 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뒤바뀔지, 어떻게 더 많은 메달을 딸 수 있을지 지켜보고 응원할 뿐입니다.
전설적인 육상 선수 하면 떠오르는 영웅이 있습니다.
우사인 볼트가 바로 그 사람이죠.
그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100m, 200m와 400m 계주까지 석권하며 단거리 황제로 등극했습니다.
그는 2012년 런던올림픽 3관왕, 2016년 리우올림픽 3관왕의 대업을 이룩했습니다.
우사인 볼트는 그야말로 올림픽 역사에 길이 남을 금자탑을 세운 단거리 천재선수입니다.
그런데 2017년 런던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400m 계주 결승에서 우사인 볼트는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때 쓰러진 이후에 경기가 끝날 때까지 다시 일어나지 못했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천재적인 자질만으로는 우승할 수 없다는 것이 그 경기에서 드러난 것이었습니다.
우사인 볼트는 대회 전에 절친한 동료가 교통사고를 당해 그 충격을 받고 3주 동안 훈련을 하지 못했다고 털어놨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은 세계 최고, 나를 따라올 자가 없다고, 장담한 것이었죠.
그래서 충분한 연습도 없이 출전했다고 근륙 경련으로 쓰러지고 만 것입니다.
(깨달음)우리나라 우상혁 선수에 관한 다큐멘타리를 보여주는데 본래 그는 육상선수였습니다.
그러다가 높이 뛰기를 해 보라고 했을 때 그냥 뛰어넘었고 그때부터 높이 뛰기 선수로 나간 것이었죠.
그 후에 슬럼프가 왔고 몸무게도 조절을 못했는데 코치 한 분의 콜을 받고 다시금 재기할 수 있었다고 하죠.
(적용)그만큼 올림픽 운동 선수든 우사인 볼트든 우리 인생은 달음질과 같은 것 아니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경기든 운동이든 일이든 복음이든 그 무엇이든간에 인생은 경주라는 사실입니다.
모든 경주에 상급이 있듯이 복음에도 상급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 땅의 상급은 때가 되면 빛을 발하지만 복음 안에서 받는 상급은 영원하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그 상급을 주시는 분이 영원한 아바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애써야 할 상이 바로 그런 상인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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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배)바울은 다소에서 태어난 헬라파 유대인이었습니다.
그 반면에 이스라엘 사회에서 태어나 전통적으로 히브리 말을 하고 이스라엘 국경을 넘어본 적이 없는 사람을 히브리파 유대인이라고 부릅니다.
그처럼 바울은 바울은 태어날 때부터 해외파였지만 유대인을 만나면 유대인처럼 살았습니다.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았죠.
그 유대인들을 복음 안에서 얻고자 함이었습니다.
또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 곧 율법주의자들을 위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바울은 율법 자체가 무용하다거나 무의미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이 잘못 안 것은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받는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자기의 의로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한 것이었죠.
하지만 율법을 지키면 지킬수록 우리의 능력으로는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허물을 더 알게 됩니다.
그래서 율법의 문자주의에 갇히기보다 율법의 정신 속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을 더 알아야만 하는 것이죠.
바울은 그것을 잘 알기 때문에 오직 복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하지만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만나면 그들을 얻고자 자신도 율법 아래에 있는 자처럼 처신을 했습니다.
그 실례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바울이 2차 선교여행 때 바울이 루스드라에 가서 디모데를 제자로 삼습니다.
디모데 어머니는 유대인이었고 아버지는 헬라인 곧 이방인이었습니다.
그 집안에는 헬라인의 영향력이 컸기 때문에 디모데는 성인이 될 때까지 할례를 행치 않았죠.
이제 바울이 디모데를 데리고 제자를 삼아 루스드라를 떠날 때 유대인들 앞에서 할례를 행한 것이었습니다.
루스드라에 있는 유대인들이 자칫 할례도 행치 않는 아들을 제자 삼는 걸 이단으로 여길까 봐 유대인들 앞에서 할례를 시행한 것이었죠.
그만큼 바울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과 접촉점을 갖고자 율법 아래에 있는 자처럼 할례를 행했던 것입니다.
또 실례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17장을 보면 바울이 아덴 곧 아테네게 간 장면이 나옵니다.
그 도시 곳곳이 우상이 가득 찬 걸 보고 바울이 분개했습니다.
그런데 파르테논 신전 아래에 있는 아레오바고 곧 시장에 가서 헬라 철학들과 변론하면서 복음을 전하죠.
그때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는 문구가 우상 앞에 쓰여 있었는데 바울이 그걸 어떻게 적용합니까?
바울은 그 알지 못하는 신을 가리켜 천지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만큼 바울은 율법 없는 자들 곧 그리스 아테네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방식으로 다가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 살펴본 22절 말씀처럼 바울은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되었다고 밝힌 것입니다.
여기에서 ‘약한 자’란 신체가 아니라 믿음과 심령이 약한 자를 말하는 것이죠.
고린도에서 우상 제물을 먹는 걸 보고 우상에게 어떤 신적 능력이 있는가 보다, 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바울은 그런 심령이 약한 자가 실족할까 봐 우상의 음식을 평생 먹지 않겠다고 한 것이었죠.
그만큼 바울은 그 약한 자들을 복음 안에서 얻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칫 잘못 생각하면 바울을 기회주의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자에게 율법 있는 자처럼, 또 율법 없는 자에게는 율법 없는 자처럼 여러 모양으로 나타났다고 하니 말이죠.
하지만 바울은 복음의 본질만큼은 또 죄의 본질만큼은 확고부동했습니다.
지금 바울이 이야기는 것은 형식에 관한 것으로 상대적인 사람들을 복음 안에서 모두 얻고자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다가갔다고 말한 것입니다.
(본문)오늘 본문 바울이 어떤 마음과 자세로 복음을 전하는 일에 매진했는지를 밝혀주는 말씀입니다.
본문 24-25절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깨달음)2천년 전 당시 로마 제국 시대 내에 스포츠는 절대적이었습니다.
아테네가 있으면 왼쪽에 고린도가 있고 그 북쪽에 파르나소스 산이 있는데 그 산에 가면 델포이 신전이 있습니다.
그 신전 바로 위에 스타디움이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700년 전에 세워진 것으로 7천 석 규모로 지어졌죠.
그 관중석도 모두 돌로 만든 것입니다.
그 당시에 얼마나 스포츠가 대단했으면 로마 황제도 참여했다는 것을 기록으로 알 수 있습니다.
재밌는 것은 그 당시 지방 소규모 도시에서도 운동을 하면 1등과 2등과 3등을 주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고린도 같은 대도시에서는 오직 1등만 상을 주었습니다.
그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바울이 지금 그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이라고 말이죠.
그러니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해야 하지 않겠냐 하는 것입니다.
(적용)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당시의 상은 모두가 상대평가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향한 우리의 경주는 어떻습니까?
오직 절대평가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1등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지금 그런 관점으로 달음질하듯이 복음으로 매진해야 하지 않겠냐 하고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25절을 통해 그 당시의 상은 모두 썩을 면류관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복음 안에서 경주하는 상은 썩지 않을 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 당시에 이긴 자들에게 씌워주는 월계관은 다 이파리로 만든 것이죠.
그것이 며칠이나 가겠습니까?
우리가 어렸을 때 개근상도 받고 우수상도 받습니다.
하지만 그 상장들이 다 어디로 갔습니까?
어릴 때는 자랑으로 챙겼지만 나이가 들면 다 필요없다는 것을 알게 되죠.
왜냐하면 그것들은 다 녹슬고 썩고 없어지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가 받고자 하는 면류관은 영원한 것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썩어 없어질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영원한 면류관 말입니다.
그것을 얻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파리 올림픽에 나와 금매달을 따는 선수들은 자기 관리가 철저한 선수들이죠.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먹고 싶은 것 다 먹으면서 자기 몸을 관리할 수는 없습니다.
그만큼 그들은 이 땅에서 보배 같은 금매달을 따기 위해서도 절제한다면 우리도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 절제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죠.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도 바로 절제하는가 그렇지 못하는가 하는 차이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는 복음의 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2)본문 26-27절도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깨달음)사도 바울이 왜 절제하는 것입니까?
분명한 목표가 있기 때문이죠.
향방 없는 것 같이 하지 않기 위함입니다.
허공을 치는 것 같이 하지 않기 위함이죠.
그만큼 복음 안에서 분명한 목표의식을 갖고 살았던 바울입니다.
(원해)그런데 27절에 나오는 ‘내 몸을 친다’는 헬라어 단어는 ‘휘포피아조’(ὑπωπιάζω)인데 피멍이 들 정도로 친다(to beat black and blue)는 뜻입니다.
그만큼 바울은 주님을 위해서 피멍이 들 정도로 주님의 뜻에 복종시키 위해서 자기 몸을 절제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엄격하고 단호하게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바울이 그토록 엄격하게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렵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 부분을 잘못 생각하면 미신적이고 저급한 차원으로 오해하기가 쉽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잘하지 않으면 구원받았다가도 구원에서 제외될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게 그것이죠.
하지만 그런 말이 아닙니다.
내가 주님을 위해 헌신하지 않으면 내가 열심히 복음을 전한 뒤에 하나님께 상받는 자로부터 버림을 받을까 두렵다는 뜻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구원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상급대 앞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야 할 그 상이 없어질까 두렵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복음 안에서 자기 자신을 쳐서 주님께 복종시킨다는 것이죠.
오직 하나님께 받을 절대적인 상급의 푯대를 향해 달려 나가기 위해서 말이죠.
(적용)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우리 삶에 적용할 부분이 무엇이겠습니까?
참된 신앙의 소유자가 되기 위해서는 바울처럼 영원을 향한 시선을 갖고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죠.
영원을 향한 시선이란 하나님께 상을 받는 그 날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죠.
그때에만 나를 주님께 복종시킬 수 있고 그 때에만 절제하며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먼 시선을 갖고 사는 것이고, 그 먼 시선을 갖고 살면 당장 눈 앞의 이익보다 영원한 진리에 초점을 맞추며 살 수 있는 것디죠.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멀리 보는 것이요, 멀리 보면 멀리 볼수록, 내 눈앞의 이익은 버릴 수 있고, 오히려 영원 속에서 얻게 될 진리를 더 가치 있게 여기기 않겠습니까?
그 때에만 우리는 올림픽 경기에 나가 금매달을 따지 못한다 해도 복음 안에서 영원한 면류관의 금매달을 받을 순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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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은 저와 여러분 모두가 영원한 하늘나라의 상급을 고대하며 주님께 복종하는 경주자로 사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프랑스 파리 올림픽이 한창인데 다들 금메달을 받고자 4년을 준비하고 연마하지 않았겠느냐?”
“우사인 볼트도 세계적인 단거리 선수로 누가 뭐라해도 최고지만 그도 연습하지 않으면 다리에 근육경련이 일어나지 않더냐?”
“어떤 경기에 뛰든 어떤 올림픽에 출전하든 그 선수는 이기기를 위해 애쓰고 그 몸을 단련하고 절제해야 하지 않겠느냐?”
“바울도 지금 허공을 향해 달리는 게 아니라 복음의 상급을 받도록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더냐?”
“이 세상의 상급은 때가 되면 잊혀지고 썩을 것이지만 하늘나라의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급은 영원히 쇠하지 않을 상급이지 않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너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절대적인 상급을 받고자 영생을 내다보고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이 땅의 상급은 아무리 가치가 있어도 언젠가는 썩어질 것이지만 영원한 하나님의 상급은 썩지 않을 영원한 면류관일테니 말이다.”
“바울도 그 상급을 받고자 자신이 피멍이 들 정도로 자기를 치면서 복종시킨다고 했으니 너도 그렇게 주님께 복종해야 하지 않겠느냐?”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들은 모두가 자기 훈련과 자기 절제를 잘 감당한 선수들 아니겠느냐?”
“너도 하나님나라에서 영원이 썩지 않을 상급을 받고자 한다면 복음안에서 절제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찬양)모든 상황 속에서 주를 찬양할지라
주는 너의 큰상급 큰 도움이시라
주의 얼굴 구할때 주의 영을 부으사
크신 사랑 안에서 주를 보게 하소서
내 영혼이 확정되고 확정 되었사오니
믿음의 눈들어 주를 바라봅니다
내 영혼이 확정되고 확정 되었사오니
믿음의 눈들어 주를 바라봅니다
주를 찬양할 때 주의 나라 이미 임했네
주의 영원한 나라 보게 하소서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프랑스 파리 올림픽이 한창이고 저마다 금메달을 따고자 비지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4년간 철저하게 그 목표를 향해 자기 절제를 하며 최선을 다한 경주자들 아닙니까?
그러나 그 상급은 머잖이 또 다른 선수에 가려지게 되고 그 상급은 썩어 없어질 것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고대하고 받게 될 그 상급은 영원한 상급이요 썩지 않을 상급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안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그 상급은 우리의 영원한 하늘 아버지께서 주시는 상급이기 때문입니다.
그 상급은 절대적인 상급이기에 우리가 그걸 받고자 우리 몸을 쳐서 복종시키고 또 주님의 말씀에 절제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와 같은 영원한 상급을 바라보며 달음질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그런 은총의 주인공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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