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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사도행전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2:1-13)

by 똑똑이채널 2024.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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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신 주님께서 이 땅에 40일간 머무셨습니다. 그리고 감람산에서 하늘로 승천하셨죠. 그때 승천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바라본 사람들이 500여 형제였고, 여자와 아들까지 적어도 1천명은 족히 되었겠죠. 주님은 그들 모두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 곧 보혜사 성령을 기다리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보혜사 성령을 받아야 주님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었죠. 보혜사 성령님의 임재 안에 거하는 자만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으로 살 수 있기 때문에 말입니다. 보혜사 성령님의 임재와 이끄심 속에 있는 자라야 마음이 통하는 가족과 혈육은 물론이요 마음의 장벽이 있는 사람들조차도 심지어 소외되고 고립된 이들까지도 주님의 증인으로 사랑하며 품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주님의 승천을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 중에 120명의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오로지 기도에 힘을 썼죠.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입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렇게 그들이 기도하는데, 드디어 오순절 날이 이르렀습니다.

 

본문 1절입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여기에서 ‘오순절’이란 영어로 ‘펜타코스트’(Pentecost)입니다. 이것은 숫자 ‘5’를 뜻하는 헬라어 ‘펜테’에서 파생된 말로 ‘50번째의 날’이라는 뜻입니다. 이른바 유월절 어린양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날로부터 50일째 날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구약의 유월절로부터 50일째 되는 칠칠절과 같은 날입니다. 물론 그 칠칠절은 추수의 의미가 있는 날이지만, 실질적인 칠칠절은 유월절과 깊은 연관성이 있는 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해방된 날이 유월절이었죠. 그때 양의 피를 문설주와 좌우인방에 바르게 하셔서 그 피를 보고 심판의 재앙, 곧 죽음의 재앙을 넘어가주셨죠. 그것을 일컬어 ‘페사흐’ 영어로 ‘패스오버’(Pass Over)라고 부르는 것이죠. 한자로는 ‘넘을 유’ ‘넘을 월’ ‘마디 절’해서 ‘유월절’로 부르는 것이고요. 그런데 그렇게 해방의 날을 맞이한 그들이 시내산에 당도한 날,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간에 언약식을 체결하고 모세를 불러 십계명을 비롯한 유례와 법도를 주셨던 날이 바로 유월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이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오순절 하면 신약성경의 성령강림절로만 생각하기가 쉽지만 구약시대에 율법 곧 하나님의 말씀을 수여받은 날이 곧 오순절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기쁜 날을 또한 추수의 의미를 부여한 칠칠절로 여기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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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먹은 하나님 응답하소서 | 권성권 | e퍼플- 교보ebook

"성경으로 문화 읽기를 접목한 세 번째 책이다. 첫 책은 출애굽기로부터 시작해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까지의 내용이 담겨 있다. 두 번째 책은 여호수아로부터 시작해 사사기, 룻기, 사무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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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라고 나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꽉 찼다는 뜻입니다. 그때 120명의 주님의 남녀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온전히 기도에 힘쓰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기도에 힘쓰고 있을 때 아버지의 성령, 곧 보혜사 성령님께서 임하셨음을 증언해 줍니다. 이른바 성령세례가 임한 모습인데, 본문 2-4절에 이렇게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이때 이들이 성령세례를 받았는데, 두 가지 그림 언어로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었죠. 바람을 뜻하는 히브리어 ‘루아흐’는 성령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성령이 임할 때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었다”다고 표현한 것이죠.

그리고 또 하나가 임했죠.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이 그들에게 보인 것이었죠. 사실 바람 같은 소리는 성령 자체를 그렇게 강력하게 표현해 준 것이고, 보다 명확하게 표현 한 게 불의 혀죠.

왜 그들에게 성령세례가 임할 때, 성령님이 임재와 역사가 나타날 때, 불의 혀 같은 것이 명확하게 보였다고 증언하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곧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하는 것에 이르기 위한 과정이죠. 그들이 ‘다른 언어들로 말했다’는 것을 흔히 ‘방언’을 했다고 표현하죠. 물론 이때의 방언은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천사의 언어가 아닙니다.

 

본문 5-11절은 이렇게 증언해 줍니다.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120명의 제자들이 모두 다 방언을 했는데, 그들이 하는 방언을 세계 16개국에서 온 사람들이 자기네 나라 말로 알아듣는 인간의 언어였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난 곳 방언’, 다시 말해 태어날 때부터 듣고 배운 자기네 나라말을, 지금 120명의 제자들이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젠가도 말씀드렸지만 존 세릴의 〈성령님을 찾아서〉라는 책에도 성령님의 임재와 방언에 대한 부분이 나옵니다. 전혀 배운 적도 없는 사람이 고대 세계의 언어를 말하기도 하고, 또 다른 외국 말을 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 말입니다. 그것을 인간의 이성이나 지성으로, 인간의 논리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냐는 것이죠. 성령님의 역사와 임재는 그렇게 인간의 지성과 이성을 뛰어넘는 신비로운 역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와 같은 방언을 주신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 본문의 방언과 고린도전서 12장의 은사장에 나오는 방언을 별개로 보는 성경학자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방언은 지극히 인간의 언어였고, 고린도전서 12장은 인간의 언어로 알아듣지 못하는 천사의 언어였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존 셰릴의 5년간 추적한 이들의 인터뷰를 보면 문뜩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120명의 사람들이 성령세례를 받아 각기 다른 언어들로 말하는데, 그 언어를 세계 16개국에서 온 사람들이 자기네 나라 말로 알아들을 수 있었겠다는 것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방언이 인간의 언어였느냐, 아니면 천사의 언어를 인간의 언어로 알아들었느냐,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게 있죠. 오늘날에도 천상의 언어, 곧 하늘의 언어와 같은 방언을 받아, 그렇게 방언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성령세례가 꼭 방언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세례가 꿈과 계시로, 눈물과 뜨거움으로, 강력한 믿음으로, 그리고 충만한 사랑으로, 그렇게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왜 오늘 본문에서는 성령세례를 통해 다른 언어들로 말하게 하셨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것은 소통이 근본 목적이라는 점입니다. 천상의 언어인 방언은 기도할 때 자기 자신의 유익을 줍니다. 하지만 본문 속의 ‘난 곳 방언’은 제자들로 하여금 예루살렘을 넘어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으로 살게 하기 위한 시발점으로, 다시 말해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차원에서 주신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언어가 통해야 관계가 형성되고, 관계가 형성돼야 복음을 전할 수 있고, 그래서 땅 끝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죠. 그것을 바꿔 말하면 그런 의미를 깨달을 수 있죠. 내가 비록 본문 속의 제자들처럼 유창한 방언을 하지 못한다 해도 내 삶 속에서 평소에 누군가와 담이나 막힌 게 없이 소통하고 이해하고 포용하면서 산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성령충만함 가운데 살아가는 주님의 증인이라는 점 말입니다. 그것보다 성령충만한 삶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고, 그를 위해 성령세례와 방언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그런 은총이 임하길 주님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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