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왕국 이스라엘의 11번째 왕 여호아하스와 12번째 왕 요아스에 관한 내용을 살펴봤죠. 여호아하스는 예후의 아들이고 요아스는 예후의 손자였죠. 예후가 아합 가문을 완전히 처단하고, 바알 산당까지 척결하여 칙간으로 만들 때 하나님께서 그걸 보시고서 그의 아들 4대까지 왕위를 잇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죠. 그래서 10번째 왕이 예후, 11번째 왕이 여호아하스, 12번째 왕 요아스였던 것이죠. 물론 여호아하스나 그 아들 요아스가 정권을 잡을 때 이웃 나라 아람 왕 하사엘이 북이스라엘을 괴롭혔죠. 그때 여호아하스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해 그 군대가 물러가는 은총을 맛보았죠. 그 아들 요아스도 죽어가는 엘리사 선지자를 붙잡고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하면서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했는데, 그때 요아스는 하나님의 도움에 힘입어 아람의 군대를 세 번씩이나 물리쳤죠.
오늘 본문은 남왕국 유다의 9번째 왕 아마샤에 관한 기록입니다. 아마샤는 8번째 왕 요아스의 아들이죠. 요아스는 이전의 할머니 아달랴 여왕 때는 물론이고, 그 이전의 아버지 아하시야 때, 그리고 할아버지 여호람 왕 때 행한 바알 숭배를 완전히 척결한 왕이어죠. 제사장 여호야다가 7살 된 요아스를 왕위에 올렸고, 바알 신전의 괴수 맛단까지 척결했고, 무너진 성전도 수리할 정도로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요아스 왕이었죠. 하지만 그의 임기 말년에 아람 나라가 쳐들어와 예루살렘 성을 포위할 때,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기보다 자기 왕궁 곳간과 성전 곳간의 금들을 가지고 아람 왕 하사엘을 달래서 군사를 물러가게 했죠. 그 일로 그는 부하 장수의 칼날에 죽는 최후를 맞이했죠.
오늘 본문은 그 요아스가 죽은 뒤에 갑작스레 왕위를 이어받은 아마샤 왕에 관한 기록이 전반부에 등장합니다. 본문 1절에 “이스라엘의 왕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 제이년에 유다의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왕이 되니.” 북왕국 이스라엘의 12번째 왕 요아스가 통치하던 시기에, 남왕국 유다의 9번째 왕 아마샤가 왕위에 올랐다는 기록입니다. 이때 아마샤는 25세의 나이였고, 그로부터 29년을 통치했다고 2절에서 밝혀주죠. 그런데 3-4절은 “아마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는 같지 아니하였으며 그의 아버지 요아스가 행한 대로 다 행하였어도 오직 산당들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다, 그러나 다윗과 같은 길을 걷지는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는 것을 그대로 허용했다는 점입니다. 그만큼 백성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죠. 백성들에게 산당은 자신들의 종교적 열심, 자신들의 이기적 소원과 바람을 빌고 비는 곳이었죠. 그것까지는 제거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랬다가는 백성들이 왕에게 반기를 들고 일어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5-6절은 매우 이색적인 부분을 보여주죠. “나라가 그의 손에 굳게 서매 그의 부왕을 죽인 신복들을 죽였으나 왕을 죽인 자의 자녀들은 죽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함이라 곧 여호와께서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자녀로 말미암아 아버지를 죽이지 말 것이요 아버지로 말미암아 자녀를 죽이지 말 것이라 오직 사람마다 자기의 죄로 말미암아 죽을 것이니라 하셨더라.” 아마샤는 자기 아버지 요아스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있죠. 신복들에 의해 쿠데타로 죽은 걸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왕위에 오른 뒤에 맨 먼저 해야 할 일은 정적들을 제거하는 일이었죠. 그런데 아마샤는 놀랍게도 자기 부왕을 죽인 자들만 처형했다는 점입니다. 당시에는 3족을 멸하는 것, 그래서 더 이상 쿠데타를 못 일으키도록 씨를 말리는 게 관행이었는데, 아마샤 왕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자기 부왕을 죽인 자들만 처형할 뿐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했습니까? 그것은 신명기 24장 16절의 말씀, “자식들은 그 아버지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니 각 사람은 자기 죄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 이른바 여호와의 율례와 법도에 순종하는 모습이죠. 그것이 곧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본문 7절은 이방 나라 에돔과 벌인 전쟁 이야기입니다. 이 전쟁에 관한 상세한 기록은 역대하 25장에 나와 있습니다. 그 상황을 보면 아마샤 왕은 에돔과 전쟁을 치르기 전에 자기 나라의 군사력이 약하다는 걸 알고 북이스라엘에게 군사 지원을 받죠. 10만 명의 용병을 지원받는데, 그 대가로 은 일백 달란트를 지불하게 되죠. 그런데 그토록 든든한 후원군을 얻고 전쟁을 벌이려고 하는 그 찰나에 하나님의 사람이 아마샤 왕에게 찾아와 이야기합니다. ‘지원군 10만 명을 모두 돌려보내고 하나님만 온전히 의지하십시오. 하나님이 도우실 것입니다.’하는 것 말이죠. 그때 아먀사 왕은 어떻게 했을까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겠지만 그는 끝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신뢰하죠. 그래서 10만 지원군을 물러나게 했는데도, 그 에돔과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문제는 그 이후였습니다. 그는 대승을 거둔 이후에 에돔 사람들이 섬기는 우상을 가져다가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연신 빌고 비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행했다는 점입니다. 정말로 웃기는 모습 아닙니까? 그래서 그 이후의 상황을 본문 8-14절에서 보여주는데, 그의 비참한 최후를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그는 에돔 국에 대한 대승을 거둔 후에 기세등등하여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에게까지 진검승부를 벌이자고 청하죠. 그러다가 졸지에 패전하고 포로 신세로 전락하다가, 19절에서는 아버지 요아스처럼 쿠데타 세력에 의해 쫓기고 쫓기다 씁쓸하게 살해당하는 것으로 최후를 맞이하죠.
그렇게 아마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때, 북왕국 이스라엘의 상황을 보여주는 말씀이 본문 23-29절 말씀입니다. 이때 북왕국 이스라엘은 10대 왕 예후에 이어 그 아들 여호아하스가 11대 왕으로, 그 아들 요아스가 12대 왕으로 왕위에 올라 통치하고 있었죠. 바로 그 요아스가 왕으로 있을 때 남왕국 유다의 아마샤가 싸움을 걸어왔는데, 요아스는 군대를 몰고 진격해 남왕국 유다를 초토화시켰고,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 금은보화들을 탈취했고 사람들까지도 볼모로 끌고 사마리아 성읍으로 돌아왔죠. 본문 23-29절은 그 요아스 왕의 뒤를 이은 아들 여로보암 왕에 관한 기록입니다. 이른바 북왕국 이스라엘의 초대 왕 이름과 13번째 왕 여로보암이 똑같습니다. 그래서 초대 왕을 여로보암1세로, 13대 왕을 여로보암2세로 칭합니다.
어찌됐든 여로보암2세는 예후 가문의 증손자입니다. 10대 왕 예후에 이어 그 아들 여호아하스, 그 아들 요아스, 그리고 그 아들 여로보암으로 이어지고 있는 모습이죠. 중요한 것은 여로보암2세의 통치 시대에 하나님의 선지가 ‘요나’가 활약했다는 점입니다. 그것이 본문 25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요나는 엘리사 선지자 이후에 굵직하게 활약했던 선지자였습니다. 요나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여로보암2세가 대대적인 영토 확장을 가져올 것이고, 북이스라엘을 부국강병의 국가로 만들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그대로 성취된 모습을 밝혀줍니다. 그래서 28절의 말씀처럼 여로보암2세는 다메섹 곧 아람 나라도 빼앗았고, 유다에 속했던 하맛도 다시금 북이스라엘에 편입시킨 모습을 보여주고 있죠. 그만큼 위대한 업적을 남긴 왕이 여로보암2세였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면 그 여로보암2세가 무슨 특출한 능력이나 그가 지닌 군사력이 돋보였다고 기록한 모습은 없습니다. 있다면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하심입니다. 그가 부국강병의 북왕국 이스라엘을 이끌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총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음성이 무엇입니까? 아무리 아마샤가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 에돔 국가 앞에 대승을 거두었다고 해도 그가 교만한 상태 속에서는 북이스라엘 앞에 대패할 뿐이었다는 거죠. 반면에 여로보암 2세가 이방 세력들과의 전투를 승리로 거머쥐고 온 영토를 확장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군사력이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신앙은 우리의 잘나고 못남에 의해 결판나는 게 아니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에 달려 있다는 것이죠. 아무리 우리가 기고 날아도 우리의 힘쓰는 것이 개미와 같다면, 하나님의 도우심은 지게차나 덤프트럭으로 움직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은혜를 덧입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주님.
남왕국 유다의 9대 왕 아마샤가 발버둥쳤지만 대패하고 씁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13대 왕 여로보암2세는 그 어느 때보다 부국강병한 이스라엘을 이끌었습니다.
그가 능력이 있거나 용병술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과 긍휼하심 때문이었습니다.
저희들이 애쓰는 것은 개미가 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은 지게차나 덤프트럭을 움직이는 것과 같은 줄 믿습니다.
연약한 저희들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언제 어떤 상황속에서도 이런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을 받들게 하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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